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말 4:4-6, 눅 9:28..

  • 잡초 잡초
  • 2827
  • 0

첨부 1


제목 :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Moses and Elijah vs. John the Baptist and Jesus Christ)
성경 : 말 4:4-6, 눅 9:28-32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모든 성경은 예수로 보아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모든 말씀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인데, 이 구속사의 정점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뚝 서 계십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라고 하셨습니다.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은 “구약에서 복음의 모든 진리를 찾아야 한다” 라고 했고, 종교개혁의 기수 마틴 루터는 “성경의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라고 했습니다. 
  신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기독교회의 영원한 임무요 또한 과제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계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의 비유를 가져온다면 스케치와 완성된 그림 사이에 있는 유기적인 관계와 같습니다. 우리가 완성의 관점에서 첫 스케치를 돌아보는 것처럼, 완성된 신약 계시의 관점에서 구약의 스케치를 돌아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점진적(漸進的)입니다. 구약의 의미는 성경 계시가 발전하면서 더욱 심화되고 넓어져 신약으로 완성되며, 두 성경의 의미는 서로 유기적 조화와 통일성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의 발판을 딛고 신약으로 넘어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두 성경의 증거를 해석의 최종적 단계에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Christ-centered) 들어야 합니다.

  본문(말, 눅)에는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가 간략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 성경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세례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상호 연관성이 분명하고 그들의 사역에 분명한 통일성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오늘 우리는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 사역을 대표하는 엘리야, 그리고 이 두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변화산 위에서 홀연히 변화하신 예수님 앞에 구약의 인물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편적인 사건들이나 교훈을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놀랄만한 통일성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점진적으로 진행하여 마침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오직예수 신앙’ 을 더욱 굳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먼저 모세와 엘리야의 관계, 그리고 엘리야와 세례요한의 관계, 나아가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에 대하여 함께 살펴봅시다.  

1. 모세의 화신으로 나타난 엘리야와 엘리사
  말 4:4-5=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본문은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서의 결론이면서, 보다 넓게는 구약성경 전체의 결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의로운 심판날을 기다리는 경건한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말씀이고, 장차 초림과 재림으로 구원과 심판을 주도적으로 행하시는 메시야가 임하실 때에 갖추어야 할 영적 준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법(토라)와 율례와 법도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습니다. 여기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라는 말은 모세 당시의 광야 이스라엘에게만 국한 되지 않습니다. ‘온 이스라엘’ 은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언약 백성 모두를 총괄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토라’가 율법 전체를 포괄하는 표현이라면, ‘율례’(호크)는 토라를 일반 백성들이 구체적으로 시행하게 하는 구속력을 지닌 법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법도’는 토라의 각 규정들을 의미합니다.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복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법을 순종할 때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씨의 약속, 땅의 약속, 복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모세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배반하며 율법의 그늘에서 이탈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종 선지자들을 파송하여 이스라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셨고, 선지자들은 때로는 목숨을 걸고 불의한 세력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엘리야는 그 중 대표적인 선지자입니다. 열왕기서에 보면 엘리야는 여러 곳에서 모세의 화신(化身)으로 나타납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육지같이 건느던 것처럼(출 14:21-29) 엘리야는 요단강을 가르고 그 안을 걸어갑니다(왕하 2:8, 14). 
  모세가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의 탐욕과 불순종 앞에서 절망했던 것처럼(민 11:11, 21:4,5) 엘리야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 죽기를 청했습니다(왕상 19:4). 
  모세가 사십 주야를 산 위에서 지내던 것처럼(출 24:28, 34:28) 엘리야는 사십 주야에 걸쳐 광야를 걸어 시내산에 이르렀습니다(왕상 19:8). 그리고 엘리야는 모세처럼 시내산 모세의 동굴에서 하나님의 신현을 경험하고 음성을 듣습니다(왕상 19:11-14; 출 33:20-28).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새로운 모세의 화신으로 세우셨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자신의 영감을 제자인 엘리사에게 물려줍니다. 스승의 영감을 물려받은 엘리사 역시 새로운 모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모세가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고치듯이(출 15:23-26), 엘리사는 여리고의 죽음의 물을 생명의 물로 고칩니다(왕하 2:19-22).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내리도록 중보하듯이(출 16:31-36) 엘리사는 기근으로 고생하는 백성들에게 만나같은 양식을 제공해줍니다(왕하 4:42-44). 이리하여 모세의 사역은 엘리야와 엘리사에게서 반복되며 심화(深化)됩니다.

  그뿐입니까?  선지자직의 계승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성령 충만하게 하듯이(신 34:9),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영감의 갑절을 유산으로 주고(왕하 2:10,15) 선지자의 직무를 상징하는 겉옷을 유산으로 남깁니다. 두 선지자의 계승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하나님께서 원래 엘리야에게 맡기신 일 가운데 아람 장군 하사엘과 북이스라엘 장군 예후에게 기름부어 왕을 세우는 일을 제자인 엘리사가 수행함으로써 스승의 사명을 제자가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흐름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이 바뀌더라도 거침없이 이어집니다. 열왕기의 본문에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에는 거의 완벽한 사역의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엘리야가 삼년 기근 중에 사르밧 과부에게 ‘병의 기름이 끊어지지 않는 기적’을 베풀어 주었듯이(왕상 17:16), 엘리사는 한 선지자의 과부에게 ‘끊어지지 않는 기름의 기적’을 베풀어 모든 부채를 갚게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중보기도로 살려낸 것같이(왕상 17:22), 엘리사는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중보기도로 살려냅니다(왕하 4:34).
  엘리야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은 것과 같이(왕상 19:12), 엘리사는 아람왕의 궁궐과 침실에서 이루어지는 군사작전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왕하 6:8,10).
  그뿐 아닙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이 보내신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승천하였으며(왕하 2:11), 엘리사는 하나님이 보내어 도단성을 에워 싸게 한 ‘불 말과 불 수레‘로 보호받았습니다. 두 선지자는 모두 ’이스라엘의 전차와 기병‘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왕하 2:12; 13:14).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를 보내시고,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셔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오셨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화신으로 보냄 받은 엘리야와 엘리사의 모습과 사역을 통하여 언약을 성취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사역 패턴을 발견합니다. 수백년을 사이에 둔 그들의 사역에는 분명한 통일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단순히 신약에 이루어진 어느 한 사건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장구한 세월동안 하나님의 열심으로 줄기차게 이루어 오신 구원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정점에 우뚝 서신 예수 그리스도!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오직예수 신앙’ 입니다. 할렐루야! 


2. 엘리야의 화신으로 나타난 세례요한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구약성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엘리야가 다시 올 것’ 이라는 예언으로 마칩니다. 여기 ‘장차 올 엘리야’는 모세의 후예로서 인간 사회 갈등의 축도(縮圖)인 ‘부모와 자식’ 사이에 참된 화해를 이룰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장차 올 엘리야’는 과연 누구입니까? 

  구약의 예언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추적하고 있는 누가는 누가복음 초두에서 말라기의 예언이 세례요한에게서 성취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눅 1: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눅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예수께서도 세례요한이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혔을 때 요한의 사역과 임무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11:12-14=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성도 여러분!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사역을 계승하기 위해 세우신 엘리야의 화신입니다. 그는 또한 뒤에 오실 그리스도의 사역을 준비하기 위해 파송 받은 ‘왕의 길을 닦는 자’입니다. 그가 얼마나 엘리야를 닮았는지 보십시오. 

   세례요한은 엘리야처럼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고 살았습니다(왕하 1:7-8; 마 3:4).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회개를 요구하고(왕상 18:21, 39) 광야에서 지내던 것처럼(왕상 19:1-18), 세례요한은 유대광야에서 곧 임할 하나님 나라를 전하면서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요한은 자신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광야에 외치는 소리’ 로서, 돌아온 엘리야의 화신으로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엘리야가 그랬던 것처럼 한평생 적대적인 정치권력과 맞서 싸웠으며, 특히 왕비에게서 심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의 핍박으로 거의 사지로 몰렸는데, 세례요한은 헤롯의 부인 헤로디아에 의하여 목베임을 당하였습니다. 

  좀 더 나가봅시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분명한 통일성을 가지고 전개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계승 패러다임은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에 적용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계승이 요단강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세례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승도 요단강에서 이루어집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계승 시간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갔는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하늘이 열렸습니다(마 3:16).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감의 갑절을 물려받은 것처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렸습니다(마 3:16).
  엘리사가 엘리야를 계승한 후에 여리고의 선지생도들은 ‘엘리야의 영이 엘리사 위에 임했음’을 알고 그 앞에 꿇어 엎드렸는데, 예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는 증거가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 언약의 모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이처럼 세심하게 세례요한을 준비하시고 그의 사역을 주장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시는 길을 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  모든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오직예수 신앙’을 더욱 공고히 하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모세와 엘리야의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신약성경을 표면적으로 살펴보면 세례요한과 엘리야, 예수님과 엘리사 사이의 연대성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이 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복잡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구약 계시의 완성자로서 엘리야와 엘리사의 사역을 완성할 뿐 아니라 그들보다 더 큰 분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 오셨고, 아브라함의 씨로 오셨으며, 모세의 율법을 완성하신 분으로서, 모든 율법과 모든 예언의 마침이 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교훈과 사역이 어떻게 율법과 예언의 성취가 되는지를 좀 더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엘리야의 사역을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행하신 취임설교 가운데,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전하시며 이 사건이 자신의 사역으로 완성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눅 4:16-30, 특히 23-29절).
  눅 4:25-26= “엘리야 시대에...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이 설교 때문에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엘리야가 두로의 사르밧 동네에 가서 주님의 은혜를 전한 것처럼(왕상 17:8-16), 예수님도 두로 지경을 다니시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셨고, 특히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 그 딸을 고쳐주셨습니다(막 7:24-30).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기도로 살린 것같이(왕상 17:17-24), 예수께서는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눅 7:11-17).

  예수님은 또한 엘리사의 사역을 완성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렛 취임설교에서 자신이 엘리사의 사역을 완성할 것을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눅 4:27). 
  엘리사가 선지자가 된 후 첫 사역으로서 여리고의 쓴 물을 단물로 변화시킨 이적을 행한 것같이(왕하 2:20-22), 예수님은 공생애 첫 사역으로서 가나 혼인잔치에 가셔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요 2:1-11). 
  엘리사가 수넴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것처럼(왕하 4:32-37),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고(막 5:35-43), 또한 수넴에서 아주 가까운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셨습니다(눅 7:11-17).
  그뿐입니까? 엘리사가 아람 장군 나아만의 나병을 고친 것처럼(왕하 5:14), 예수님도 나병환자들을 고치셨습니다(마 8:2). 

  여러분, 엘리사가 죽어 장사된 후 묘실에 안치되었을 때에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부딪히자 죽음에서 깨어 일어난 것을 기억하십니까?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도적 떼를 보고 그의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섰더라”(왕하 13:21).

  이와같이 예수님은 죽어 시체가 되어 냄새나던 나사로를 살리시며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증거하셨습니다(요 11:25-26). 우리가 잘 아는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3-54).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이처럼 구약의 사역을 계승하시면서도 이를 완성하시는 면에서 앞서의 모든 주의 종들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지만 정작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서 성령세례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세례요한을 잉태한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하자, 태아 요한은 태아 예수를 느끼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뛰놀았습니다(눅 1:41). 즉 태아 예수로 인하여 태아 요한은 성령의 부으심을 받은 것입니다. 후일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고 증거했습니다.  
  눅 3:16=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선지자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능력의 선지자 엘리사는 죽어 장사되어 무덤에 머물지만(왕하 13:22), 예수님은 친히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고(롬 1:4), 이를 통해 선지자 엘리사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부활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함으로 그의 사역을 완성하였지만(왕하 2:11), 우리 예수님은 승천하셨을 뿐 아니라 이제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행 1:9-11). 장차 주님은 심판주로 재림하셔서 선지자 엘리야를 포함한 진리에 속한 모든 성도들에게 그 행한 대로 면류관을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역사적인 믿음입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참으로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차질없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율법과 예언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열심을 가진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통하여 언약을 이루어 오신 하나님은 마침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 변화산 위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을 대표하는 엘리야의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모든 율법과 예언과 시와 지혜를 기독론적이며 종말론적으로 완성하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복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모든 계명과 교훈이 우리를 위해 주신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 모든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믿는 자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건져 내신 사실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생애동안 최선을 다하여 예수님을 닮아가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이제 속히 오셔서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계 22: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대구서현교회)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