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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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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 (민 21:4~9) 


작년 이맘 때 삼성생명 라이프 케어 연구소가 한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하여 우울증과 관련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를 깜짝 놀라게했다. 우울증 경험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29.3%나 된다는 것이다. 

그 우울증의 원인.. 1위 경제적 문제 37.8%, 2위 가족 22.3%라고 한다. 여러분, 이 결과는 의외아닌가. 가장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가족관계에서 가장 상처와 아픔을 주면서 마음에 병이 들게만드는 요인이라는 것. 얼마나 많은 가정이 정상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보여주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3위 동료나 친구의 인간관계에서 우울증이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14%, 4위 장래 진로문제에 대한 부담감 9.5%로 나타났다. 또 다른 어떤 통계에서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을 앓고있는 사람이 80만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울증환자 10명 가운데 1명은 자살을 하고, 또 자살하는 사람의 70% 이상이 우울증을 앓고있다는 통계가 있다. 

여러분이 다 아시는 유명한 희극배우 챨리 채플린이 어느 시골에서 공연을 하는데,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음이 힘들고 우울증이 있었다고 한다. 고독하고 우울해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자신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병은 없으니까 안심하라.. 하면서 처방을 주는데, 이 근처에서 챨리 채플린 공연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마음껏 웃고 스트레스를 풀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을 하더라는 것.

여러분, 참 웃기는 얘기 아닌가. 자신은 수많은 사람들을 웃기고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데, 의사가 자신더러 챨리 채플린 공연을 보면 마음의 우울증이 치료가 될 것이라고 말을 하는데, 정작 자신은 마음이 울적해서 의사를 찾아가 처방을 받는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서 남을 돕고 상담도 하지만, 정작 자신의 깊은 내면에는 마음의 병이 있는 것이 이 시대의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본문에는 마음이 다쳐서 병은 사람이 나온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400백년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이제 가나안을 향해 나아간다. 그 광야에서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많이 발생한다. 그러면서 상처를 받고 아픔이 있게된다. 

4절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이 본문을 보면서 이스라엘백성들의 상태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힘든 광야를 걸어가면서 무언가 일이 꼬여서 애돔땅을 우회해서 가야하는 좌절감도 그렇고, 그러면서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는 모습도 그렇고..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본문을 보며 무슨 해결책이 없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날마다 마음이 다치고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을 생각하고.. 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본문을 보니까 해결책이 보인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이 힘든 세상을 마음 상하지않고 지나가려면 2가지 필수조건이 있다. 

1) 목적지를 향한 뚜렷한 목표의식이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이 허무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이런 수고와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가나안이라고 하는 인생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2) 우리의 삶에 목적지까지 바르게 인도해 주는 인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 3아이들은 주일날 교회 올 때 2시간자고 오는 애들이 있고 4시간 자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데 애들이 대부분 피곤해서 축 늘어져 오는데 간혹 눈빛이 살아있고 생생한 애들이 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이 수고를 이겨내면 내가 원하는 학교에 들어간다’ 라는 목표의식이 뚜렷한 아이들은 비록 2시간 밖에 자지못하고 주일날 교회오더라도 눈빛이 살아있더라는 것.

그리고 그런 아이들의 배후에는 대부분 좋은 선생님이 계신다. 예배드리러 오면 한주간동안 힘들어 지쳐있는 그 아이들에게 가슴으로 위로하고 권면하는 좋은 선생님이 있다. 때문에 우리 나그네 인생길에 좋은 인도자가 있다는 것은 참 축복이다. 

여러분에게 이런 인생의 뚜렷한 목표의식과 좋은 인도자가 있기를 축원한다. 

삶의 좋은 목표가 있어서 당장은 힘들고 어려워도 ‘이게 나의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난 결코 망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가나안이 있다. 난 이 고비를 반드시 넘어서고 말 것이다‘ 라는 마인드와 더불어 좋으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우리가 성공적인 인생길을 걷는데 필요한 조건인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백성들은 이런 목표와 인도자를 몰라서 그만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난 본문을 보면서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마음이 상하게 되었는가...를 분석해 보려고 하는데..

2가지로 분석이 된다. 

1.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유를 두 단어로 설명하고자 하는데 하나는, 혼돈이란 단어. 또 하나는, 결핍이란 단어이다. 

이스라엘이 광야길에서 그렇게 마음이 상하게 된 이유는 바로 혼돈과 결핍 때문이다. 

혼돈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지금 어떤 상황인가 하면...

그들이 계획하기에는 호로산을 출발하여 홍해길을 따라 지름길인 애돔을 통과할 계획을 갖고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는데, 애돔땅을 통과하는 것을 애돔사람들이 허락을 안하는 것이다. 그래서 힘든 광야길로 멀리 돌아서 가야만했다. 

여러분, 이것이 인생이다. 우린 나름대로 인생의 계획이 있는데, 우리 마음먹은대로 다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더라는 것. 애돔을 통과하면 더 빨리, 쉽게 가나안에 갈 수 있는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혼란과 좌절이 생기는 것이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에서 4백년을 넘게 종살이를 했었기 때문에 광야와 같은 거친 길을 걸어 본 적이 없다. 모두 초행길이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그렇다. 12년 전에 IMF를 만났을 때 우린 모두 죽는 줄 알지 않았는가. 금모으기 운동을 하고 겨우 하나님 은혜로 극복을 했을 때, 다시는 그런 위기를 없도록 하자.. 고 해서 여러 가지 경제적 기초를 든든히 했다. 이제 안심할 수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미국이 사고를 칠 줄 누가 알았는가. 

옛날에는 어려울 때 기댈 선진국이 있었는데.. 경제 선진국인 미국이 지금 흔들거리니까 조그만 나라는 경제 쓰나리를 만나서 대책이 없다.


2. 그 다음에 이스라엘의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은 빈곤의 문제이다. 

5절 하반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광야길에 부족한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우리 인생에 어떤 사람은 돈은 있는데 건강이 없다. 어떤 이는 건강은 있는데 돈이 없다. 돈도 있고 건강도 있는데 자식이 속을 썩이는 사람, 남편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의 사람...

이렇게 나그네 인생길에 이런저런 부족함 때문에 쩔쩔매며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이야기 한 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문제이고,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었다. 

집을 나간 탕자가 먹을 것이 없어서 쩔쩔매게 된 것은 근본적으로 아버지를 떠남으로 생겨난 문제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백성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이다. 

5절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나갈 목표도 없고, 그들은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없다. 그래서 더 어려운 것이다. 

여러분, 인생에 당하는 어려움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맞이하는가..에 달려있다. 

구약에 욥이란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는다. 재난을 당해서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10명의 자녀를 다 잃고, 몸은 망신창이가 되고.. 아내는 옆에서 악담이나 하고.. 친구들은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네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네 죄 때문인 것 같다’ 하면서 더 좌절감만 들게 만들고...

그런데 욥은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친구들이 말하는 것 처럼 내 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는 것. 이런 어려움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를 아름답게 사용하실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것. 이런 놀라운 믿음의 생각과 자세가 욥으로 하여금 모든 것이 회복되는 축복을 받게 만들더라는 것.

여러분, 우리에게 언제는 근심이 없었나. 어려움이 없던 해가 있었던가. 이 파도가 지나가면 저 파도가 찾아오고 이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오는 것이 인생인데...

관건은 찾아오는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해석하고 맞이하느냐..이다. 

본문의 결과도 보라.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불평하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 

6절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여기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발견한다.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목마르다고 불평한다. 그런데 목말라 죽은 이는 하나도 없다. 먼 길을 걸어가느라 지쳐서 죽은 이는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는 일들이 그들을 죽게 만들더라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을 가만히 보라. 지금 나에게 부족한 그 무엇 때문에 여러분이 죽는 것은 결코 아니다. 

1년 전 최진실씨가 인터넷 악플에 상처를 받아 자살했다. 그녀는 악플을 올려놓는 못된 사람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사람이 못된 글을 올렸어도 내 뒤에서 나를 응원해주고 내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만명, 십만명이다...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자살할 일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그 소수의 사람들의 못된 글에 마음이 빼앗기니까...
그러므로 자신을 욕하는 사람의 글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잘못되어서 죽는 것이다. 

신앙생활은 다른 것이 아니다. 광야길을 비단길로 바꾸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유가 있어서 우리를 광야길로 걷게하신다. 그 광야길을 잘 걷게하는 영적분별력과 힘이 바로 신앙이다. 

여러분의 광야길을 믿음으로 잘 받아드리는 욥과 같은 신앙인이 되길 바란다. 

어쨌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망하게 되었다. 불뱀에 물려서 죽어가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회생할 수 있는 방법을 주신다. 

8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여러분, 인간적으로 보면 참 어처구니없고 웃기는 방법이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2가지 담겨있다. 

1.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회복하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누구나가 다 공감하는 문제해결책이라면 믿음이 무슨 필요가 있는가. 장대에 높이 달린 뱀을 쳐다보아야 산다...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믿음이 없이는 순종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이 지금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구리로 만든 뱀에 무슨 능력이 있겠는가.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순종하는 신뢰의 믿음에 능력이 있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어 일하시는지 아는가. 왜 하나님은 과학을 뛰어넘어 역사하는지 아는가. 

4절에 보면 백성이 마음이 상하니라.. 라고 기록되어있는데 이 말은 원어적으로 보면 ‘마음이 짧아졌다. 안목이 좁아졌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 말의 의미는 5절을 보니까 하나님없이 사는 사람의 특징이 하나 나타난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 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보잘 것 없는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한다. 먹을 것, 물이 없어서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이 보실 때 안목이 좁은 생각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무명의 초라한 목동이었다. 다른 목동들은 죽을 때 까지 목동으로 살다가 죽는데 다윗은 목동으로 시작해서 위대한 왕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는가. 안목의 차이이다. 

시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환경이 좋아서 부족함이 없는 것이 아니다.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다윗도 부족함이 많은 환경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니까 안목이 넓어지는 것이다.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았다. 

우리 교회에는 다윗과 같은 믿음의 안목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시는 분이 여럿 계신다. 그러나 광야의 이스라엘백성들 처럼 보이는 어려운 환경만 가지고 판단하고 불평하는 분도 계신다. 

여러분, 환경은 비슷하다. 누군들 고난이 없는가. 누군들 눈물이 없고 아픔이 없는가. 결국은 고난의 환경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드리는가의 차이이다. 

그런가 하면 두 번째로 하나님은 왜 놋뱀을 보게하시는가. 


2.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이다. 

무슨 뜻인가. 지금 그것 밖에는 할 수없는 연약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배려이다. 

지금 온 몸에 독이 펴져 죽어가는 사람에게 ‘애들아. 여기서 10리쯤 가면 샘이 하나있는데 그 물을 먹어라. 그러면 살리라’ 하신다면 그 말은 그냥 죽어라..라는 말과 같다. 독이 펴져 죽어가는 사람이 어떻게 10리길을 가겠는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무에 달린 놋뱀은 쳐다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배려이다. 

이 놋뱀 사건을 예수님은 요 3:14-16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놀라운 말씀이다. 이처럼 사랑하사.. 가 무얼 의미하는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만큼 사랑하셨다는 넓이의 의미도 있지만,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에게 구원의 은총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너무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에 죽어나는 것은 목사다. 죽다가 살아나는 방법이 좀 심오한 비법이라도 되면 목사가 폼나게 설교하겠는데... 너무 쉽다. 

‘장대에 달린 놋뱀만 보아라. 그러면 산다. 이상 끝’ 

너무 쉬우니까 최진실씨 얘기도 끄집어내고 챨리 채플린 이야기도 하고... 우울증 통계도 말하고.. 복잡하다. 

그러나 구원의 진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네가 아주 똑똑하다 여기고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여기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너의 생각은 너무나 좁은 생각이며 자기 틀에 갇힌 생각이라는 것을 깨뜨리기 위해서 놋뱀을 쳐다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거기에 구원의 길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여러분, 우린 다 기본지식은 가지고있고 나름대로 머리 굴리면서 산다. 이 가운데 계신 분 가운데 놋뱀 쳐다보면 산다.. 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처구니없는 웃기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신다면 나도 웃기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 의지와 상식과 경험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갔는데, 진짜 낫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병이 떠나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어떤 분이 실직해서 하루에 소주를 10병씩 마시고 온통 원망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친척과 같이 한번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은혜를 받아 원망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월요일날 그 분 집에 가보았더니 놀랍게도 기독교방송의 설교를 들으며 울고있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생각과 방법이 꺽여야한다. 그래야 산다. 

누구라서 인생에 괴로움이 없겠는가. 누구라서 인생의 짐이 없겠는가. 이것을 피할수 있는 인생이 누군가. 다들 똑같은 상황이다. 그러나 그때 두갈래로 인생길은 나뉜다. 

고아와 같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있고, 나를 일으켜주고 인도해주는 인도자가 계신 인생이 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인생은 해석이다. 내가 당하는 환란을 어떻게 해석하며 나아가느냐.. 긍정적으로 환란당한 인생을 좋게 해석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순종하는 인생은 하나님이 이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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