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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조금 더가 아니라 조금 덜 (출 16: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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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가 아니라 조금 덜 (출 16:13~36)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출 16;17-18)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와서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놀라운 양식이었습니다.

1. 은총의 양식이었습니다.

사람은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은 양식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양식입니다. 하나님 100, 인간 0 양식입니다.

2. 충분한 양식이었습니다.

200만명이 40년 동안 농사나 목축을 전혀 하지 않았어도 굶어 죽었다고 하는 기록이 하나도 없습니다. 충분하였습니다. 양식 때문에 싸웠다는 말도 없습니다. 200만명이 40년 동안 먹고 살기에 충분한 양식이었습니다.

3. 장기적인 양식이었습니다.

40년 동안이었습니다.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는 희안한 지역입니다. 장기적으로 하나님은 만나로 이스라엘 백성을 먹여 주셨습니다.

4. 영원히 기억할 양식입니다.

오늘 날 모두가 만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나라고 하는 이름이 많습니다. 교회 이름도 만나, 식당 이름도 만나, 사업체 이름도 만나가 많습니다. 기억할 양식입니다.

5. 신비한 양식입니다.

이제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농사지은 양식을 먹기 시작하자 그쳤습니다. 여호수아 5장은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또 신기한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었습니다. 적당히 거두어야 했습니다.
만일 더 거두면 남는 것이 없었습니다. 덜 거두워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욕심스럽게 <조금 더> 거두지 말고 <조금 덜> 거두었으면 마음에 여유도 있고 같은 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덜.>

이런 삶은 우리에게 여유를 줍니다.
이런 이야기로 말씀을 열려고 합니다.
예수를 믿다가 돈벌이에만 정신을 잃은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중고차 자동차 판매없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누군가의 안내를 받아서 지옥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누구나 소망을 버려라.>
섬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지옥문을 열고 들어 섰습니다. 돌아 가신 아버지가 그 곳에 계셨습니다. 지옥에서 아버지를 보니 너무나 반가워서 끼어 안았습니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dI! 이 놈아! 네가 어쩌자고 이 곳에 왔느냐? 내가 너를 출세 시키려고 물질을 모았다. 조금 더, 조금 더 하고 아둥 바둥대었다. 누가 교회에 가자고 할 때 거절하고 돈만 벌어서 너를 주었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 곳까지 쫓아 왔느냐?>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차라리 제가 가난하였더라면 이런 곳에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돈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정직하였을 것입니다. 가난하였으면 교회에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너무 많은 돈을 물려 주셔서 허랑방탕하며 살았습니다. 조금 더 놀자, 조금 더 즐가지 하며 죄를 짓다가 여기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조금 더>가 아니라 <조금 덜> 하였으면 결과가 좋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을 합니다.
<예수 닮기 원합니다. 이 내 맘에. 이 내 맘에.
예수 닮기 원합니다. 이 내 맘에.>
예수님의 생애를 한 마디로 말하면 <조금 더>가 아니라 <조금 덜>의 삶이었습니다.

1. <조금 덜> 자자.

예수님은 늘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기도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셨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 1:35)
믿음의 사람들은 우선 잠을 덜 자야 합니다. 잘 것을 다 자고 할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하루 일과는 기도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24;33-34)
큰 일을 한 사람들의 특징은 잠이 적은 사람들입니다. 게으른 사람일수록 잠이 많습니다. 예수님처럼 잠을 조금 덜 자고 아침에 기도로 시작하여야 합니다.

2. <조금 덜> 편하자

예수님의 삶은 육신을 편하게 지내려고 애쓰신 생애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서 길거리에서 낳으셔서 길거리에서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으시고 길거리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마 8:20)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을 다니시면서 오직 복음만을 전하셨습니다.
육신적으로 편하게 살려고 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조금 덜> 편안하게 사셨습니다.

유대인들 600만명을 학살한 히틀러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히틀러가 사형언도를 받을 때 옆에 본회퍼 목사님이 방청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판사가 일일이 죄상을 심문하였습니다. 그리고 사형언도를 내리기 전에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있는가?>
그 때 히틀러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지상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합니다. 나는 지옥에 가서도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할 것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내 옆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알려 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솔직히 말합니다. 나는 지옥에 가는 것이 억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내게 알려 주지 않아서 지옥에 가기에 나는 지옥에 가서도 그리스도인들을 증오할 것입니다.> 그 때 히틀러 옆에 그리스도인들이 조금 덜 편하기를 거절하고 전도하였더라면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600만명씩이나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큰 일을 저지를 사람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조금 덜> 편안하고 일하여야 합니다.
프레드릭 오라토 박사가 조사한 결과 보고가 있습니다. 

요즈음 성도들이 잠 자기 좋아 하고, 편하기 좋아 하면서 정식적인 신앙 생화를 하지 않는다는 보고입니다. 교인들이 100명인 교회를 조사하였습니다.

5명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20명은 기도를 한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25명은 성경을 전혀 읽지 않았습니다.
30명은 예배에 자주 결석하였습니다.
40명은 헌금을 하지 않았습니다.

50명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60명은 오후 예배에 전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80명은 특별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90명은 가정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95명은 한 평생 단 한 명도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놀기 좋아 하고 편하게 예수 믿고 싶어하였습니다.

3. <조금 덜> 말 하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고 들어 보면 단 한 마디도 쓸 데 없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필요한 말만 기록하였겠지만 분위기를 보면 결코 실수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목수는 재목을 자를 때에 세 번 재로 단 한번에 자른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몇 번 생각하시고 한번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덜> 말하는 것이 예수님의 언어생활이셨습니다.

아프리카 선교에 일생을 바친 리빙스턴이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학위를 받기 전에 간증을 하였습니다. 리빙스턴은 이런 간증을 하였습니다.
<너무 힘들었습니다. 짐승들의 공격이 무서웠습니다. 토착민들의 방해가 너무나 심하였습니다. 병의 고통도 컸습니다. 한 쪽 팔은 사자가 물어 뜯어 먹었습니다. 그래서 팔 불구가 되었습니다.>

간증이 끝나자 한 학생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교사님!
그런 환경속에서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리빙스턴이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단 한 가지 비결이 있다면 마태복음 28장 20절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이 말씀을 붙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리빙스턴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말없이 믿기만 하였습니다.
말없이 믿기만 하십시오. 말을 덜어 내십시오. 행동만 하십시오. 승리할 수 있습니다.

4. <조금 덜> 먹자

성경에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음식을 좋아 하셨다는 말씀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음식점에 가셔서 식사하셨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무슨 요리를 좋아 하셨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우리는 조금 덜 먹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내가 덜 먹고 남을 더 먹이자는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며칠 전에 아내와 뚝섬에 나갔습니다. 딸기 장수가 이동 자동차에 딸기를 진열하여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5천원 상당의 딸기를 주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4500원 정도 딸기를 담고 5000원 받으세요.>
그리고 그 분의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너무나 기분이 좋은 기색이었습니다.
내가 500원 정도 덜 먹고 500원 정도 기쁘게 하여 주었습니다.

어느 사람은 택시를 타고 보니 10,000원이 지갑에 들어 있었습니다. 집까지 10,000원 거리였습니다. 그는 택시 기사에게 1,000원을 주고 싶어서 9,000원 되는 거리에서 내려서 걸어서 집으로 가면서 택시 기사를 즐겁게 하여 주었습니다.
내가 조금만 덜 먹으면 상대방을 기쁘게 하여 줄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가 쓴 단편 소설 중에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하나?>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런 것입니다.
땅부자가 한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네가 돌아 온 땅을 모두 주마!>

그는 신이 났습니다. 그래서 해가 뜨자 말자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무나 신나서 한참을 뛰다 보니 해가 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그 자리로 해질 때까지 돌아 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있는 힘을 다 하여 떠난 자리로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간신히 떠난 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지쳐서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시체를 땅에 묻으면서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땅 한 평이면 족하다.> 우리는 덜 가지려고 하여야 합니다.
<조금 더>가 아니라 <조금 덜> 이런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5. <조금 덜> 살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조금 덜>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자는 자세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을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라고 소리를 지르고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오직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일을 다 이루시고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조금 덜 살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면 좋다는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가 바로 순교자의 자세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빌리 선데이 목사님이 시무하시는 교회 스로우건이 있습니다.

<60분간의 헌신>
나를 향하여 그리고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이 뜻 하시는 바를 알기 위하여 하루에 60분간 헌신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데에 사용할 시간을 아껴서 덜 쓰고 하나님을 위하여 시간을 60분만 내자는 것입니다.
15분은 기도하고, 15분은 말씀을 듣고, 15분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15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다른 데에 사용할 시간을 좀 덜 사용하고 하나님께 이렇게만 살면 믿음이 자라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만 줄여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조금 더>가 아니라 <조금 덜>의 자세로 사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그리시도의 종들입니다.
모래 사막에 자동차가 빠져서 바퀴가 헛 돌면서 빠져 나오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빠져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타이어에서 바람을 조금 빼냅니다. 그리고 운전하면 
헛 바퀴가 돌지 않습니다.

탄탄하게 바람을 많이 넣은 타이어보다 조금 덜 바람을 넣으면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처럼 <조금 덜>의 삶을 살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시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최 원만 시인이 쓴 <가난한 마음>이라는 시입니다.

출렁이는 바다보다 잔잔한 호수이고 싶다.
넘치는 강물보다 내 마음 골짜기 샘물이고 싶다.
요란스러운 나팔소리보다 세미한 풀벌레 소리이고 싶다.
궁궐안 조화보다 초토에 피어나는 들꽃이고 싶다.
높디 높은 바벨탑이기보다 냇물 흐르는 언덕위 초가 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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