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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선택(5) : 열매 (요 15:16~17,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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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선택(5) : 열매 (요 15:16~17,26~27)


가을이 오면 제 머리에 어김없이 떠오르는 시 한편이 있습니다. 고 김 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입니다.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가을에 열매로 가득한 수확의 황금 들판을 바라보는 것은 삶의 환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열매를 맺어야 할 계절-열매 없이 버려진 황량한 들판을 바라보는 것은 애잔한 슬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녕 우리의 삶은 오늘 어떤 열매를 맺고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 요한복음 15장은 소위 포도나무 비유의 장으로 불리워집니다. 포도나무 가지와 같은 우리가 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 있을 때 당연히 맺어야 할 열매를 교훈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1절의 메시지를 이렇게 시작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5절을 보십시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 말씀에묘사된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막힘없이 거함의 상태를 가르쳐 ‘신비적인 연합’(mystical )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실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의 삶의 주인되신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지상의 어떤 관계보다도 신비한 연합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신비한 교제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제의 성격은 신비한 것이지만(교제의 대상이신 주님의 신비성 때문에) 교제의 결과는 결코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한 열매로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사랑의 관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부부 관계는 신비로운 관계이지만 이 관계의 결과는 삶의 현장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예컨대 부부사이에 자녀가 생기고 어떤 특성을 갖는 가정을 이루어 가는 결과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부 관계의 열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은 바로 이런 열매 맺음의 인생의 비밀을 가르칩니다.
*바람직한 열매 맺음의 인생을 살기 위해 우리가 기억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열매는 믿는 자의 존재의 이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16절을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무슨 말씀입니까? 주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예수 믿게 하신 이유가 열매 맺는 삶을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그리스도인된 나의 존재 이유는 열매를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우리는 존재 이유를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 15장에서 열매를 맺지 못한 다면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까? 

15:2을 읽겠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우리는 이 말씀에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를 제거하실지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을 연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심판의 경고가 아닌 열매 맺음을 촉구하는 간절한 권면일 따름입니다.

<열린다 성경>의 저자 류모세 선교사는 여기 <제거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포도나무의 특징은 길게 뻗어나가는 가지에 있는데 오늘 날은 Y자 철사를 설치하여 가지가 올라가며 원없이 자라게 하지만 옛날 예수님 당시의 재배법은 달랐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철사가 귀했기 때문에 포도가지는 뱀처럼 땅을 기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땅에 닿은 포도 가지는 열매를 맺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기에는 땅에 닿은 부분이 습기로 인해 썩고 건기에는 본 뿌리에 가지를 내리지 못해서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서시대의 농부들은 땅 바닥에 닿아 과실을 맺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가지를 <들어 주어>밑에 돌을 괴어 주는 장치를 함으로 과실을 잘 맺도록 했다고 합니다. 

반면 잘 과실을 맺는 가지는 잔 가지를 쳐주는 작업을 함으로 자잘한 포도 열매가 아닌 극상품의 포도 열매를 맺게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거한다>는 말의 원어 아이로(airo)는 영어로 말하면 ‘들어올린다’(lift up)의 의미라고 말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주님은 연약한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들어 올리시며 내 인생의 잔가지를 만지시며 지금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한가지 그분의 우리를 향한 소망-우리가 열매 맺는 것을 보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 곧 우리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2. 가장 중요한 열매는 ‘이웃 사랑’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열매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본문 요한복음 15장엔 몇 가지의 의미로 이 열매가 설명됩니다. 사랑과 기쁨으로 사신 그리스도를 닮는 인격적인 품성의 열매(10-11절) 혹은 본문 16절의 말씀처럼 ‘기도 응답의 열매’(7절,16절)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열매는 이웃 사랑입니다. 17절 말씀이 그것을 분명하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이미 요한 13:34에서는 그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이 사랑에는 수고와 땀 흘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포도나무 가지를 들어 올리고 잔가지를 손질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농부의수고와 땀 흘림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이런 사랑의 수고없이 열매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우리 교회 이웃 사랑 축제는 단순히 전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연습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목숨까지 내어 주신 희생, 그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이라면 우리는 그 사랑의 빚진 자들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예견하시면서 이미 요한 12:24에서 주셨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그분의 땅에 떨어지심, 그분의 희생과 죽음, 그로 말미암아 오늘 무수한 성도들이 열방 중에 이 주일도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목숨까지 내어 놓는 희생은 아니더라도, 내 이웃들과 함께 하여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그들로 복음을 듣게 하는 가장 적은 수고를 주저하시겠습니까? 사랑의 길에는 때로는 눈물이 때로는 고통이 때로는 깨어짐이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숙하고 우리는 마침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 이웃 사랑의 열매는 결국 ‘그리스도 증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은 실로 다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 전도는 가장 위대한 이웃 사랑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물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웃들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 그리스도보다 더 위대하고 더 좋은 선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무엇을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예,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그러면 그 그리스도를 이웃들에게 증거하여 우리 이웃들로 하여금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하는 일-그보다 더 위대한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한 복음 15장 이 열매의 장은 앞으로 성령이 오시면 그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되리라고 그리고 나와 함께 있었던 너희들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이 그리스도를 증언하게 되리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됩니다.

본문 26-27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내실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음으로 증언하느니라” 누구를 증언합니까? 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해 보니 요한의 증언처럼 우리가 그를 경험해 보니 그는 정녕 사랑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를 경험해 보니 그는 정녕 기쁨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를 경험해 보니 그는 정녕 평화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를 경험해 보니 그는 정녕 생명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를 경험해 보니 그는 정녕 희망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증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이웃 사랑 축제의 마당을 준비한 것입니다. 도대체 이런 전도로 어떤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아직도 묻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혹시 <개구리 왕자>라는 동화를 기억하십니까? 옛날 한 임금님에게 귀여운 공주 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숲 근처 연못에서 금으로 된 공을 가지고 놀다가 실수로 공을 연못에 빠트렸습니다. 그때 개구리 한 마리가 연못에 등장하여 내가 그 공을 찾아 줄 터이니 나하고 함께 식사하고 키스를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공주는 그것을 약속합니다. 공주는 개구리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공을 찾았지만 약속을 무시하고 궁궐도 돌아옵니다. 개구리가 궁궐 문을 녹크하자 임금님도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공주에게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공주는 하는 수 없이 개구리와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개구리가 키스까지 요구하자 징그럽다고 개구리를 잡아 벽으로 던집니다. 그러자 개구리가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당황하고 미안한 생각이 든 공주가 축 늘어진 개구리에게 눈물을 흘리며 키스를 하는 순간 못 생긴 개구리가 한 순간 잘 생긴 왕자로 변신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전도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축 늘어진 개구리처럼 삶의 의욕을 잃고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이웃들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영혼에 키스를 해주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인들의 영혼에 키스를 해주는 순간-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딸로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로 태어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월트 디즈니에서는 새로운 버전의 <개구리 왕자>를 만들고 있다고 하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공주가 개구리에게 키스를 하는 순간 개구리가 왕자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공주가 개구리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전도를 잘 못할 때 일어나는 전형적인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전도를 잘 못하면 우리가 이웃을 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세속성과 불신앙을 오히려 거꾸로 닮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슬람권에 선교사로 갔던 자매가 이슬람이 되어 이슬람 남편과 결혼한 케이스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 전 우리는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안에서만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다는 확신말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저는 전도를 생각할 때마다 지난 주간에 돌아가신 CCC 김준곤 목사님의 <백문 일답>이 떠 오릅니다. 우리가 무슨 질문을 하던 대답은 하나라는 확신말입니다. 한번 해 볼까요? 자, 제가 무슨 질문을 하던 대답은 하나-<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민족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우리 가정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우리 친구들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우리 역사의 소망은 누구입니까? 우리가 평생을 걸고 전해야 할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두 주간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을 우리는 누구에게로 데려와야 합니까? 우리가 두 주간 우리의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나누어야 할 최고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우리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가슴 벅찬 열매의 계절을 누리십시다.  
(이동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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