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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흥왕하는 주의 말씀 (행 19: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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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흥왕하는 주의 말씀
       (The Great Revival of Ephesus)
성경 : 행 19:8-20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우리 주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는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언제나 부흥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거룩치 못함과 세속적인 모습을 항상 살펴 정결케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주위에 풍김으로써 구원받는 영혼들이 계속적으로 찾아오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부흥은 교회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의 공통적인 바램입니다. 그러므로 참 성도라면 성경에서 부흥에 대한 기사를 접할 때마다 가슴 설레이는 감격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에베소에서 일어났던 위대한 부흥에 대한 기록입니다. 태풍과도 같은 부흥의 거대한 소용돌이의 한 복판에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에 의해 2년 여 동안 두란노 서원에서 담대히 선포된 말씀입니다. 

  처음 사도의 설교는 유대인이 모이는 회당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유대 동족을 사랑했고(롬 9:1-3), 그것이 전도 전략상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서도 순종치 않는 유대인들 때문에 바울 일행은 자연스럽게 이방인들에게 가서 제자들을 따로 세워 두란노 서원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흥왕하는 주의 말씀” 이라는 제목으로 에베소의 부흥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상과 미신으로 가득차 있던 에베소에 어떻게 그처럼 놀라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는지 함께 생각하며, 우리의 부흥을 꿈꾸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의 위대한 부흥은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1. 주의 말씀이 아시아인들에게 심겨졌음 (적용적해석: 심겨지는 주의 말씀)
  9-10절=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에베소의 위대한 부흥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인근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심겨짐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게 담대히 말씀을 전했지만, 그들의 격렬한 반대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고, 결국 주의 말씀이 아시아인들에게 널리 심겨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이 지방에 부흥을 일으키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선교 전략은 성경적이었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파송하실 때 거절하는 자들로부터 나와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하셨던 것처럼 바울은 자신과 복음이 거부당하는 곳을 미련없이 떠났습니다. 
  여기 ‘떠나’(아포스타스) 라는 단어는 부정과거 능동분사로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로부터 능동적으로 떠나 교제를 완전히 단절해버렸음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울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과 함께 두란노 서원을 세우고 두해 동안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베자 사본(D)에 의하면 이 건물은 오전에는 주인의 용도에 따라 사용되었기 때문에 주인이 사용하지 않는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까지 바울이 사용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 시간은 매우 더운 날씨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일들을 쉬는 시간이었고, 대부분의 에베소인들은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매일같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10절=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여기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표현한 까닭은 바울 사도가 주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사람들이 직접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은 것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사도 바울의 입은 주님의 입을 대신하여 주의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흥이 오기 전 필요한 것은 이처럼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심겨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전도자의 바른 자세가 필수적입니다. 전도자는 복음을 증거할 때 자신의 말이나 생각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 증거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그러했습니다.
  고후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여러분, 우리에게 행하신 주님의 뜻도 그러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교회가 위치한 지역에 편만히 심겨지도록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말씀이 자라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구역에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심겨지고 자라나게 하십시오. 부족한 저도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이 더 깊이 심겨지고 더 높이 자라나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2. 능력있는 말씀 앞에 원수의 방해가 끊이지 않음 (적용적해석: 마귀의 방해)
  9절=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본문은 에베소의 부흥이 오기 전에 하나님 나라의 원수들의 훼방이 어떠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3개월 동안 바울의 가르침을 받았던 에베소의 유대인들 중 일부 사람들의 거부 반응은 집요했습니다. 성경은 이들의 적대적 반응을 점층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 단계는 마음이 굳어진 단계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굳어진 마음은 불순종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특히 본절에서 ‘마음이 굳어’ 와 ‘순종하지 않고’ 가 미완료과거로 기록된 것은 이러한 상태가 변함없이 유지되어 왔음을 보여줍니다. 석달 동안이나 계속된 바울의 강론과 권면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마음은 강퍅하여 믿음을 거부했던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비방(誹謗)의 단계입니다. 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던 유대인들은 소극적 불순종의 자리에서 적극적 비방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울의 복음에 대해 비방하였지만, 이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불경이요 성령의 사역을 거스르는 큰 죄악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말씀이 능력있게 전파되는 곳에 원수 마귀의 방해가 찾아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 11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12절).
  사람들은 천막 만드는 작업장에서 바울이 사용하던 손수건과 앞치마 몇 개를 가져다가 병자와 귀신들린 자에게 얹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스스로 이것들을 가져다가 얹지는 않았을 것이고, 단지 바울의 치유의 기적을 간절히 기다리던 에베소 제자들이 이런 행위를 했을 것입니다. 

  당시 에베소 사람들은 믿음의 수준이 아주 낮았기 때문에 이같은 행동이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 사용하던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 물건 자체에서 능력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교적 문화에 찌들어 있던 에베소인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이처럼 어린 믿음에도 응답하셔서 치유와 축귀(逐鬼)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 전파에 큰 힘을 더해 주셨습니다.  

  이 때 그 지역의 마술하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행한 신유의 이적을 보고 흉내를 내었습니다.  
  13절=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에베소의 마술사들은 너무나도 뛰어난 바울의 이적과 기사 앞에서 바울이 전하는 예수의 이름을 자신들의 축귀의 주문으로 사용하려 했던 것입니다. 마치 바예수 또는 엘루마로 불렸던 자(행 13:6,8)와 마술사 시몬(행 8:9-13)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본절의 “내가 ... 명하노라”(호르키조) 라는 말은 ‘애원하다’ 라는 뉘앙스에 가까운 단어입니다(막 5:7). 그리고 이 동사가 본절에서는 명령형이 아니라 단순히 현재 직설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귀신에게 단호히 내리는 명령이 아니라 귀신과의 타협이며 일종의 애원입니다. 성경에서 귀신을 쫓을 때 사용되는 단어는 ‘에피탓소’(눅 4:36)나 ‘파랑겔로’(눅 8:29) 인데 여기서는 ‘호르키조’를 사용하여 예수의 이름을 단순히 이교적인 축귀 관습에 따라 오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결국 참 전도자의 사역을 혼잡하게 하려는 악한 자들입니다.

  능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원수의 방해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방해는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교묘한 방법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은 언제나 이들 훼방하는 세력보다 크고 지혜롭습니다. 

  14절 이하에 기록된 스게와의 일곱 아들에 관한 사건은 하나님의 지혜가 어떠함을 보여줍니다. 유대인인 스게와는 당시 마술세계에서 인정받던 자로서 자칭 대제사장으로 불렀고, 그의 아들들도 그의 일을 물려받아 주술적 축귀 행위를 업(業)으로 삼았던 자들입니다. 스스로 대제사장이라 칭하면서 이(利)를 위하여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일곱 아들까지 모두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무당의 일을 하게 하였다는 것은 당시 유대교가 얼마나 무력하였으며 어느 정도로 타락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14절=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절=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귀신들린 사람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에게 마치 표범이 먹이를 낚아채듯이 달려들어 그를 완전히 지배하여 상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완전한 패배로 사건의 막이 내렸습니다. 일곱 아들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힘을 다해 도망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망령되이 쓰려는 자에게 언제나 무서운 심판이 따라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17절을 보십시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이 사건으로 바울의 두란노 사역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고 바울의 사역은 에베소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바울을 존경하게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힘 있게 전할수록 원수의 세력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공격해 온다는 것을 알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3. 주의 말씀이 흥왕하여 세력을 얻음 (적용적해석: 말씀 흥왕= 부흥)
  20절=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의 사건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축사 소동 사건으로 에베소의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모두는 예수 이름을 경외하게 되었고, 이것은 에베소에 일어난 큰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8절=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여기 ‘믿은 사람들’(페피스튜코톤)은 완료분사로서 이미 신앙을 가졌던 사람을 가리킵니다. ‘와서’(에르콘토)는 미완료 과거로서 ‘한사람씩 한사람씩 계속해서 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행한 일’이란 그들이 행한 각종 마술행위를 뜻합니다. 
  이처럼 본절은 에베소에서 이미 믿음은 가졌으나 죄악된 삶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던 많은 무리들이 주님 앞에 계속 자발적으로 나아와서 죄를 고백하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조금도 숨기지 않고 낱낱이 고했습니다. 놀라운 회심의 물결이 에베소를 덮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절에는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들이 대중들 앞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마술과 관계되는 책들을 불사름으로써 자신들의 과거를 청산한 놀라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에 사용하던 마술서의 상당량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에베소 스크립트’(Ephesian Scripts) 라는 이름으로 런던과 파리, 라이덴에 수집되어 있습니다. 이 책들에는 주로 주문(呪文)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주문들은 아무 뜻도 없는 소리의 반복이었습니다. 에베소인들은 이러한 소리의 반복이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마술사들이 불태운 책들의 값이 은 5만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은화 1드라크마는 하루 임금이므로 은 5만은 5만일 동안의 품삯에 해당되며, 일당을 5만원으로 잡는다면 약 25억원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입니다.
  이로 보건대 마술책을 불태운 사건은 에베소 도시 전체를 놀라게 한 대사건이며, 에베소 교인들의 진정한 회심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의 빛이 비취면 어둠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의 진리, 천국의 빛은 어둠을 몰아내고 썩은 것을 불태워버리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능력의 복음이 들어가매 사람들 속에 있던 온갖 더러운 죄들이 토해지게 되었습니다. 천국의 능력이 나타나자 세상의 온갖 술수와 눈속임등은 만천하에 거짓임이 드러나면서 불태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야말로 파사현정(破邪顯正), 곧 사악한 모든 것이 깨어지고 빛과 진리가 드러나는 통쾌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시대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곳곳에 십자가 드높이 교회들이 세워져 있지만, 이 사회는 날이 갈수록 더욱 어두워지고 음란해지며 패역의 길로 달려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법으로 통제해야 할 권력기관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게 대형 부정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 의해 한국의 부패지수는 날로 심각해져 이제는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 즉 총체적 부패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어찌된 것입니까?  오늘 한국교회는 사도행전의 기록처럼 복음의 참 빛을 비추어 어둠을 몰아내고, 천국의 능력으로 이 사회를 덮고 있는 사악한 세력들을 쫓아내어야 할 터인데, 오히려 이러한 사회로부터 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부흥이 와야 하겠습니다. 에베소에서처럼 대대적인 부흥이 와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의 3년 목회 막바지에 거대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20절).

  그런데 이 놀라운 결과가 어디에서 비롯되었습니까? 바울의 말씀의 능력에 있었습니까?  손수건이나 앞치마로 병이 낫는 희안한 능력에 있었습니까? 물론 그런 요인들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본문을 통하여 부흥의 직접적 요인이 ‘믿은 사람들의 자복’에 있음을 지목합니다. 기존 성도들의 회개와 자복이 교회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성장의 직접적 요인은 그 무엇보다 기존 성도들의 철저한 회개와 영적 각성에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앞에서 배신했던 사도들과 성도들의 통회와 영적 각성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기존의 믿는 성도들이 숨긴 죄들을 깊이 참회하고 생생히 살아있는 성도로 소성할 때 부흥은 촉발되는 것입니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 지방의 대부흥은 먼저 말씀이 편만히 심겨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상과 마술이 성행하던 에베소에 복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공동체가 큰 세력을 형성하여 힘있게 자라났습니다. 이후에 에베소는 수세기 동안 디모데, 사도요한, 폴리갑, 이레니우스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의 사역지로서 소아시아의 기독교 부흥을 이끄는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구 땅의 부흥도 먼저 말씀이 널리 심겨지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복음이 심겨진 곳에서는 놀라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위대한 힘을 지닌 한그루의 나무처럼 복음은 바윗돌 사이에서도 자라납니다. 비록 위선과 형식주의와 세속주의가 가득한 곳에서도 생명의 복음은 성장합니다. 주위 환경이 심히 나빠도 복음은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리고 많은 사람을 사로잡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먼저 나부터, 나의 가정에서부터, 그리고 우리의 구역에서부터 말씀이 더 깊게 심겨지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물론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들은 복음의 빛이 비춰지지 못하도록 온갖 방해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복음 전도에는 언제나 어려움이 동반됩니다. 그러나 염려할 것 없습니다.승리는 언제나 우리의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믿는 우리의 철저한 회개와 영적 각성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대구의 어두운 밤을 밝히고 깨우려면 먼저 나부터 나약하고 해이한 모습을 반성하고, 마음을 함께 하여 미스바에서와 같은 영적 대각성 운동을 일으켜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복음의 빛과 성령의 능력을 비춤으로써 이 시대를 덮고 있는 모든 어둠과 죄악이 물러나는 사도행전의 역사가 이 땅에서도 다시 한 번 불일 듯 일어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대구서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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