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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감사함으로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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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함으로  (시 100:1~5)


미국뉴욕에는 102층짜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있습니다. 층수를 102층으로 지은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1620년 9월 7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66일 동안 대서양을 건너 미국 신대륙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 항구에 도착한 102명의 믿음의 조상인 청교도들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평양 대동강변에는 북한이 자랑하는 주체탑이 있습니다. 이 주체탑은 25,550개의 돌로 세웠는데 그것은 김일성 주석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날수의 숫자라고 합니다. 
이 두 건물은 건축의 동기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청교도의 후예들은 빌딩 하나를 세워도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를 기념하며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지금 세계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미국인구가 세계인구의 6%정도 되는데, 그들은 세계천연자원의 2/3를 쓰고 있습니다. 그들이 먹다 남은 음식만 가지고도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소외된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다고 합니다.

반면 북한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독재자를 높여 우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어떻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습니다. 

이 두 건물이 상징하듯, 두 나라를 비교해볼 때, 이는 마치 뿌리가 튼튼한 나무와 뿌리가 병든 나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튼튼해야 잘 자랍니다. 인간에게도 근본이 있습니다. 인간의 근본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정성 것 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인 시편 100편 3절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말씀하시기를“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인간의 본분입니다.

본분이란 나무의 뿌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양인 우리 인간이 해야 할 본분은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때 더없이 기뻐하십니다. 시편 69편 30절~31절 말씀에“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 감사는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2절 말씀에“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말세에 나타나는 심각한 영혼의 질병은 감사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감사를 모른다는 것은 은혜를 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 가운데 가장 몹쓸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입니다. 감사를 잊는 것은 하나님의 저주라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평신도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는 말하기를“하나님이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배신이나 죽음으로 하시지 않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감사가 사라진 것은 저주받은 영혼이라는 것입니다. 감사가 사라진 마음은 곧 어두움의 영인 악령에게 사로잡힌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깨닫고 항상 감사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교훈하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문제는 가난도 아니고, 질병도 아니고, 실패도 아닌 감사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감사함이 없으면 그것은 타락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소유를 늘리기보다는 욕심을 줄이는 삶입니다. 욕심을 줄일 뿐 아니라 현재 내게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내게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성도여러분, 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위로부터 내려왔음을 고백하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임금님이 음식 맛이 너무 좋아서 주방장을 불러서 이렇게 솜씨 좋고 맛있는 음 식을 어떻게 준비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방장은 “오늘 가게 주인이 신선하고 좋은 재료를 대 주어서 음식이 맛이 있었습니다. 제가 잘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이 가게 주인을 불러 어떻게 좋은 재료를 팔았느냐고 묻자, 장사꾼은 “저는 장사꾼일 뿐입니다. 

농사를 지은 것을 가져다가 파는 것이지 제가 잘한 것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임금님은 농사꾼을 불러 어쩜 그렇게 농사를 잘 지었느냐 했습니다. 농사꾼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심었고 김만 맸을 뿐입니다. 잘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햇빛 주시고 단비 주시고, 적당한 기후 주시고 내게 건강주시고 만 가지 은혜를 주셔서 거둔 것입니다. 저는 아무 공로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존귀한 삶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약점은 감사함이 없는 마음입니다. 끊임없이 불평하며 불만을 갖습니다. 불평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그렇게 불평하고 짜증을 부리면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를 알면서도 우리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럴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젓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성경의 감사는 무(無)로부터의 감사, 환란가운데서의 감사, 범사의 감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有)로부터의 감사, 형통함에서의 감사, 선택적 감사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있어서 감사하고, 건강해서 감사하고, 형통해서 감사하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결과적 감사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서는 조금만 힘들고 조금만 잃어버리게 되면 감사의 삶이 아닌 불평과 원망과 좌절로 나타나게 됩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가족이 곁에 있음이 감사하고. 하루를 시작하면서 조용히 무릎 꿇어 주님과 대화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식탁 앞에 앉으면 먹고 마실 수 있음이 감사하고, 문밖을 나서면 웃음을 주고받을 있는 이웃이 있어서 감사하고, 하루라도 가만있지 않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재능과 모든 것이 주어져 있음이 감사한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하여는 권면하기를“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二. 감사는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행복은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감사하는 마음에 행복이 있을까요?

첫째, 감사하는 삶에 자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서 4장 11절에 말하기를“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함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자족의 삶은 주안에서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남보다 내가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몫이 남보다 적다고 생각할 때 감사보다는 불평이 터져 나오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항상 남과 비교하려는 나쁜 습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죄를 범하게 됩니다. 하나는 나보다 부하고 성공한 사람을 바라봄으로 열등의식에 빠지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나보다 못한 사람을 내려다보므로 그를 멸시하는 죄를 범하고 교만한 생각을 갖는 경우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남과 비교함이 없이“내 모습 이대로”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자족의 삶입니다. 현재 있는 것에 만족해 할 때 감사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와 행복은 꼭 좋은 환경에서 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깨달음에서 옵니다. 독일의 정치가 가운데 마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노선 때문에 관직에서 쫓겨나 어렵게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서 고생하는 것이 늘 불평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한 가지 사건을 경험한 후로는 불평을 버리고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나는 이제 나의 운명을 슬퍼하거나 불평하지 않겠다. 한번은 구두가 다 떨러졌는데도 구두를 사 신을 수 없는 극도로 어려운 때가 있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불만이 가득한 가운데 예배를 드리고자 예배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나는 거기서 두 발 없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는 두 발이 없이 목발 두 개 만을 옆에 둔 채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앉아 있었다. 내 마음은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한 두발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까짓 구두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그의 진실한 고백이었습니다. 

이처럼 감사하는 마음이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환경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욕망의 충족으로 감사하려 한다면 일평생 감사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같은 환경이지만 있는 것에 대한 고귀함을 깨달을 때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새 신발을 샀을 때는 감사하면서 두 발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는 감사할 줄 모릅니다. 새 장갑을 샀을 때 그 새 장갑을 산 것에는 즐거워하면서 두 손을 주신 하나님께는 감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삶을 바라시는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당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하셨습니다.

둘째, 감사하는 곳에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7절에“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하는 곳에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욕심이 가득한 마음에는 불평과 불만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곳에 하나님의 넘치는 평강이 있습니다. 

셋째, 감사는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십니까?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에게는“예”만 있고“아니오”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매사에 양면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밝은 면이요, 다른 하나는 어두운 면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생의 밝은 변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요, 불평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두운 변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컴퓨터에는 검색기능이 있습니다. 어떤 단어를 치면 그 단어와 연관된 정보가 쏟아져 나옵니다. 컴퓨터보다 더 탁월한 기능을 가진 것이 인간의 뇌라고 합니다. 20세기 후반 이후 뇌 연구가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라는 말을 하면, 뇌의 검색기능이 작동해서 감사에 해당되는 더 많은 자료들을 끌어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타의 구별이 없습니다. 

나의 감사이든 남의 감사이든 상관없이 감사를 말하기만 하면 감사에 관한 내용이 쏟아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입술의 말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잠언 18장 21절에“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감사헌금을 하는 사람은 헌금을 하는 사이에 온갖 감사가 다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내용을 같이 나누면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같은 감사의 내용이 검색되어 같이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의 검색기능은 단순하게 감사의 내용만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난관을 이겨내는 힘을 주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솔제니친은 육군장교 시절 문서 위조죄로 시베리아 정치수용소에 11년 동안 감금되어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강제노동을 강요받았습니다. 화병으로 쓰러질 수 있는 상황에서 감사의 검색기능으로 밝게 살았습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수용소 군도”라는 대작을 저술했습니다. 그 책으로 인해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솔제니친이 한 첫마디는“Thank you Prison”(고마워요 감옥)이었습니다. 감사의 검색기능은 이처럼 사막에서도 꽃이 피게 합니다. 

미국의 어떤 목사님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남편 잃은 목사의 아내는 어렵게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아들도 그런 어머님의 뒷받침에 부응하여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소원이 뭐냐고 물으면“고생하시는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아들이 명문 프린스턴대학에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수석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수석졸업자에게 주는 금메달을 받을 때, 어머니를 연단으로 불렀습니다. 어머니에게 금메달을 걸어드리며“이 메달은 17년 동안 내게 감사를 가르쳐주신 어머니의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훗날 1920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미국 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입니다. 역경속의 감사의 능력은 인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간구보다 감사를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하되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도 초반에 간구부터 시작하면 온통 문제만 검색됩니다. 결국 문제에 짓눌려 기도가 막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감사로 시작하는 것이 기도의 지혜입니다. 감사를 먼저 하면 감사의 검색기능이 작동해서 온갖 감사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심령 속에 감사로 채워지면 힘이 생기고, 문제를 쉽게 풀어갈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왜라고 묻지 말고, 어떻게 라고 물어야 합니다.“왜 내게 이런 일이”라고 묻지 말고“어떻게 하면 해결될까”라고 물어야 합니다.“왜 저 사람은 저모양인가”하지 말고“어떻게 하면 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까”를 물어야 합니다. 감사의 시각은 대안을 만들어 내고, 열매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 말씀하시기를“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습니다. 

三. 감사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소와 양의 생리는 털을 내거나, 젖을 내거나, 노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소는 노동력을 내고, 어떤 소는 우유를 내고, 어떤 소는 가죽을 냅니다. 어떤 양은 털을 내고, 어떤 양은 양유를 냅니다. 우유의 경우는 날마다 젖을 짜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젖을 짜면 다시 새 젖이 솟아 나오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때그때 젖을 짜지 않으면 그 젖은 말라버릴 뿐만 아니라 유방암에 걸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람이나 소나 양이나 모두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를 나중에 한꺼번에 많이 하려고 지금 하지 않으면 다음에는 십일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봉사하는 것도 기회가 주어질 때 해야 합니다. 나중에 봉사하겠다고 생각하면 그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것도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 바로 감사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매일 젖을 짜지 않다가 그 젖이 다 말라 버리고 마는 것처럼 감사의 조건이 사라지고 맙니다. 

포도나무도 그 열매를 적기에 따야합니다. 제때에 따지 않으면 날짐승들이 와서 극상품의 포도를 불량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우리의 감사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감사해야할 때 감사를 해야 합니다. 감사를 미루면 그 감사의 내용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버립니다. 오랫동안 감사할 내용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으면 마귀가 와서 그 감사의 내용을 불평의 내용으로 파괴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감사의 때를 놓치지 말고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4장 22절~23절에 말씀하시기를“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신명기 16장 16장~17절 말씀에“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벌써 계절이 바뀌어 추수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다음주일은 우리교회에서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추수감사절은 온 세계교회가 다 지키는 소중한 절기입니다. 이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올해에도 대풍입니다. 일조량이 많고 강우량이 많아 단풍은 더없이 아름답고 과일은 맛이 좋습니다. 수확량이 너무 많아 값 폭락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농사하는 농부가 수고를 했지만 농부의 힘만으로 된 것은 아닙니다. 근본적인 것은 비와 공기와 햇빛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양들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인 시편 100편 3절~4절 말씀에“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헤아려 범사에 감사하므로 하나님을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제사로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은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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