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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베드로의 종교개혁 (행 10: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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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종교개혁  (행 10:23~35)

 
내 용 10월 마지막주일은 종교개혁주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은 전체가 한 줄거리로 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을 읽어보면 내용이 무엇인지는 잘 이해가 되는데 내용이 뜻하는 영적 의미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들이 나타납니다. 간략하게 10장 전체의 내용을 말하면 고넬료라는 사람과 베드로에게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무엇을 한 가지씩 시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본래 베드로와 고넬료는 두 사람의 신분 때문에 절대로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인 장교로서 유대 나라를 힘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파견된 가이사랴 사령부의 장교요, 베드로는 그의 핍박을 받는 유대인으로서 로마 박해 속에 기독교 12제자 중에 대표적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완전한 적대 관계의 수장들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두 사람에게 동시에 같은 시간에 환상을 주셨습니다. 

로마 사람인 고넬료에게는 “네가 지금 사람을 욥바라고 하는데 보내서 바닷가 피장이 시몬 집에 있는 베드로를 너희 집에 심방 요청하라. 너희 집으로 모셔오너라.” 이런 환상을 고넬료에게 주셨고 똑같은 시간에 베드로는 하늘에서 큰 보따리 하나가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열어보니까 그 속에는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부정해서 먹지 않는 동물들이 가득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잡아먹어라.” “나는 이런 부정한 동물을 먹은 적이 없나이다.”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 말하지 말라.” 이런 환상을 봤습니다. 그러니까 고넬료는 환상을 본 대로 즉시 사람을 욥바에 보냈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 우리 집에 제발 심방 좀 한번 와달라고 청하고 모시고 오라.” 베드로는 그 사람이 오니까 ‘아! 내게 보여주신 환상은 이 사람들을 따라가라는 의미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보면 오늘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그 집에 모여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때 사도행전 초장에 베드로가 한번 설교할 때 하루에 3천 명씩 설교를 하고 예수 믿고 세례 받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을 중심해서 사방으로 교회가 확장되어 나가는 불길 같은 역사가 벌어지고 있는 시간 속에 고넬료라는 로마 사람 하나가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베드로까지 동원하고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와야 되고 이런 환상을 보게 되었는지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고넬료라는 인물을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30km가면 사마리아 서쪽 바닷가에 가이사랴라는 항구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 나라에는 로마의 군인들이 많이 와서 식민 통치를 하고 있었는데 가이사랴는 로마 군인들의 주둔지로서 전체 유대 나라에 있는 로마 군인들의 총 사령부가 있습니다. 이 사령부에 고넬료는 장교의 한 사람입니다. 

상당한 지위의 장교요 로마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군인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이 나라에 지금 파견되어 나와 있는데 유대 나라에 와서 절대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 땅에 와서 보니까 백성들이 너무나도 굶주리고 못살고 그러니까 그래도 자기는 대로마의 지휘관 역할을 하니까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고 항상 기도를 했는데 유대인들이 하는 것과 똑같이 시간을 정해놓고 했습니다. 

본문에 제 구시 기도시간은 유대인들이 하는 기도 시간입니다. 어떤 면에서 유대인들보다 훨씬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로 인하여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는 진리는 모르고 전통적 유대교의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사람과 비슷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 사람을 칭찬할 수 있는 몇 가지 조건이 아주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고넬료는 철저한 로마 사람입니다. 로마의 종교는 당시 범신론입니다. 다신론, 미신입니다. 그런데 유대 나라에 와서 개종을 해서 유일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의 직업은 군인 장교입니다. 다들 군대 갔다 왔지요? 이 군인이라고 하는 사회는 모든 규범과 윤리가 철저한데 군대 철학은 하나입니다. 목적론적 철학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군인들입니다. 그 목적이 뭐냐? 승리해야만 합니다. 

전쟁은 게임이 아니잖아요? 연습도 아니잖아요? 오직 승리만이 군대 철학입니다. 그런 훈련을 가장 훌륭하게 받은 사람이 넉넉한 능력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지휘관이 되어서 유대 나라 가이사랴 사령관에 지휘관으로 와 있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장교인 것을 보아서 아예 전문 군인으로 일생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대개 이렇게 되면 정복자의 권세를 남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식민지 민족을 통치하는 물리적인 힘을 행세하기 때문에 좀 못살게 굴게 됩니다. 

지금은 군인들도 철저한 윤리관 속에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나 아주 옛날에는 군인이나 전쟁터나 무법천지입니다. 재물약탈해도 아무 소리 못하고 여자들 성폭행 함부로 해도 아무 소리 못하고 수틀리면 죽여 버립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고넬료는 유대 나라에 와서 아주 겸손히 식민지들이 믿는 종교를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개종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하는 것을 보아 생활은 좀 윤택한 것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G20에 들어갈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장했는데 세계를 향한 구제 활동은 낙제점이라고 유엔이 발표했습니다. 이 정도 살면 적어도 구제활동은 어느 정도로 해야 되는데 한국은 별로 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이 고넬료는 지금 이 나라에 와서 식민지 통치 하다 보니까 너무나도 못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구제활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 고넬료와 베드로를 연결하시는 일을 왜 이토록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하고 계시는 것인가? 이것은 기독교의 아주 중요한 파트가 됩니다. 초대 기독교의 최대의 문제가 뭔가?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국제화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는 진리는 유대인에게 국한된 종교로 유대 땅에 남느냐 아니면 유대 국경을 넘어서 세계화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땅 끝까지 이르러” 세계화를 말씀하셨잖아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그 명령을 받은 사도들이 세계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유대니즘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이라서 오늘 말씀 28절에 나옵니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여기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나라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교제를 안 합니다. 절대로 가까이 안합니다. 위법입니다. 율법에 어긋납니다. 이런 유대니즘에 가득 차있는 베드로를 비롯한 12사도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이 기독교의 진리를 세계화 할 수 있는가? 없습니다. 

유대인에 국한한 유대교와 똑같이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수제자 역할을 한 베드로의 고정 관념을 열어 버립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고 그랬는데 너는 왜 이방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고 유대인에게만 국한시켜서 유대교와 같이 만들어버릴 생각이냐?” 그래서 이방사람인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환상을 주어서 세계화 복음의 역사의 시작을 사도행전에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지금 베드로가 본 환상, 보따리가 내려와서 열어보니까 유대교가 전통적으로 절대로 먹지 않는 짐승들로 가득했는데 ‘어이구! 이게 웬일이야?’ 그런데 하나님이 “잡아먹으라!” “어휴! 하나님! 이건 율법에 하나도 먹지 말라고 해서 절대로 먹은 일이 없나이다. 이런 부정한 동물을 왜 먹습니까?”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 말하지 말라.” 바로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로마 사람은 부정한 동물입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진리를 가르쳐서 구원을 줄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고넬료를 만날 수 있는 성령의 환상을 주시고 그것을 통해서 복음이 이방 세계로 넘어가서 세계를 구원하는 진리가 되도록 역사하고 계신 겁니다. 이 사건은 유대교의 종교개혁이요 베드로 자신의 종교개혁 사건입니다. 베드로조차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 동족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인과 유대인은 절대로 가깝게 지낼 수 없는 철벽같은 칸막이가 있습니다. 로마인은 사상의 우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정복한 로마인이 볼 때 지중해 연안에 그 조그만 가난한 유대 나라 그 백성들은 정치적으로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시해 버립니다. 당시에는 유대나라 사람들의 가장 큰 소원이 로마로 이민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시를 당했는데 반대로 유대인들은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이라는 영적 우월감 속에서 “로마 사람은 짐승이나 마찬가지이다.” 부정한 동물로 인간 이하로 취급을 해서 이 사상의 우월성과 종교적 우월감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거기에 대표자적 역할을 하고 있는 베드로와 고넬료를 하나님이 지금 만나게 하신 겁니다. 베드로는 당시 예루살렘 교회 최고 지도자요 고넬료는 로마 군인 사령탑의 장교인데 피차가 도저히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위법의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 고넬료 집안이 첫 번째 관문입니다. 로마 사람으로서는 최초의 세례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에 복음이 들어와서 우리가 다 이렇게 예수 믿고 중국, 일본, 동남아, 미국 할 것 없이 우리가 다 예수 믿잖아요? 고넬료가 첫 번째입니다. 공식적으로 이방 세계에서 최초로 세례 받은 자입니다. 바로 그 관문을 통해서 복음은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의 철벽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뚫리는 장면이요 유대 민족 선민에게 크게 나타났던 우월적 영적 사상이 무너지는 장소로서의 사도행전 10장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이 이렇게 놀랍고도 오묘한 하나님의 역사가 바로 당시에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동시에 환상을 주심으로 연결의 초점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고넬료에게 “욥바로 사람을 보내라. 거기에 바닷가 피장이, 동물의 가죽과 식물의 껍질을 벗겨서 손질해서 먹고 사는 구체적으로 그런 집에 베드로가 계시니까 그 분을 모셔 오도록 하라.” 베드로에게 똑같은 시간에 해석이 어려운 환상을 신비스럽게 보여주심으로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 성경 전체에 나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베드로가 말합니다. 유대니즘에서 벗어난 말입니다. “내가 이제야 이방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이 구원을 주시는 줄 깨달았도다.” 

그리고 설교를 하고 로마 사람에게 세례를 줌으로 기독교 복음의 세계화에 관문을 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기도 생활을 합니다. 기도 생활 많이 하면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밧모섬에서 요한이 본 계시의 환상 때문에 요한 계시록 장래가 결정되었고 다메섹에서 사울이 본 빛의 환상 때문에 복음화가 이루어졌고 마게도냐 사람들을 도우라고 바울에게 나타난 환상 때문에 유럽이 복음화 되었습니다. 성경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환상을 볼 것이요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보리라.” 지금도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 기도란 하나님의 영과 나의 영의 만남입니다. 그래서 영의 세계에 내 영을 가르쳐주는 힘을 지니고 있어서 기도가 뭐냐 구체적으로 대답하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보여주셨던 잠깐 동안의 환상의 힘이 얼마나 이 땅에 큰 역사를 이루는 기초가 되었는가를 지금에 와서 우리는 역사를 거슬러 충분히 가능한 설명을 할 수가 있잖아요? 로마의 군인들 가운데는 고넬료보다도 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었겠고 로마를 대표할 수 있는 건물이 상당히 많이 있었겠는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이 고넬료를 쓰셨겠는가? 그가 하나님의 환상을 받을만한 그릇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십니다. 비록 점령군의 장교로 이 땅에 와 있지만 압박당하는 민족을 불쌍히 여겨서 백성들을 구제하고 그들이 믿는 유일신 하나님을 알게 되어서 온 집안이 믿고 그의 습관대로 정해놓고 기도하니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워서 하나님이 “네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도다. 이제 내가 너와 함께 큰일을 이룰 것이니 베드로를 너의 집에 우선 초청하라.”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이 오늘 말씀에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왔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집에 들어오니까 엎드려 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엎드려 절하는 모습과 행동이 베드로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과 같이 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잡아 일으키면서 하는 말이 오늘 나와 있잖아요? “나도 사람이라. 사람 앞에 뭘 그렇게 하나님과 같이 쩔쩔 매느냐?” 가이사랴의 사령관이 식민지 백성에게 이렇게 쩔쩔 맬 필요가 없잖아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는 고넬료입니다.” 이렇게 해도 괜찮잖아요? 이 사건을 통해서 제일 놀라는 사람은 베드로 자신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물로 세례 주는 것을 금하리요? 그 자리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이방 사람에게 최초의 세례 예식을 거행함으로 이방 세계에 복음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온 세계로 복음이 확산된 겁니다. 고넬료로 시작된 로마인에 대한 복음의 전도는 마침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오늘날 전 세계를 신앙으로 통치하는 교황청이 로마에 있으며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역대 교황은 다 로마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총 정리하면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예언과 꿈, 환상이 보여집니다. 구제하는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께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됩니다. 말씀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겸손한 사람에게는 성령이 임했습니다. 부정한 동물이라고 취급하는 이웃을 “내 입에 넣는 사랑이 필요하다. 잡아먹으라.”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이 로마와 선민의 철벽같은 간격을 무너뜨리고 인류의 복음화에 가장 큰 기초돌이 된 것을 우리가 오늘 종교개혁주일에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하신 것을 내가 부정하다고 규정짓는 일이 없습니까? “필요하면 네가 나한테 올 것이지 왜 나더러 오라고 해?” 베드로가 교만스럽게 그렇게 하지 않고 심방 요청을 했더니 45km를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걸어서 ‘나를 오라고 하는 사람이 누굴까? 이것은 영적인 일이니까 하나님이 환상을 주셨으니까 가야 된다.’ 이렇게 겸손하였기 때문에 성령이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교회나 우리 모든 성도들이 고넬료와 같이 이웃을 구제할 마음이 없으십니까? 구제는 하나님의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다음에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베드로와 고넬료는 그렇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쓰셔서 이렇게 기독교 세계화에 최초의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그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시여!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오늘 사도행전 10장을 통해서 조명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복음의 세계화를 위해서 교회를 쓰시고 사람을 쓰시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며 쓰임 받는 사역자, 쓰임 받는 교회, 쓰임 받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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