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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는 그 주인을 안다 (사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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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는 그 주인을 안다 (사 1:1~3)

    
설교내용  
     
소는 그 임자를 알고 하는 말씀이 오늘 성경에 있어요. 여기에 두 가지 뜻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주인이 소를 사랑한다는 이야기지요. 소는 주인의 은혜를 먹고 산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주인의 은혜를 먹고 사는 소도 주인의 은혜를 안다는 것입니다. 주인의 은혜를 고마와한다. 는 것이지요. 짐승은 이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알아봅니다. 발소리만 듣고도 주인의 오는 것을 알고 꼬리를 흔들고 소리를 지릅니다. 

하나님은 소와 나귀를 들어 이성이 없는 짐승도 주인을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식으로 삼아 온갖 사랑으로 양육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특별하게 잘나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고 보잘 것 없어서 택한 것이지요. 하나님의 백성을 삼은 뒤로 얼마나 애정을 갖고 양육하였는지, 핏덩이 같은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내는 동안 어떻게 사랑을 베푸셨는지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80노부부와 소의이야기지요. 소의 수명은 15년이라는데 40년을 살았어요. 어떻게 자기수명의 배도 더되는 세월을 살았을까? 주인의 가슴에 담겨 있는 소에 대한 사랑이지요. 주인의 은혜를 입고 그렇게 40년을 살았지요. 소가 나이 들고 힘이 없어지니까? 주인은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난리입니다. 늙었다, 일 못한다, 팔아버려라, 주변의 등살에 못 이겨 노인이 소를 팔러 우시장에 가지요. 

사람들이 와서 묻습니다. 얼마에 팔겠느냐? 500만원 80만원에도 살뚱 말뚱 하는데 500만원 어느 분이 노인이 딱해서 100만원수표를 주면서 팔고 가라하는데 이 소가 어떤 소인데 그렇게는 못 판다. 그래서 소를 못 팔고 그냥 돌아오지요. 소가 기진해서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노인은 코뚜레를 잘라 풀어주고 소에게 씌웠던 망도 다 풀어 주고 자유를 주지요 그리고 소는 잠자듯 세상을 떠나고 노인은 소를 밭 한편에 정성을 드려 묻고 무덤을 만들어 주지요. 40년 함께한 삶이 아름답게 마감하는 순간입니다. 

몇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벌써 죽었어야 할 우리들이지만 누구의 은혜를 먹고 사느냐?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살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은 우리를 귀하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이 눈에는 병든 소요 일도 못하는 소요 늙은 소이지만 주인의 눈에는 귀한 소입니다. 다른 사람은 60만원 80만원짜리소이지만 주인의 눈에는 500만원짜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들의 눈에는 여러분이 별 볼일도 없고, 생긴 것도, 그렇고 재능도 없고, 공부도못하고, 일도 못하고, 뭐 이것, 저것 부족한 것이 많다 하고 비난하고 손가락질 하고 한다, 해도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합니다. 독생자를 내 주면서까지 자녀로 삼고 싶은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끝까지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소는 자기할 일을 다 하고 죽었습니다. 코뚜레도 풀리고 묽인 모든 끈도 풀렸습니다. 자유입니다. 우리도 우리 할 일을 다 마치고 주님 앞에 설 때 참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예비하신 영광의 면류관을 모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경북매일신문칼럼2009,1,9,일자에 “소는 그 임자를 안다“ 해서 실린 글이 있는데 간단하게 요약해서 소개 해 보겠습니다. 

올해는 소의 해이다. 옛날에는 소에 대한 대접이 융숭했다. 소는 우선 힘이 세다. 먹기도 많이 먹는다. 그리고 먹고 난 다음에는 인간의 5, 6배나 되는 힘을 쓴다. 우리 조상들은 사람은 굶어도 절대로 소는 굶기지 않았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아침 일찍 들에 나가 소가 좋아하는 풀을 베어다가 소부터 먹이고 밥을 먹었다. 이글에서 소를 가진 주인이 소를 얼마나 극진히 돌보았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소의 특징은 첫째로 동양의 문화에서 '소'는 종교적 의미를 띠고 있다. 인도에서는 소가 또 하나의 신이다. 소는 원래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을 뜻한다. 

둘째 소는 부의 상징이다. 옛날부터 소는 농경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농사 도구였다. 그래서 소는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소 한 마리가 있으면 부자였다. 소를 가지고 자녀들 대학공부를 시켰다. 그래서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부른다. 소는 집안을 지탱해주는 큰 자산이었다. 

세째 소는 그 임자를 안다. 소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 예로부터 소는 무거운 짐을 나르고, 논밭을 갈며, 사람을 대신해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다가 죽은 뒤에는 고기와 가죽까지도 모든 걸 제공한다. 주인으로부터 사랑받은 소는 주인에게 충성과 헌신으로 보답한다. 이리 가자면 이리 가고 저리 가자면 저리 간다. 

네째 소는 자기 자리를 잘 지킨다. 소는 항상 외양간에 매여 있다. 자기 마음대로 다니지 않는다. 논과 밭에 일하지 않으면 외양간에서 집을 지킨다. 소는 믿음직하다. 소의 해를 맞이하면서 ‘인간의 본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 사람의 가치가 물질이나 경제보다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경북 상주에는 자기를 돌봐준 이웃집 할머니 묘소에 찾아가 눈물을 글썽인 의로운 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소는 2km 넘는 산길을 따라 할머니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또 그 소는 돌아오면서 돌아가신 할머니 집에까지 찾아가 문상하다시피 한참을 서 있다가 자기 마구간으로 돌아 왔다고 합니다. 그 후 그 의로운 소가 병이 들어 죽으려 하자 소 주인이 자기를 돌봐준 할머니 영정을 갖다 줬더니 쓰러져서 힘이 없는 와중에도 혓바닥으로 핥으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이럴 때 쓰는 말, 소가 사람보다 났다 그러지요

오늘 성경은 그래서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말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은혜를 끼쳐준 사람들을 압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은혜를 잊고 삽니다. 은혜를 모르고 삽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의 침략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불레셋과는 늘 전쟁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이기기도 했지만 지는 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전쟁터에 하나님의 법궤를 가지고 나갑니다. 그러면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지없이 깨지고 맙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은 알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전쟁에서 지는 것은 병사가 모자라서도 아니요. 무기가 시원찮아서도 아니요.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헸습니다. 그들이 성공 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이사야는 그 이유를 한마디로 표현합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안다. 바로 그거예요 소는 그 임자를 아는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을 모른다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른다. 는 거지요. 은혜를 모르고 사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살겠습니까? 하나님이 떠났는데 법궤만 가지고 간다고 승리 하겠습니까? 마치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모르면서 교회만 나오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그래서 망합니다. 은혜를 모르기 때문에 망합니다.

법궤를 빼앗기잖아요. 이게 비극이지요.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엘리의 아들 흡니와 비느하스가 전쟁에서 죽고 법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제사장 엘리는 의자에서 자빠져 죽고 며느리가 이 소식을 듣고 해산하다가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죽었어요. 소는 그 임자를 알건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것이 죄입니다. 불레셋은 대 승리를 거두고 법궤까지 빼앗았으니 의기양양합니다. 

자기들이 승리한 것이고 자기신이 승리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어리석은 사람들이지요. 하나님을 모르는 거예요. 하나님의 법궤를 자기들의 신전 다곤 신당 곁에 두지요. 이튿날 다곤 신상이 하나님의 궤 앞에 업드려져 있어요. 그래서 불레셋 사람들이 일으켜 세워놓았는데 그 이튿날 보니 또 그 모양인데 이제는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고 몸뚱이만 남았어요. 이일을 시작으로 법궤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죽고 재앙이 그치질 않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새 수레를 만들고 멍에 메어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소에 메우고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보냅니다. 이제 소들이 궤가 있던 그곳으로 가면 이 재앙은 여호와에게서 비롯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재앙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하고 보내는데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까지 따라 갑니다(사무엘상 6장 12절) 

젖이 퉁퉁 불은 암소가 새끼 생각이 왜 안 나겠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사로운 모든 정을 뒤로하고 묵묵히 걸어갑니다. 저는 어릴 때, 소를 끌고 다니며 풀을 뜯긴 적이 있습니다. 송아지가 있는 어미 소는 잠시만 송아지가 보이지 않아도 '음메' 하고 송아지를 부르며 찾습니다. 그 생각을 해보면 이 어미 소가 자기 길을 가지만 송아지 생각에 흐르는 눈물과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물고 갔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미물인 소도 주인의 뜻을 알고 삽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이사야 1장 2-3절) 

그이유가 뭐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타락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이사야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상했다고 말씀하십니다(6절)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겁니다. 전적으로 타락했다는 것은 스스로 살아날 가망이 없을 때 사용하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술로 세월을 살다가 간 경화에 걸렸는데 회복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간 외에는 다리도 멀쩡하고 손도 멀쩡하고 등도 멀쩡하고 어깨도 튼튼합니다. 모든 부분이 건강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건강한 사람입니까? 아니지요 이 사람은 간 때문에 죽습니다. 모든 지체가 죽습니다. 

죄가 그렇습니다. 내 마음속에 품은 죄 하나가 내 생명을 죽이고 내 영혼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적으로 타락했다. 머리부터 발바닥까지 상했다 하시는 것입니다. 간이 죽으면 다 죽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삽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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