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교회 (사 60:19~22)

  • 잡초 잡초
  • 1154
  • 0

첨부 1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교회 (사 60:19~22)

 
지난 주간에 인터넷을 보다가 어떤 경상도 아주머니께서 이런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원문 그대로 읽겠습니다.
"딸만 있는 사람이 아들 낳는 법 강의한다꼬.... 거품 물고 까불랑거릴 때, 나는 고마 칵 죽고 싶어지데예.  저 양반이 내 남편인가 하고.
비 온다했는데도 세차하고 들어올 때 우찌 저리도 멍청한지 미치겠더라고예.  비온다는데 뭐 할라꼬 세차는 했는교? 하면 뭐라는 줄 압니꺼?  '야 씻거 놓은 거 헹가야 될 것 아이가'  팍 도라삘라 칼 때가 많아예.
골초가 꼴에 담배 해롭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담배끊어라 할 때, 속으로 웃기고 자빠졌네, 지 담배도 몬 끊어삐면서.....  중얼중얼 욕이 절로 나온다카이.
외상술 먹고 와서는 팁은 팍팍 썼다꼬 자랑할 때는 쥑이삐고 싶다카이......  뭐 다른 사람들 팁도 안 쓰고 하는 거 보이 추자빠서 뭐 어쩌구 저쩌구...... 
와 그런 못된 버릇은 들었는지 이혼하자고 하몬 이왕 산 김에 한 20년만 더 살고 하자니…  내가 고마 딱… 숨통이 막히는기라예."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주시는 복은 내가 지금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무엇에 붙잡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잡히면 기쁨이 됩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다가 문제에 붙잡히면 슬프고 낙심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온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에 하나님의 평강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에 굳게 붙잡히시기를 축복합니다.

인간의 생명 속에는 누구도 모르는 자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신령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이 어느 날 예배를 하다가, 찬양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그 숨겨진 신령한 잠재된 능력만 폭발되면 이제껏 내가 나를 평가하던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훨씬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옆에 있는 분을 축복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좋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좋은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모든 문제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건전하게 표현해야 됩니다.  결코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환경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무엇보다도 남의 가치를 인정하십시오.  남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십시오.  내가 남의 가치를 높여 주어야 남도 나의 가치를 높여줍니다.  남의 방식을 존중해 주어야 남도 나의 삶의 방식을 존중해 줍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나 어떤 환경 때문에 주를 향한 내 사명과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어떤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환경이 나를 낙심하게 만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는 그대로 가게 하고, 나는 사명의 길을 간다고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누구 때문에 힘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을 어떻게 해 보려는 마음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사람을 어떻게 바꾸어보려는 욕심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는 그대로 가게 하고 나는 내 사명의 길을 걸어간다고 선포하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다가 깨어나도 그 사람을 고칠 수 없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지금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마음에 평화를 찾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님이 주시는 이 평화를 찾고 정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다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참으로 웃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세상을 자신의 사고의 틀에 맞추어서 조종하려고 하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나 어떤 일이 생겼을 때에 자신의 익숙함을 따라서 가장 손쉬운 방법인 자기의 틀 속에 자기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하는 줄 압니다.  이것만이 문제의 해결이라고 고집하는 착각, 그것이 나를 괴롭히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세상이 내게 원하는 것을 주기만을 바라는 그런 마음의 틀을 고집하고 있는 한 인간은 내적 욕구의 충족감을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면 결코 평화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제일 귀한 것은 무엇일까요?  마음의 평화를 소유하는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화를 소유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존경하십시오.  다른 사람을 나를 대하듯이 하십시오.  그러면 절대로 인간 관계에서 실패하지 않습니다.  인간 관계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떤 일을 하고 난 뒤에 이상한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일을 하는데 저 사람은 왜 하지 않느냐?  아무개는 저래서 안 된다.  그런 불평과 비평과 판단을 중단하십시오.  아무리 주의 일을 많이 감당했다고 할지라도 그 일을 하고 난 뒤에 불평과 비평과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그 때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라 사단의 역사가 되고 맙니다.  그러면 그 마음에 평화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조용히 하십시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하십시오.  결코 티를 내 가면서 하지 마십시오.  그런 일은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 일을 당하면 속이 상합니다.  사소한 논쟁으로 위대한 우정을 상실할 때.  수십년 동안 쌓아왔던 우정을 사소한 논쟁 때문에 하루아침에, 한 시간에 다 파괴시켜버릴 때.  그럴 때면 정말 속이 상합니다.  내가 어쩌다가 그렇게 했을까?  별 일도 아닌데 어쩌다가 내 속에 감추어진 온유함도, 겸손함도 다 잊어버리고 자기 고집만 부리다가 초라해진 현실 앞에 집에 돌아와서는 거울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고 속상해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무릇 자기 마음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안 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갖게 되는 확신은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하고, 환경이 나를 낙심하게 할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자기 마음입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 자기가 넘어지는 겁니다.  내 안의 나를 다스리지 못해서 낙심하게 되는 겁니다.  다시 시작하십시오.  우리의 생애에 중단이란 없습니다.  습관이 굳어지기 전에 자기를 바꾼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불행한 사람을 보면 행동도 습관도 어떤 틀에 이미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절대로 그 마음이 굳어지지 말아야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절대로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무당이라든가 세상의 푸닥거리를 미워해야 됩니까?  푸닥거리는 푸닥거리를 함으로써 내 문제를 다 가져간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마저도 우리 인간 속에 있는 모든 문제를 절대로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신령한 힘을 공급하십니다.  신령한 자원을 공급하십니다.
 
그런 내 속에 신령한 능력만 회복되면 어떤 문제도 넉넉히 정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능력에 정복되는 사건, 하나님의 신령한 사건에 포위되는 사건, 하나님의 신령한 힘에 생포되는 사건, 그래서 "너는 내 것이라!  너는 내 딸이라!  너는 내 아들이라!" 하나님으로부터 지명되는 이 사건만 내 속에 나타나면 기억하십시오.  이 땅의 문제들은 사실 별 것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사람의 준비 없이는 그분의 뜻을 이루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과의 약속의 상속자를 찾고 계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고 하는 꿈을 꾸셔야 합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의 배후에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특별한 뜻과 사명이 있다는 것에 눈을 떠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인생 여정에서 예기치 못한 고난을 어떻게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승리했는지를 꼭 증거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여정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어떤 어려운 고난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은 오늘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바른 믿음만 갖고 있다면 반드시 기적의 날이 올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여러분, 편안한 길을 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편안함과 평안함은 다릅니다.  믿음의 사람은 쉽게 예수를 믿으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넓고 쉬운 길은 단연코 거부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는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힘이 들어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 가십시오.  좀 피곤하고 힘들어도 우리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 길로 걸어가십시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말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야 우리가 축복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사람을 섭섭하게 해도 관계가 끊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섭섭하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고 맙니다.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걸어가십시오.  내 기준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불평만 생깁니다.  짜증만 생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들어도 찬양하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생명력 있는 믿음의 길은 항상 화려한 꽃으로만 덮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사도 바울도 화려한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한 시험이 끝나면 또 다른 시험이 옵니다.  작은 시험이 지나면 더 큰 시험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연단은 결국에는 큰 복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붙들고 내일을 위한 성공과 발전을 꿈꾸십시오.
 
믿음의 역사 앞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승리를 인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이 땅에서도 보상을 받는 날이 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바른 믿음을 소유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틀림없이 보상의 그날이 올 것입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내게 축복하실 그날을 바라보면서 사명을 붙잡고 생명의 좁은 길로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주인공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집니다.  모든 역사의 인물은 만들어집니다.  역사가 만들고 사람이 만들고 부모가 만들고… 결국은 자신이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을 붙들고 자기 자신을 기적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가십시오.  세상에서 자기를 일으키는 사업만큼이나 더 위대한 사업은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를 일으킨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남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를 사랑한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남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들이 주 앞에서 말씀을 들으면서 무너진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의 나됨을 분명히 하십시오.  성령의 능력으로 나를 일으키십시오.  그리고 나 자신을 더 뜨겁게 사랑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자신 속에 신령한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바람을 일으키십시오.  여러분의 심령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소망의 바람을 불러일으키십시오.  거룩한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도록 몸부림치십시오.  우리 안에서 신령한 바람이 일어난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고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플로린스 케네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큰 죄악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무엇인가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죄악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우리가 못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쓰시고자 하신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은 비전을 가지고 모험을 시도하는 사람입니다.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과거의 무덤에다 꽃다발을 놓지 않습니다.  과거로부터 배울 수는 있지만 과거에 얽매여 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과거를 묻지 마십시오.  지나간 시간을 되새기지 마십시오.  지나간 것은 내게 축복이었고 은혜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되어질 미래를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비전을 가지고 모험을 시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변화와 성숙은 모두가 모험을 통해서 온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까지 한번도 모험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걸음마를 배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집을 떠나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거룩한 모험을 시도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여러분들이 다시 교회를 선택한다면 어떤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강하게 만들어주는 교회를 선택하고 싶습니까?
 
한번쯤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과 평안을 주는 교회가 있다면 그런 교회를 택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습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병을 안고 씨름하는 사람에게 병이 나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 준다면 얼마나 반가워하겠습니까?  가난을 이기지 못해서 하루하루 피곤하게 사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한다면 그 말 때문에 교회를 찾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심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61장을 통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병든 자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쳐주기 위해서, 갇힌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 마음이 슬픈 자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기 위해서 라고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마음의 평안을 요구합니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우리의 심리를 나무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단순히 우리 자신의 행복과 마음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머문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C.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행복해지려고 종교를 찾지 않는다.  그런 행복이면 와인 한 병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종교를 찾는 사람이라면, 나는 굳이 당신에게 기독교를 믿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수준에서 머물지 않고, 그 이상의 수준을 가진 종교이기 때문이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본질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데도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목적은 거룩한 강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거룩한 강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교회를 세우시기 600여 년 전,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이 선포하신 예언의 말씀입니다.  장차 이 땅에 그 모습을 드러낼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모습일까?  이것에 대해서 이사야는 아주 확실하고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예수 믿고 이 세상에 등장할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교회는 의롭게 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은 영영히 땅을 차지할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땅을 소유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전 세계를 정복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심은 가지요, 하나님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다시 빚어진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존재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22절을 보십시오.  본문 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 작은 자가 천 명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

이 말씀을 원문에 좀더 가깝게 번역한다면, 가장 작은 자라도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한 자라도 강국을 이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작아 보일지라도 그들을 통해서 천을 이루는 기적이 나타납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몹시 약해 보일지라도 그들을 통해서 강한 나라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이런 기적을 이루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가져야 될 진정한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날마다 자기 소원을 성취하기 원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서 뛰는 강자의 모습입니까?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거룩한 강자들의 모임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사야의 예언에 근거하여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제자란 거룩한 강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적당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을 만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거룩한 강자들입니다.  이들은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이런 자격을 갖추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합니다.  이것이 제자의 조건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자는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만 있다면 이 사람은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거룩한 목적을 향해서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야말로 강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썩는 밀 알로 던지면서 예수님의 뒤를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강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22절)  하나님께서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쉬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있는 약한 자들을 통해서 이 일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 교회가 생기고, 세계 곳곳마다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이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 언양 영신교회가 이 자리에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언양 영신교회가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벌떼와 같이 일어나는 강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한 강자들이 활개치는 교회, 주님의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꿈을 안고 힘차게 뛰는 교회, 바로 이런 교회를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맥빠진 설교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자장가를 불러드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외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똑바로 믿으십시오.  종교꾼이 되지 말고,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은 예수를 똑바로 믿고 있습니까?  바른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똑바로 믿지 않으면 하늘의 축복도 없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충 대충 믿어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떡이나 얻어 먹고, 병이나 고치려고 따라다니는 무리들처럼 예수 믿지 마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무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를 좋아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이것 달라, 저것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을 주님을 위해서 내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 생명도 바쳤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을 향해 나갔기 때문에 세상이 그들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로마 제국이 그들 앞에 정복당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오늘도 하나님은 이런 강한 사람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도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피곤하고 골치 아픈 문제로 행여나 위로 받을까 싶어서 언양 영신교회에 오셨다면 나약한 마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런 나약한 교회를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제 마음과 같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고 열심히 배우고 믿어서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강한 사람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인생을 사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고, 영원한 삶의 모습임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강한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놀라운 이적들이 여러분 개인과 교회 안에서 일어나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룩한 도전을 여러분에게 던지고자 합니다.  언양 영신교회에 오셔서 천을 이루고 강국을 이루는 거룩한 강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주십시오.  간혹 보면,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안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우리 주님이 원하신다면 그 일을 기쁘게 감당하십시오.  주님께서도 십자가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뜻에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더니 영광의 부활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 감정에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말고 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강한 믿음의 사람이 강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언양 영신교회에서 믿음의 한 가족이 되셨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강한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그렇다면 누가 강한 자입니까?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앞에 흠뻑 빠진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를 사모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내 뜻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나의 삶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실천해보려고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나 자신의 행복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에 기쁨을 드리기를 소원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부흥되는 일에 나의 전 존재를 걸고 몸부림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이 세상의 유혹과 죄에 맞서 피 흘리기까지 대적하면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기를 원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것, 곧 재능과 시간과 물질과 젊음까지도 아낌없이 드리기를 소원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육신은 피곤하고 짜증이 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즐겁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가 강한 자입니다.
 
누가 강한 자입니까?  이런 찬송을 순간 순간 고백하면서 부를 줄 아는 사람이 강한 자입니다. 
♬"나 주님만을 섬기리. 헛된 마음 버리고."♬ 
약한 사람은 결코 헛된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강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헛된 것들을 마음에서 비울 수 있습니다.
♬"성령이여, 내 영혼 충만하게 하소서. 주님 앞에 내 생명 드리리라."♬
주님께 내 생명을 드리겠다고 고백하는 것은 강자가 아니면 못합니다.  주님의 사랑에 붙들린 강자가 아니면 결코 이 고백을 못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주님의 진리에 붙들린 강자,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힌 강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강한 제자입니까?  언양 영신교회에 오셨다면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불길처럼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언양 영신교회 안에 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여러분을 통하여 새로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기적을 우리 모두가 경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위대한 소명에는 위대한 헌신이 따르는 법입니다.  진정한 헌신과 희생이 없는데 열매가 나타나는 법은 없습니다.  꿈이 클수록 희생도 큽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영광을 추구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주님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희생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희생하지 않고 불신으로 가득한 이 땅을 복음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 우리 언양 영신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강자의 모습을 보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레위기 26장에 보면,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자에 대한 축복을 말씀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다"
 
다섯이 백을 쫓고 백이 만을 쫓는 강한 믿음의 역사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는 강한 믿음의 역사가 우리 언양 영신교회 안에서 불길처럼 일어나기를 원하신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강한 주님의 제자가 되십시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내 입술에서 모든 원망과 불평과 비평과 판단과 시비를 멀리하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주의 일을 감당하는 사명자가 되십시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