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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사 62: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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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사 62:6~12)

    
설교내용       

우리는 과거에 남의 나라에 지배 되어 살아온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삶이란 여간 비참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도 이제는 안개속의 그림자처럼 희미해져 갑니다. 그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세상을 거의 다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듣는 고통은 고통이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그 때는 끔찍했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무슨 공출이 그리 많았는지 곡식은 물론 쇠붙이 하며 집안에 남아 있는 것이 없을 만큼 다 빼앗기고 살았습니다. 문화도 빼앗기고, 신사참배로 정신도 빼앗기고 우리말도 배앗겼습니다. 남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서러운 것입니다.

저는 남의나라에 지배를 받는 경험은 없지만 남의 집에 사는 경험은 가지고 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저의 할머님이 저를 남의 집에 밥만 먹여 달라고 맡겼습니다. 남의 집에서 밥만 얻어 먹는 것이 쉽지를 않습니다. 혹시 잘못하면 밥도 못 얻어 먹고 쫏겨 날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새벽 일찍 일어나 마당 쓰는 일부터 시작해서 청소 하는 일 그리고 물 길어 나르는 일, 겨울에 발이 너무 시려 워서 양말 속에 비닐을 끼워 신고 살던 일, 그리고도 거의 매일 야단을 맞고 억울한 누명도 쓰고 밥 한끼 얻어먹기 위해 참고 참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려워도 같이 살자고 할머니가 고모를 보내서 저를 데리고 집에 갔는데 할머니를 보는 순간 참았던 서러움이 북 받혀 오르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할머니도 울고 고모도 울고 그리고 얼마나 좋던지 보리 밥을 먹어도 좋고 풀데 죽을 먹어도 좋고 집이 그렇게 좋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생각합니다. 지금 남의나라에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주전 587년에 유다 왕국이 완전히 멸망하고 정치, 종교, 지도층들은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전쟁의 결과로 유대 백성은 참담합니다. 그들의 신앙의 지주요, 정신의 지주가 되는 예루살렘성전은 완전히 파괴 되었고 혹독한 기근으로 수 많은 백성들이 대책 없이 굶어 죽었습니다. 그런 가운데도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은 그 어려움을 이기고 장사나 무역을 해서 재산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을 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러게 기록합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이들에게 희소식이 옵니다. 그들이 회복될 것이라는 이사야 선지자의 멧세지입니다. 4절에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헵시바’는 ‘나의 기쁨이 네게 있다(my delight is in you)’는 말이고 ‘쁄라’는 ‘결혼했다(married)’는 뜻입니다. 두 말을 합쳐 말하면 ‘내가 너를 기뻐하여 결혼을 했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믿기 어려운 매우 놀라운(wonder) 말씀입니다.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극복하지 못한 죄가 있고 교만과 위선이 남아있으며 연약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눈에는 안목의 정욕이 살아있고 살과 뼈에는 육신의 정욕이 남아있으며 마음에는 이생의 자랑이 남아있어 끊임없이 우리를 넘어뜨리고 좌절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헵시바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자라. 놀랍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이 그렇습니다. 지금 죄로 말미암아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헵시바라니요. 내가 너를 기뻐하여 결혼을 했다’니요. 감격입니다. 왜 눈물이 나지 않겠습니까? 6절 이하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얻기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여호와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시게 할 수 있을까? 6절 말씀을 살펴보면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희 성벽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게 하시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라 이랬습니다.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시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위해 쉬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시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 것입니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쉬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이것, 저것 자꾸 묻는 것입니다. 손자가 일하는 한 할아버지는 쉴 수 없습니다. 손자가 지쳐서 잠이 들어야 할아버지가 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성도가 쉬지 않으면 하나님이 쉬실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기를 쉬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쉬지 마시기 바랍니다. 찬송하기를 쉬지 마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 받기를 쉬지 마십시오.복음을 전하는 일에 쉬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위한 충성과 헌신과 봉사를 쉬지 마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이 쉬지 아니하신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쉬도록 하는 성도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쉬지 못하도록 해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에 준비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0절에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우선 나아가야 합니다. 성안에 같혀서 두려워 밖을 내다 보지 못하고 벌벌 떨어서는 안 됩니다. 출애급 하는 이스라엘이 앞을 가로 막고 있는 홍해를 보고 벌벌 떨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아가면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보는 것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애급 군대에게 잡히고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니나아가야 합니다. 두려워 떠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위대 한 믿음의 말을 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나아가는 자는 구원을 볼 것입니다. 보았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가 요단을 건널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는 마침 모맥 거두는 시기여서 요단의 물이 불어 언덕에 넘치던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제사장들이 그렇게 순종했습니다. 요단이 갈라졌습니다. 여러분도 말씀을 믿고 나아가 이 기적 속에 살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백성이 올 길을 닦아야 합니다. 준비 하는 것이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백성들이 오지 않는다면 길을 닦는 것은 헛수고입니다. 그러나 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길을 닦습니다. 믿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다면 준비가 필요 합니다. 주님 맞을 준비가 필요 합니다. 

주님이 내게 오시도록 길을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중 나가야 합니다. 손님이 올 때 마중을 나갑니다. 귀한 분이올 때 마중을 나갑니다. 오는 분들이 기뻐합니다. 외국에 나갈 때 비행기를 타고 낮 모르는 공항에 도착을 해서 나가는데 마중 나온 사람이 없다 얼마나 당황이 되는지모르죠. 그러나 마중 나온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으면 너무 기쁘지요. 

사람들이 물을 가정에서 사용하는 변화를 보면 우물에서 펌프로 그리고 수도 물 시대가 되었지요. 더러 황당한 것은 여름에 길을 가다가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인데 우물을 발견하고 야 우물이다 하고 갔는데 타레 박이 없어요. 우물 안에 시원한 물을 보며 물을 먹지 못할 때 속이 더 타지요. 펌프를 박아서 물을 먹는 부자 집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물을 길어 가니까? 물을 빼놓지요. 

이때 물을 다시 퍼 올리려면 마중물이 있어야 되지요. 펌프는 있는데 마중물은 없고 옆집에 가서 사정, 사정 한바가지 마중물을 얻어 왔는데 이것을 위에 붓고 펌프질을 부지런히 합니다. 그런데 물이 모자라서 물 빠지는 소리가 퍽하고 나면 맥 빠지는 것이지요. 그때 앞집 문이 열리면서 큰 바가지로 물을 담아와 마중물을 부어주는 아주머니는 천사입니다. 

교회는 마중물이 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끌어 드리는 마중물, 서로의 기쁨을 드러나게 하는 마중물,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내는 마중물, 마중물은 저 어둡고 깊은 곳에 생수가 있다는 것을 믿을 때 자기를 희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말고 깨끗한 생수가 있다 하더라도 마중물이 모자라면 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교회에 마중물이 모자라면 안 됩니다. 소돔 고모라는 의인 열사람이 없어서 멸망하였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실 수 있는 마중물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돌을 제하여야 합니다. 돌이 있으면 걸려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 보았습니까? 보통 아픈 것이 아닙니다. 죄를 제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죄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 때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돌을 제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돌멩이가 굴러다니는 거친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해 유대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주의 길을 예비하라 평탄케 하라. 회개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힘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지식인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직분자나 평신도나 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지나나 여름에도 비가 많이 오니까? 산사태가 나서 도로가 산에서 굴러온 돌로 막혀버려 차가 다니지 못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포크레인이 와서 열심히 돌을 치웁니다. 며칠 지나고나서 길이 뚫렸습니다. 여러분의 심령에 죄로 산사태가 나지 않았습니까? 불신의 돌, 미움의 돌, 시기와 질투의 돌, 우상 숭배의 돌, 다 치우시기바랍니다. 그래야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이 와야 문제도 해결되고 기쁨이 넘칩니다. “주 예수 내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내 맘에 기쁨 이 넘침은 주 예수 내 맘에 오심”

마지막으로 기치를 들어야 합니다. 승리의 깃발입니다. 힘의 깃발입니다. 군대에는 깃발이 있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 깃발을 들고나가고 전쟁에서 승리하면 깃발을 꽂습니다. 우리도 깃발을 꽂아야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기치를 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시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우리를 대적하리요.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너의 승리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기를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시기를 원하노라(시 20:5) 출애급기에는 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출 17:15) 했습니다.

여호와 닛시란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란 뜻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항상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승리의 깃발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온갖 위험한 짐승이 다니는 정글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정글 속에서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비결은 나무를 가져다가 큰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큰 불을 피우면 위험한 짐승들이 왔다가 그냥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기도의 불을 일으켜야 평안과 부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도 고치신다고 약속하셨고 축복도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우리 기도를 들어 성령의 능력도 부어 주시겠다고 이미 다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약속을 붙들고 강청하는 기도의 불을 크게 피워 불길이 솟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의 불길이 솟는 교회는 모든 마귀의 악한 공격에서 구원 받을 줄로 믿습니다.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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