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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붙드소서 (시 119:116~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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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붙드소서 (시 119:116~117)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도 “주님이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몸은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꼭잡고 날인도 하소서” 라고 부르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약하고 피곤한 자신의 생애를 주님께서 붙잡아 인도해주기를 바라는 기도의 내용에 곡을 붙힌 것입니다. 

아마 이 찬양을 부르면서 공감하지 않는 분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 모든 인생이 다 이와 비슷한 형편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 힘들고 피곤하고 연약합니다. 이러한 우리 인생길에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내 손을 꼭 잡고 동행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시간 이 예배시간에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여러분의 손목을 잡고 가는 축복이 있기는 바랍니다. 본문에서도 자신의 곤고한 인생을 주님이 붙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기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니까 “나를 붙드소서” 라는 기도문이 두 번 반복되어 나오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무엇 때문에 자신을 붙들어 달라고 간절히 반복적으로 간구 하고 있을 까요?

1. 연약한 인간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시편 기자는 그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에게 어떤 연약함이 있습니까? 

첫째로 살고 죽는 것 인간 마음대로 못합니다. 
둘째로 화나 복도 마음대로 못합니다. 
셋째로 죄에 문제에 대하여 유한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씻을 수도 없고 그 죄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죄에 관한한 인간은 정복되었고 무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넷째로 늙고 병듦에 있어서 유한합니다. 

현대 의학의 발달로 상당히 많은 질병들이 퇴치되고 있지만 그러나 아직도 인간은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병에 걸려있고 그 병으로 고생하며 결국 병을 안고 죽어갑니다. 
다섯째 능력에 있어서 연약하고 무능한 존재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한계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의 한계에 도달할 때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일곱로 번째 시간에 대하여 유한합니다. 
인간은 적어도 시간에 대하여 완전한 소경입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정지시키거나 뒤로 돌릴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1분 후의 앞 일도 미리 알 수 없고 그렇다고 뒤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그 자리에 정지시키고 머물러 있을 수는 더더욱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가만히 있어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그것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에게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사업은 잘 될 것인지, 직장 생활은 순탄할 것인지, 건강이 유지될 것인지 자녀가 잘 성장해 줄 것인지 등에 대해 염려, 근심,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인간 누구나가 갖는 보편적인 감정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한성 때문에 겪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내 손을 잡고 가신 다면 문제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 중에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한상 지키시기로 약속한 말씀 변치않네”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붙들어 주신다면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계에 부딪힐 때에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붙들어 주소서 라고 말입니다. 

2. 붙들어 주소서 

우리가 주님께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시편 기자는 116절에서 “주의 말씀대로”라고 그 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이미 붙들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 대로” 또는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로 라고 풀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험한 인생길 걸어가는 성도에게 함께하여 붙들어 주실 것을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붙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있어서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 약속하신 대로 성도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붙들어 주실까요?
첫째 마음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마음이 견고하면 어떤 환난이나 고난 앞에서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약해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주님 내 마음을 견고하게 믿음에설수있도록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둘째 생명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질병과 사고로 생명의 위협받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생명이 위험을 느끼는 상황에서 붙들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환경을 붙들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 혼자 몸부림 쳐도 안됩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따라주지 않으면 나의 노력과 수고가 헛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의 환경을 붙잡아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3. 어떤 사람을 붙들어 주시는가?

어떤 사람을 붙들어 주실까요? 성경에서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다고 약속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1) 겸손한자입니다. 
시147: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 도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겸손은 말로 하지 않습니다. 눈물과 봉사의 순종으로 합니다. 
존 맥아더가 쓴 교회의 해부학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가 되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순종하는 종이 될 사람들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힘 안들이고 자신의 노를 저으면서 다른 모든 사람의 노를 방해하는 현명한 새 방법을 고안해 내는 사람을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자발적인 종으로 보는, 충실한 노젖는 사람을 원하신다. 종은 비난도 받고, 칭찬도 받고, 평가도 받고, 축복도 듣고, 욕도 들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하는 방법으로 봉사하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판단하시는 이는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배의 맨 밑에서 노를 젓는 노예로 부르셨다. 우리는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평가를 내리려고 노력하거나 우리 자신을 좋게 평가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겸손으로 주님을 섬겨야 한다. 겸손과 봉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겸손하지 못하다면 당신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며,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겸손하지 못한 사람이다. 사랑과 겸손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다면 당신은 종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종의 마음을 가진 즉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를 붙드시고 쓰십니다. 그리고 축복해 주십니다. 

2) 지치고 곤고한 자 
시41:3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시145:14 여호와께서는 모든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는 도다.
쇠약한 병상은 병상 자체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오래동안 병상에서 고생하고 있는 병마에 지칠대로 지친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힘이 있을 때는 넘어져도 창피하니까 얼른 일어서서 툭툭털고 일어납니다. 아파도 안아픈척합니다. 왜요? 넘어진것은 어쩔수없는 것이지만 챙피한 모습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힘이 조금 있을 때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넘어진 모습이 챙피하지만 일어날 힘도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게 비굴한 것입니다. 넘어져 비굴한 굴욕감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 정말 지치고 곤고한 사람들입니다. 
온갖 죄와 허물로 상처를 입고 힘이 없어 넘어진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살려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쇠약해졌습니까? 실망하여 넘어졌습니까? 넘어졌어도 일어날 기려조차 없어서 슬픈 마음에 비굴함을 느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치고 곤고한 사람을 붙드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넘어진 자를 붙드시고 일으킨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에게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쇠약한 자를 붙드시고 넘어지는자를 붙들어 일으키는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3) 주께 맡기는 자를 붙들어 주십니다. 
시 55:22 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람은 수고하고 무거은 짐을 지고 인생의 고갯길을 넘어갑니다. 굽이 굽이 돌아가는 인생의 고갯길이 힘에 겨워 주저 앉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은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 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수고 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맡기는 사람을 붙들어 주십니다. 
물질을 맡기 못한 사람은 물질 때문에 고생합니다. 자식을 맡기지 못한 사람은 자식 때문에 고생합니다. 맡기는 사람을 하나님은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4) 주를 가까이 따르는 자 
시 63: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성도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 멀리서 구경하며 따르는 사람도 있고 가까이서 따라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눅22:54절에 보면 베드로는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멀찍이 좇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룻기 1:14절에 보면 룻이 그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더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붙좇았단 말은 바짝, 가까이 아니 아예 붇들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룻과 같이 예수님을 바짝 좇아가는 사람, 아니 아예 주님의 옷자락이라도 븥들고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면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신앙적인 의인을 붙들어 주십니다. 
시 37:17절에 보면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
의인이라 하는 말은 도덕적으로 깨긋한 의인이라는 의미도 포함되고 있으나 성경은 성도의 의를 말할 때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준하여 판단합니다. 

하나님 두려운줄 알고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의로울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이 은혜에 자신을 믿음으로 맡기며 그 분의 뜻대로 살려고 몸 부림 치는 사람을 하나님은 의인이라고 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우리는 도덕적인 의인은 아니라도 신앙적 의인은 되어야 합니다. 즉 믿음의 사람, 어떻게하든 허물이 많고 부족함이 많아도 믿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을 신앙적인 의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적 의인을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4 붙들어 주신 결과 
1) 살게됩니다. 
본문 116절에 보면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붙들어 주시면 살 수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행복이 다시 찾아옵니다. 사라졌던 물질이 다시 찾아옵니다. 산다는 것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붙들어주시면 회복입니다. 다시 살아납니다. 

2)구원을 받게 된다.
117절 말씀에서는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평생을 붙들어 믿음으로 살게 하시니 인생의 마지막을 믿음으로 장식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전목사(1834-1892)가 하루는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기차를 탔다가 기차표와 함께 지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모습을 맞은편 좌석에서 본 신사가 동정하자 스펄전은 "나는 집회를 인도하러 가는 목사인데 하나님께서 지켜주실터이니 걱정없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후 차표를 검사하던 차장이 그 자리에 왔다가 신사가 몇 마디하자 정중하게 인사하고 물러났습니다. 신사는 말했다."저는 철도국장인데 목사님 말씀에 감명 받았습니다.편히 가십시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면 해결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잃어버렸던 축복이 회복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께 맡기고 삽시다. 하나님이 붙들어주셔야 삽니다. 우리모든 성도들에게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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