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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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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 2:1~4)
   

우리는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는 5만 불, 10만 불 소득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못 사는 나라는 정말 너무나 못 살고 있습니다.  화장실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에서 40%인 25억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질병이 만연되고, 가난에 지쳐 일찍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소아마비 시인 송명희씨는 “나”라는 시를 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시가 나오게 된 배경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송명희는 수차례 반복되는 이사와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을 보면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말하는 대로 써라’고 하셨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그는 왼손에 토막연필을 쥐고서 울먹이며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엉뚱한 말씀에 그는 울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오! 못 쓰겠어요, 공평해보이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시키시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쓰라고 하셨고, 수없는 공방 속에서 결국 하나님이 이기셨기에 ‘나’라는 시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말씀을 상고하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구원교리이며, ‘이신칭의’라고 하는데,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라고 할 수 있는 교리를 사도바울이 집대성하였는데, 그는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하박국2:4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2:4의 하반절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박국이라는 선지자는 이름이 조금 특이합니다. 그 이름은 ‘포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박국이란 말은 ‘하바크’라는 말에서 나왔는데, 뜻은 포옹하다, 끌어안다, 껴안다는 말입니다. 우정과 사랑을 표현하면서 끌어안는다는 말입니다. 
   
하박국이 살던 때에 중동지역은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중동의 강호 앗수르가 멸망하고  바벨론제국이 일어났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였는데, 이제는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에게 남왕국 유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저질렀고, 불의를 행하였어도 더 나쁜 나라, 악한 왕국을 불러들여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박국은 불의한 사람이 잘 되고 의인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에게 많은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도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는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하여 영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나라에 불의가 난무하는가?  왜, 이 땅 위에는 의인이 고통을 받을까?  이 세상에는 왜 악한 사람들이 번영하는가?  의인들이 범죄할 때에 그들을 징계하고 심판하는 것을 마땅한 일이지만, 왜 더 악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심판하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는 초소, 망루에 서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서양격언에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한 번도 믿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고 하는데, 신앙이란 의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해결하는 것입니다. 

1.  하박국이 가진 질문, 왜, 언제까지? 

하박국은 자기의 시대에 많은 부조리한 사회상을 보면서 한탄합니다.  그는 몇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하박국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합1:2에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때까지리이까”는 물음은 히브리 애가의 전형적인 형식이었습니다.  그가 부르짖어도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유대사회가 강포하였습니다.  강포하다는 말이 ‘하마스’라고 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의롭지 못하고 불의하였습니다.   왕이나 귀족들은 백성을 무자비하게 억압하였고 선정은 사라지고 폭정만 있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죄악을 일삼았습니다.   거짓이 난무하고 패역하였습니다.  사람들이 온유하고 부드럽지 못하고 포악하였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지 못하고 남의 것을 빼앗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분쟁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데, 왜 이 땅에 불의를 용납하시는 것입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악을 물리쳐달라고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은 선지자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았고, 악을 물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어느 때까지리이까?” 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이 있는 유대인 사회에도 소수의 의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정직하게 살고 정의롭게 살려 하는데, 악인들이 의인들을 에워싸 핍박하고 못 살게 하였습니다.   율법은 땅에 떨어지고, 해이해졌습니다.  이 땅에는 정의가 사라졌습니다.   무법이 정의요, 불의가 공의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의인이 우대받지 못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억압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박국선지자가 하나님을 향하여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불신앙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우리도 선지자처럼 세상의 불의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박국의 불평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왜(Why)이고, 또 하나는 얼마동안(how long)의 문제입니다. 의인이 불의한 자들에게 핍박을 당하는데 왜 하나님은 가만히 계십니까?   어찌하여 악인이 번창하게 내버려두십니까?   언제까지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두고만 보실 것입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죄악에 대하여 민감하게 말씀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시고, 죄악을 해결하시는 한 가지 분명한 의지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합1:13에서 하박국의 질문은 정점에 이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공의의 하나님께서 잠잠하실 것입니까?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상 허락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파수하는 곳에 섰습니다.  그는 성루에 서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합2:1입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하박국은 예루살렘 한 초소 위에 올라가 서 있습니다.  망대 위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는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박국은 파수꾼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하나님과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우리도 하박국처럼 하나님과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영성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 아버지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말씀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2.  하박국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묵시를 기록하는데, 판에 새기는데 사람들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도록 크게 뚜렷하게 새기라고 하십니다.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하시는 말씀을 판에 새기라고 하셨는데, 점토판이나 돌판이나, 때로는 금속판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을 새겼습니다.  
   
3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묵시의 내용은 유다를 침략한 바벨론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의인을 괴롭히는 악한 자들을 반드시 처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을 괴롭히는 악인,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침략하고 포로로 잡아가는 불의한 나라를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실행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나 때가 정해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성취를 향하여 날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종점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습니다.  여기는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정한 때를 참아 기다리라, 더 기다리라, 지금 더디게 보일지라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개입이 더디고 느린 것 같아도 참아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말을 식언하지 않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갈대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하여도 그의 탐심과 잔인함, 불의한 삶의 태도까지도 용납되고 허용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러한 불의의 시대에 우리 의인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응답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악한 자들, 바벨론 군사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는 그 마음이 교만하며, 정직하지도 않습니다.  악인은 교만한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악인의 특징은 교만합니다.  악인은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를 믿고 삽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을 믿고 마치 자기가 신이나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삶을 결정합니다.  자기의 인생을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한 이 세상을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어떻게 이 불의한 세상을 살아갈 것입니까?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그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을 것이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고 빨리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오래 참음으로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굳게 믿고, 기다리며, 참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든지, 갈대아 바벨론이라고 구분하지 않습니다.  다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하시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색깔의 차이로, 가지고 가지지 못한 것으로, 배우고 배우지 못한 것으로 나눌 수 있어도 하나님은 당신을 진심으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별하십니다.  그가 교회를 오래 다녔던지, 직분을 가졌는지, 무엇을 드렸던지 그것을 보시지 않고, 믿음만 보십니다. 
 
문제의 핵심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느냐?  아니면 믿지 않느냐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비록 더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믿고 참고 기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인데,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의가 아니라, 의에도 높고 낮은 수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의인이든지, 악인 둘 중의 하나입니다.  수준 높은 의인이 있고, 수준이 낮은 의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봐줄만한 죄인이 있고, 정말 심판받아야 마땅한 죄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은 심판받아야 하고, 심판 받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십니다.  
   
요16:9에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박국2:4절의 말씀을 사도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인용하고 히브리서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중심 사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고, 지연되고, 악한 시대가 계속되고, 악인이 날뛰고,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시대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시대에 응답으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믿음이란 말은 “에무나”라고 합니다.  이 “에무나”가 가지고 있는 뜻은 ‘견고하다, 강하게 버티다’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 49번 나오는 말인데 모든 영역성경에는 신실함이란 의미로 Faithful, Faithfulness, Faithfully, honestly, truthful 이란 말로 번역되었고, 믿음이란 말로 번역된 곳은 오늘 하박국2:4절뿐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음이란 말로 사용하였기에 영향을 받아 같은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에무나’라는 말은 견고함, 버팀, 확실, 영원으로 번역해야 할 말입니다.  “오직 의인은 그의 견고함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그의 버팀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란 어떤 믿음이어야 합니까?  살아 있는 믿음, 확고한 신뢰, 완전한 의탁, 백기투항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믿고 버티는 것입니까?  
   
예를 들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습니다. 하늘의 많은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너의 자손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약속이 주어진 정도입니다.  이루어진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것을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야 하고, 버틸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쉽게 변하고 의심하고, 좌절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믿음이란 확실한 것입니다.  완전히 내어맡긴 것입니다.  끝까지 견고한 믿음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을 내어 맡기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보니, 합3:17-19절에서 하나님을 높여 찬양합니다.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하박국은 “어찌하여”라고 탄식한 사람이지만, “없을지라도 ”라고 바꾸어 말한 사람입니다.  “어찌하여”라는 탄식이 “ 찌라도 ”라는 감사로 승화시킨 사람입니다.
   
고형원씨는 “오직 믿음으로”라는 시를 썼습니다.  “세상 흔들리고 사람들은 변하여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믿음 흔들리고 사람들은 주를 떠나도/ 나는 주를 섬기리/ 주님의 나라는 영원히 변하지 않네/ 나는 주를 신뢰해/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눅18:8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견고하게 신실하게, 완전히 맡기는 믿음으로 의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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