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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합시다 (골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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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시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유다의 7대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하였던 사람입니다. 어느 날 암몬 모압 세일인이 연합하여 침략해 옵니다. 모압과 암몬 연합군의 침공 소식을 보고받은 여호사밧은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사실 때문에 큰 두려움에 싸였습니다.  큰일입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이때 여호사밧의 신앙은 또다시 불 일듯 일어났습니다. 그는 즉시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였으니 이는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로 마음먹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호사밧은 이 위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알았기에,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것이 가장 시급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온 유다 백성들에게 금식을 공포하였고, 이에 유다 사람은 모든 성읍에서 모여 와서 금식하며 여호와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죄를 생각하며 금식하는 것은 매우 올바른 태도입니다. 금식을 선포한 여호사밧은 성전 뜰 앞에서 백성들 가운데 서서 하나님께 도움을 호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사밧은 먼저 온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함으로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영영히 주셨다는 언약 관계를 상기하고 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을 근거로 기도를 하는 가운데, 침략자들의 배은 망덕과 부당성, 마지막으로 자신은 아무런 대항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벌해 주실 것을 간구하며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야하시엘을 통해 응답하셨습니다.

(대하 20:15)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그러자 여호사밧은 찬양대를 조직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게 하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대하 20:21)더니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대하 20:22)으니 유다가 승리하였습니다. 감사하며 찬양하는 가운데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그런데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곳에 아주 마음 착한 이발사가 있었답니다. 하루는 신부님이 이발하러 오셨습니다. 정성을 다해 이발해 드렸습니다. 신부님이 돈을 내려 하니까 이발사가 하는 말, “저도 하나님께 봉사하고 싶습니다. 이발료 내지 마시고 돌아가세요.” 그냥 돌아온 신부님이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도문 몇 권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해서 우송하였습니다. 다음날 경찰관이 이발하러 왔습니다. 이발을 하고 돈을 내려 하니까 주인이 하는 말, “돈 내지 마세요. 저도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일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순경이 집에 와서 도너츠 몇 개와 고맙다는 인사말을 써서 이발소에 보냅니다. 다음에 국회의원이 오셨습니다. 이발소 주인이 하는 말, “괜찮습니다. 저도 나라에 봉사한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 다음 날, 이발소 문 앞에 국회의원들이 줄을 서 있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연히 해 주는 것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감사가 없는 겁니다
  
60년대 서울 미아리의 달동네에서 목회하던 친구 목사님의 이야기를 싫은 내용이랍니다. 한번은 골목길을 지나가는데 어느 판잣집에서 심한 기침소리와 한숨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도무지 그냥 지나갈 수 없습니다. 들어가 보니 피골이 상접한 폐병환자가 각혈을 하고 있습니다. 피를 닦아주고 그 날부터 그 환자를 열심히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가족도 제대로 못 먹는 고기를 사다가 열심히 보양했더니 몇 개월만에 차츰 건강을 되찾고 교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노동판에 다시 일하러 나가더니 주일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아예 교회에 발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다음해 크리스마스 날 새벽예배를 마치고 사택으로 돌아왔더니 그 병자였던 부인이 와서 '내 남편을 살려내라'고 울고불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사연인즉 자기 남편이 병들었을 때는 자기가 일하고 돌아오면 밥이라고 해놓고 자기를 기다리면서 아끼고 사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이 회복되어 노동판에 나가더니 다시 술을 먹고 주정하고 자기를 때리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어제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다가 개골창에 처박혀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목사가 자기 남편을 죽였다며 살려내라고 울부짖더랍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의 한심한 모습인 것입니다.

성경은 무엇을 하든 감사 하라고 합니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어느 잡지에 불평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던 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의 얘기가 실렸습니다. 그는 날씨에 대해서 불평하였고 가족과 친구의 흠을 잡았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기분을 상하곤 했습니다. 매사에 불만이 많고 불평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내려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 불평하거나 슬퍼할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에게 쏟아 부어 주시고 계셨던 선물들을 못보고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습관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가 나거나 불평하고 싶어질 때마다... 잠시 멈추고는 그가 즐기고 있는 많은 좋은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곤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효력이 있었습니다. 못마땅하여 입을 삐죽거리기보다는 찬양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불평스러운 마음을 훨씬 쉽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의 삶은 완전히 감사로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평을 말하는 것보다 복을 헤아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을 돌리면 우리의 모든 삶의 모습들은 더 많은 감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강릉에 가면 에디슨 발명관이 있다합니다. 에디슨의 발명품에 관심을 가진 메니아가 있어 엄청난 돈을 투자하여 발명품들을 수집하여 박물관을 만든 것이라 합니다. 에디슨이 직접 연구하여 발명한 전구로부터 시작하여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많은 발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전시물보다 더 많은 발명품 진품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1300여 가지를 발명해서 모든 인류가 그의 발명으로 혜택을 누리며 잘 삽니다. 전구나 영화를 보는 영사기의 전신인 활동사진도 있고 오디오의 전신인 축음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저능아라 하여 학교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자기 실험실이 없어서 기차에서 실험을 하다가 불이 나서 승무원에게 한대 얻어맞아 귀머거리가 되었는데도 발명왕이 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당해본 사람만이 아는 것처럼 귀머거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얼마나 낙심이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인생말년에 이렇게 얘기했다합니다.

“저는 귀머거리가 된 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여깁니다. 귀머거리가 되어서 답답하기는 했지만 저는 귀머거리가 되어서 연구하는 일에만 몰두 할 수 있었습니다. 잡음이 들리지 않고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아서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하나님 제게 귀머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는 잃어버린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게 어떤 불행이 닥쳤고 병들든지 가난하든지 실패하든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이며 얻은 것은 무엇인지 그 소중한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됨은 감사할 줄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말에나 일에나

(시 26:7) 감사의 소리를 들려 주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말하리이다   합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어릴 때에 한 해 농사에 백 트럭씩 수확을 했는데, 어느 해에는 한 트럭밖에 수확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기도하셨답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십 구 트럭의 수확은 잃었지만 한 트럭의 씨앗이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의 아버지의 이 감사의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날 그의 가문은 세계적인 가문이 되었고, 그의 아들을 세계적인 목사로 키워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지혜서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합니다."인생에서 무엇을 손해 보았는가? 일부분을 잃었을 때 나머지 있는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라.만일 한 손을 다쳤으면 두 손을 다 다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만일 한쪽 발을 다쳤으면 두 발을 다 다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두 손과 두 발을 다 다쳤다 해도 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만일 목이 부러졌다면 그 다음엔 염려할 것이 조금도 없다. 하나님이 천국에서 맞아 주실 테니까"

오늘날 미국 흑인들이 존경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을 말콤 엑스라고 한답니다. 그는 어렸을 때 흑인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가장 소원은 백인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루려는 그는 별의별 행동을 다 했습니다. 비누로 피부를 박박 문지르기도 하고 흰 스킨 로숀을 마구 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도 물들여 보았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백인에게 한을 품었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그가 생각을 바꿨습니다. “나는 백인이 될 수 없다. 나는 흑인으로 존재해야 한다.” 

결국 흑인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운동을 벌이면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바로 “Black is beautiful(흑인은 아름답다).”는 운동입니다. 그처럼 자기 존재를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니까 그는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독특함이 있습니다. 그 독특한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살면 됩니다. 하나님은 주인공만 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나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충분히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면 즐거워지고 행복해 집니다 

(사 51:3)나 여호와가 시온을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셨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합니다.

옥스포드 의과대학 연구팀이 어린아이와 어른의 웃음에 대하여 연구하였는데 어린아이는 하루에 400-500번을 웃는데 장년이 되면 웃음이 줄어서 하루에 15번 이내였답니다. 그러니까 늙어집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니까 얼굴이 굳어져서 그럽니다. 감사하면서 얼굴을 환하게 바꿉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은 감사하는 만큼이다.” 감사가 풍성하면 행복이 풍성한 겁니다. 감사가 빈약하면 행복이 없다는 말입니다.

  
감사하면 고침의 역사가 함께 하니 행복해 집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은 병들었을 때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난날 동안에 나에게 건강주셨던 것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잔병치레 많이 하는 사람을 보세요. 삶에 감사가 없는 사람입니다. 자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때에 건강이 옵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러 합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 해군 장교가 자기 고향 땅에 돌아와보니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었고 온 동네가 폐허가 되었으며 자기가 살던 집도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슴에 화나 납니다. 불평을 합니다. 가슴에 분노가 끓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중에 홧병이 생겼습니다. 그 뒤로 전신이 마비됩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별 약을 다 써봤으나 백약이 무효입니다. 소문난 의사를 찾았으나 효과가 없습니다. 감사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합니다. 어느 날 자기 딸아이가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서 풀빵을 사 가지고 와서 “아빠, 먹어.” 그러면서 줍니다. 그것을 받아 먹으면서 “고맙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에 전신마비가 풀렸습니다.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는 펄쩍펄쩍 뛰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APEC에 참여한 대통령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첫째는 행복한 가정이고, 
둘째는 즐겁게 일 하는 직장이고, 
셋째는 건강하게 잘 사는 것 이라고 했답니다.

감사하면 건강해 집니다.

감사하면 기쁨이 임하니 행복해 집니다 

어떤 이가 왕이 되던 날 보위에 오르면서 궁전 탑 꼭대기에 아름다운 은 종 하나를 달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에 종을 울림으로 백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행복이 가득 찼을 때는 남의 손으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종이 한번도 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왕은 병이 깊어져서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신하들이 왕을 둘러싸고 자신을 동정어린 얼굴로 쳐다보는데 왕의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갑자기 자기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종을 치기 위해 끈을 잡았습니다. 그 순간에 그는 운명하였습니다.  

행복의 종은 바로 감사의 종소리입니다. 감사는 행복입니다.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감사의 종을 울립시다. 감사하면 왜 행복하게 되나요?
음식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게 조미료가 아니고 소금이러 합니다. 복된 삶을 위하여 꼭 있어야 할 게 있는데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면 물질적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나 영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넓어집니다. 여유가 생깁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보일 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감사한 조건을 찾아 세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실 복을 헤아리고 계신답니다. 하나님은 감사의 그릇에 복을 채우십니다. 감사하는 이에게 왜 복입니까? 감사할 수 있기에 복입니다.

감사절 하면 청교도(the Puritan)들을 말하게 됩니다.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오직신앙의 자유만을 찾아 극심한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면서 메이 플라워(May Flower)라는 배를 타고 신대륙 아메리카 지금의 미국으로 건너간 102명의 청교도들이 그로부터 갖은 풍토병과 수많은 어려움에 시달리면서 추수를 하여 감사 기념 예배를 드렸습니다. 실로 눈물과 감사가 뒤범벅된 벅찬 감동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바로 현대 미국을 탄생시킨 선조(the Pilgrim Fathers)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드렸던 첫 추수 감사절의 벅찬 환희는 단순히 한 나라의 건국 일화나 한 해의 추수의 감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자유의 존엄성을, 개척자 정신의 고귀함을 보여 주는 산 실례로서 모든 인류의 가슴속에 진한 감동을 전해 줍니다. 그들은 고통과 눈물의 찬송을 불렀을 것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살았음에 감사했고 희망이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교육하교 선교하고 봉사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하며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감사하며 복됨과 건강과 즐거움을 누리며 감사하며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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