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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 향기롭게 (민 15: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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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향기롭게 (민 15:1~16)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한 두 가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앞 장 14:30을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 14:35를 보면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가기서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게다가 14:39 이하를 보면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가나안 땅을 공격해 들어가다가 패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결단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일종의 저주의 말씀을 듣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하나님께서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이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도대체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다른 하나는 자세한 제사 규정이 새롭게 소개되고 있는 점입니다. 4-5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러한 헌물을 드리는 자는 고운 가루 십분의 일에 기름 사분의 일 힌을 섞어 여호와께 소제로 드릴 것이며 번제나 다른 제사로 드리는 제물이 어린 양이면 전제로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준비할 것이요” 

그런데 이 말씀은 레 1-3장 말씀과 다릅니다. 번제를 드릴 때 그냥 제물만 바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와 보면 곡물을 더 추가해서 바쳐야 하며 전제로 포도주도 붓게 했습니다. 불과 2년도 안돼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완하신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런 두 가지 의문을 품고 본문을 보다 깊이 성찰해 보면 하나님의 보다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이시구나

오늘 본문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결론적으로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습니다. “역시 하나님이시구나!”

우선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습니다. 사 41:14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원래 이스라엘 백성은 벌레 같고 지렁이 같은 연약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소중한 도구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그들이 허물까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도우셔서 애굽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들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을 말씀을 불순종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저들을 미련없이 버리실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저 이스라엘 백성을 그래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38년 동안 광야에서 더 훈련 받게 하신 후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십니다. 연약한 존재를 택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합니다. 그런데 용서하시고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역시 하나님이시로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면 실망하게 됩니다. 주변 상황을 보면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들어 쓰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국민일보에서 영동농장 김영복 회장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한 때 잘 나가던 사업가였습니다. 그러던 중 사고로 사업을 접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가 양식업을 시작하다가 완전히 망하고 말았습니다. 완전히 좌절하고 절망하여 술에 절어 미친 사람처럼 방황하다가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인간적인 잔꾀나 오기로 살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만 받고 살겠다고 다짐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기도 하다가 중동 사막지대에 노무자들이 먹는 김치용 배추를 사막에서 재배해 보자는 꿈이 생겼습니다. 모래땅과 섭씨 50도의 뜨거운 햇빛에서 채소를 가꾼다는 것은 모두 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믿고 뛰어들었습니다. 땅을 찾아 빌리고 농부들을 데려다 배추를 심고 키웠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너는 나의 백성이니 너의 일은 모두 나에게 맡겨라’ 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크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정진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결국 기적같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우디 현지 농장에서 무와 배추가 생산되자 엄청난 주문이 밀려들게 되었습니다. 사우디 대지주들이 수십 만평의 땅을 개발해 달라는 주문을 하여 농장 네 개를 더 개발해 주자 사우디 정부에서는 녹색혁명 기수란 칭호를 주었고, 개인 외화 송금액 1위로 한국에서 산업 훈장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연약하고 허물 많은 나 자신을 바라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레위기 1-7장을 보면 제사에 관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를 드리는 자세한 규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하신 장소는 시내 광야 한 복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목축도 하기 힘이 든 상황입니다. 그저 애굽에서 부터 끌고 나온 가축들을 돌보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제사 규정은 기본 원칙을 담고 있지만 당시 상황을 반영한 것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와 보면 저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목축도 하고 농사도 지어서 많은 소출을 얻을 것을 전제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사 규정도 보완하여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즉 제사를 드릴 때 곡물 제물도 곁들여서 바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오늘은 물론이시고 또한 우리의 내일도 이미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에 관한 것도 배려하셔서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때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받들기 힘든 명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미리 아시고 인도하신다는 점을 믿고 순종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지난 주간 잠시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한 자매를 만나 영적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제게 신앙상담을 청했지만 오히려 제가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분은 한 직업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래 공산당원이었고, 대학에서도 철저하게 공산주의 사상을 훈련받아서 예수를 믿을 수 없었던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속을 썩입니다. 공부를 안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활 자체가 문란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엄마를 거칠게 대합니다. 이분은 살 소망까지 잃어버렸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던 중에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예수 안에서 소망을 찾게 됐습니다. 새벽기도를 드리면서 아들에 문제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놀랍게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게 됐습니다. 다시금 아들에 대한 사랑을 되찾게 됐습니다. 아들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분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아들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비록 지금 이 아들이 제게는 고통을 주지만 장차 이 아들 제게 큰 기쁨을 줄 것으로 믿습니다. 지금 제게 절망을 주었지만 장차 희망을 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릅니다. 그래서 불안해 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분을 따라 나아가면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큰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 향기롭게

“역시 하나님이시구나”라고 깨달은 우리에게 본문이 제시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여호와께 향기롭게 지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우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여호와께 화제나 번제나 서원을 갚는 제사나 낙헌제나 정한 절기제에 소나 양을 여호와께 항기롭게 드릴 때에...” 제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못 박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바로 여호와를 위해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창 1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따라 가나안으로 나아갈 때 세겜이라는 곳에 처음 도착을 했는데 그곳에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예배였다는 것입니다. 옛 개역성경을 보면 이 부분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그렇습니다. 예배는 우선 하나님을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께 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에게도 참 좋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은혜를 받게 됩니다. 말씀을 듣게 됩니다.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예배의 목적이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 얻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입니다.

출 20:4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잘못된 예배의 문제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바로 “너를 위해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예배라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도 그 예배의 목적이 예배자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늘도 이 땅에서 드려지는 수 많은 예배가 잘못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형식도 문제고 우상을 세워두고 예배드리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사람들을 위한 예배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가 점점 개그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재미있고 웃겨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내용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위로를 주는 설교, 복을 선언하는 설교,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설교들 위주가 되고 있습니다.

예배 형식이 유행을 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배 음악들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배드리기 좋은 시간으로 예배 시간대가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배 드리기 편한 시설로 바뀌고 있습니다. 물론 예배 형식에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중심이 되면 안됩니다. 

예배자들이 이동해 갑니다. 듣고 싶은 설교를 하는 교회로 예배자들이 이동해 갑니다. 최근에 급성장하는 교회들 가운데 교회 성장 원인이 바로 예배자들의 수평이동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니기 편한 곳으로 교회를 쉽게 옮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역시 사람들 중심의 예배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에 예배를 드린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향기로운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3절을 보면 “여호와께 향기롭게 드릴 때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레위 1:9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제단 위에서 제물을 불살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 제물이 타는 연기를 향기로 맡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흠향하신다는 것입니다.

엡 5:2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희생이 바로 구약의 제물들이 불살라져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가 된 것과 같다고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향기로운 제사는 우선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서 주의 전을 찾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마음을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헌금을 드리는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2005년 한미준이 발표한 통계 중 예배에 관한 부분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우선 예배 참석 여부에 관한 통계입니다. 매주 참석 65.2%/ 한달 2-3회 18.0%/ 한달 1회 3.7%/ 한 달 1회 이하 1.4%/ 참석 안함 11.7% 그러니까 약 2/3 정도만 매주 참석하고 1/3은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 참석하지 않는 이유에 관한 통계입니다. 직장, 학업 문제  33.3%/ 게을러서 33.3%/ 가정 문제  13.7 %/ 거리가 멀어서    2.0%/ 싫은 사람 때문에 2.0%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려면 예배를 위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향기로운 제사를 위해서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농사를 짓기 전과 농사 지은 후의 제물이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농사를 지을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소출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 그 소출로도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막 12:42 이하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렙돈은 우리 돈으로 약 60원 정도의 가치입니다. 그러니까 두 렙돈은 120원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렙돈을 헌금한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과부에게 이 돈은 백만장자의 수십억보다 더 큰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정성의 무게를 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예배가 하나님께 향기롭습니까? 여러분의 예배에 수고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예배에 정성이 담겨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크신 분으로서 연악하고 허물 많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전지하신 분으로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바로 이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예배가 향기로운 예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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