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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사 왕의 처음과 나중 신앙의 교훈 (대하 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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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의 처음과 나중 신앙의 교훈 (대하 16:7~14) 

 
오늘은 우리 교회가 설립된 지 제19년이 되는 해입니다. 제가 부족해서 교회를 부흥시키지 못한 것이 제일 하나님께 죄송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진심으로 올려드립니다. 

▶기념 주일에 교회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눅 10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때려서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버리고 도망갑니다. 이때 그 길을 제사장이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를 보고도 못 본 척 피해갑니다. 또 레위인도 지나가는데 그를 보고도 못 본 척 피해 갔습니다. 그 때 마침 사마리아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 주고 주막집에 데리고 가서 돌봐줍니다. 
  
이튿날 사마리아 사람은 두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면서 '이 사람을 돌봐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 올 때 갚아 주겠소!' 부탁을 하고 떠나갔습니다. 

▶여기서 주막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⑴주막은 오늘날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맡겨 주신 사람들을 돌보는 곳입니다. 교회는 주막입니다. 예수님은 이 주막에 그러니까 우리 성림교회에 여러분들을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도들이 다 영혼의 강도를 만난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의 강도를 만나 주막에 왔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강도를 만나 다 망해 버리고 주막에 왔고,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환경에서 강도를 만나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주막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온 것이 아니고 사마리아 사람이 주막에 데리고 왔듯이, 주님이 우리를 불러 성령의 인도로 오늘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막에 왔다는 사실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요?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 사람을 만나 주막으로 인도되어 깨끗하게 치료받고 살아났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의 어떤 형편에서든지 강도 만났다 할지라도 오늘 이 자리가 치료받고, 해결 받고, 능력 받고, 축복 받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⑵주막집은 잠시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곳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은 주막집과 같은 나그네길입니다. 나그네가 고향을 찾아가듯이 우리는 더 나은 본향을 찾아가는 순례자들입니다. 히11:16절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사마리아인이 떠나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란 '주님이 심판 주로 다시 오실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⑶주막집 주인은 오늘 날 목사입니다. 
  
⑷주막은 나그네들이 밥을 먹는 곳입니다. 목사는 주막에 온 성도들에게 예배를 인도하며 말씀의 떡을 먹이는 일을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생명의 떡을 먹는 곳입니다. 밥을 잘 먹어야 육신이 건강하듯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  먹어야 영혼이 건강합니다. 
  
⑸주막집은 나그네들이 쉬어가며 안식을 얻는 곳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인생들을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여러분, 어떤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다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시55: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⑹주막집은 나그네들이 술을 마시는 곳입니다. 교회는 신령한 주막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새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술은 인생을 즐겁게 합니다. 노래하게 하고, 춤을 추게 합니다. 술은 놀이마당을 제공해줍니다. 한마디로 술 취하면 세상 살맛이 나듯이 성령의 새 술에 취하면 모든 것이 똑 소리납니다. 그래서 '성령 받아라 성령 받아라' 외치는 것입니다. 
  
슥4:6절 "이는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으나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할 수 있느니라." 
  
⑺교회는 어떤 곳인가?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이 말은 옛날 선지자 이사야가 한 말이고 그 다음에 주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서 봉헌했을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기도에 내가 눈을 들고 귀를 기울이니 이는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여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대하7:12,15,16). 
  
성림의 주막에 나그네들이여! 이곳에서 생명의 말씀의 떡을 먹고, 쉼을 얻고 성령의 새 술에 취하여 기도하다가 하늘 문이 열리는 축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1. 본문의 배경을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14-16장까지 '아사 왕'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던 솔로몬은 그의 마지막 생애에 많은 처첩을 얻어 치마폭에 빠졌습니다. 또한 첩들의 말만 듣고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우상과 사신을 섬겼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솔로몬이 죽고 난 후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나버렸습니다. 바로 지금의 우리 분단 된 조국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나라가 분단되고 난 다음 남쪽 유다에서는 제3대 왕으로 아사라고 하는 왕이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아사'왕의 이름의 뜻은 '의사, 혹은 치료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유다를 41년 간을 치리 하였습니다.  
  
아사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종교개혁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전국에 사람들을 풀어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우상을 훼파하고 아세라 목상을 찍어 없애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찾으며 율법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행하도록 전 백성에서 명령을 내렸습니다. 
  
또한 완벽한 국방을 위해 허물어진 성벽들을 재건하고 새롭고 튼튼한 성벽을 세웠습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은 아사 왕의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유다 나라를 크게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바로 그때 구스나라(지금의 에티오피아) 대왕 세라가 일백만 대군과 병거 삼 백승을 거느리고 유다를 쳐들어왔습니다. 아사왕도 군대를 정비하여 세라의 백만 대군을 맞아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유다의 병역 58만을 가지고는 거대한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을 감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아사 왕은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히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 앞에서 큰 소리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4:11절입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아사 왕이 엎드려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사 왕을 도와주셔서 아사 왕이 나가 싸우매 에티오피아의 백만 대군을 다 진멸하여 한 사람도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전쟁에서 노략한 물건이 심히 많았습니다. 이렇게 대승을 거둔 유다 군사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춤을 추면서 유다로 돌아왔습니다. 유다로 돌아온 아사 왕은 온 국민과 함께 소 700마리, 양 7,000마리를 잡아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사 왕은 더 더욱 하나님만을 잘 섬기기로 작정하고 누구든지 국민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사람은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아사 왕이 하나님을 섬기기로 얼마나 굳게 결심하셨든지 그의 어머니 마아 태후가 아세라 목상을 만든 것을 보고 자기의 어머니인 태후의 위를 폐하고 아세라 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 가서 불살라 버렸습니다. 
  
아사 왕이 이와 같이 일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기자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축복을 부어주셔서 그야말로 유다 민족은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려 20년 동안 어떠한 이웃나라도 감히 유다를 넘겨다보지 못하게 되었고, 유다는 점점 더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20년 동안 나라가 부강하고 태평성대를 누리자 그만 아사 왕의 신앙이 시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앙은 무엇인가 이루어졌을 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등 따습고 배부르면 딴 생각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사 왕도 그렇게 여호와만 찾던 신앙이 꺼져버리고 오직 세상 쾌락에 푹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육적인 쾌락을 쫓아 세월을 보내는 아사 왕에게 북방 이스라엘의 왕 바아사가 군대를 거느리고 유다를 쳐들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바아사 군대가 그 옛날 에티오피아의 군대에 비하면 훨씬 약함에도 불구하고 아사 왕은 마음속에 두려움으로 가득 차 하나님께 기도하기는커녕 곧장 예루살렘 성전으로 뛰어가 성전에 있는 금은보화를 모았고, 또 왕궁으로 돌아와 왕궁에 있는 금은보화들을 취하여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면서 지원병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대가 북 이스라엘을 치게 하였고, 결국 북 이스라엘은 아람군대와 싸우느라 유다의 공격을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시 유다의 선견자 하나니가 아사 왕을 찾아와 아사 왕을 엄히 꾸짖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본문 7-8절이 바로 그 내용인데 의역해서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왕이여! 어떻게 이렇게 망령된 일을 할 수가 있습니까? 20년 전에 구스의 백만 대군을 당신의 군대가 많아서 이겼습니까? 무기가 좋아서 이겼습니까? 그 때 왕이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셔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어찌하여 망령되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백성들이 헌금해 올린 금은보화와 왕궁의 금은보화를 취하여 믿지 않은 이방나라 아람 왕에게 주고 북 왕국을 치게 해서 이 난국을 모면하려고 합니까?"
  
이 말을 들은 아사 왕은 대노하여 하나님의 종 하나니를 옥에 가두고 그의 말에 동조하는 백성들을 학대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 3년 후에 아사 왕의 발에 병이 났습니다. 그런데 병세가 아주 심해 백방으로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해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주신 병은 아무리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도 낫지 않습니다. 아사 왕은 병으로 많은 고생을 하다가 2년 후 쓸쓸히 죽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12-13절이 당시 아사 왕의 최후의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아사가 위에 있은 지 사십 일년에 죽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오늘 우리는 '아사 왕이 하나님께 잘했을 때 받았던 축복은 무엇이며, 하나님을 떠나 징계를 받을 때 그 원인과 결과가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함께 우리의 신앙에 교훈을 삼아 그가 잘한 면만 잘 배워 신앙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2. 아사 왕의 처음 신앙과 업적은 무엇인가? 

①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했습니다(14:2). 
  
14:1절을 보면 그가 나라를 다스리던 기간 동안 10년이 평안했다고 했습니다. 천재지변이 겹치고, 대형사건이 터지고, 조정 안팎에서 문제가 터지면 그 나라는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종교를 개혁했고 조정 안팎의 부정을 개혁했습니다. 그는 성을 재건했고 군대를 강화하고 국방을 든든히 했습니다. 우상을 제거해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했고 자신의 신앙 관리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사가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다'는 기록입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의 평가 기준에서 점수를 딴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인물평가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무엇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평가의 기준입니다.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하고 인기가 있어도 하나님 보시기에 점수가 낮은 왕, 지도자, 개인은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은 8형제의 막내였습니다. 사울 왕의 서슬이 퍼렇던 어느 날 사무엘 선지가가 베들레헴 이새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이새의 아들 가운데 사울 왕의 뒤를 이어 왕 될 사람을 뽑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사람씩 개별면담을 시작했습니다. 일곱째 아들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이 '더 이상 아들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 이새는 '막내가 하나 남긴 했습니다만 기대를 걸만한 위인이 못됩니다.' '어디 있느냐?' '들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서 불러오도록 하라!' 
  
이렇게 해서 막내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키도 작고 모습은 초라했고 몸에는 짐승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보는 순간 하나님의 영감이 임했습니다.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저에게 기름 부어 타락한 사울 왕의 뒤를 이을 왕으로 삼으라."는 것이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한 사람, 진실한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②종교를 개혁했고, 종교를 부흥시켰습니다. 
  
▶먼저 우상을 타파했습니다. 14:3절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이하고 주상을 훼파하며 아세라 상을 찍고" 그리고 5절은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 상을 없이하매" 또 15:16절 "아사 왕의 모친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 태후의 위(位)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대한 반역행위입니다. 여기 '아세라 상'은 주로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여신상으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신인데 바알 제단에 함께 세워졌고 이곳에서 온갖 성적 부도덕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태양 상'은 고대 동방에서 널리 숭배했던 우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한 때 이 신을 섬겼습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을 과감히 타파함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했습니다. 
  
그의 종교 개혁의 강한 면은 태후이며 모친인 마아가가 아세라 우상을 섬길 때 태후의 위(位)를 폐하는 데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사사로운 인정이나 혈통에 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추진해 나아갔습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그 누구와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강한 신앙의 의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사 왕의 종교개혁의 첫 칼날은 우상을 무너뜨리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절대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계명을 주실 때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러분, 우상의 개념은 부처나 무당이나 점을 치는 것만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시기 바랍니다. 
  
③하나님을 향한 예배 운동에 앞장섰습니다(14:4). 
  
아사 왕은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찾으라.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라'고 준엄한 명령을 내렸습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로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요4:23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러분, 예배성공이 인생 성공입니다. 
  
사명 중에 제일 큰 사명이 무엇입니까? 성전건축입니까? 아닙니다. 바른 예배가 우리의 사명입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목숨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④아사 왕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우상을 타파한 후 하나님은 그 땅에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보면 평안할 때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험이었습니다. 
  
구스 사람 세라는 군사 백만과 병거 삼백 승으로 유다를 침공했습니다. 그 때 유다의 군사는 58만 명뿐이었습니다. 수적으로 보나 무기로 보나 유다는 열세였습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구스의 일백만 군대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또 한번 14:11절을 보겠습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소리가 무슨 소리인줄 아십니까? 바로 기도소리입니다. 그 어떠한 소리로도 하나님을 깨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깨울 수가 있습니다.  
  
기도의 위대한 능력은 불가능을 가능케 만듭니다. 백만 대군이 모조리 박살났습니다. 마19:26절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기도의 응답은 14: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을 아사와 유다 사람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구스 사람이 도망하는지라" 적군을 완전히 멸하고 모든 성읍을 치고 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백만 대군을 깨뜨린 것입니다. 누구의 역사입니까?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인생에게 닥치는 모든 어려움과 환난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도할 때 해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기도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환난 중에도 기도하면 지금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홍해가 지금도 갈라집니다. 여리고가 지금도 무너집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어떤 축복이 있는가? 
▶내가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더욱 좋아집니다. 
▶응답이 오고 기적을 체험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더 큰 축복을 바라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전화위복이 되는 기회가 됩니다. 
  

⑤정치도 잘했습니다. 
  
14:6절에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해 싸움이 없은지라 저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또 7절을 보면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이네 저희가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그러니까 아사 왕을 국방을 튼튼히 한 사람이요, 정치적으로는 새로운 건설을 시도함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3. 믿음으로 산 아사 왕에게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셨습니까? 

①승리자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구스의 막강한 백만 대군을 물리쳤습니다(14:12). 그 전쟁터에서 누가 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싸우고 있습니다. 
  또한 그 전쟁에서 많은 전리품을 얻었습니다. 아사 왕이 스스로 싸워서 얻은 전리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에게 오늘도 이런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②평화가 넘쳤습니다. 
  
14:1절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 시대에 그 땅이 십 년을 평안하니라' 또 6절에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또 7절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느니라'  이 복이 가장 큰 축복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③모든 국민이 아사 왕을 전심으로 따랐습니다. 
 
 15:9절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고 아사에게로 돌아오는 자가 많았음이더라" 한마디로 인기 순위 1위입니다. 지금 여야의 대권주자들이 피 투기는 싸움이 무엇입니까? 인기 순위 1위 때문입니다. 아사 왕은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습니다. 정치는 여론이 제일입니다. 

  
▶그런데 왜 그토록 하나님만 의지했던 아사 왕이 나중에 가서는 신앙을 잃어버리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20년의 태평세월을 주셨는데 그 세월에 그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다는 것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문제가 터지고, 사건이 생기고, 곤고가 오면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사업이 어렵습니다.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은 기도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마7:7-8절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기도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응답 받고 난 뒤부터입니다. 축복을 받고 난 뒤부터가 신앙의 위기가 옵니다. 어떤 사람은 물질의 축복, 사업의 축복을 받아 살만하게 되니까 슬그머니 하나님 편에서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어려움 당하다가 치료받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님을 떠나가 버립니다. 그러나 그들이 머지않아 다 두들겨 맞고, 잘못을 알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자들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복음이 성황 하던 영국이나 미국이 잘 살게 되니까 세속으로 다 빠져나가 하나님의 성전이 텅텅 비어 예배당이 술집으로 둔갑하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도 축복의 땅일 수 없습니다. 
  
지금 미국의 상황을 보십시오. 태풍으로 강풍으로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지진으로 사람들이 죽어갑니다. 며칠 전에는 미국도 우리나라 성수대교가 무너지듯이 다리가 무너져 사람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골치가 아픕니다. 
  
본문의 아사 왕은 20년의 태평세월을 보내면서 이 세상의 연락을 취해 신앙을 잃고 타락했다가 끝내는 죽음을 맞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10:12절에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3. 믿음이 떨어진 아사 왕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①인간적인 육신의 방법을 취했습니다. 
  
아사 왕은 신앙이 곤두박질치니까 문제가 왔을 때 하나님의 신령한 믿음의 방법을 취하지 아니하고 인간적인 육신의 방법을 취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유다를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허둥거리며 자기의 명철을 이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소유인 성전의 금은과 왕궁의 금은을 가리지 않고 아람 왕에게 뇌물로 주면서 '당신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동맹을 맺고 화친한 것처럼 당신과 나도 화친조약을 맺자. 이 금은 보화를 바칠 터이니 이걸 받고 이스라엘 군대를 쳐주시오' 하고 매달렸습니다. 
  
여기에서 아사 왕이 성전의 금은을 내어 준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은 범죄보다 더 큰 죄악으로 하나님을 팔아 넘긴 악행입니다. 
  
②선지자와 백성들을 학대했습니다. 
  
아사가 뇌물로 아람 왕 벤하닷을 불러들여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했을 때 선지자 하나니가 아사 왕에게 책망을 합니다. 
  
16:9절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은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라"고 불행의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이때 아사의 태도가 10절에 나오는데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 마음을 강하게 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으나 이제는 선지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선지자를 핍박했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않는 극에 달한 인간의 교만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한 선지자의 부당한 투옥에 항의하는 백성중의 몇 사람을 학대함으로써 자신의 죄악을 은폐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다윗과 너무 대조적입니다. 
  
다윗 왕은 밧세바와 간음죄를 지었고 우리야를 죽이는 살인죄를 저질렀으나 하나님의 종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을 받은 다윗은 왕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삼하12:13)고 하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심령을 붙잡으시고 다시 축복해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죄를 내어놓고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진리의 음성 듣기를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고 교만이 극에 달한 증거입니다. 
  
③아사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역사마다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경고하십니다. 우리가 인생 길을 걸어갈 때 잘못된 길을 걸어가면 성령께서 주의 종의 입을 통해 경고하십니다. 또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두 날 가진 검같이 우리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며 말씀으로 깨닫게 해주십니다. 
  
어떤 때는 위로를 해주시고 어떤 때는 책망을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되어질 때 가차없이 책망을 하십니다. 
  
좋은 의사는 병들었을 때 병들었다고 지적해줍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당신은 건강하다, 괜찮다, 살 수 있다'고 거짓말해서 환자가 아무런 준비 없이 죽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잘못된 것은 말씀의 검으로 찢고 수술하십니다. 아사 왕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저버린 사람입니다. 회개의 기회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선견자 하나니가 와서 꾸짖을 때 다윗처럼 보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통회하며 자복했더라면 하나님은 아사 왕을 일으켜 주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꾸짖으실 때 버리기 위함이 아니라 더욱 가깝게 하기 위함입니다. 
  
④아사 왕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버림을 당했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쳐들어 왔을 때도 기도하지 않았고, 그가 발에 중풍이 걸렸을 때도 기도하지 않고 의사를 불러 열심히 치료하였습니다. 
  
마9:12절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의사에게 치료받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플 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보통은혜의 수단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병원에 치료를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술을 통해서도 치료해 주시지만 어떤 병은 하나님이 기도를 통해서 치료하십니다. 
  
약5:15-16절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아사 왕은 병이 점점 심해졌을 때 의원들에게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의원들은 주술사였습니다. 미신적인 방법으로 치료하는 시대였습니다. 12절에 '아사가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의원을 복수로 표기한 것은 많은 의사들의 도움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4. 오늘 아사 왕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신본주의로 시작하였다가 인본주의로 끝나버렸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의 통치 말년에는 하나님보다는 인생을 의지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며, 선지자까지 옥에 가두는 처절하리만큼 실패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종말은 병들어 쓸쓸히 죽어간 것입니다. 그것도 큰 병이 아니라 발병이 나서 죽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아사 왕에게 하나님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큰 축복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할 때 조건, 환경을 열어주십니다. /아멘!/ 
아사 왕은 믿음이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일을 시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금족령을 내린 것입니다. 아사 왕의 발병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믿음으로만 합니다. 어린아이의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광주리를 남기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은혜로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기도로만 할 수 있습니다. 돈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능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힘입니다. 믿음이 능력입니다. 또 은혜가 있어야 하고,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5.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훈대로 살아야 합니다. 아사 왕처럼 태평성대 때 더욱 깨어 기도합시다. 기도는 저축입니다. 문제가 터지면 오히려 기도할 수 없습니다. 신앙이 평탄할 때 더욱 믿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장님에게 기자가 찾아 왔습니다. '요즈음 어떠세요. 고생이 많으시지요?'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밖에 알리지 못해 그렇지 노사문제, 공장 안에 크고 작은 사고, 인사 관계, 제품관계 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루 하루를 지나세요?' 그러자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거지요. 어디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있습니까? 믿고 맡기고 사는 거지요.' 
  
옳습니다. 내가 가정을 책임지고, 회사를 책임지고, 직장을 책임지고 살려고 생각하면 단 하루도 발뻗고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주님께 맡기면 나는 평안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려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14:1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①깨어 기도합시다. 
  기도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합시다. 게으르고, 나태한 일, 교만한 일, 인본주의로 살았던 일들을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꼭 깨닫게 작업을 하십니다. 잠16:18절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②말씀으로 삽시다. 마4:4절에서 우리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롬10:17절에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로 사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을 삽니다. 인간의 수단과 방법대로 살지 않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저서인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에 보면, 모든 최종적인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따른다'고 고백했습니다. 
  
신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경건은 고된 훈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신앙은 훈련입니다. 훈련은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과의 피나는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인생을 동업한 사람들입니다. 동업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멀리하면 아사 왕처럼 되고 맙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믿음으로 삽시다. 은혜로 삽시다. 깨어 기도합시다. 처음과 나중이 같아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믿음으로 우리를 온전히 인도하는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의 마음을 품고 위를 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승리의 길입니다. 
  
히10:38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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