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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를 복으로 바꾸는 비결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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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복으로 바꾸는 비결 (대상 4:9~10)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옹이란 새상(塞上) 즉 북쪽 국경에 사는 늙은이란 뜻입니다.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북방 국경 근방에 점을 잘 치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는 말이 아무런 까닭도 없이 도망쳐 
오랑캐들이 사는 국경 너머로 가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고 동정하자 늙은이는 
“이것이 또 무슨 복이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 후 뜻밖에도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의 좋은 말을 한 필 끌고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이것을 축하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늙은이는 “그것이 또 무슨 화가 될는지 알겠소?” 하고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좋은 말이 생기자 전부터 말 타기를 좋아하던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들이 장애인이 된 데 대하여 위로하자 
노인은 “그것이 혹시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하고 태연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지 1년이 지난 후 오랑캐들이 대거하여 쳐들어왔습니다. 

장정들이 활을 들고 싸움터에 나가 모두 전사하였는데 
노인의 아들만은 다리가 장애인이어서 부자가 모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당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을 
근시안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멀리 길게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행복한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이 오래가지 못하고 
곧 시련과 역경 속에 눈물과 한숨으로 바뀌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끝도 없이 어두운 터널로만 계속될 것 같았던 
절망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시간이 어느 새 변하여 
웃음과 환희의 상황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까? 
지금 잘 나간다고 너무 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지금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너무 쉽게 절망하거나 낙심해도 안 됩니다. 
얼마든지 상황은 반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야베스’라는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역대상의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야베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록 간단하긴 하지만 
야베스라는 인물에 대해서 특별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상은 아담부터 시작해서 아브라함과 다윗 등 
그 후손들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그마치 1장부터 9장까지가 거의 모두 족보입니다. 
족보라는 것은 거기에 자기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혹 관심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1장부터 누구의 아들은 누구요, 누구의 아들은 누구요 하면서
지루하게 이어가던 족보가 4장 9절에 이르러 갑자기 설명이 나옵니다. 
마치 이 사람은 그냥 이름만 적고 가기에는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라 
이 사람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만큼 
갑자기 클로즈업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장면을 촬영하는 카메라맨이라고 할 때에 
어떤 장면을 죽 촬영을 하다가, 갑자기 관심 있는 곳이 나오면 
그곳을 클로즈업해서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어 촬영하는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예전에 이어오던 족보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야베스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관심의 대상입니까? 
9절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야베스는 그의 어떤 형제보다도 더 귀중한 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본래 태어날 때부터 귀중한 자였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야베스는 고통 중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고 해서 야베스라고 지었다는 것입니다. 
즉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고통이란 뜻입니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하필이면 ‘고통’이란 뜻을 가진 이름을 붙였겠습니까?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의 이름을 고통이란 뜻으로 부르고 싶겠습니까? 
세상에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면 그런 뜻을 이름에 붙였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야베스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축복을 받은 그런 사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야베스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입니다. 
고통 속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비록 고통 속에 태어나 고통 속에 살았다고 할지라도 
그의 인생은 결코 고통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할렐루야! 

그는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으며 
복을 누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은 모두 조상을 잘못 만나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남들을 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좋은 환경 속에서, 공부도 잘하고 
좋은 음식 먹고, 좋은 옷 입으면서 사랑받고 자랐는데,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나서 어릴 때부터 호강은커녕, 고생고생하면서 
오늘 이렇게 불행하게 되었노라고 부모 원망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한이 쌓여서 얘기 보따리를 내어 놓으면 
눈물과 한숨으로 범벅이 됩니다. 
‘당신은 모를 거야. 내가 그 때 얼마나 서러웠는지 알기나 하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마음의 깊은 상처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래요. 그 서러움과 한을 어떻게 풀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에게는 정말 실존적인 아픔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고통과 괴로움 속에 살았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다 한탄만 하고 있는가? 
그 모든 것이 다 조상 탓이고, 부모의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 고통과 아픔을 믿음으로 잘 극복하고 
더 강하게 승리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주인공 야베스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은 신세를 한탄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믿음으로 그 고통을 극복하고 있는 사람입니까? 
여러분은 오늘 당하고 있는 시련과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야베스처럼 극복하는 주인공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그에게 임하였던 화가 복으로 바뀌게 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의 기도였습니다. 
야베스는 바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가 위대하게 된 데에는 어떤 다른 재능이나 지식이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로또 복권과 같이 갑자기 어떤 좋은 운을 만났기 때문도 아닙니다. 
부동산에 투자한 것이 갑자기 가격이 올라서 벼락부자가 된 졸부도 아닙니다. 

그에게 임하였던 화를 복으로 바꾼 비결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야베스는 바로 위대한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는 과연 만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하면 사람이 일할 뿐이지만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 주십니다. 화가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환난과 근심 속에 있으면서도 
염려하고 걱정만 할 뿐 기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기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식 잘 되기를 바라면서도 그런 마음만 있을 뿐
정작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는 적습니다. 

마음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염려하고 걱정해서 자식이 잘 되고 문제가 풀린다면 염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염려와 걱정은 우리를 더욱 큰 근심 속에 들어가게 할 뿐입니다. 

하지만, 기도는 우리의 심령에 평강과 안정을 주며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일으켜 줍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빌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는 아주 단순한 행위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 씨름하는 것입니다. 
  
사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알려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합니까? 
몰라서 알려드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문제를 가지고 아버지 앞으로 나오는 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를 우리 혼자 해결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 씨름하며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그 문제를 계기로 우리와 더욱 가까이 사귀는 것입니다. 
우리와 더 가까운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 해결보다도 우리 자신을 더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면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에스겔36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킬 것을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남의 나라의 공격을 받아, 나라가 망하고 
땅은 황폐하며, 성읍은 노략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의 부정함과 같았다고 17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더러운 행위에 하나님께서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셔서 
그 행위대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을 회복시키신답니다. 
그것은 그 백성들이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이름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정결하게 하신답니다. 
성읍들에 사람들이 거주하게 하며, 황폐한 땅이 경작하는 땅으로 바뀐답니다.
하나님은 무너진 곳을 건축하고 
황량하고 적막한 성읍에 성벽과 주민이 있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 얼마나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까? 
하나님은 이 일을 작정하셨으니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씀은 
바로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겔36:37-38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료를 양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에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작성하셨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지만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구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구하지 않으면 이 일을 이루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통해 일하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혼자 못하셔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정말 하나님의 원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응답받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오늘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기도하고 응답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 가운데 살아계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에 대한 응답을 통해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기도의 자리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주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우리 교회는 지금 우리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찾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안에는 여러 가지 마음의 상처와 아픔들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간절할 열망과 함께, 잘 될 수 있겠는지 불안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 교회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바로 기도의 제목들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교회를 사랑하신다면 기도의 자리에 나오십시오. 
특히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로운 교회 세우기 특별비전집회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더 가까이 사귀십시오. 주님이 위로해 주십니다. 
주님이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십니다. 기도함으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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