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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성찬을 받으며 (고전 11: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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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성찬을 받으며  (고전 11:17~29)

    
설교내용       
사람은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삽니다. 하루 한번만 먹을 수도 있고 두 번, 아니면 10번을 먹을 수도 있는데 왜 세끼를 먹을까?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것은 우리만 아니고 세계 모든 나라가 거의 비슷합니다. 인터넷에 자료가 있나 하고 찾아 보니 하루세끼가 보약이라는 말만 있어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우리 조상들의 오랜 경험에서 얻은 경험이 하루세끼를 먹는 것이 제일 좋았다는 것입니다. 

하루 세끼 먹는 식사이름이 다릅니다. 아침에 먹는밥을 아침밥 점심에 먹는밥을 점심밥 저녁에 먹는 밥을 저녁 밥 먹는다고 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은 밥자를 빼고 아침 먹었어 하면 다 통하고 점심, 저녁 먹었어 하면 다 통합니다. 먹어야 사는 존재이기에 하루세끼 밥을 꼬박 꼬박 챙겨 먹습니다. 그런데 이 식사가 혼자 또는 가족끼리 먹을 때는 아침 ,점심, 저녁하지만 사람들을 초대하고 함께 더불어 먹을 때는 이름이 달라 집니다. 아침은 조찬이되고 점심은 오찬이 되고 저녁은 만찬이 됩니다. 

오늘 성경에서 이야기되는 식사는 만찬입니다. 예수님으로서는 세상에서 마지막 드시는 만찬이시라 최후의 만찬이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내어 유월절 만찬을 준비 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유월절 날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시지요. 우리말로는 푸짐한 식사입니다. 음식을 나누는 중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며 중요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나의 몸이니라. 그리고 잔을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피 곧 나의 언약의 피니라 하시며 마시게 했습니다. 만찬이 성찬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줄로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밥만 먹고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 정신은 지식을 먹어야 사람구실을 합니다. 지식만 먹어서 됩니까? 사랑도 먹어야 합니다. 사랑이 메마르면 죽습니다. 더욱 우리는 은혜를 먹어야 삽니다. 그것 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합니다.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빵은 육신을 위한 매일의 양식입니다. 그 매일의 양식이 주님의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매일 주님의 몸을 먹어야 합니다. 그 주님의 몸이 무엇입니까? 말씀입니다. 요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와 하나 되었습니다. 주님의 몸을 먹으므로 주님이 우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몸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과 하나 되어 사는 것입니다. 말씀이 매일의 양식입니다. 

포도주잔을 드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피 언약의 피니 받아 마시라 했습니다. 포도주는 이스라엘에 있어서 생명수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한 포도주 술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 생명수를 마실 때 이것은 나의 피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수입니다. 지상에 있는 생명수가 영원한 생명수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목마른 생명수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명수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이스라엘의 계절은 우기와 건기로 나누어 집니다. 우기는 10월부터 3월이고 건기는 4월부터 9월입니다. 포도추수계절은 8월부터 9월입니다. 건기의 마지막 계절 모든 물이 고갈되고 섭씨 40도에서 45도로 기온이 오르는 뜨거운 계절, 짐승과 사람 할 것 없이 목이 타들어 가는 계절 그 길고 긴 갈증에 다 지쳐 갈 때, 바로 그 계절에 포도가 익어서 즙과 포도주를 마신다. 그것은 생명수요 최고의 기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중요 한 행사에 반드시 포도주를 준비하여 마십니다. 안식일에는 포도주 한잔, 결혼식에는 포도주 두잔, 그리고 유월절에는 가장 중요한날이요 기쁨의 날이기에 포도주 넉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날, 이스라엘이 애급에서 구원받은 날, 예수님은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새로운 언약을 세우는 예식을 제정합니다. 그것이 성찬식입니다. 단순히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날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날, 새로운 유월절의 제정입니다. 이것으로 여러분과 나 그리고 온 인류가 구원을 받는 문이 열렸습니다. 유월절날 문인 방에 양의 피를 바른 자들이 다 구원을 받았듯이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신 자들이 마지막 심판 날에 다 구원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여기에서 성찬의 몇 가지 의미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성찬은 예수님이 제정하신 예배입니다. 오늘 성경에도 사도 바울은 성찬에 대하여 ‘주께 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찬의 기원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뜻합니다. 성찬은 바울이나, 사도, 교회가 만든 예식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기의 몸과 피를 바쳐 제정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눈물과 기도와 희생과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둘째, 성찬을 받으므로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속에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념하라’는 말씀은 잊지 말고 되새기라는 말씀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속죄양으로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새 언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사실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을 가리켜서는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고 말씀하셨고, 잔을 가리켜서는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과 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16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입니다.

넷째 성찬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 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통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서울에 청계천이 복원 되어서 물이 다시 흐릅니다. 여기에 3,600억원의 예산이 들었다는데 그 효과는 몇 배가 돈다고 합니다. 주변의 땅값이 오르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고 덕분에 공기도 맑아지고 온도도 내려가고 물고기가 돌아오고 새들이 돌아 왔습니다. 

좋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저는 오늘 성찬식을 받는 우리 모두에게 청계천의 물이 흐르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같이 흐르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죽었던 모든 것들이 살아나는 잃었던 모든 것들이 다시 돌아오는 역사가 있기 를 소원합니다. 

월남전에서 월맹군의 포로가 됐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미 해군 준장 제임스 스톡턴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포로가 된 후 얼마나 고통을 받았는지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고문을 하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길이 없어 죽고 싶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 왔을 때 기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그런 고통 중에도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 이 때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그 고통 중에 자기 옆을 지나던 다른 포로 병사들이 발로 소리를 내고 지나가는데 “똑, 똑똑똑, 똑”입니다. 

한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지날 때 마다 발로 이와 같은 소리를 내고 지나 갑니다. 이 소리 "똑, 똑똑똑, 똑" 이 무엇일까? 하는데 깨달은 것이 있어요. “갓 브레스 유!” 하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구나 해서 용기를 내고 기도하며 고난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성찬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통로입니다.

성찬을 참여 하는 사람들이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 점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는 합당하게 먹어라입니다. “합당하지 않게 성찬을 먹고 마시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27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신다. 성찬을 합당하게 먹을 있는격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습니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합당하게 먹습니까? 내가 죄인임을 알고 회개 하는 자입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죄인임에도 받아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성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28절 말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자신을 살피지 않고 남만 쳐다보니 자신이 죄인인줄을 모릅니다.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살펴보면 보입니다. 내가 죄인이로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구나. 성찬을 받을 수 없는 죄인이구나 rmfotjj 회개 합니다. 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의 거장, 찰스 코닉(Charles Connick)에게 어느 날 젊은 미술 학도가 방문을 해서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의 화구를 며칠만 빌려주십시오. 제가 당신이 된 기분으로 스테인드 글라스를 하나 그려볼까 합니다.” 코닉은 흔쾌히 빌려주었고, 며칠이 지난 후에 그 학생을 방문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화구를 썼는데도 역시 작품이 잘 안 됩니다.” 그때 코닉이 말합니다. “스승의 도구가 자네를 변화시킬 수 없네. 스승의 불을 받아 가야 하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을 통해서 보이는 떡과 포도주만 받아 가지 말고 주님이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신 사랑의 불을 받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6장 57절에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주의 성찬을 받습니다.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찬으로 맺어진 언약의 축복이 여러분모두에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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