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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로운 말을 씁시다 (골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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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운 말을 씁시다 (골 4:6)


<말 = 인격, 속마음>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보려면 말을 들어보면 됩니다. 우리가 쓰는 말은 우리의 인격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속마음을 그대로 나타냅니다. 아무리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말에는 반드시 우리의 속마음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격과 속마음이 바로 될 때 말도 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언어가 거칠고 공격적인 것은 우리의 인격과 속마음이 황폐해진 까닭입니다. 

언젠가 TV에서 초등학생들의 언어폭력 문제를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다루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학교에서나 방과 후 PC방이나 놀이터에서나 그냥 입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듣기 민망한 욕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싸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웃고 떠들고 노는 것뿐인데도 입에서 욕을 달고 산다는 보도였습니다. 아이들이 그러한 욕설들을 누구에게 배웠겠습니까? 결국 우리 어른들이 무의식적으로 발설하는 언어폭력이 우리 아이들에게 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동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언어를 사용합니다. 우리는 말을 통하여 내 뜻을 전하고 상대방의 뜻을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언어가 있으므로 우리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인격적인 대화와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의 말은 반드시 우리의 인격과 속마음을 드러내는 도구인데, 우리가 매일 버릇처럼 쓰는 말이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마음에 미움과 분노와 불만이 있으면 자연히 말도 거칠고 공격적인 것이 됩니다. 우리 마음에 사랑과 기쁨과 감사가 있으면 말도 부드럽고 친절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의 인격이 어느 정도나 되고 내 속마음이 어떤 상태에 빠져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제일 먼저 우리가 쓰는 말이 어떤 말인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인격과 속마음이 우리가 쓰는 말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진실이지만 더욱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역으로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의 인격형성과 우리의 속마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매일 부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부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남의 잘못만 들추어내어 항상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공동체로부터 소외됩니다. 그냥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해도 될 것을 거칠고 공격적인 욕설로 말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점점 더 비천한 사람이 됩니다. 일상생활에서 주고받은 말도 그냥 표현하지 않고 항상 욕설과 은어를 섞어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삶의 질도 낮아지게 됩니다. 

이와 정반대로 매일 긍정적인 말을 쓰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긍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남의 장점만 바라보고 항상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공동체로부터 환영을 받고 존중을 받습니다. 부드럽고 친절한 말을 쓰는 사람을 사람들은 누구나 다 좋아합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점잖은 말을 쓰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고귀한 사람이 될 뿐 아니라 삶의 질도 점점 더 높아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진리는 우리가 쓰는 말에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듯이 말에는 놀라운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은혜스러운 말을 쓰는 버릇을 기를 때 놀라운 창조가 일어납니다. 황무지에 장미꽃이 피어나듯이, 긍정적인 말, 은혜로운 말을 되풀이하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자신의 신세 한탄만 하고 이렇게 된 것이 다 누구 때문이라고 비난만 하고 앉아 있으면 생활이 절대로 나아지지 않습니다. 점점 더 빈곤해질 뿐 아니라 그나마 찾아오던 일가친척도 발걸음을 딱 끊습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인 사람의 말은 아무리 좋은 관계라고 할지라도 자꾸만 파괴시키는 힘이 있기 때문에 파괴적인 사람 곁에는 사람들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말을 쓰는 사람은 말한 대로 되고 맙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도 있듯이 말한 그대로 되고야 맙니다. 말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또한 치유의 능력이 있듯이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각색 불치병자들을 고치실 때 간단히 말씀 한 마디로 고치셨습니다. 말씀 한 마디로 중풍병자가 고침 받고 말씀 한 마디로 혈루병이 멈추었고 말씀 한 마디로 죽은 사람이 살아났습니다. 오늘 우리의 말버릇을 고칠 때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던 쓴 뿌리가 뽑혀나갑니다. 부부간의 관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병적인 관계가 치유 받습니다. 

어떤 TV에서 이혼 일보 직전까지 간 부부의 치유와 회복을 소개하는 '4주후愛'라는 프로가 있는데 거의 모든 부부의 문제는 언어습관에 있습니다. 공격적이고 일방적이고 명령적이고 따지는 말투 때문에 부부 사이가 날이 갈수록 악화가 됩니다. 그런데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로 바꾸니까 금방 상처가 아물고 병적인 관계가 치유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자녀들에게도 거친 말을 퍼붓는 부모는 제일 먼저 말버릇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관계가 달라집니다. 치유되고 회복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변화의 능력이 있듯이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를 변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사람이 변하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 나쁜 습관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이것은 기적 중에 최고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말 한 마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를 받은 사람마다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에는 생명과 진리가 있어서 변화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부정적이고 냉소적이고 파괴적인 말을 다 버리고 긍정적이고 명랑하고 건설적인 말을 쓰면 우리 자신이 변합니다. 왜 우리가 공동체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합니까? 우리의 나쁜 말버릇 때문입니다. 교만해서 남을 무시하고 아픈 데를 콕콕 찌르는 못된 말버릇 때문에 사람들이 우리를 피합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던지는 생각 없는 말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이런 이들은 말버릇을 바꿔야 합니다. 은혜스러운 말을 쓰십시오. 자꾸 쓰는 여러분의 은혜로운 말 때문에 여러분의 인격과 삶과 이웃과의 관계가 신기하게 변합니다. 

해방의 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가 한 말입니다. "남의 손을 씻다 보면 내 손도 따라 깨끗해지고 남의 귀를 즐겁게 해주다 보면 내 귀도 따라 즐거워진다. 그리고 남을 위해 불을 밝히다 보면 내 앞이 먼저 밝아지고 남을 위해 기도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이 먼저 밝아진다." 옳은 말입니다. 내가 쓰는 말 한 마디가 달라지면 세상이 다 달라집니다.

<소금으로 맛을 내듯 은혜로운 말>

이제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바깥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항상 대답할 준비를 해야 하는데 특별히 은혜스러운 말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참 재미있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은혜스러운 말을 하되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어떤 음식도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나지 않습니다. 싱겁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항상 은혜스러운 말을 쓴다고 하다보면 맛이 없습니다.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은혜스러운 말을 쓰는 것까지는 좋은데 늘 흥미가 없고 재미가 없다보니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교회, 신앙, 성령에 대해서 은혜스러운 말을 하는 것은 좋은데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좀 재치가 있고 재미가 있게 말을 하라는 주문입니다. 참으로 현명한 충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너무 고리타분해보입니다. 늘 예수타령 교회타령만 하고 뭔가 맛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피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어떤 노인이 금혼식, 즉 결혼 50주년을 맞아서 할머니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놀이 빨갛게 물드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서 평생 한 번도 하지 않던 말을 했답니다. "할멈, 고마워. 당신과 함께 지내온 시간이 내게는 참 행복했다오." 이 말을 들은 할머니가 잠시 멈칫하더니만 한숨을 푹 쉰 채 한 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영감, 이제야 진실을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사실 나도 당신과 함께 사는 게 참 지겨웠거든요." 할머니의 귀가 어두워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말귀를 잘 못 알아듣고서는 경우에 맞지 않는 말을 하는 사람을 사오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은혜로운 말을 쓰는 것은 참 좋은데 까딱 잘못하면 사오정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의 말은 항상 은혜스럽고 거룩한 말이라야 하지만 좀 맛을 내서 재치 있고 재미있는 말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장영희 교수님이 마지막 남긴 유고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 보면 추천서를 써달라고 찾아온 제자와 나눈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주 예쁘고 날씬한 여학생이었는데 이름을 묻자 '제니퍼 배'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한국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자기 이름이 좀 독특해서 말하기 어렵다는 투였습니다. 순간 장교수님은 성이 배씨니까 혹시 네 이름이 '배신자'가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는 것입니다. 점점 더 궁금해진 장교수님이 다시 묻자 그 여학생이 대답합니다. "배창자요." 이 이름을 들은 뒤 한바탕 웃고나서 두말하지 않고 성명란에 '제니퍼 배'라고 이름을 써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소금으로 맛을 내듯 은혜스럽게 말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결코 천하거나 야하거나 남의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서도 뭔가 듣고 나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는 그런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이제 제 설교를 마쳐야 하겠습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권세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시겠습니까? 긍정적인 말을 해서 여러분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시겠습니까?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잠 25: 11)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긍정적인 말을 씁시다.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씁시다. 은혜로운 말을 씁시다. 소금으로 맛을 내듯 재치가 있고 재미있고 상냥한 말을 씁시다. 여러분의 운명이 바뀝니다. 가정이 변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이 달라집니다.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옛날에 인정이 많은 부자 한 사람이 살았답니다. 그 부자는 동네 안의 한 가난한 목수에게 "우리 부부가 멀리 여행을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 건축비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고 아주 멋진 집을 한 채 지어주게"하고서는 길을 떠났습니다. 목수는 이 기회에 주인을 속여먹어 큰 이윤을 남기기로 결심하고서는 임금을 줄이기 위해 한 번도 건축 경험이 없는 사람을 인부로 쓰고 싸구려 건축자재를 써서 날림공사로 집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번쩍번쩍 그럴듯 해보였습니다. 드디어 부자가 돌아왔을 때 목수는 "최선을 다해서 멋진 집을 지었습니다" 하면서 열쇠를 건넸습니다. 그러자 부자는 열쇠를 목수에게 도로 주면서 "이 집은 내가 자네한테 주는 선물이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목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철학자 마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부실한 자재로 집을 짓는 사람과 같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이고 건설적이고 친절한 언어를 쓰는 사람은 좋은 자재로 튼실한 집을 짓는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매일 쓰는 말이 여러분의 집을 날림공사로도 만들기도 하고, 비가 오고 홍수가 와도 절대로 무너짐이 없는 견고한 집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가 소금으로 맛을 내듯 항상 은혜로운 말을 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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