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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 (막 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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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 (막 10:2~12)

 
어떤 목사님의 아주 솔직한 고백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와 아내는 달라도 지나치게 다릅니다. 나는 종달새형 인간입니다. 새벽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늘 잠을 설치게 됩니다. 그런데 아내는 올빼미형 인간입니다. 밤새도록 부엉부엉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다는 말입니다. 나는 물 한 컵을 마셔도 마신 컵을 그 즉시 씻어 놓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또 언제 해도 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런데 아내는 그게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찬장에서 더 이상 꺼낼 그릇이 없을 때까지 꺼내 쓰다가 한꺼번에 몰아서 설거지를 하고 결국에는 몸살이 납니다. 

도대체 맞는 구석이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이지만 아내는 막상 떠나야 할 시간에 화장을 시작하는 스타일입니다. 그것도 가까이 가서 보면 참으로 가관입니다. 화장품 뚜껑이라는 뚜껑은 다 열어 놓습니다. 나는 그게 참을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화를 벌컥 냅니다.
'아니, 이렇게 두고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면 향은 다 날아가고... 뭐 땜에 비싼 돈 주고 화장품을 사? 차라리 맹물을 찍어 바르지...'

나는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킨 적이 거의 없습니다. 견디다 못해서 나는 성경책까지 들이밀었습니다.
'여보, 예수님이 부활만 하셨으면 됐지 뭐 때문에 그 바쁜 중에 세마포와 수건을 개켜 놓으셨겠어? 당신 같이 정리 정돈을 못하는 사람에게 정리 정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 주고 싶으셨던 거야.'
그런데 하루는 그렇게 아내를 닦아세우고 있는 제 귀에 이런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야, 이놈아! 네가 좀 하면 큰일나니? 잘 못 하니까 너하고 붙여 놓은 것 아니니?'"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택하여 부부로 맺어 주셨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인간 관계 중 가장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부로 맺어진 남자와 여자도 서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함께 사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부부가 함께 있으면서도 서로 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다 보면 부부 싸움이 되기 쉽고 그것이 좀 더 발전하면 사냐 못 사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마가복음 10장 2절 이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이혼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매우 도발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마가복음 기자는 이혼에 관한 그들의 질문이 예수님을 해치려는 목적에서 시도되었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막 10:2)
여자를 완전히 무시한 가부장적인 사고를 전제로 한 질문이었습니다. 아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 아니 유대인 남자들의 남성 우월적인 사고 방식이 그대로 드러난 질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애당초 그들은 율법의 논리로 예수님을 공격하려는 의도 외에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질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그들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반문하셨습니다.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막 10:3)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막 10:4)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막 10:5)
무슨 말입니까? 유대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이혼 증서만 써 주면 얼마든지 이혼해도 좋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혼을 억제하기 위해서 모세가 그렇게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모든 것이 확실해지지 않습니까?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막 10:6~9)

예수님에게 있어서 진짜 중요한 것은 여자와 남자의 결합이 지니는 근본적인 뜻을 사람들이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결합은 법적 문제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즉 부부가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때문에 남편이 별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매우 그릇된 행위라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혼에 관해서 전혀 새로운 교훈을 선포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막 10:11~12)
예수님은 이혼의 책임을 전적으로 여자에게만 덮어씌우려는 바리새인들을 아주 무안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신성한 결혼의 주체로 세우시고 그에 따른 쌍방의 책임을 분명히 깨우쳐 주셨습니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갈등을 겪고 있는 젊은 부부를 상담하는 상담 전문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불타는 건물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있습니다. 그 문은 바로 이혼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은 그 열쇠를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힘을 합해 불을 끄십시오. 왜냐 하면 그 열쇠를 보고 언제든지 빠져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두 사람은 전력을 다해서 불을 끌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평생 서로가 서로에게 헌신하는 것이지 언제든지 그만 둘 수 있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각자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래도 그만큼 가치가 있습니다. 전도서 기자도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도서 4장 9절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그렇습니다! 어려운 문제가 닥칠지라도 두 사람이 힘을 합하면 훨씬 더 쉽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결혼이란 두 인격체의 결합입니다.
이 결합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고 예수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결혼을 자신들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고 착각하고 있는 우리의 결혼관과는 매우 다른 관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결합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 결합에는 남자와 여자 모두의 책임이 요구됩니다. 그런데 자신의 유익과 상대의 희생만 강요한다면 진짜 사랑을 맛볼 수 없습니다. 

남는 것은 오히려 환멸뿐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것처럼 결혼 생활에서도 서로가 종의 자세로 섬길 때 그 결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신성한 결합이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가정은 하나님 나라의 전초 기지로서 이 땅 위에서 그 맡은 바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시 사회의 풍습에 따르면 결혼이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서 가문과 가문의 결합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의 결혼은 아버지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따라서 그 당시 한 여자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남편의 가문에 속하게 되는 사회적 풍습에 해당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혼이란 가문 간의 결속을 와해시키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약자의 대명사는 여성들, 특히 이혼 당한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모든 가치 판단을 정결과 부정이라는 잣대로 재단하던 당시 사회에서 이혼 당한 여성들은 꼼짝없이 더러운 죄인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여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는 이런 약자들에게 가장 먼저 적용될 것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이었습니다.

억울하게 이혼 당한 여성들과 같이 피눈물이 나는 상황에서도 어디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약자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될 수 있다는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오늘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직도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사고 방식이 몸에 배어 있지 않습니까? 약함보다는 강함을 좋은 것으로 착각하고 숭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다만 정치, 경제, 사회 문제만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한국 교회도 크고 화려한 것만 추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오히려 소외되고 잊혀진 약자들이야말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오늘 한국 교회는 이런 주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속히 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의 교훈은 단순히 결혼과 이혼에 대한 교훈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좀 더 넓은 이해를 촉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쉽게 외면하고 또 소외시키는 사회적 약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곁에서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김으로 말미암아 이 순례의 길을 마칠 때에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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