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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속상할 때 무엇을 하십니까? (애 2: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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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할 때 무엇을 하십니까? (애 2:17~19)
 
 
인생살다보면 속상할 때가 참 많습니다. 속상해서 죽겠다는 하소연을 많이 듣습니다. 여러분들은 속상할 때 주로 무슨 일을 하십니까? 그 속상함을 어떻게 달래십니까?

모 잡지에서 속상할 때 당신은 무엇을 하십니까? 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 20대는 1) 진탕 술을 마십니다. 2) 춤추는 곳에 가서 진땀 나게 흔든다. 3)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른다. 4) 문 걸어잠그고 두문불출한다. 5) 친구들에게 전화걸어 만나서 이야기한다. 3~40대는 1) 술마신다. 2)무조건 집을 튀쳐나간다. 3) 드라이브를 한다. 4) 책을 본다. 5) 친구를 만난다. 6) 노래방에 간다. 

2~40대가 속상할 때 공통적으로 주로 하는 일들이 술, 춤, 노래방, 과속, 이야기하기 등과 같은 것들을 입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이 참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하는 질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치유가 되었느냐? 그런데 한 명도 치유되었다고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예만들어보십시다. 속상하면 술을 취하게 마신 결과, 술취해서 2차적인 문제가 더 발생했습니다. 술마셨더니 속쓰리고, 해장국 먹으러 가서 손 쓰고, 음주운전하다 사고 내고, 술김에 아내 두들겨 패서 이혼소송 당하고........
속상할 때 믿음 없이 하는 이런 것들은 우리가 속상할 때 도움은커녕 결과적으로 더 큰 손해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후회만 남습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시온의 성벽을 바라보면서 그 성민들에게 외친 예레미야 선지자의 눈물의 경고가 있습니다. 속상할 때 마음이 주를 향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어거스틴은 "'고통이란 동일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통이란 있다, 그런데 고통은 동일한 것이지만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비방하고, 원망하고, 모독하고, 선한 사람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알고, 궁극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 "우리가 속이 상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치유가 되는 방법,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방법을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1. 마음이 주를 향하여 있으라

신앙생활의 첫째 조건은 마음이 주를 향하는 것입니다. 18절에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으라"했고, 19절 말씀 중에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정성입니다. 기도, 찬송, 말씀 순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주를 향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누구에게 향하고 있습니까?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내 마음이 주를 향하였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께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을 향하여 활짝 열려야합니다.  
내 마음의 의지를 주님께 드려야합니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할지라도 마음을 물 쏟듯 하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마음을 쏟아 붓지 못한 일에는 성공도 기대해서는 아니 됩니다. 
마음을 쏟아 부어 주의 일을 합시다.
마음을 주께로 향하게 하되 밤낮으로, 쉬지 말고, 줄기차게  숨질 때 되도록  마음이 주께로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른 것들 때문에 빼앗기는 사람은 마음이 주를 향하여 있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2. 눈물을 강같이 흘릴지어다 

18절 "딸 시온의 성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지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를 쉬게 하지 말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속이 상할 때에도 눈물을 흘리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고 이를 갈면서 분노만 키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남자 수명이 여자 수명보다 짧은 이유 중에 하나가 태어나면서 부터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여자들이나 할일이지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 안된다는 교육 때문입니다. 이만 부득부득 가니 이만 상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어렷을 적부터 여자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도 된다는 교육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 약이 되어 오래 사는 것입니다.  

안구에서 분비되는 분비액체인 눈물을 분석해 보면 수분, 포도당, 산소, 약간의 염분 그리고 리소자임 이라는 용균성효소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정의 하는 것이 과학이 말하는 눈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눈물은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음 모르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을 창피해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건강을 위해서라도 울음을 참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웃음이 온 몸을 활짝 열어 몸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역할을 한다면 울음은 우리 몸속의 나쁜 독을 빼내는 것과 같다면서 눈물 속에는 온갖 스트레스 호르몬과 염증 물질이 들어 있어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이런 나쁜 독소들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마음이 힘들 때 참지 말고 속 시원히 우는 습관은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눈물은 사람을 슬프게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하고, 마음을 약하게 만들기도 하며, 눈물은 사람을 움직여 역사를 바꾸어 놓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눈물의 기도는 주님이 기억해 주십니다.  

마음이 움직여서 눈물을 강같이 흘리는 기도는 반드시 역사하는 힘이 클줄로 믿습니다. 이사야 38:5에 보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병들어 죽어가는 히스기야가 눈물을 강같이 흘리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린 사람들은 모두 응답을 받았습니다.
비록 약속의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하갈이 브엘세바 들에서 방성대곡하자 하나님이 사자가 나타나 우물을 터뜨려 이스마엘을 살려 주셨습니다. 한나가 눈물로 통곡하며 기도하자 사무엘을 주셨고, 다윗이 심히 울며 통곡하자 그의 심령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심히 울며 통곡하며 기도하자 그의 생명을 15년 이나 연장하여 주셨고 그 성을 구해 주셨습니다.

신약에서도 나인성 과부가 그의 아들 독자가 죽어 상여를 따라오며 슬피울 때 때마침 마주 오시던 주님이 울지 말라고 하신 후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내게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시자 죽어 송장이 되었던 청년이 관에서 일어나 어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주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주의 눈물병에 담아 주셔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고난이 변하여 영광이 되게해 주십니다. 
        
3.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오늘 본문에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개역 성경에는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의 옛 사람들은 3시간을 단위로 “경”이라 했습니다. ① 1경: 오후 6시-9시 ② 2경: 밤 9시-12시 ③ 3경: 밤 12시-오전 3시 ④ 4경: 오전 3시-6시 까지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밤이 시작되는 첫 시간을 초경이라고 합니다. 초경은 잠들어 있어서는 않될 시간입니다. 첫 시간을 놓치면 안됩니다. 성경에서는 첫 것에 대해서 성별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첫 열매, 장자, 첫 소산에 대해서 하나님은 성별하셨습니다. 태를 열어주셨고 열매를 맺는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서둘러 기도한다고 결코 이르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가 아무리 늦었다고 하더라도 기도할 수 없을 만큼 늦은 때는 없습니다.

속이 상하면 두문불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어나야 할 시간에 잠만 자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르라 했습니다. 누우면 안됩니다. 
          
4.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19절 끝 부분에  "각 길 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속상할 때 거들먹거리면 안됩니다. 이 때야 말로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손을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에 손을 들고 기도하거나 손을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사가 많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시 28:2절에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딤전 2:8절에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애 3:40,41절에도,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들을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손을 드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도가 손드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전쟁이 나면 불쌍한 게 어린아이입니다. 예레미아는 전쟁터의 각 길 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어린아이들, 동심을 잃어버리고 아무 죄없이 죽어 가는 생명들을 보았습니다. 저들을 살리는 길은 다른 길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오직 주를 향하여 두 손을 드는 일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굶주려 기진한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생각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눈물을 쏟을 것을 촉구한 것입니다. 
  
주를 향하여 목적을 두고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줄로 믿습니다. 문제해결을 가져올 줄 믿습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환경을 만났어도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회복시키시고, 하나님 앞에 눈물 흘리고 손을 들면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속상할 때 뛰어가야 할 곳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곳은 안됩니다. 내가 처한 처지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들어 기도하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임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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