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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 (창 1:3~5, 행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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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 (창 1:3~5, 행 1:1~3)


성경에는 40일이란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노아 시대에 40일간 비를 내려 대홍수가 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0일을 있으면서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광야에서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에 들어가 약속의 땅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다윗은 40일 동안 불레셋의 장수 골리앗과 대치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청하다가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40일간 걸었습니다. 니느웨는 죄가 많은 도시였지만 40일 동안 회개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40일간 금식하시며 광야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후 40일간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주셨습니다. 흔히 인간에게 40일은 인간극기의 한계라고 합니다. 또 40이란 세상적 만수 즉 꽉 찬 수라고 합니다. 더함도 모자람도 없는 수를 의미합니다. 40이란 땅의 수(4)와 세상의 수(10)를 곱한 수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부활 후에 하루도 어김없는 40일을 꽉 채우시고 가셨을까요? 하나님의 나라 때문이라고 성경은 해답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그 자체가 힘든 일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수치를 당하셨고, 채찍으로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어서 더 머물고 싶으셨겠습니까? 그러나 차마 이 세상을 버리고 가실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하나님의 나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흡연의 세 가지 이점이 있답니다. 첫째는 미친개에게 안 물린다고 합니다. 동물이 니코틴을 싫어해서 담배 피우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고 하네요. 한번 시험해 보세요. 둘째, 집에 도둑이 안 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밤에 잘 때 잦은 기침소리 때문입니다. 셋째는 미련 없이 빨리 죽는다고 합니다. 정말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빨리 죽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누구나 생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세상에 미련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첫째는 모친 고통을 이 세상에서 받으셨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랑하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많으면 미련이 많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여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의 ‘아름다운 영혼, 행복한 미소’라는 책에 보면 테레사 수녀가 세운 뉴욕의 에이즈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젊은 남자가 죽음 기다린다고 하지만 그의 눈에는 생을 마감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무슨 일로 이렇게 괴로워합니까?” 그 때 이 남자는 “제가 아버지의 용서를 받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병원에서는 아버지 있는 곳을 알아내어 불렀습니다. 이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내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를 반복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부드럽게 안았습니다. 두 시간이 지난 뒤 그 젊은이는 눈을 감았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차마 제자를 버리고 가지 못하는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눈을 감지 못했던 아들처럼 예수님도 버리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할 즈음에 풀러신학교의 조지 래드 교수는 하나님의 나라 연구에 가장 탁월한 공헌을 남긴 학자였습니다. 그 분은 학교에서 강의 도중에도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만 나와도 눈물을 주루룩 흘리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 전파에 대한 주님의 관심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애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입니다. 

사도행전 1:1-2에는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고 합니다. 누가가 먼저 쓴 글이란 누가복음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에서 복음이란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 자신이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오심, 하신 일, 죽으심, 살아나심, 승천하심, 다시 오심 등 예수님의 모든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오시고, 말씀 전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40일을 더 계셨고, 다시 이 땅에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으로 명하시고”라는 말씀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명하심 말씀은 가서, 제자를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입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지키게 합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르치고 지키게 해야 할 일의 핵심입니다.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이 무엇일까요? 그것 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일이란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에 하나님의 나라와 무관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기적, 행동, 삶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최봉석목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별명이 최권능목사님이셨습니다. 이 분은 어디에서나 열심히 전도하셨는데 항상 ‘예수 천당’을 외치고 다니셨습니다. 한 번은 평양 시내에서 전도를 하는데 어떤 젊은이에게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젊은이가 “나 신학생입니다” 그랬더니 “신학생도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라고 하셨답니다. 최목사님께서 일본 헌병에 잡혀가서 매를 맞았습니다. 매를 때릴 때마다 “예수 천당”이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일본 헌병을 목사님에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지만 목사님은 “내 안에 예수님이 꽉 차 있어서 내 몸을 건드리기만 하면 저절로 나오니 알아서 하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온 몸에 예수님으로 꽉 찬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16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하였습니다. 온 몸에 예수님의 모습을 가지고 삽니다. 온 몸에 예수님의 피가 흐릅니다. 골로새서 1:24에는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합니다. 바울의 온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의 말이나, 일이나, 행동이나, 먹는 것이나, 입는 것 이 모든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칼뱅은 “그리스도인의 첫째 의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은 완전한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장래에 죽어야 완전한 구원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존 스토트는 우리는 ‘이미’와 ‘아직도’의 중간지대에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왜 구원받은 다음에도 이 땅에 더 머물러 있습니까? 우리의 목적이 남아 있기입니다. 우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대구에 어느 두 교회가 1959년 장로교회가 통합측과 합동측으로 분열될 때에 한 교회가 분열되어 두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두 교회이고, 교단도 다르지만 분열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교회 묘지를 함께 쓴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교회가 분열되고, 나누어져 서로 만나지 않고, 교단과 다르다고 하지만 죽으면 같이 갑니다. 죽으면 같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야 같이 갑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후에는 모두가 죽으면 함께 갑니다. 죽은 자는 부자나 빈자나, 백인이나 흑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같이 갑니다. 세상에서는 구별도 하고 차별도 받지만 다 초월하여 그냥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갑니다. 인생의 목적, 목적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칭기스칸이 어느 날 자신이 아끼는 매를 데리고 사냥을 갔습니다. 숲속에서 마실 물이 없어 두리번거리다가 암석 틈에서 물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떨어지는 물에 컵을 데고 몇 분 동안 떨어지는 물을 받았습니다. 컵의 물을 마시려고 입으로 가지고 가는 그 순간 매가 날아와 컵을 쳐서 물을 쏟아버렸습니다. 칭기스칸은 화를 내고 다시 물을 받았습니다. 마시려는 순간 매가 다시 와서 떨어트렸습니다. 

칭기스칸은 매에게 소리 지르며 한번 만 더 그렇게 하면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컵에 물을 받아 마시려고 할 때 세 번째 방해하였습니다. 그는 칼을 빼 매를 죽였습니다. 다시 물을 받으려고 했지만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암석을 타고 올라가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웅덩이가 있었고 웅덩이에는 거대한 독사가 죽은 채 물위에 있었습니다. 뱀의 몸이 암석으로 떨어지는 물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매는 그 사실을 알고 주인의 목숨을 구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칭기스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매를 죽였고 그는 깊이 후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셨는데 유대인들은 자신을 구하기 위하여 오신 메시야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후회하였고 회개하였습니다. 
  
부활 후 40일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을 격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전한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죽인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후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일을 깨달을 때마다 “형제들아 어찌할꼬”라고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의 40일은 유대인의 회개를 가능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는 전해야 하는 복음입니다. 

3절에는 “사십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보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보기만 하고 말씀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만 있고 보이지 않으면 의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몸을 보이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의 나라를 듣게 하시려는 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잃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의 나라에 더 들어오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은 0시에 나가서 품꾼들을 모아 옵니다. 3시에 또 나가서 모아 옵니다. 6시와 9시에 나가서 또 모아옵니다. 이제 일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지 않은 11시에 나가서 또 마지막 품꾼들을 모아 옵니다. 이런 하나님의 끈기와 간절하심 때문에 우리가 포도원에 들어간 품꾼이 된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머물고, 기다리고, 들어오기를 기대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다음에 빨리 안전한 하나님의 나라에 가고 싶어 하실 것일까요? 더 오래 머물러 계셔야 우리가 삽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너무 고생하시고 죽으셨기에 다시 오시지 않으실까요? 우리를 영원히 살려 하나님의 나라에 데리고 가시려고 또 오실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자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28:17에는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눈으로 보기만 하면 이렇습니다. 분명히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있지만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의심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보는 자에게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봤으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끊임없이 전해져야 합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전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도 안 하시고 전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절함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 위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까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로마까지 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인이라서 잡혀 갔습니까? 로마시민권자라서 고소해서 갔습니까?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나라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8:30-31을 보세요.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고 합니다. 바울의 행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바울 행전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전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이야기들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다시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가 하나님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주제일 뿐만 아니라 구약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랜 동안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된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렇게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이 다시 오심으로, 예수님의 재림 때에 절정을 이루어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나 지금이나 재림 때까지 줄기차게 전해질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외에 어떤 것도 영원한 주제는 없습니다. 
  
마이클 지카렐 리가 쓴 ‘예수님 가방 속 설득 매뉴얼’이란 책이 최근에 나왔습니다. 이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설문 조사결과 목사님들은 자기 교회 교인의 70%가 삶 속에서 하나님을 가장 중시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한 사람들은 교인 중에 15%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나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중심인 것 같고, 소유하고 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하나님의 나라는 더 말하고 전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보이시고 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합시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려고 광야로 갔더냐고 하십니다. 갈대를 보러 갑니까?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러 갑니까? 선지자 보다 나은 자를 보러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았으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보았으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배 보러 오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러 와야 합니다. 예배의 구경꾼이 아니라 예배자로, 구원받은 자로 나와야 합니다. 

결론 

최근 인터넷에 임신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한 장 올라왔습니다. 사진 밑에는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근처 공사장 소음이 태아의 건강에 문제가 될까 걱정이 된다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엘리사 윌리엄스’.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뒤바뀌는 혼돈의 시대입니다. 세상일에는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하늘의 일에는 관심이 적습니다. 사실은 하늘의 일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현대인의 이데올로기는 건강과 장수입니다. 이 땅에서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최대 관심사입니다. 삶의 초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데올로기는 하나님의 나라이어야 합니다. 이것 외에는 어떤 것도 영원한 가치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40일을 더 계시면서 병 고치신 적이 없습니다. 먹는 기적을 베푸신 적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신 적도 없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얘기하신 적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계시면서 하신 일은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아직도 세상 나라에 집중되지 않았습니까?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집,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더 많이 가지고 더 재미있게 사는 것이 우리의 관심이 아닙니까? 관심을 바꾸세요. 가치를 새롭게 하세요. 우리의 전 삶을 바쳐서 얻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전 삶을 통해 전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닮아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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