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을 때! (왕상 18:21,30~31,37~40)

  • 잡초 잡초
  • 397
  • 0

첨부 1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을 때! (왕상 18:21,30~31,37~40)


비빔밥은 여러 가지 나물을 넣고, 계란 후라이, 참기름을 넣고 섞어서 비비야 맛있다. 
비빔밥처럼 섞으면 좋은 것도 있지만, 둘 다 못쓰게 되는 것도 있다. 참기름에다 물을 넣고 섞으면 둘 다 못쓰게 된다. 참기름도 아니고 물도 아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아오다 몇 모금을 마셨다. 샘물로 주전자를 채웠다. 아버지가 요새 이상하게 술맛이 변했네. 맛없어서 못 마시겠다고 버리셨던 기억이 난다. 
신앙과 세상을 섞어서 비비면 물을 탄 참기름 같아서 둘 다 못쓴다. 

오늘 말씀은 엘리야 선지자 시대에 일어난 일이다. 그 시대는 우상 신앙과 하나님 신앙이 섞여 있는 신앙생활을 하던 때이다. 참기름에다 물탄 신앙의 시대이다.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지만 세상을 더 좋아하던 시대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상사이에서 머뭇머뭇하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신앙생활은 어떤가?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물탄 신앙생활은 아닌가? 
하나님은 오늘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 

1. 나는 어느 때까지 머뭇거리고 있을 건가? 

엘리야 시대에는 아합 왕과 왕후 이세벨이 바알 우상, 아세라 우상을 열심히 섬겼다.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 왕에게 요청하여 바알선지자 450, 아세라 선지자 400 명이 갈멜산에 모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엘리야 한 사람이다. 1:850이다. 그 앞에 백성들이 서 있게 하였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한다. 21절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만일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백성들이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떠나겠다. 그런 사람은 없다. 그렇다고 바알을 떠나겠다는 사람도 없다.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머뭇머뭇하고만 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또 하나는 세상에 대한 욕심이다. 아합왕과 거대한 바알종교 세력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워한다. 세상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알종교가 추구하는 풍요함과 쾌락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바알 종교는 물질적인 풍요를 주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자녀가 잘 되게 하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보다 바알이 더 풍요를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풍요에 대한 욕심인 것이다. 

*현대인의 가장 거대한 우상은 돈이다. 경제다. 경제가 맘몬이다. 지금은 더욱 돈을 따라 세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알종교가 추구하는 성적인 쾌락 때문이다. 쾌락의 신을 섬긴 것이다 
*현대인의 또 하나의 우상은 쾌락이다. 특히 성적쾌락의 우상을 숭배하는 시대이다. 돈 못지않게 쾌락의 신을 숭배하며 사는 세상이다. 성매매 천국이다. 초등학생, 유치원 아이를 성폭행 한다. 67세 할아버지가 88세 할머니를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미쳐가는 세상이다. 

엘리야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바알 우상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떤가? 하나님과 돈 우상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은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눅16:13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주일에는 하나님을 섬기고 주중에는 세상을 섬기면서 머뭇거리고 있지 않은가?. 위험하다. 떠나기 쉽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세상의 핍박과 불이익을 두려워하거나, 세상 욕심을 온전히 버리지 못할 때 머뭇거린다.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면 양날에 다 베이게 된다. 마귀의 양날달린 칼에 베이고 찔린다. 
하나님은 오늘도 물으신다. “너는 언제까지 머뭇머뭇 할 것이냐.” 무어라 대답하실 것인가? 
그만 머뭇거립시다. 그만 머뭇거리고 이제는 선택합시다. 

2. 그만 머뭇거리고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자 

엘리야가 머뭇거리는 백성들을 초청한다. 머뭇거리던 백성들이 엘리야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30절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머뭇거리는 성도들을 초정하자. 간절히 간곡히 초청하자. 그러면 올 것이다. 

엘리야가 먼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쌓는다. 먼저 나부터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자. 
무너진 예배의 제단을 다시 쌓자. 주일예배의 제단을 무너뜨리지 말라. 셀 예배 제단을 무너뜨리지 말라. 무너진 예배의 제단을 다시 쌓아야 한다.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예배, 기대감도 없는 형식적인 예배의 제단을 다시 쌓자. 하나님의 불이 내려오는 예배의 제단을 다시 회복하자. 

무너진 비전의 제단을 다시 쌓자. 예배가 회복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주님의 마음을 품게 된다. 비전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된다. 
엘리야가 12돌로 제단을 쌓았다. 12지파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회복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바라보는 것이다. 비전의 회복이다. 

무너진 헌신의 제단을 다시 쌓자. 제단을 쌓고는 둘레에 도랑을 파고 물을 붓는다. 네통의 물을 붓는다. 3년 6개월의 가뭄에 마실 물도 구하기 힘들다. 그런데 세 번이나 그렇게 하도록 시킨다. 온전한 헌신을 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헌신을 하셨다. 예수님을 주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온전한 헌신을 하셨다.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우리도 온전한 헌신의 제단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삶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하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그 비전을 위해 온전한 헌신을 해 보자. 

이 모든 것을 위하여 무너진 기도의 제단을 다시 쌓아야 한다. 엘리야 선지자가 기도한다. 머뭇거리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자기가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게 해 주시라고 기도한다. 머뭇거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시라고 기도한다. 

*특새, 셀 릴레이 기도, 금요 셀 연합기도- 무너진 기도의 제단을 다시 쌓자. 온 교회가 함께 자신과 무너진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의 제단을 쌓자. 무너진 자녀를 위해 기도의 제단을 쌓자. 
*고3 수험생 여러분! 수능 끝나면 최우선으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기를 바란다. 
모두들 컨퍼런스에 참여하여 새힘을 얻게 되길 바란다. 중고등부 여러분! 여러분도 
이번 집회에 모두 참석하여 비전도 품고, 성령님의 기름부으심을 경험하길 바란다. 

3.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고 회복의 축복을 누리자- 하나님의 임재와 삶의 회복 

백성들이 무너진 제단을 다시 회복하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회복을 주신다. 
먼저 영적인 회복을 주신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를 나타내 주신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머뭇거리던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보면서 엎드려 예배를 드린다. 39절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다.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돌아온 백성들에게 말한다. 우상을 선지자들을 다 붙잡아라. 두려워서 머뭇거리던 백성들이 우상 선지자 850명을 다 체포해 버렸다. 엘리야 선지자와 함께 우상 선지자들을 다 죽였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이다. 

신앙생황을 하는데 감격도 열정도 없다. 기쁨도 애통함도 없다. 웃음도 없고 울음도 없다. 찔림도 없고 회복도 없다. 생명이 없는 것이다. 죽어있는 상태이다. 그러고도 습관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모양은 호랑이 인데 한 번도 포효하지 못하는 박제된 호랑이다. 모양은 독수리인데 한 번도 하늘을 날지 못하는 박제된 독수리이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간다. 죽은 물고기는 물 흐르는 대로 그냥 떠내려간다. 몸은 뒤집혀져서 허연 배를 드러내놓고 둥둥 떠내려간다. 

이런 교회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계3:2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그런데 이제 살아 있는 호랑이가 된 것이다. 물살을 거슬러 솟구쳐 올라가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된 것이다. 여러분은 살아있는가? 십자가의 감격이 있는가? 

하나님께 돌아올 때 삶의 회복도 주신다.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으니,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어주셨다. 3년 반 만에 비를 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회복의 원리이다. 

맺는 말 

고사성어에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이란 말이 있다. 어떤 처녀가 두 남자와 선을 보았다. 동쪽에 사는 총각은 재산은 많은데 성품이 맘에 들지 않았다. 서쪽에 사는 총각은 성품은 맘에 드든데 가난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두 총각을 놓고 머뭇머뭇 하는 처녀에게 어떤 사람이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동가식 서가숙 해라” 먹고사는 것은 돈 많은 동쪽 집에 가서 하고, 잠자는 것은 사람이 좋은 서쪽 집에 가서 하며 왔다 갔다 살라고. 
우리는 ‘동가식 서가숙’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일에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주중에는 ‘세상 것’을 섬기는 삶은 아닌가? 그러면서 머뭇머뭇하지 않는가? 

더 이상 머뭇머뭇하지 말자. 이제는 결단하자.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자.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자. 컨퍼런스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런 임재를 경험하자. 다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새롭게 품자. 비전과 열정을 회복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