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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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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13)


사도 바울이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우리 인간은 모두 다 죄인이고, 자기 행위가 완전해서 행위로 구원받을 자는 하나도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행함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이 말은 행위를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행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행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들에 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 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1장 7절에 보면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아라. 그러면 네 길이 평탄하고 형통할 것이고 모든 것이 잘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보면 사울왕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사무엘 선지자는 이렇게 책망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왕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멋대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순종이 없는 제사를 백 번, 천 번 드려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순종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면서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다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결단을 해서, 이를 악물고 100%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결심을 해도 안됩니다.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바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100% 완전하고, 바르고, 의롭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자기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대속해 주시고, 죄에서 해방시켜 주셔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떤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이 진실한 믿음이냐, 거짓된 믿음이냐 이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아주 엄격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20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2절에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 하게 되었느니라」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믿음만큼 행함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그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온전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행위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첫째,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여기에서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에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그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 것입니다. ‘

주는 그리스도시요’에서 그리스도는 ‘구세주, 구속주’라는 말입니다. 오직 주님만이 그리스도이시고, 오직 주님만이 구세주가 되십니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구속주가 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구세주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 베드로가 이것을 믿고 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예수님이 주가 되시고, 오직 주는 그리스도가 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믿음을 고백한 베드로.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알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 구원받을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진심으로 믿는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오늘 본문 10절의 말씀대로 마음으로, 진심으로 믿을 뿐 아니라 입으로 시인한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인정, 고백,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예수 믿는다는 것을 숨기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교회 갈 때 동네 사람이 “어디 가세요?”하면 “저기” 하면서 교회 가는 것을 숨깁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신문지로 싸서 다니며 예수 믿는 것을 자꾸 숨기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예수 믿는 것을 사람들이 알까봐 세례도 못 받습니다. 세례를 받으려면 사람들 앞에 서 있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 믿는 것을 나타내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은 그만큼 그 사람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로마시대에는 기독교를 아주 박해하는 황제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면 그런 사람을 화형에 처하거나, 십자가에 못 박거나, 사자굴에 넣어 죽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것은 곧 순교하게 되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죽음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즉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거 하며 온천하에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태도가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를 보면 우리의 믿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 믿는 것을 시인할 뿐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 믿으라고 담대히 권고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이 얼마나 존귀하고 권세 있는 이름인지 모르는 성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마태복음 1장 21절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고통과 불행은 죄로부터 옵니다. 죄 때문에 저주받고, 지옥 형벌을 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보면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예수님이 행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고 꼭 붙이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면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지,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70명을 전도하러 보낸 일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나중에 기쁨이 충만해서 돌아와 보고하는데,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서 항복하더이다.”라고 흥분해서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셨습니다. 설마 하며 ?! 뺐? 무슨 힘이 있어서 귀신을 쫓아내나 했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 님의 이름으로 귀신아 물러가라 하고 쫓아내니까 귀신이 쫓겨 가는 것을 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믿음으로 예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17절에 보면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말을 하든지, 일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했습니다. 

여기에서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항상 예수님의 이름을 말하면서 살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예수님 함께 해주세요.’ ‘예수님 도와주세요.’ ‘예수님 지혜를 주세요.’ ‘예수님 길을 열어주세요.’ 항상 예수님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항상 말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 노릇 하는 것입니다. 

한번은 부산에서 각 종단 대표들과 회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불교 대표로 유명한 분이 오셨고, 원불교 대표, 회교 대표도 오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종교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저는 기독교 대표로 혼자 참석을 했는데, 이분들이 저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교회에 대해서 소문을 들었는지 초청을 해달라고 하셔서 언제든지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식사를 하며 간증을 했습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너무너무 가난하고 어려워서 금식기도하다 죽으려 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 하나님이 오셔서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서 살아줄 수 없겠니?” 하고 세 번이나 말씀해주셔서 이렇게 목사가 되었다고 듣던지 안 듣던지 간증을 했습니다. 그중에 택한 백성은 예수 믿게 되는 줄 믿습니다. 듣던지 안 듣던지 항상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을 믿은 후에 얼마나 행복하고, 우리 가정에 어떤 변화가 오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항상 말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증인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0장 12절 하반절에서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4절에 보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요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진 분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에 오셨을 때는 아주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가 저주받아 가난해진 그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우리를 부요케 하기 원하시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1절에 다윗이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예수님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적으로 부요하게 할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남미 사람! 들은 황금을 얻으려고 그 남미 땅에 황금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간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금 밖에 없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보니 기후도 좋고, 땅도 좋고, 호숫가에 물고기들이 몰려오고,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얼마나 가난한지 도둑이 들끓습니다. 이 남미 사람들이 가난한 것은 기적입니다. 돈, 돈, 하지만 영적으로도 가난하고, 경제적으로도 가난합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서 집과 땅을 버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아메리카로 건너간 사람들은 영적으로도 부요할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가장 부요한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의 통계를 보면 유대인이 22%, 기독교인이 64%이고, 나머지가 천주교인, 불교인, 무신론자들, 미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통계만 봐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들이 영적으로만 부요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부요해지고, 세계적인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가운데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세리라도, 창기라도,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수가성 여인도, 이방인이라도, 강도라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양편으로 강도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강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은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평생 강도짓만 하던 못된 인간이라도 염치 불구하고 예! 수님의 이름을 부르니까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염치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나를 용서해주세요.’ ‘예수님, 나를 기억해주세요.’ ‘예수님, 나를 구원해주세요.’ 염치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바로 그 시간에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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