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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을 이루는 믿음을 위해 기도하라 (골 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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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을 이루는 믿음을 위해 기도하라 (골 1:11~12)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기도 중에는 긴급한 상황 중에서 그 주어진 문제를 위하여 구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는 문제의 상황이 바뀌면 중단되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구해야 할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기도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성의 삶을 위한 기도입니다. 바울의 골로새 교인들의 영성 생활을 위해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이 기도는 간절한 기도임과 동시에 깊은 기도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기도는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그치지 아니하고 해야 할 기도를 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한 기도 󰒒선한 일에 열매를 맺기를 구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기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그 외에 그치지 않고 구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 기도는 부흥의 역사를 위한 믿음을 세워주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광야여정의 준비를 위한 심령 부흥회를 앞두고 ‘부흥하게 하소서’란 주제로 특별새벽 예배를 가지게 됩니다. 
부흥을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을 위해 무엇을 구하고 받겠습니까? 

능력으로 강하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이것을 새 번역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게 되어서...” 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으로 강하게 하시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능력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영광이란 말 ‘독사’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속성을 종합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광의 힘은 마치 태양은 7가지색이 합하여 빛이 되듯이, 하나님의 모든 속성 곧, 전지, 전능, 사랑, 거룩, 무소부재 등등에서 오는 능력을 말합니다. “모든 능력”의 능력이란 말, kratos는 ‘행동에 발휘되는 힘’을 말하고, “능하게 하시며”의 능력이란 말, dunamis는 ‘부여받은 능력’을 말합니다. 이 모든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말합니다.  
  
이상의 용어들을 종합해 볼 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을 부여받음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을 체험하여 능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을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능력발휘는 외적인 모습과 내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외적인 능력의 모습이 드러날 때 능력 있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강론하며 2년간 그곳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을 쫓아 모든 능력으로 바울을 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바울에게 부여하심으로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을 때, 병이 떠나고 악귀도 쫓겨났습니다. 에베소에 거하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이러한 능력을 보고 두려워하며 회개하고 믿는 자가 되었고, 주 예수의 이름을 높였고,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은 마술 책을 모아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는데, 그 책값을 계산한 즉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왕하여 더욱 세력을 얻었습니다. 에베소는 변화와 함께 개혁의 역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행 19:11-19) 바울에게 나타난 이 하나님의 능력은 외적으로 드러난 능력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루살렘성전 ‘아름다운 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 주어 걷게 했습니다. 이 일로 대제사장과 제사장들 유대 장로들과 율법학자들이 공회에 모여 의논하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위협하면서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와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4:19-20)  
  
베드로와 요한은 어떤 제자들이었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이 체포되어 심문 받으셨던 가야바 제사장의 뜰에서 심부름 하는 여자 종이 그를 보고 ‘예수와 함께 있었던 자라’는 말에 예수님을 욕하고 저주하면서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마26:69-74) 요한은 예수님이 체포될 때에 맨 몸에 홑이불을 두르고 있다가 홑이불을 버리고 맨몸으로 달아난 사람입니다.(막14:51-52)
  
그런데 이 제자들의 담대함은 어디에서 생긴 것입니까? 어느 누구도 막을 법이 없는 이 담대함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할 때에 우리의 내적인 능력을 바울은 성령의 열매인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금지 하거나 막을 수 없는 내적으로 임하는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
  
내적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내적 성품을 다스리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특히 감정과 의지를 다스리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 능력을 어떤 법도 멈추게 할 수 없는 능력으로서 성령의 열매로 표현했습니다.
  
성서본문에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과 같은 것도 내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외적능력과 함께 내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가져야 그리스도인의 일을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권위는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오는 모든 능력을 부여받아 능력 있는 성도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하여지는 성도가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는 믿음은 부흥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광의 권능에서 오는 모든 능력으로 강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강한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능력이 부흥의 역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내하는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기도했습니다. ‘견딤’이란 말 ‘휘포모넨’은 정해진 목표지점을 향하여 고난을 무릅쓰며 전진하는 것을 말하고, 경주자가 경주에서 이기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달려가는 것을 말하며, 유혹과 저항을 물리치고 한 곳 목표만을 향하여 묵묵히 달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오래 참음’이란 말 ‘마크로 뒤미안’은 무거운 짐에 눌리거나 실패를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불굴의 투지를 말합니다. 
   
이 ‘견딤’과 ‘오래 참음’은 인내를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나타나는 견딤과 오래 참음의 인내는 억지가 아닌 기쁨인고로 역설적입니다. 골로새 교회로 갖은 핍박과 박해 속에서 믿음을 지키기에 인내했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 위기로 인해 더욱 나의 삶이 새로워지고 풍요로워 질 수 있음을 믿는 다면 우리는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에릭 린드맨’ 박사가 위기를 당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85%의 사람이 위기를 당함으로써 오히려 나쁜 습관을 고치고, 부부관계를 회복했으며, 신앙생활을 바로 하게 되었고, 시간과 물질을 절약하는 등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위기를 맞이할 때 인내하면 그곳에서 가치 있는 삶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 저자는 히브리서 12장 1-3절에서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서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고 권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한 젊은이가 친구와 함께 백화점에 취직했습니다. 이 젊은이는 당연히 경영 부서에서 일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친구와 함께 ‘엘리베이터 안내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는 크게 실망하고 백화점을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이 젊은이는 엘리베이터에서 움직이고 고객을 안내하면서 참고 견디며 인내했습니다. 오히려 그 일을 하면서 고객들의 구매심리를 파악하는 현장과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의 인내를 이루었습니다. 젊은이는 얼마 안 있어 부서 책임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최고 경영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세계적인 백화점 왕 ‘페니’입니다. 
  
인내하는 믿음은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더욱 참되고 확실하게 합니다. 인내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 신뢰의 자리에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오래 참고 견디는 인내하는 믿음은 지금의 어려움에서 가치 있는 삶을 실현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고난과 환난 중에도 참고 견디면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의 사람은 부흥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종국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의 자리에 함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흥의 역사를 기대하는 성도는 인내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흥의 조건은 인내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하는 믿음의 삶을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생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중요하기에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감사하는 성도가 되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감사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곧 무엇에나 감사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무엇을 감사하느냐는 것은 중요합니다. 무엇을 감사하느냐는 것은 그 감사의 내용이 그 사람의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기업의 분분을 얻게 하심을 감사해야 함을 말씀한 것입니다. .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정착후 각 지파별로 하나님의 백성의 분깃으로 각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도의 기업의 부분에 참여하지 못할 자임인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빛 가운데서 합당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업의 부분이란 말은 골로새서 1:12-13절에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얻고 참여하는 분깃인 것입니다. 
  
그 기업의 부분은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는 죄의 권세, 죽음의 권세, 사단의 권세를 말한다. 이러한 권세의 지배에서 건져내심을 받은 자의 삶이 성도의 기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하시어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성도는 죄의 위력, 사망의 그늘, 사단의 노예의 삶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겨 주신 것입니다. ‘옮기다’는 말은 한나라의 인구가 다른 나라로 이전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의 백성으로 옮기셔서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가지고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삶의 분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하나님 나라의 분깃을 가졌음을 감사하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골로새에 있는 거짓교사들은 오늘 우리 시대의 거짓이단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예수님이 구세주가 아니라, 단지 훌륭하고 위대하신 분이라고 제한했습니다. 그러니까 골로새의 영지주의 자들은 그들의 철학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인간이 그를 통하여서 하나님께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중간영향력’ 과 같은 분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옮겨 주신 구속자, 곧 죄 사함을 주신 구세주임을 분명히 주장 한 것입니다. 이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그곳에 부흥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은혜를 감사하는 믿음이 되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이 은혜에 감사하는 곳에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역사가 나타나고 이웃사랑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는 나누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가 넘치는 곳에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사람의 마음이나 모임에는 감사가 넘쳐났음을 보니다. 부흥이 일어나려고 하는 곳에 먼저 감사의 역사가 나타났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할 줄 아는 믿음을 갖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부흥이 넘쳐나게 하는 감사하는 믿음이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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