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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할 이유 있네 (시 1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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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이유 있네 (시 107:1~9)
  

미국의 어떤 부흥사가 집회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어느 뚱뚱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옆에 앉더랍니다. 
이 흑인 여자가 아이들과 함께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자기는 구석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이런 경우는 무슨 감사를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감사의 조건을 찾아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옆의 이 여자가 제 아내가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매사를 어떤 눈으로 보느냐 하는 관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보는 눈에 따라서 매사가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불평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불만스럽게 보이지만, 
감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두 마을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감사촌에 살고, 한 사람은 불평촌에 삽니다. 
불평촌에 사는 사람은 그의 주소지가 불평촌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분노하고, 무엇이든지 근심스럽습니다.
기쁘고 좋을 때도 있지만 그 때에도 기분 나쁠 일을 예상하면서 불평합니다.

세계적인 문호 버나드쇼우가 자기에게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기 마음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많은데 이것이 비극이며,
둘째 비극은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때에 절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잘 되어도 비극, 절망이고, 안 되어도 비극입니다. 

그렇지만 감사촌에 사는 사람은 어떠한 가운데서도 감사합니다. 
봄에는 꽃 피는 것이 감사하고, 여름에는 무성한 가지와 잎이 감사하고,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 열매가 감사하고, 겨울에는 뿌리가 있어 감사합니다. 

무에서 출발한다면 모든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마음의 비교점을 제로에다 두면 모든 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무에 비하면 옷 한 벌, 얻어먹는 밥 한 끼도 감사한 법입니다. 
병원에 가보면, 내가 입원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시각장애인에 비하면, 앞을 본다는 것이 고등고시 합격보다 감사합니다. 
죽은 사람에 비하면, 지금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감사와 불평이 갈립니다. 
여러분의 기준은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은 여러분이 잘 압니다.
청교도운동은 가톨릭내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미신적 행위를 타파하여 
교회의 정화를 이루고자 했던 영적인 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淸敎徒:Puritans)운동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박해가 심했는데 
견디다 못한 청교도들이 화란으로 건너갔다가 
그 후 그들은 다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부류스타라는 사람을 지도자로 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대서양을 건너 미국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1620년 9월에 미국의 북쪽 땅 Plymouth에 첫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Plymouth에는 청교도들의 장한 삶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국가기념비가 있고 그 전면에는 Faith ‘신앙’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하나 때문에 목숨을 걸고 망망대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이 배를 타고 건너와 1년이 지났을 때 104명이 죽었습니다.
처음 건너와서 3개월간은 거처할 곳이 없어서 배 안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낯 설은 땅에서 인디언의 위협을 받았고, 
질병에 걸렸을 때도 약이나 의사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겨우 어떤 추장의 도움으로 옥수수, 감자, 호박 같은 것을 심어 
거두게 되었을 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그들은 넘치므로 감사드린 것이 아니라, 어려운 중에도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두운 고난 속에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감사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농사를 짓고 나서 풍성한 추수가 있기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1. 우리를 구원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1-3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여기에서 시인은 먼저 감사의 대상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밝힙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우선순위입니다. 
감사하기는 하는데 누구에게 감사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조상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해와 달과 별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는 감사의 대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시인은 그 하나님이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노래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성품이 선하시고 인자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속량해 주신 것입니다. 
속량하셨다는 말은 표준새번역 성경에서는 구원해 주셨다고 번역했습니다. 
바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노래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가장 커다란 이유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와 복은 얼마의 물질을 얻었다거나, 사업이 대박을 맞았다는 정도의
잠정적인 풍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축복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누구든 죄를 지은 사람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우리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명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지옥에 던져질 존재를 천국의 백성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주님께서 치르신 값을 상기해 봅시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주셨고, 목숨을 주셨습니다. 
온갖 고난과 아픔, 모욕과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은 바로 이러한 값을 치르고 얻게 된 축복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큰 감사의 이유는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축복을 받았으니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기 바랍니다. 

2.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기 때문입니다.(4-7절)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기서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영적 상태입니다. 
우리는 마치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인생의 사막을 경험한 분들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그냥 황량한 사막일 뿐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삶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였으며, 마치 노숙자처럼 살았습니다. 
돌아갈 집이 없습니다. 
함께 사랑을 나눌 사람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나 혼자입니다. 
무심하게 하늘만 높고 푸릅니다. 

별은 초롱초롱 빛나건만,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게다가 주리고 목이 말라 그 영혼이 피곤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인생의 어둠을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이제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한 발자국만 더 뒤로 물러나면 낭떠러지 밖에 없습니다. 
이 마지막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시편107편에서 4번 반복하여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6절, 13절, 19절, 28절에서 
‘이에 그들이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냥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낮아졌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나 좀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도 끊임없이 응답해 주셨습니다. 
근심 중에, 환란 중에, 고통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응답해 주셨습니다. 
7절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14절“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20절“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9절“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하나님은 기도할 때마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John Bisagoo라는 분은 기도의 7대 불가사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인간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
2.우리가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
3.우리가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
4.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다는 것
5.어느 때에든지 기도할 수 있다는 것
6.무엇에 대해서든지 기도할 수 있다는 것
7.우리가 담대하게 구할 수 있다는 것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3호가 달을 향해서 발사된 때가 있었습니다.
우주선의 실패확률은 백만 분의 일 정도여서 거의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폴로 13호에 거의 돌아올 수 없을 정도의 고장이 나서
거의 귀환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미국은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요청했습니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으로부터 시골의 가정에 이르기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구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고장 난 아폴로13호의 캡슐이 태평양 한 가운데에 떨어져
헬리콥터가 가서 우주 비행사를 실어다가 미 해군 군함위에 내려놓았을 때
그 갑판 위에서 그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군목님과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주간 주일날 아침에 미 대통령은 미국의 전교회를 향하여
우주 비행사들이 무사히 귀환한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자고 했습니다.
기자 회견 식장에서 쉬거즈라는 우주 비행사는
“‘만일 여러분이 고장 난 캡슐 안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간절히 기도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지구에 사는 인류가 기도해 주신 덕택으로
우리는 극적으로 도착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하십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은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주십니다. 
이 사실이 얼마나 놀랍고 감사합니까?

빌4:6-7에서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저는 지난 주 제자반 생활숙제로 기도응답 받은 것을 적어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응답거리들이 보고될지 기대가 됩니다. 
올해도 응답받은 기도가 많습니다. 헤아려 보시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3.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8-9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의대로만 행하지 않으시고 
인자하심으로 대하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공의대로 행하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매를 맞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위기 때마다 우리에게 행하신 위대한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기적과도 같은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저는 가만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기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기적은 이 성도님에게 베푸신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 권사님이 둘째 딸이죠. 아직 30대 후반의 젊은 자매님입니다. 
지난 여름에 죽전에 있는 도서관 옆에서 야외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저녁 시간에 음악회에 갔다가 자리에 앉는 순간 자매님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너무나 갑작스런 일이라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겠죠. 
원인은 뇌출혈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신속히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겼지만 
거의 회생불가능하다는 것이 병원측의 판단이었습니다. 
급하게 뇌수술을 했고, 최선을 다했지만,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고,
혹 산다고 할지라도 사람구실을 제대로 하기란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수술 후에 뇌압에 너무 높아서 10일 동안은 강제로 잠만 재웠습니다.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 자매님을 보면서, 또 가족들을 보면서
사실 우리는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다만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역사하실 수 있음을 믿으면서.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함께 동참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새벽마다, 집회가 있을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들려오는 소식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들이었습니다. 
손발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사람을 알아보았고, 
함께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기억들이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싶을 정도로 완전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의사들은 분당서울대병원이 세워진 이래 최대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 기적의 한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입니다. 
왜 이런 기적을 이루실까요?
우리들로 하여금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하라고 하심인 줄 믿습니다. 
이로 인해 감사하길 바랍니다. 

그야말로 우리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힘으로 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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