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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까?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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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감사해야 할까?  (눅 17:11~19)


이탈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 ‘노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엘리나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양로원을 경영하며 외로운 노인들을 돌보는 그녀는 1990년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엘리나가 지닌 최고의 덕목은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그녀가 일찌기 중국에 선교사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그만 폐병이 걸려 중국 땅을 밟기도 전에 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때 그녀는 ‘왜 나를 병들게 했나요?’ 라고 묻는 대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병든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기도를 마친 그녀는 부친이 물려 준 시골 농장으로 가서 열심히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번 돈으로 중국 선교를 도왔습니다. 그런데 또 한 차례의 시련이 닥쳤습니다. 탈곡을 하던 중 오른손이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 잘리고 만 것입니다. 이제는 농사도 지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어째서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라고 묻는 대신에 ‘하나님, 이제 오른손이 없는 저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뒤에 그녀는 자신의 농장을 개조하여 양로원을 세웠고,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양로원을 경영하며 버려진 노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 오고 있습니다. 

엘리나라는 여인은 하나님 안에서 맑은 영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내게 없는 것을 헤아리며 탓하고 원망하는 삶이 아니라 내게 남아 있는 것을 헤아리며 그것을 감사하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데로 환경과 상황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가지고 감사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믿음의 삶도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삶은 지금 상황이 내가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서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고 감사하는 삶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기억한다’ 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꼭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과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시편 103편 2절에 보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이사야서 43장 18절에 보면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기억해야할 것을 기억하고 잊어야 할 것을 빨리 잊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기억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엘리나라는 여인은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잊어버리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지역과 사마리아 지역의 접경지대를 따라 걸어 가셨습니다. 두 지역의 사람들은 서로를 미워하고 경계하는 아주 험악한 상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경계 지역을 지나고 계실 때 10명의 나병환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멀리 서서 ‘랍비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마을로 내려가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들에게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 고 말씀하신 것은 너희 몸이 나았으니 제사장에게 보이고 너의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제사장에게 가는 도중에 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깨끗이 치료되었는데 그 중에 사마리아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는 그를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들이 무엇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우리들의 과거를 기억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 가운데 아홉 명은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나병으로부터 치유되었을 때 예수님을 찾아와 감사하기 보다는 제사장에게 자신의 깨끗해진 몸을 보이고 가정과 사회로 돌아갔습니다. 오직 사마리아 사람이었던 한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했습니다. 유독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감사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자신이 사마리아인이라는 열등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병이라는 병으로 인해 유대인들과 어울려 있을 수 있었지 나병이 아니라면 유대인들로부터 저주받은 사람으로 냉대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아홉 명의 나병환자로부터도 사마리아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유대인 우월주의가 팽배한 사회였습니다. 유대인들을 사마리아인을 개 취급 했습니다. 

아홉 명의 유대인은 나병으로부터 치유함을 받았을 때 자신들은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다시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되살아 날 때 예수님에 대한 감사가 희석되고 잊혀진 것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나병으로부터 낫게 될 만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자신과 같은 천한 사람이 나병으로부터 치유될 수 있었다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픈 과거를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기에 지금의 변화를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일본 기업 내쇼날의 창업자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집안의 몰락으로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하고 자전거포 점원으로 일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온몸으로 살벌한 세상을 배워가며 570개 기업, 13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대기업의 총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말했습니다. 

‘가난’, ‘허약한 몸’, ‘못 배운 것’ 을 말했습니다. 그는 이것들을 불평의 조건으로 받아 들은 것이 아니라 감사의 조건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는 가난 때문에 부지런히 일했다고 말합니다. 몸이 약했기 때문에 건강의 소중함을 알아 몸을 잘 관리하고 아꼈다고 말합니다. 못 배웠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만들어 배우는데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과거의 가난과 허약한 몸, 못 배운 것조차도 감사할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것이 현재의 감사를 만들었습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평생을 감사함으로 산 사람입니다. 다윗이 항상 감사하며 살 수 있었던 이유는 과거의 자기의 모습을 잊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서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왕위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가난했던 목동 시절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사울에게 쫓겨 광야를 헤매던 고난의 시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 토대 위에서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했습니다. 우리들도 감사 주일을 앞두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되돌아보며 우리가 잊고 있는 은혜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며 과거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로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현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에게 보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여기에서 ‘가다가’라는 가는 도중에 라는 말입니다. 현재형입니다. 유대인이었던 아홉 명의 나병환자도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현재의 감사를 미래로 미뤘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그때 가서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구원이 선포되지 않았습니다.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경우에 처해도 배움의 자세를 갖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있는 모습대로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라구요? 지금 있는 모습대로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행복은 감사와 정비례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다 하더라고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을 모릅니다. 모르는 것이 많고, 적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 감사를 현재형으로 고백하며 만들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느 사람이 천국과 지옥을 설명하면서 ‘지옥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가득찬 곳이고 천국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우리 마음과 가정, 직장과 교회가 천국이 되기 위해서는 감사함이 넘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함이 있으면 그 곳은 천국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만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 곳은 지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면서 감사의 영성을 회복해 우리 삶의 영역을 천국으로 만들어 가는 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감사로 미래를 열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의 본문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이 예수님께 돌아와 그 무릎 앞에 엎드리며 감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칭찬하시며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19절의 말씀입니다.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사마리아인은 예수님께 감사했는데 예수님은 그를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감사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감사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를 하지 않습니다. 

나병환자가 예수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축복의 말씀을 들은 원인은 그의 감사입니다. 감사는 그 사람의 미래를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가진 사람들도 미래를 두려워하고 없는 사람들도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사람은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사에는 미래를 선하게 인도해 주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감사하는 사람은 내일을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감사하는 나병환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 고 선포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약속입니다. 

여러분 존 데이비슨 록펠러를 아십니까? 그는 세계적인 부자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빛과 그림자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한때 대중들에게 ‘더러운 자본가’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그는 ‘악의 화신’이란 악명도 얻게 됩니다. 그로 말미암아 ‘반 독점법’이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43세에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고 53세에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됩니다.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그의 재산은 빌 게이츠의 3배를 소유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그가 결코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나이 55세 그에게 일생일대의 위기가 찾아옵니다. 기관지, 탈모증, 신경병, 위궤양, 탈진 등으로 그는 쓰러집니다. 정밀 종합 진단 결과 그는 이런 몸과 마음의 상태로 일 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경고를 받습니다. 그는 하루 100만 불을 벌었지만 그 모든 돈이 이제는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몇 날을 보내다가 한 밤중 침대 옆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는 본래 부모의 영향으로 침례교회에서 자라난 믿음의 사람이었고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드리는 성실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자 사실상 십일조도 어려워졌고 그의 믿음 생활은 형식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어렸을 적에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던 중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이 되신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 일 직후 그가 영적 지도자로 신뢰했던 프레드릭 게이츠 목사와 의논하고 자신의 십일조로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자선 사업과 선교 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는 머지 않아 이 재단에 수입의 절반 이상을 드리게 됩니다. 그는 어려서 십일조를 의무로 드렸지만 이제는 십일조를 감사로 드린다고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유명한 시카고 대학을 위시한 12개의 종합대학, 12개의 단과 대학과 뉴욕의 리버 사이드 교회를 위시한 4,928개의 교회당을 지어 헌납하게 됩니다. 55세를 넘기기 어렵다고 했던 그는 98세까지 살며 ‘더러운 자본가’대신 ‘위대한 자선가’의 간증을 남기게 됩니다. 

그의 나이 98세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느끼는 순간 그가 55세 때 침대 곁에 무릎꿇던 모습으로 엎드려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제 인생의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불행하게 살았지만 지난 43년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켜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그만 주님과 제 마음에 간직한 사랑하는 제 아내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는 여한이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밤이 지난 새벽 그는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면서 나병으로부터 나아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감사하는 나병환자의 감사의 영성을 우리들이 배우기를 원합니다. 감사하는 그를 향해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는 예수님의 축복의 말씀이 믿음 안에서 감사함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선포되는 말씀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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