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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화목하라 (욥 22: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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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화목하라 (욥 22:21~30)


우리 조상들은 옷이나 천의 좀 더 넓은 부분의 구겨진 주름살을 펴는데 숯불이 담긴 다리미를 사용하였습니다. 한자로는 화두(火斗)라고 부릅니다. 다리미는 주전자 모양이나 손잡이가 달린 펑퍼짐한 그릇모양으로 생겼는데 특이한 것은 다리미가 한 집에 두 개 있으면 하나는 없애버리는 것이 당시 상식이었다고 합니다.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다리미 가져가는 것 또한 금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다리미질은 사이가 멀어지기 쉬운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할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며느리 그리고 처첩과 동서들끼리 천을 마주잡고 다리는 일로 서로 은연중에 힘과 호흡을 맞추어 협력하고 조화시켜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다리미질을 통해 가정 안에 있을 수 있는 서로의 상한 감정을 해소시키는 효과를 얻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리미가 두 개 있다면 마음을 하나로 묶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기에 안 된다는 까닭입니다. 이는 우리 조상들이 다리미를 통해 가정의 이질적 요인을 자연스럽게 동질화시키는 지혜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화목하기 원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화목하기 원하십니다. 그 화목을 위해 외아들 예수에게 육신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성경은 영혼과 육신이 잘되는 비결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 한 가지가 바로 화목입니다. 그래서 잠언 17장 1절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 증거합니다. 

가정의 행복이 어디서부터 옵니까? 화목에서 옵니다. 조상들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글을 남겼습니다. 국가와 민족의 불행 원인도 화합하지 못한 데서 옵니다. 당쟁만 일삼다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지 60년이 지났어도 후유증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일 민족이 화합하지 못하고 남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언어도 같고 문화가 동일하지만 둘로 나뉘어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과 고통은 얼마나 큽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당하는 모든 불행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여기 '화목' 이란 원어의 뜻은 '밀착시킨다, 가까워진다' 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 그 자체가 복입니다. 하나님과 화목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평화를 잃어버리고 자기의 욕망대로 사는 자에게 참된 평안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사야 57장 21절입니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에게 평안과 강건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 불화하면서 평안을 누릴 수 있다면 이는 거짓됨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는 영혼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바로 인식하고 평안을 찾으려 애쓸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교훈을 받아야

여수 애양원은 손양원목사가 시무하던 교회가 있는 곳이며 나환자 수용소입니다. 그곳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던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예배 10분전에 교회에 가보니 어떤 이는 찬송을 부르고 있었고, 어떤 이는 성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회중석 맨 앞에 앉아 있는 청년은 얼굴을 성경에 파묻은 채 잠자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곤해서 그렇겠지 하고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담임목사께서 앞에 앉아 있던 청년을 보았느냐 물으시며 청년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던 그 청년은 세상에 빠져 가출을 한 후 여기저기 전전하다 나병에 걸려 소록도로 이송되었다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병으로 인해 눈이 멀고 손이 다 문드러진 후 그는 예수를 영접하였는데, 청년에게 가장 큰 기도 제목은 예전에 어머니께서 읽어 주시던 성경을 자신이 스스로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이 안보이고 손은 문드러졌기에 성경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술로 점자 성경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청년은 입술이 부르트도록 점자성경을 읽었습니다. 윗입술이 벗겨지면 아랫입술로 읽고, 아랫입술 마저 벗겨지면 혀끝으로 읽어 그의 성경은 피로 얼룩져 있다고 합니다. 그 시간도 자고 있던 게 아니라 성경을 읽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도 성경의 단맛을 몰라 읽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혀끝으로 피흘려 가며 말씀의 맛에 도취되어 있는 심령이 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교훈을 두어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평안을 얻게 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그 말씀을 네 마음에 두라". 여기의 '마음에 둔다' 는 말은 '피와 심장이 움직이는 곳 즉 생명의 중심에 있게 한다' 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어 말씀에 따라 행하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하나님 교훈의 부재로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없으면 하나님 없이 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교훈이 마음속에 있음은 하나님이 함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과 화목을 깨는 행동을 삼가 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 없이 말하고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행함으로 언제나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며 사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불의를 버려야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젊었을 때 악한 친구들과 사귄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즐거운 놀이로 생각하고 여러 가지 악한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훗날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훔치는 일에 대하여 적잖은 스릴을 느꼈다. 또 실제로 훔쳤다. 배가 고프거나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선행을 하라는 데 싫증이 났고, 혹은 부정행위가 무척 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까지도 훔쳤고, 내 것이 훨씬 더 좋은데도 불구하고 남의 것을 훔쳤다. 

나는 내가 훔친 물건에 대하여 기쁨을 느끼려고 하지 않았고, 훔치는 일과 죄 짓는 일 그 자체로부터 기쁨을 맛보려고 하였다. 우리 집 포도원 근처에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열매가 달려 있기는 했으나, 그 빛을 보아서나 맛으로 보아서나 하등의 구미도 당기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밤늦게 장난꾸러기 친구와 그것을 흔들어 떨어뜨렸다. 

잠시 후, 우리는 그 배를 산더미같이 잔뜩 따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먹지 않고, 모조리 돼지 떼들에게 던져 주고 말았다. 이같이 우리들이 좋아하는 일만 하게 된 이유는 우리들이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누구나 죄의 종이 되어 있는 동안에는 죄 짓는 일을 일종의 놀이나 장난 정도로 생각하면서 즐기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본문 23절입니다. "네가 만일 전능자에게로 돌아가고 또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불의는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한 태도와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모든 것이 불의입니다. 불의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불의를 버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복을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떳떳하지 못한 행위에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 불의를 버리면 다시 흥하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해도 하나님과 관계를 어그러뜨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이면 과감히 버리라고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버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회개할 일이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빠른 회복의 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문제를 제거하는 유일한 길이 회개임을 알고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화목하는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불의한 일을 버림으로부터 시작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과 화목을 해치는 악한 세력을 물리치며 더 이상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귀하게 여겨야

한양으로 과거를 떠났던 한 청년이 선교사를 만나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는 과거 시험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동구 밖까지 마중 나온 부모님은 과거는 잘 보았는지 물었습니다. "부모님, 세상의 과거시험도 중요하지만, 천상 과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왔습니다." "천상과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얼마 후 그것이 예수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집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과거를 보라고 한양에 보냈더니 아들이 예수를 믿고 돌아왔으니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닙니까? 소문은 동네에 흉흉해졌고 청년은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청년이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집안이 다시 뒤집혔습니다. 온갖 방법을 다했으나 효험이 없고 청년은 3년 동안이나 벙어리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부모님은 아들에게 말합니다. "입만 떼면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 주마, 입만 열거라" 그 소리에 청년이 입을 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예수 믿어야 합니다." 그는 벙어리가 된 것이 아니라 벙어리 흉내를 냈던 것입니다. 가족의 반가움과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예수가 누구이기에 그토록 네 마음을 사로잡았단 말이냐? 어디 네가 믿는 예수 우리도 믿어보자" 마침내 온 가족이 선교사를 찾아가서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신바람 박사로 알려진 황수관(黃樹寬) 박사의 간증에 나오는 황 교수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황 교수는 천상 과거시험에 합격한 할아버지 덕에 3대째 집안이 예수를 믿고 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간증합니다. 무엇보다 예수를 귀하게 여겼더니 대대로 만복의 근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입니다. "네 보배를 진토에 버리고 오빌의 금을 강가의 돌에 버리라 그리하면 전능자가 네 보배가 되시며 네게 귀한 은이 되시리니". 이 세상에서 금 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귀한 것이 금 이상의 것임을 알 때 귀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진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진리를 지키고, 세상의 금을 돌로 여기고, 참 가치를 알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보화가 되어주십니다. 우리 손에 있는 것을 놓으면 하나님도 자신의 것을 놓아주십니다. 세상의 금을 내 손에서 내려놓고 하늘의 금을 얻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금보다 귀하게 여기면, 하나님께서 보배가 되어 주시며 화목하게 되는 복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라' 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말씀입니다. 현재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무엇이 막혔는지 빨리 발견하여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복을 얻게 됩니다. 부디 하나님의 교훈을 마음에 두며, 모든 불의를 버리고, 하나님으로 보배 삼고 귀하게 여기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베푸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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