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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욕심, 그 치명적인 어리석음 (롬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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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그 치명적인 어리석음 (롬 6:23)


얼마 전 미국을 다녀왔습니다. 오렌지카운티에 있는 사촌 동생 집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동생네 집에 가게 되면 잘 들르는 일식 집엘 갔습니다. 음식이나 음식점 분위기가 꽤나 좋아 언제나 손님이 많던 식당이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눈에 띄게 적었습니다. 그 집은 스시가 유명한 집이었는데 스시를 50%나 할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랬는데도 식당은 자리가 많이 비어 있었습니다.

집회 중 그 지역의 목사님들과 함께 점심을 하였습니다. 한국 식당이었습니다. 그곳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심값을 30% 정도 할인한 것 같아 보였습니다. 금융위기의 여파가 한국보다 더 심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우리 한국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선 눈에 보이고 그냥 마음으로 느끼는 것만으로만 이야기 한다면 미국이 한국보다 더 어려워 보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매우 중요한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퇴색되어 가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그래도 우리 한국은 저축문화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저축문화가 아니라 외상문화입니다.

물론 우리 한국도 집값을 월세로 내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어떻게해서라도 돈을 저축해 월세를 전세로 바꿉니다. 일단 전세가 되면 매월 월세를 물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계속 저축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 집을 삽니다. 물론 저축한 돈 만으로 전세를 얻고 집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대출을 받아 어느 정도 빚을 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빚보다는 저축의 비중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거의 저축의 개념이 없습니다. 왜 우리는 수입만 생기면 저축을 하려고 하고, 왜 미국은 우리보다 소득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저축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는 가난하고 사회가 안정되지 못했기 때문에 늘 앞 날이 불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소득과 사회와 앞날이 비교적 안정된 나라이기 때문에 구태어 저축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집도 저축으로 사지 않고 외상으로 삽니다. 집 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외상으로 삽니다. 사실 외상도 능력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누가 외상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능력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면 별 문제 없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능력에 변수가 생기게 되면 당장 큰 문제가 생깁니다.

외상으로 산 집 페이먼트를 하지 못하면 원칙적으로 집에서 쫓겨 나야만 합니다. 외상으로 산 차 값을 몇 달 내지 못하면 차도 뺏겨야만 합니다. 저들은 쌓아 놓은 것이 없기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난다든가하면 당장 심각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정상적인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저축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산이 있습니다. 하다못해 전세나 월세 보증금이라도 있습니다. 미국보다 버틸 힘이 큽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위기를 당했을 때 미국에서 집과 차는 부담이지만 우리 한국에서는 팔아먹고 얼마만큼은 버티게 하는 힘입니다.

한국은 어느 정도 전세금을 모을 때까지는 작고 불편한 집에서 월세로 삽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하지 않습니다. 전세금을 모을 능력이 있으면 그 능력으로 은행 빚을 얻어 미리 크고 편한 집에서 삽니다. 한국은 전세금을 모을 능력이 있으면서도 꽤 오랫동안 작고 불편한 집에서 생활을 합니다. 그 불편감수가 저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그와 같은 불편감수를 하지 않고 미래를 당겨서 처음부터 편하게 살기 때문에 저축을 못하게 된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도 점점 소득이 높아져가면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미국화 되어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청년들이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함부로 카드를 쓰는 일을 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카드는 우리 문화가 아니라 미국 문화입니다. 그것은 저축 문화가 아니라 외상 문화입니다. 저도 카드가 있습니다. 그러나 카드가 있다면 함부로 쓰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외상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을 남발하고 살다보면 나이가 들 수록 위험해 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월급쟁이와 사업가의 중요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월급쟁이들은 보편적으로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는 노년의 때를 위해 저축하는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가들은 대부분 빚을 얻어 사업을 합니다. 저들이 빚으로 사업을 하는 까닭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100이라고 하는 빚을 이용하여 200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은행과 사람들은 저들의 그와 같은 능력을 보고 돈을 빌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빚도 능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큰 능력이 있는 사람은 큰 빚을 얻어 큰 사업을 하고 작은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작은 빚을 얻어 작은 사업을 합니다. 사업을 하여 돈을 벌게 되면 그 능력을 담보로 더 큰 돈을 얻습니다. 그 빚으로 더 큰 돈을 벌게 되면 그 큰 돈을 담보로 보다 더 큰 돈을 얻습니다. 그런방식으로 사업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사업을 키워가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입니다.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습니다. 때가 있습니다. 벌 때가 있으면 쓸 때도 있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목적은 돈을 쓸 때 쓰기 위함입니다. 돈이 없으면 돈을 써야 할 때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을 법니다. 그러나 돈을 잘 버는 사람도 돈을 쓸 때 쓰지 못합니다. 두 가지 이유인데 첫째는 시간이 없습니다. 둘째는 돈이 없습니다. 번 돈은 거의 대부분이 더 큰 돈을 빌리는데 이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큰 돈을 빌린 상태이기 때문에 돈이 없습니다. 빚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들은 지켜 보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도 가난하고 가난하지 않은 부자도 가난하기는 피차 일반이라는 것입니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도 돈이 없고 부자도 돈이 없다는 것입니다.

꽤 오래전 다일공동체가 병원을 세울 때 천사운동을 벌렸습니다. 백 만 원을 내는 사람 1004명을 모으면 그것이 약 10억 원이 되는데 그 돈으로 병원을 짓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저희 식구들 여섯이 그 천사병원의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저희만 하지 않고 제가 알만한 사람들에게 권하였습니다. 제법 돈 많은 부자로 알려져 있는 어떤 분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돈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부자에게 돈이 정말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앞 선 욕심으로 말미암은 빚 때문이라는 것을 그 때 알았습니다. 그때 내가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와 같은 현상이 교회 안에도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가 작과 재정적인 힘이 약했을 때는 은행이 교회에 대출을 잘 안 해 주니까 열심히 저축을 해서 규모 있게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교인수도 늘어나고 따라서 교회 재정의 규모도 커지면서부터 은행이 교회를 신뢰하고 교회에 대출을 해 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부터 교회 건축의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석 교인 몇 백 명만 되도 몇 십억 정도의 빚은 우습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은행이 교회에 대출하면서부터 우리 한국 교회에는 큰 예배당을 건축하는 붐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예배당들을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많은 교회가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빚쟁이가 되었고 큰 교회는 큰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그 빚을 감당하지 못하여 파산하는 교회도 실제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 빚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은행들이 교회를 좋은 고객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빚을 감당하여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 빚을 갚기 전까지 교회에는 돈이 없어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그저 생존에만 급급하는 교회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써야 할 때 돈을 쓰지 못하는 교회가 세상 사람들 눈에 볼 때 지나치게 크고 웅장한 예배당을 건축합니다. 그것이 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교회적인 사명은 감당하지 못하고 밪 낮 땅만 사고 예배당만 짓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춰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날 교회가 쇠퇴하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큰 예배당을 짓는 이유는 소명 때문이기 보다는 욕심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큰 예배당이 물론 필요하기 때문에 예배당을 짓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키려고 하는 순수한 소명감 때문이지 아니면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야망 때문인지 불분명한 경우도 많습니다. 소명을 가장한 야망은 목회자에게 있어서 가장 구별이 어려운 것 중에 하나입니다.

예배당을 짓는 것은 무조건 잘 못 된 것이고 예배당을 짓지 않는 것이 무조건 옳은 일은 아닙니다. 교회에는 원칙적으로 예배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와 순서에 맞고 규모에 맞는 예배당을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당을 욕심으로 짓게 되면 문제가 됩니다. 규모에 때에 맞지 않게 건축을 시작하면 그 때부터 교회는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때를 알고 먼저 할 것과 나중할 것의 순서를 알며 매사에 절제의 은사가 있어 규모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때에 맞는 삶을 살고 먼저 할 것은 먼저하고 나중 할 것은 나중에 하며 모든 것에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정하게 균형감각을 가지고 그것이 물질이든 시간이든 재능이든 모든 것을 모든 곳에 잘 배분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풍성해 지고 아름다워 질까요? 저는 그런 삶이 욕심납니다.

쓸 때도 없는 그 한도 끝도 없는 욕심 때문에 어리석어져서, 바보가 되어서 때도 모르고 순서도 모르고 모든 것을 낭비하며 쓸데 쓰지 못하고 엉뚱한데 쌓아두고 다 쓰지도 못할 것을 벌고 모을 욕심에 지금 써야 할 시간과 물질과 생명을 다 거기다 갖다 바치며 바보처럼 사는 것이 저는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욕심을 버릴 수만 있다면,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고 조금 절제만 할 수 있어도 우리의 삶은 얼마나 지혜로워지고 여유 있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업이 잘 될 때 사업이 잘 된다고 버는 족족 다 써 버리면 안 됩니다. 당연히 수익은 재 투자되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사업을 키워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건강한 배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수익을 다 사업의 확장을 위하여 재투자하면 안 됩니다. 얼마만큼은 함께 일한 노동자들에게 돌려 주어야 합니다. 얼마만큼은 자기가 먹기도 하고 쓰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얼마만큼은 사회를 위하여 환원도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사업의 확장만을 위하여 모든 것을 거기가 쏟아 붓는 사람보다 좀 늦을는지도 모릅니다. 뒤쳐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훨씬 더 지혜롭고 건강한 것입니다.

교회 사택에 살게 되면서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집을 전세 놓았습니다. 그 받은 전세금으로 저는 당시 스미스 코로나 전동타자기 두 대를 샀습니다. 하나는 영문타자였고 또 하나는 한글 타자였습니다. 거의 미친 짓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적절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타자 능력이 아주 뛰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타이핑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저는 책을 참 많이 썼습니다. 다작에 가깝습니다. 물론 책들이 타자 능력으로만 쓰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에게 빠른 타이핑의 능력이 없었다면 그렇게 많은 책들을 그렇게 쉽게 쓰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정확히 설명을 못드리겠습니다만은 저는 인생에 몇 번은 전세금을 뽑아 전동타자기를 사는 것과 같은 일들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에만 욕심이 있어서, 그 돈을 불리고 늘리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서 그 일만 하며 살게 된다면 돈은 혹시 남보다 더 벌고 모을는지는 모르지만 그것 못지 않게, 아니 그 보다 더 중요한 어떤 것들을 잃게 될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밭에 감추인 보화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자기 집을 팔아서라도 그 밭을 산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 예수님의 비유에 관심이 많습니다. 인생을 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본다면 이제 저도 드디어 그 마지막 단계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인생이 다 끝나기 전에 정말 보화가 숨겨져 있는 밭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밭을 사기 위해서 아낌없이 집을 팔아보고 싶습니다. 집을 팔아도 아깝지 않을 그런 일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쓴 책 중에 ‘깨끗한 부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쓴 후 참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우리 한국 사회에는 가난해야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중에 훌륭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꼭 가난해야만 훌륭한 것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훌륭해지기 위하여 구태여 가난해지려고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저는 제 소유의 집도 있고, 제 소유의 자동차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면 가능한한 죽을 때까지 그 정도의 여유를 갖고 살고 싶습니다. 남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너무 옹색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끝까지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나치지 않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삶의 유일하고도 가장 높은 가치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잘못하다가 그것이 너무 지나쳐서 너무 많이 소유하고 살다가 갈까봐 두렵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다이어트를 하듯, 건강한 몸무게를 늘 유지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저는 그 동안 죽을 때 하나님께 남겨 드릴 유산에 대해서 참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하나님이 내 가족이시니 가족의 일환으로 받으셔야 할 상속분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 상속분을 죽은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미리미리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죽은 후의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의 삶이 더 건강해지고 아름다워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배당만 지으면 안 됩니다. 사업하시는 분들 사업만 하시면 안 됩니다. 사업만 확장하셔서는 안 됩니다. 욕심으로, 쓸데없는 욕심으로 평생 빚만 지다가 가셔서는 안 됩니다. 욕심을 줄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돈도 쓰고 시간도 쓰면서 사셔야만 합니다. 쓸데 없는 일에, 다 쓰지도 못할 일에 너무 많은 시간과 물질을 쓰시면서 사시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쓸데 없는 것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욕심이 없어져서 정말 욕심부려야 할 것에는 욕심 없이 가난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선한데는 지혜롭고 악한데는 미련하라는 로마서의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과 자신에 대해서는 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큰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높은 뜻 교회 안에 많아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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