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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롯의 구원 (창 19: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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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의 구원 (창 19:1~29)


사람의 구원은 우리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구원을 받지 못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유교 가정에서 자란 한 소년이 가족들 몰래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그 손자를 불렀습니다. 그 앞에는 시퍼런 칼이 있었습니다. “이놈! 우리 집이 어떤 집인데 네가 예수를 믿느냐? 

내가 죽어서 조상 얼굴도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게냐? 당장 교회 나가는 것을 그만 두거라. 만일 오늘 여기서 네가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한다면 네가 앞으로도 우리 집의 종손으로 귀하게 대접을 받겠지만 계속해서 예수를 믿겠다고 하면 오늘 내가 이 칼로 너를 죽이고 이 할아버지도 자결해 죽을 것이다.” 그러자 아이가 눈을 감고는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나는 죽어도 예수님을 믿으니 천국에 가요. 예수님을 안 믿을 수 없어요. 그러나 할아버지는 예수님 안 믿으니 돌아가시면 지옥에 가요.” “뭐라고? 내가 다시 묻는다. 이 할아버지가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냐?”, “네, 할아버지도 예수님을 안 믿으면 무서운 지옥에 들어가요.” 할아버지가 화를 내며 손자 뺨을 후려갈기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놈! 그러면 그것을 왜 이제야 말하느냐? 진작 말하지 않고! 자, 다음 주부터 이제 우리 가족은 다 교회에 나간다. 우리 가족은 다 예수를 믿을 것이다.” 결국 이 할아버지도 손자를 따라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핍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를 미쳤다고 조롱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드리는 사람보다는 거절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하면 안 됩니다. 금광에는 금보다 돌이 더 많지만 그 안에서 금을 뽑아내는 것처럼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아도 분명히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믿고 전도하는 일에 힘을 다합시다.

본문은 소돔성이 죄악이 가득해서 멸망하는 내용입니다. 롯은 이 성의 멸망 때문에 소돔성을 찾아온 천사를 잘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또 삼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응답으로 인하여 소돔성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추구했던 명성과 재산을 잃어버리고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소돔성이 멸망 받지만 그곳에서 구원을 얻은 롯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1. 세상적인 성공에 몰두하지 마십시오(1절). 

창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너는 복이 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네가 복되고 너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개역성경에서는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롯은 일찍이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촌 아브라함 밑에서 양육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고아가 된 롯을 친아들처럼 잘 양육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잘 사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고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던 롯도 복을 받았습니다. 

창 13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이 너무나 많아서 함께 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소는 좁은데 가축은 많으니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가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집니다. 그 때 마음이 넓은 아브라함은 롯을 불러서 말합니다. “우리는 친족인데 서로 다툼이 있으면 안 된다. 그러니 헤어지자. 네 앞에 땅이 있으니 선택해라. 네가 죄하면 내가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손해를 보려고 합니다. 

자기가 고아인 롯을 키웠으니 롯은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롯은 아브라함이 없었다면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인데 아브라함 때문에 이렇게 복을 받았습니다. 거기다가 촌수를 따져도 아브라함은 삼촌이고 롯은 조카이니 아브라함이 먼저 좋은 땅을 차지할 수 있었을 텐데 아브라함이 양보를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롯이 “삼촌 무슨 말입니까. 삼촌이 저를 이렇게 키워주셨고, 제가 삼촌 때문에 부자가 되었는데 삼촌이 좋은 땅을 차지하세요.”라고 말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삼촌의 깊은 사랑을 알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서 좋은 땅을 차지합니다. 롯이 눈을 들어보니 소돔과 고모라 성이 에덴동산처럼 좋게 보였습니다. 그는 그 좋은 땅을 삼촌에게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가 차지합니다. 아브라함은 섭섭했겠지만 좋은 땅을 롯에게 주고 좋지 않은 땅으로 갑니다. 
아브라함이 인간적으로 섭섭했겠지만 양보한 것이 복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지고 나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눈을 들어 사방을 보게 하고 보이는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이 자식처럼 여겼던 롯과 헤어져서 마음이 슬펐는데 땅의 티끌과 같은 자식을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셨습니다. 

반면에 삼촌을 섭섭하게 하고 좋은 땅을 차지한 롯은 어떻습니까? 그는 에덴동산처럼 좋게 보이는 소돔성에 가서 거하면서 세상적인 성공을 추구합니다. 1절에 보면 그가 천사들이 방문하는 시간에 성문에 앉아있었습니다. 성문에 앉는 것은 아무나 앉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는 그 지역의 장로들이 성문에 앉았고 성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재판할 때 성문에서 했습니다. 그러니 롯은 이미 그 성의 장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자리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다가 부자가 되었고 아브라함과 헤어진 후에는 소돔 성에서 장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그가 얻었던 명성도 그가 얻었던 부귀도 한 순간에 사라져버립니다. 
먼저 그의 명성이 물거품인 것을 말씀합니다. 9절에 보면 그 지역의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서 천사들을 내놓을 것을 요구합니다.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롯이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하자 사람들이 “이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라고 말하고 롯을 밀치고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 롯은 지금까지 성문에 앉는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자기 자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또 그는 자기를 길러준 삼촌에게 상처를 주고 좋은 땅을 선택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는 많은 재산을 모으고 물질적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소돔성이 유황불에 멸망하면서 그동안 롯이 모았던 재산이 다 불에 타 없어지고 맙니다. 결국 그는 거지가 되어 딸들과 굴에서 거주하게 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잘 보이고 이 세상 넘어에 있는 영원한 세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육신적인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따라 춤을 추기도하고 슬피 울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은 잠간이고 이 세상 넘어 있는 내세가 중요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돈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링컨이 변호사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큰 사건을 의뢰하면서 해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링컨이 말했습니다. “나 이거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맡을 수 없습니다. 변론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하는 말이 “이것만 해결하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거절합니까?” 링컨이 대답합니다. “평생 먹을 돈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먹여 주십니다.” 

여러분 내 평생 먹을 것 하나님이 먹여 주십니다. 돈, 명예, 권력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물질이 커 보이고, 명예가 커 보이고, 권력이 커 보이지만 그것들 보다 구원이 더 크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더 큰 것입니다. 
2. 대접하는 것이 복입니다(1-3절).
보통 사람들은 대접을 받기는 원해도 대접하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남을 섬기는 것은 자존심 상해하고 섬기는 자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남을 섬기고 대접하는 것이 오히려 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7:12에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말씀하셨고, 마 20:26-28에서는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이 성문에 앉아있을 때에 두 천사가 성문에 이릅니다. 이 두 천사는 날개를 달고 눈부신 광채를 입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으로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성문에 앉아있던 롯이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서 절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라고 말합니다. 천사들이 거절하자 롯은 그들을 강권해서 집으로 모시고 대접을 합니다. 우리 생각에는 롯의 이런 행동이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다 집으로 모셔서 대접하면 살림 거덜나겠지요. 그러나 그 당시의 상황은 우리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양을 치던 베두인들에게는 손님을 잘 대접하는 좋은 풍습이 있었습니다.  

히 13:2에 보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이 롯에 관한 말씀입니다. 롯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여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고, 소돔이 유황불로 멸망할 때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창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세 사람을 대접했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은 하나님이셨고, 둘은 천사였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는 종종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주님 대하듯이 그리고 천사를 대하듯이 잘 대접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종을 잘 대접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 10:40-42에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 같은 사람들에게도 주님 대하듯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원수 같은 그 사람을 통해서 나를 테스트 하실 수도 있습니다. 

<대지>의 작가로 유명한 펄 벅 여사 이야기입니다. 펄 벅의 부모님은 중국선교사였습니다. 그 때는 서양인이 중국에 거의 없을 때였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다른 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집에는 어머니와 세 자녀가 있었습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온 동네 사람들은 굶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중국인 남자 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는 원인이 있다. 서양인들이 우리 땅에 들어 와서 땅이 부정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밤 선교사 가족을 죽이자. 

그리고 신에게 바치자. 그러면 가뭄이 끝날 것이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없으니 도망을 갈 수도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죽이러 오는 이들을 대접하여라.” 어머니는 평소보다 일찍 아이들을 재우고 창가에 앉아 바느질을 하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정쯤 되자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는 가정부에게 차와 케이크를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하듯 문을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열린 문으로 그들이 당당하게 들어 왔습니다. 그는 자고 있던 아이들을 깨워 옷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죽이려고 온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어서 들어와서 함께 차와 다과를 나눕시다. 맛있게 드세요. 준비하여 놓았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놀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인 한 명이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섭지 않소?”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이웃에 사는 여러분을 무서워할 이유가 있을까요?” 어머니는 오르간 앞에 앉아 중국말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 찬송이 끝날 때까지 방안은 조용해졌습니다. 그 곳에 모인 중국인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멋쩍어하였습니다. 조금 후 하나 둘 밖으로 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의자에 주저앉아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원수를 악으로 갚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으로 대접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3. 가까운 사람부터 전도하십시오(12-14절).

롯이 천사들을 잘 대접하고 있는데 소돔성의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롯의 집을 에워쌉니다. 그리고 롯의 집에 들어온 사람들을 요구합니다. 그들과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관한다는 말은 성적인 관계를 갖겠다는 말인데 천사들이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동성연애를 하겠다는 말입니다. 놀란 롯이 소돔성 백성들에게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그들은 롯을 밀치고 집의 문을 부수려고 합니다. 그 때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서 롯을 집 안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만듭니다. 

그리고 천사들은 롯에게 “소돔성이 멸망할 것이다. 네게 속한 자가 있느냐. 사위나 자녀나 성 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롯은 즉시 사위들의 집으로 달려가서 사위들에게 이 사실을 전합니다. 안타깝게도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깁니다. 동틀 때가 되어 천사들이 롯을 재촉하니 롯이 일어나서 아내와 두 딸을 이끌고 그 성에서 도망쳐 나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지상에서 이뤄지는 ‘예비 심판’입니다. 일종의 중간 결산 같은 겁니다. 그리고 종말의 때에 이뤄질 ‘최후 심판’이 있습니다. 예비 심판은 최후 심판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은 예비 심판을 통해서 최후 심판이 어떠할 것을 보여주십니다. 소돔성이 받은 심판은 당연히 예비 심판입니다. 그런데 그 심도가 처절하여 마치 최후의 심판의 예고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롯이 사위들에게 소돔의 멸망을 알린 것은 전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롯은 자기에게 속한 자들 즉 아내와 딸과 사위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그곳에서 나갈 것을 권면 했던 것처럼 우리들은 세상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에게 속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롯의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장인어른, 이 밤중에 왜 이러십니까? 정신 차리세요. 농담하지 마세요” 하고는 장인을 돌려보냈습니다. 결국 장인의 권면을 농담으로 여겼던 사위들은 소돔성이 멸망할 때 함께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전도가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받아드리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시고 거절하는 사람은 멸망을 받을 것입니다. 고전 1:21에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 하셨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불신자의 눈으로 볼 때 전도하는 것이 미련한 짓거리를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 방법으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가장 큰 사랑의 실천을 하는 것입니다. 롯이 그 상황에서 사위들에게 집을 사주고, 치를 사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곧 멸망할 것인데 말입니다. 그 상황에서 가장 큰 사랑은 멸망의 소식을 알리고 그 성에서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로하고 물질로 돕고 힘과 용기를 주는 것도 사랑의 실천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도록 전도하는 것만큼 중요하고 큰 사랑은 없는 것입니다. 

해피데이 1115에 우리 성도들이 483명의 영혼을 작정했습니다. 그분들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교회에서 나눠드린 1차,2차,3차 선물을 가지고 그분들을 찾아가십시오. 가셔서 사랑으로 섬기고, 영향주고, 교회로 모시고 오십시오.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는 길은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롯과 롯의 딸들은 소돔성이 유황불로 불탈 때 두고 온 사위와 남편 때문에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습니까? 우리가 구원을 얻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갔는데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전도합시다. 내게 속한 사람들에게 먼저 전도합시다. 

4. 뒤를 돌아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26절).

천사들은 롯을 소돔성에서 내보내면서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을 가라고 했습니다. 롯은 산으로 도망가기는 너무 힘들다고 생각을 했는지 소알이라는 가까운 성으로 도망가고 싶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롯의 청을 듣고 그렇게 하도록 허락합니다. 그러나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26절에 보니 롯의 아내가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됩니다. 

롯의 아내는 소돔성을 급히 빠져나오느라고 아무 것도 챙기지 못했습니다. 집에는 평소에 아끼던 물건도 가득하고 재물도 가득했습니다. 또 많은 양떼와 소떼들을 두고 온 것이 너무나 속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롯의 아내는 천사들의 말을 어기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소금 기둥이 됩니다. 
주님은 눅 9:62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어려운 길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만만한 것만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위해서 대신고난 당하셨지만 우리가 당해야 하는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만족하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늘 성령충만 하지만은 안습니다. 밧데리가 방전 되듯이 은혜가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은혜의 힘으로 하는 것인데 은혜가 떨어지면 그 때부터 만족이 사라지고 만족이 사라지면 행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믿기 전에 육신이 즐거웠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믿기 전에 육신적인 만족에 빠졌던 때를 그리워하거나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육신의 만족을 사모한다면 그것이 바로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집착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롯의 아내가 지은 죄가 뭐 그리 큰 죄입니까? 소돔에서 나오면서 뒤를 돌아봤을 뿐입니다. 소돔성으로 돌아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뒤를 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세상으로 간 것도 아니고 세상을 잠시 그리워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죄라는 사실입니다. 앞만 보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만 바라보십시오. 

사람은 앞을 보고 살라고 눈이 앞에 있습니다. 뒤로 걷는 것보다 앞으로 걷는 게 편하게 되었습니다. 자동차나 고속전철을 타도 뒤로 가면 매우 피곤합니다. 사람은 앞을 보고 살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뒤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항상 어제를 생각하고 사는 게 아니라 미래를 즉 앞을 생각하고 뛰고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는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에 빠져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복 받고 잘되는 것만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준비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콘웰 박사는 성공한 사람은 삶을 출발할 때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뛰었으며, 다음은 마음에 열화 같은 소원을 가지고 있었으며, 셋째는 그들은 뒤로 물러서지 않는 굳은 결의의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흘러간 물로는 역사의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잘한 것이 많다고 해도 뒤를 바라보면 비극입니다. 잘못했어도 뒤만 바라보지 아니하면 되는 것입니다. 앞을 바라봅시다. 미래를 보고 달려갑시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5. 중보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29절). 

29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소돔을 멸망시키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롯을 그 엎으시던 소돔성에서 내보내셨습니다. 
롯은 몰랐지만 창 18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롯이 거하는 소돔성의 멸망에 관한 말씀을 들은 후에 하나님에게 기도로 나아갔었습니다. 창 18:22-32까지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지는 않으시죠? 소돔에 의인 50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내가 만일 소돔 성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그 지역을 용서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조금만 잘못해도 개독교라고 하면서 비난을 합니다. 물론 기독교인들 중에도 상식 이하의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많다보니 실수하는 사람들도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것이 이 나라를 심판으로부터 보호하는 길입니다. 이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믿음으로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정말 신실한 신앙인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잘하는 것 만한 애국도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인 오십을 놓고 기도했지만 소돔성을 생각하니 안심이 안 됩니다. 그래서 5명을 깎아서 의인 45인을 놓고 기도합니다. 그래도 불안하니 의인 40명을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40인도 불안했던지 30명, 20명,10명까지 깎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 성에 의인 10명 정도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를 멈춥니다. 그런데 소돔성에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결국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소돔의 멸망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브라함을 생각하셔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부족해도 기도하는 우리를 생각하셔서 응답해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년초에 끝냈던 40일 금식 기도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기적입니다. 이번 주에 저녁 금식을 하면서 더욱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40일 동안 걸어 다니고, 주일마다 우리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37-39일째에도 부흥회를 인도하고, 마지막 날은 저녁에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집까지 걸어갔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40일 금식을 그렇게 힘 있게 하는 경우를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여러분의 중보기도 때문입니다. 다른 분들도 40일 금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 40일 금식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남 다른 힘이 넘쳤던 것은 남다른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철야하며 금식하며 기도로 도왔던 여러분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브라함이 롯을 위해서 기도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기도도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가족, 친척, 친구, 이웃을 위하여 비는 기도가 헛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기도하시기를 합니다.

해피데이1115를 앞두고 2주간 금식기도 중에 있습니다. 또 다음 주부터는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에 동참해 주십시오. 한 사람의 간절한 기도도 응답이 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더 강력한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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