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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시로 막으며 담을 쌓아 (호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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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시로 막으며 담을 쌓아 (Blocking Her Path with Thorn Bushes)
성경 : 호 2:2-7

“너희 어머니와 논쟁하고 논쟁하라 그는 내 아내가 아니요 나는 그의 남편이 아니라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 나던 날과 같게 할 것이요 그로 광야 같이 되게 하며 마른 땅 같이 되게 하여 목말라 죽게 할 것이며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계획하시고 섭리하시며 진행해 오신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 안에는 무수한 상징(symbol)과 이미지(image)가 사용되고 있어서 하나님의 신령한 가르침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을 넓혀줍니다.
  
아내와 남편의 이미지는 양과 목자의 이미지와 함께 선민 이스라엘과 여호와 하나님의 관계를 상징하는 구약의 양대 이미지입니다. 호세아서는 선지자 호세아가 실제 결혼 생활을 통하여 직접적, 개인적으로 체험한 삶을 기반으로 삼아 예언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호세아의 메시지는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처절한 삶의 체험에 바탕을 둔 살아있는 한 영혼의 간증이자 권면이기도 합니다.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치세 말기에서 왕국의 멸망 직전까지(B.C.755-723) 사이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그의 바로 앞에 활동했던 아모스 선지자(B.C.793-750)가 주로 사회 정의의 오염과 여호와의 공의의 상실에 집중하여 이스라엘의 타락 양상을 지적한 반면에,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등 영적 종교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백성의 범죄를 지적하는 자세에 있어서도 아모스는 형식적 선민의식에 빠진 백성을 향한 질타와 준엄한 심판을 객관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반면에, 호세아는 백성의 죄악상을 열거하면서도 그들을 향한 간곡한 각성의 촉구와 부성애적 회개의 권면에 보다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흔히 아모스를 공의(The Justice)의 선지자라고 부르고 호세아는 사랑(The Love)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특히 호세아는 율법적 공의가 보다 중시되던 구약시대에 신약시대의 복음적 사랑에 가장 근접한 메시지를 전한 구약 선지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음란한 여인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고멜은 급기야 남편을 배신하고 다른 남자를 따라 가정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나가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호세아를 향하여 아내를 용서하고 가정을 유지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아내를 용서한 그의 살아있는 체험 위에서 여호와께 배신을 자행한 선민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심판 경고와 회개 촉구, 그리고 나아가서는 용서와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음란한 아내 고멜을 빗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법정의 재판 형식을 빌어 피고소인인 이스라엘을 정죄하십니다. 어머니로 비유되는 북이스라엘은 나라 전체를 지칭하는 것이고, 그 자녀들은 개개인으로서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호세아가 아내로 맞아들인 고멜이 부정한 짓을 저질렀던 것처럼 여호와께서 언약 체결을 통해 아내로 선택한 북이스라엘은 여호와를 배반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본남편인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김으로써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그로 인해 여호와 하나님을 격노케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지적하고 그 죄에 대한 형벌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정죄와 심판의 법정이 여호와께서 아내 이스라엘과 이혼을 목적으로 하여 열리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화해와 재결합을 목적으로 열리는 법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위협적인 구절 속에 하나님의 자비가 빛나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완고한 죄인들을 돌이키게 하려고 애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시로 막으며 담을 쌓아 우리를 고치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발견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이스라엘의 고치기 어려운 음행 (적용적해석: 죄인들의 완고한 성품)
  2절= “...그가 그의 얼굴에서 음란을 제하게 하고 그 유방 사이에서 음행을 제하게 하라”

구약의 선지서들에서 일관하여 지적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음행을 저질러 왔다는 것입니다. 여기 음란, 음행은 우상 숭배와 성적 음행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원문에는 모두 복수로 되어 있는데, 문자적으로는 ‘그녀의 음란한 것들’과 ‘그녀의 간음의 행위들’ 이라는 의미입니다. 복수형은 음란과 음행의 정도가 매우 심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문란한 성생활은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오늘 죄인들의 성품이 너무 완고하여 고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인들의 완고한 성품은 마치 이스라엘이 그 음행을 고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과 같습니다.
  북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민족 구성원인 이스라엘 자손 개개인까지 타락한 삶에 빠져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탄식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4절= “내가 그의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자식들임이니라.”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악을 행하는 자를 결코 용납지 않으십니다. 호세아 선지자 시대의 선민의 자손들은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우상숭배 문화 가운데서 태어난 세대로서, 그 기존 문화를 통해 탐욕과 부도덕과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더 이상 당신의 자녀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나의 자녀’ 라 부르지 않고 ‘그의 자녀’(문자적으로는 ‘빠네하=그녀의 아들들’) 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와 고멜 사이에 태어난 딸을 ‘로루하마’(=긍휼하심을 전혀 얻지 못한 자, 1:6) 라 칭하셨던 것처럼 온갖 범죄와 우상 숭배에 찌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 이상 당신의 자녀라 칭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타락한 모습을 살펴보며 죄인들의 성품이 얼마나 완고한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어머니는 음행하였고 그들을 임신했던 자는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나니 이는 그가 이르기를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니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백성들은 어머니 북이스라엘에 의해 잉태되어 그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음란한 우상숭배의 죄악을 듣고 보고 배우면서 태어난 불행한 자들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그 자녀들을 음란한 가운데 잉태하여 마치 자녀들이 다산(多産)의 신으로 추앙되는 바알의 축복 결과라 생각하고, 그 민족이 누리는 각종 경제적 축복이 바알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되는 극악한 죄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리라.”  이것은 북이스라엘이 바알신을 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왜 이처럼 나라 전체가 바알을 사랑하고 바알을 따르고자 했습니까?  그것은 거짓에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본문에는 바알을 통해 거저 받는 것으로 나열된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 “그들이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내 술들을 내게 준다 하였음이라.”  
  
떡과 물은 건강에 필요한 기본 식품이고 양털과 삼은 의복을 위한 재료이며, 기름과 술들은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사치스러운 물품들입니다.  
  사실상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들인데(신 8:18), 그들은 그 모든 것들을 바알로부터 받는다고 주장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그 이름을 모욕하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어찌 과거 이스라엘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죄인들의 완고한 성품은 여전합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져왔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교회로 모이는 사람들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세상의 유혹속으로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세상 백성과 하나님의 선민의 구별이 쉽지 않은 때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양심의 담장을 뛰어 넘고 전통의 철조망을 가로질러 사랑하는 죄악으로 달음질하려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외에는 죄인들의 완고한 마음을 정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간섭하셔야만 합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의 은혜에 기대어 우리의 고집센 성품을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2.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으로 막으심 (적용적해석: 고난과 장애물, 하나님의 개선방법)
  
6절=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여기 ‘그러므로’란 접속사 속에는 범죄한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물씬 풍겨나고 있습니다. 본절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방법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으로 막으신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과 장애물을 통해 혹독한 징계를 주심으로 그들을 돌이키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문자적으로는 ‘가시들로 네 길을 속박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 속에는 이스라엘은 주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완악한 짐승과도 같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본서 4:16에서는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 8:9에서는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시들로 그들의 길을 막으실 작정이었고, 이것은 그들이 쓰라린 아픔을 통하여 돌아서게 될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문자적으로 ‘그리고 내가 그녀의 담을 가로막아 그녀가 자신의 길들을 찾지 못하게 할 것이다’ 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이 바알을 좇아 추구하는 것을 결코 이루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그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의 가는 길에 효력 있는 장애물을 두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과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바알이 아닌 하나님 당신 자신을 찾아 바른 길로 행하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오늘 영적 이스라엘로 부름받은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자 소망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는 ‘길을 막는 가시들’ 과 ‘길을 찾지 못하게 하는 담’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모습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 사랑하는 자를 따라갈지라도 미치지 못하며 그들을 찾을지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좇지 않고 바알을 좇아 그 우상으로부터 행복을 얻고자 노력하지만 원하는 바를 성취하지 못하고, 또한 바알은 이스라엘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무능한 자임이 명백히 드러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으로서, 그들이 아무리 정성을 들여 바알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려도 그들이 기대한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나타낸 것입니다. 
  
여기서 ‘바알’ 대신에 현대인들이 의지하는 것들을 대치시켜 보십시오. 그것이 ‘돈’ 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결과는 동일합니다. 주 예수님을 찾는 자는 생명과 풍성함을 얻어 누릴 것이지만(요 10:10, 대하 15:2), 생명 없는 것들을 찾는 자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결국 패망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은 혹독한 징계는 우리의 신앙생활 초기에 대단히 유용하게 자주 사용됩니다. 이것은 많은 열매를 얻기 위해 씨뿌리기 전에 묵은 땅을 힘들여 정성스럽게 기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징계의 손길을 차라리 달게 받으며,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그 섭리에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3. 하나님께로 돌아가리라 함 (적용적해석: 축복된 결과)
  
7절= “그제야 그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

북이스라엘은 복을 얻기 위해 바알을 좇아 온갖 희생과 헌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 우상으로부터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습니다. 본절은 ‘그제야’ 과거 여호와를 섬기던 때가 바알을 섬기는 현재보다 훨씬 더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본 남편’ 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라고 다짐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자기 백성들을 ‘가시로 막고 담을 쌓아’ 고치신 결과 그들에게 축복이 찾아오는 모습입니다. 

  어떤 사람이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는 “나는 당신 몸에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라고 진단 소견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그러나 나는 매우 괴롭습니다. 분명히 무언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의사는 “당신은 최근 생활에서 큰 잘못을 범한 일은 없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매우 화가 나서 말하기를 “나는 건강 진단을 받으려왔지 설교를 들으려고 오지 않았소. 내 돈을 돌려주시오.” 하면서 진찰실 문을 쾅 닫고 나갔습니다. 
  
두 주일 후 그가 뉘우치는 태도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는 의사에게 “의사 선생님 두 주일 전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나는 내 형이 가진 거액의 돈을 속여 빼앗았습니다. 지금 나는 잠을 이루지도,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요. 만일 당신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당신에게 처방을 내려 주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의사는 그 사람에게 종이 한 장을 쥐어 주면서 “먼저 당신 형에게 모든 것을 고백하는 글을 쓰시오” 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고백하는 글을 썼습니다. 의사는 “이제 수표를 끊어 그 고백문과 함께 봉투에 넣고 봉하십시오.”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이제 우체국에 가서 그 편지를 부칩시다.” 의사는 그 사람과 함께 가서 고백문과 수표를 우송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는 “의사 선생님, 가장 무거운 짐이 우체통에 떨어져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이제 짐을 벗었습니다.”고 했습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신은 형님과 올바를 관계를 회복했으나 이제 내 진찰실로 돌아가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합시다.”  두 사람은 진찰실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마음에 평안이 넘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보다 더 선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축복은 오직 주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복된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과거 처음 은혜받고 순수하게 주님만을 섬길 때의 내 삶이 지금 세속과 어울려 방황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된 삶이었음을 깨닫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들은 굳게 결심합니다.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라.” 내게 은혜주시고, 나를 구원의 자리로 이끄신 주님께로 다시 돌아가 주님의 사랑을 회복할 것을 굳게 결심하며 주님께로 나아옵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깨달음과 뉘우침,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결심은 눅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경우와 거의 흡사합니다. 부유한 아버지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다가 그 삶에 싫증이 난 둘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많은 재산을 받아 먼 나라에 가 자신의 세속적 욕망을 다 채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굶어죽게 되었을 때에 그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7).

북이스라엘의 깨달음과 탕자의 깨달음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물든 모든 인류가 진정으로 깨달아야 할 소중한 진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밖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 누리고자 애쓰지만 주님과 연합할 때 누리게 되는 참 행복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참 행복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잠 28: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몇년 전 타임지에 세계적인 전도자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와 그 아들 프랭클린(Frankline Graham)에 대한 기사가 커버스토리로 다뤄졌습니다. 제목은 [돌아온 탕자] 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그 사모님은 얼마나 훌륭한 분들입니까? 그런데 그 큰아들은 열두 살 때부터 스물 두 살 때까지 완전히 곁길로 탈선하였었습니다. 독한 위스키 마시기를 좋아하고, 총 쏘는 것 좋아하고, 오토바이 폭주족에 완전히 비행 청소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예루살렘 한 호텔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내가 이렇게 살수는 없지. 나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뛰쳐나왔지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하는 생각이 계속 되살아났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호텔 방안에 있는 기드온 협회의 성경을 펼쳤는데, 로마서 8장1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 말씀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아, 하나님은 나 같은 사람도 용서하시는구나” 하는 마음에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 아버지 빌리 그래함의 후계자가 되어 전 세계를 순회하는 복음 전도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부산 해운대에서 20만명 이상 모였던 대부흥집회도 그가 이끄는 전도단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탕자의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지, 놀랍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크게 쓰십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의 면모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패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고 실패한 후에야 뒤늦게 깨닫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추구하다 성공하지 못하고 쓰디쓴 실패를 경험한 후에야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 물론 뒤늦게라도 주님을 찾는다면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아예 죄악 된 삶을 끝내 고집하며 하나님과 철저히 담을 쌓고 교회와도 철저히 담을 쌓는 완악한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복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되도록 그들이 하나님 안에 거하며 말씀 안에 거하여 주님과 더불어 지속적으로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주님이 여러분의 길을 가시로 막으시고 담을 쌓아 길을 찾지 못하게 하시던 경험은 없으십니까?  주님이 주시는 아픈 고난과 해결할 수 없는 장애에 막혀 울어본 적은 없으십니까?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굳은 결심으로 첫사랑을 회복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내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라고 두 주먹 불끈 쥐고 돌아서던 탕자의 경험은 없으십니까? 

  우리 모두는 이스라엘의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처음부터 은혜 안에 거하며 순종의 삶 안에 거하여서 참된 복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순오목사, 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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