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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인생 (전 7: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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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인생 (전 7:8~10)

(전7:8-10)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1. 전도서 7:1-2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본문 말씀처럼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다.”는 뜻입니다. 구약 시대에 욥은 자신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큰 환난, 하루아침에 전 재산이 약탈당하고 자녀들이 한꺼번에 압사(壓死)당하는 엄청난 환난을 당했음에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욥1:21-22)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이러한 남편을 보다 못한 욥의 아내가 “당신이 이래도 믿음을 지킬 셈이오? 하나님이나 저주하고 죽으시오.”(욥2:9)라며 독설을 내밷자 욥은 “당신의 말은 어리석은 여자의 말과 같소. 우리가 하나님께 복도 받았는데 재난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소?”라며 아내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그간 침묵으로 자신의 믿음을 굳게 지켜왔던 욥이 드디어 입을 열어 자신의 탄생을 한탄하고 저주합니다. 욥기 3장은 전체가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는 장탄식(長歎息)입니다. 

(욥3:1-26) 내가 태어난 날이여, 저주를 받아라. 내가 임신이 되던 그 밤도 저주를 받아라. 그 날이여, 영원히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하나님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려라....차라리 그 밤이 적적하고 기쁨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다....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 차라리 죽었더라면 좋았을 걸! 내가 그때 죽었더라면 지금쯤은 평안히 잠들어 쉬고 있을 텐데. 내가 그때 죽었더라면 죽어서 나와 세상 빛을 보지 못한 아이처럼 땅 속에 묻혀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먹기도 전에 탄식이 먼저 나오고 물같이 쏟아지는 신음 소리는 막을 길이 없구나. 내가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던 것이 결국 나에게 닥치고 말았으니 평안도 없고 안식도 없이 나에게 남은 것은 오직 고난뿐이구나!

욥이 이렇게 자신의 태어난 날을 저주하는 것은 극심한 환난을 극복하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입니다. 끝 모를 환난, 회복의 여망이 없는 환난 중에서도 자신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위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입니다. 욥의 고백,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는 고백처럼 욥은 하나님께 항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탄생을 저주하므로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고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안타까운 몸부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끝까지 믿음을 지킨 욥을 축복하시되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고,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셔서 잃었던 자녀들 이상의 아름답고 뛰어난 자녀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 아들, 손자 4대를 보며 140년을 향수(享壽)했습니다. 
 
(욥42:10-17)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세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요셉은 17세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어떠한 유혹도 뿌리치고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했습니다. 자신에 꿈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주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으로 마침내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환난을 당한 그의 전 가족들을 구원했습니다. 다니엘 역시 어린 나이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지만 자신을 더럽히지 않는 믿음과 결단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바벨론 최고의 두뇌집단보다 10배나 뛰어난 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총리가 되어 국호가 바뀌고 왕권이 세 번씩이나 바뀌었음에도 오히려 수석총리에 오르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단1:20-21)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처음보다 나중, 결과가 나쁜 인생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시작보다 끝이 좋은 사람이 지혜롭고 복된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계 22:13)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인생이 처음보다 나중, 시작보다 끝이 좋은 지혜롭고 복된 인생입니다. 욥과 같이 어떠한 경우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켜 처음보다 나중이 심히 창대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처음보다 나중, 시작보다 끝이 더 좋고 창대한 복된 인생을 위해 참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B.C.911년경 유다의 3대 왕이었던 아사는 왕에 등극하여 거국적이고 철저한 우상타파 정책과 “선(善)과 정의(正義)”(대하14:2)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자신의 조모인 태후 마아가를 우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폐위시켜버릴 정도였습니다. 당시 마아가는 태후로서 왕가(王家)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음에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우상타파정책을 강행했습니다. 

(대하15:16) 아사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아사 왕의 이러한 정책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나라 안팎으로 십년동안 태평성세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대하14:1-7) 아비야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다윗성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시대에 그 땅이 십년을 평안하니라. 아사가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유다 사람을 명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하며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이하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얻으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이렇게 평안을 누리고 있을 때, 구스 군대 100만 대군이 침략해왔습니다. 당시 유다는 잘 훈련되고 정예화된 58만명의 군사력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구스 대군의 공격을 앞두고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대하14:11)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이 기도는 다윗과 요나단의 믿음처럼 “(삼상14:6)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철저히 하나님 손에 달려있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아니하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고백,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러한 아사 왕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구스 100만 대군을 패망시켰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전리품을 거두게 되었고 이 전쟁으로 인해 주변 국가들이 모두 유다를 두려워하게 만들었습니다.

(대하14:12-15)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구스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아사와 그 좇는 자가 구스 사람을 쫓아 그랄까지 이르매 이에 구스 사람이 엎드러지고 살아 남은 자가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 앞에서와 그 군대 앞에서 패망하였음이라 노략한 물건이 심히 많았더라 여호와께서 그랄 사면 모든 성읍 백성을 두렵게 하시니 무리가 그 모든 성읍을 치고 그 가운데 있는 많은 물건을 노략하고 또 짐승 지키는 천막을 치고 양과 약대를 많이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이후 아사 왕은 그 통치 말년(B.C.895년경)까지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누렸습니다.(대하15:19) 아사 왕의 철저한 신앙과 우상 타파 정책으로 전례없는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평화 시대를 누리게 되자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명성을 듣고 남 유다로 월남(越南)하기 시작했습니다. 북 이스라엘 정권의 우상숭배에 위기를 느끼고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복을 누리고자 남하(南下)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대하15:9) 또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를 모으고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시므온 가운데서 나와서 저희 중에 우거하는 자를 모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 

이에 위기를 느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백성들의 남하를 막기 위해 라마를 요새화하고 경비를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를 공격하고자 했습니다. 아사 왕은 이러한 때 예전처럼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아니하고 성전 곳간과 왕궁의 곳간을 털어 아람 왕에게 예물을 보내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사는 초기에 온전히 여호와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받은 축복의 선물들을 강국의 왕에게 바침으로, 세상적인 힘을 의지하는 죄악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통치 말년에 나타난 아사 왕의 이같은 외세 의존 정책으로 한 순간에 모든 축복을 다 잃어버리게 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선지자 하나니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사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대하16:7-9)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아람 왕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시리아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왕은 구스 100만 대군에게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그들은 수많은 전차와 마병을 거느린 대군이었으나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였을 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왕의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고 자기를 진심으로 찾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왕이 정말 어리석게 행동하였으므로 이제부터 왕에게는 전쟁이 있을 것입니다.

아사 왕은 이러한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대단히 화가 나서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아사 왕이 분노한 것은 자신의 정책대로 아람 왕에게 예물을 보내 아람과 동맹을 맺어 북 이스라엘의 침공을 막아내는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자신을 질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방법이야 어쨌든 그 결과가 성공했는데 왠 책망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사 왕은 분노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고 고문(拷問)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왕이 왕권을 남용해서 선지자를 고문하여 박해한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에 대해 겸손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면, 자신의 정책이 성공했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한 자신의 교만을 깨닫고 선지자의 질책을 참고 받아들였다면 그는 불행한 종말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작 분노하실 분은 하나님이신데도 적반하장(賊反荷杖)격으로 아사 왕은 노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를 투옥하고 박해했던 것입니다. 

아사 왕의 교만은 거기서 그치지 아니하고 몇몇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한 학정(虐政), 박해와 고문에 대해 백성들이 불만을 품자 아사 왕은 본보기로 몇몇 백성들을 탄압하고 학대하여 입을 틀어막자는 심산이었습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한 자신의 정책을 합리화시키고, 자신의 교만한 죄악을 은폐하고자 탄압정책으로 밀어 부친 것입니다. 아사 왕은 그후 얼마 되지 않아 발에 심한 병이 들었으나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지 않고 의사에게만 의존하다 결국 2년만에 발병으로 죽었습니다. 

(대하16:12-13)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아사가 위에 있은지 사십 일년에 죽어 

참으로 아사 왕은 그 시작은 너무나 좋았지만 나중이 좋지 않은 왕이 되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다윗 왕과는 사뭇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다윗 왕이 B.C.990년경 왕궁 옥상을 거닐다 목욕하는 밧세바의 외모에 반해 그녀를 불러 동침하게 됩니다. 밧세바는 충신 우리아의 아내였습니다. 다윗 왕은 이를 감추고 아예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고자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 함정을 파고 전사(戰死)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왕권을 남용해서 자신의 간통죄를 은폐하고, 충신까지 말살하여 한 가정을 완전히 파괴하는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다윗 왕은 비열한 방법으로 우리아를 살인하고 밧세바를 서슴없이 왕궁으로 데려왔습니다.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비유를 통해 다윗의 범죄를 깨우치고자 하셨습니다. 그 비유의 말씀은 이렇습니다. 사무엘 하12:1-4입니다.

(사무엘 하12:1-4) 어떤 성에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양과 소를 아주 많이 가진 부자였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사서 기르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암양은 온 가족의 애완 동물이 되어 식구들과 함께 같은 상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은 마치 자기 딸처럼 그 양을 부둥켜안고 귀여워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부자집에 손님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자기의 양과 소는 아까와서 잡지 못하고 한 마리밖에 없는 그 가난한 사람의 암양을 빼앗아다가 그것을 잡아서 손님을 대접하였습니다. 

이 말에 다윗은 크게 격분하며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지만 누구든지 그런 짓을 한 사람은 마땅히 죽어야 하느니라. 그는 그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런 짓을 했으니 그 새끼 양의 4배를 그에게 배상해 주어야 하느니라.” 고 호령합니다. 

바로 그때 나단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출해 내었으며 사울의 궁전과 그의 처들을 너에게 주었고 또 이스라엘과 유다를 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였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다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을 것이니라. 그런데 어째서 너는 나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이어 끔찍한 일을 하였느냐? 너는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느니라.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처로 삼았으니 칼이 네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니라. 내가 너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네 집안에서 너에게 미칠 화를 불러 일으키고 또 네가 보는 앞에서 네 처들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겠노라. 그가 밝은 대낮에 네 처들을 욕보일 것이니라. 너는 그 일을 몰래 해치웠으나 나는 이 일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낮에 행할 것이니라.” 

그러자 다윗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하고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합니다. 아사 왕처럼 교만하여 선지자의 질책에 분노하며 그 선지자를 고문하고 학대하는 것이 아니라, 솔직히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처를 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다윗에 대해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해 사죄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나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왕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원수들에게 여호와를 경멸하고 모독할 기회를 주었으므로 왕의 아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나단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아의 처가 다윗에게 낳은 불륜의 아이를 심한 병에 걸리게 하셔서 죽게 하셨습니다. 이후 다윗 왕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영토 확장과 더불어 최강의 부국강병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은 그 시작은 이새의 막내아들로 목동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나중은 심히 창대케 되었습니다. 참는 마음과 겸손 마음으로 회개하므로 믿음을 끝까지 지켰기 때문이었습니다. 겸손히 참는 마음으로 믿음을 지켜 처음보다 더 좋은, 나중이 심히 창대한 지혜롭고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B.C.1040년경 사울이 왕이 되어 2년째에 블레셋이 전차 30,000대와 마병 6,000명 등 해변의 모래알처럼 많은 막강한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하고자 진을 쳤습니다. 그에 비하면 사울 왕의 군대는 겨우 보병 3000명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무기라고 해서 쇠붙이 하나 없는 막대기 하나씩 들고 있는 초라한 군대였습니다. 이때 적군의 어마어마한 병력을 보고 사태가 다급해진 이스라엘 사람들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빈 무덤과 웅덩이를 찾아 숨고 어떤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 갓과 길르앗 땅으로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지경에 사울의 군대는 다가올 위험을 생각하며 무서워서 떨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의 공격이 시작되면 풍전등화처럼 지리멸렬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사울 왕은 선지자 사무엘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일주일을 기다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도록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사무엘의 지시대로 그를 7일 동안 기다렸으나 사무엘은 그때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남아 있던 병력들마저 하나씩 둘씩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사울은 백성들과 병력의 동요를 막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주도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가 7일째 되는 날, 해가 기울어가는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사울 왕은 나라 민족을 지키시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뿐이라는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끝까지 참고 기다리지 못하고, 제사장만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인도할 수 있는데 왕이라는 신분으로 월권(越權)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울 왕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 망령된 것입니다. 사울 왕이 망령되게 자신이 주도해서 예배를 마치자 바로 사무엘 선지자가 해가 기울기 직전에 도착했습니다. 사무엘이 상황을 파악하고 사울 왕을 질책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이에 사울 왕이 “내 부하들은 내 곁을 떠나고 당신은 오기로 약속한 날이 다 되도록 오지 않고 게다가 블레셋군의 공격은 임박했는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예배는 아직 드리지 못했고 그래서 내가 당신을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하는 수없이 예배를 드리고 말았습니다.” 고 궁색한 변명을 털어놓습니다. 이때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삼상13:13-14)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결국 사울 왕의 왕권은 오래가지 못하고 다윗에게 넘어가고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아들들과 함께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라도 끝까지 참고 기다리는 믿음을 지키지 못해서 빚어진 최악의 종말이었습니다.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겸손하고 참는 마음으로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므로 시작보다 나중이 심히 창대한 지혜롭고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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