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계 3:14~22)

  • 잡초 잡초
  • 1256
  • 0

첨부 1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계 3:14~22)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도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수돗물이나 약수터 물의 경우 섭씨 13도 일 때가 가장 맛있습니다. 지금은 아깝게도 사라진 풍경이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이 식후에 즐겨서 마시던 숭늉의 온도는 섭씨 70도 일 때 가장 맛이 있고 매일 한 두 잔씩 마시는 커피는 63도에서 64도 사이일 때 가장 맛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펄펄 꿇는 커피에 설탕 한 스푼을 넣고 밀크를 한 두 방울 떨어뜨린 후 휘저어서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물이 가장 맛이 없는 온도는 35도에서 40도 사이라고 합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 즉 사람의 몸의 온도 즉 체온 37도를 중심으로 하는 온도일 때 가장 맛이 없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면 신앙인의 온도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든지 덥든지 하라 아니면 뱉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신앙은 어떤 것입니까? 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혹평했을 까요?

1. 열정이 식어 게을러진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식어버린 열정”의 문제입니다. 계 3:15절 말씀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라고 하였습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면 어떻다는 말입니까? 

미지근한 것입니다. 이것은 열정이 식어버린 모습입니다. 땅 속에는 수천도의 용암이 부글부글 끊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 때문에 압력을 받게 되면 약한 지표면을 뚫고 분출하는 것이 화산 폭발입니다. 화산이 폭발하면 어마어마한 양의 용암이 뿜어져 나오고 용암이 흘러내리는 곳엔 불바다가 됩니다. 나무도 풀도 다 불타고 심지어 용암이 덮치면 한 도시도 폐허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용암이 일단 식어버리면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화석처럼 굳어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주님은 이렇게 화석처럼 굳어버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주님을 향하여 불태울 열정이 없어서 싸늘하게 형식적으로 교회만 왔다갔다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입니다. 
아니 그들이 처음부터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미국 사람들은 70%가 스스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교회를 나오라고 하면 No Kidding 즉 “농담 하지마” 하면서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교회에 안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조사해봤더니 예배시간에 졸지 않고 앉아 있을 자신이 없어서 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신문은 몇 시간씩 읽을 수가 있고 피곤해서 교회 못나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낚시나 골프, 등산을 위해서는 새벽 4시에라도 일어나서 움직입니다. 

교회의 의자가 불편해서 앉아있기가 괴롭다고 하면서 딱딱한 축구 경기장이나 야구경기장 의자에는 4시간이라도 꼼작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쇼핑이다, 여행이다, 카드놀이다, 볼링이다 좇아다니면서 하나님을 향해서는 아무것도, 일주일에 단 한 시간도 아니 단 몇 분도 쓰지를 못하는 그들, 그러면서도 70% 이상이 기독교를 믿는 다고 설문지에 썼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요.
열심을 냅시다. 계 3:19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께서 직접적으로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않습니까?

먼저 직분자들이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이 본보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교인들이 배우기 때문입니다. 교역자들이 열심을 내야하고 장로님들이 권사님들이 집사님들이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열심이 있는 성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최근에 신천지인줄 모르고 거기 가서 공부하다가 이상하다 느껴서 빠져나온 교인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들이 거기 가서 배워올 것이 있다면 그들의 열심입니다. 잘못되고 거짓된 것을 가지고도 그렇게 열심을 내는데 우리들이 미지근한 상태로 있을 때 얼마나 주님이 슬퍼하시고 답답해 하시겠습니다. 열심을 냅시다. 오죽하시면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토해내겠다고 까지 말씀하시겠습니까?

2. 세속적 부요속에 영적인 가난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라오디게야 교회의 모습은 세속적 부요에 취해서 영적인 가난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계 3:17절을 봅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부자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부자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에게 해와 유브라데 강을 잇는 무역로에 위치하고 있어서 상업과 금융 중심도시로서 번창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윤기 나는 검정색 모직물 제조업으로 유명했으며, 의과 기술이 발달하여 의술학교로도 유명했습니다. 특히 라오디게아의 의사들은 여러 가지 재로를 섞어서 안질을 고치는 안약을 개발하였습니다. 이렇듯 라오디게아는 의술과 금융 그리고 섬유산업이 발달하면서 상한 부를 축적한 도시였습니다. 

AD 60년 대지진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어 도시는 폐허가 되었으나 시민들은 로마 정부의 재정보조를 거절자력으로 도시를 다시 건설할 정도로 부를 자랑하는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물질의 풍요로움이 영적인 가난을 가져왔습니다. 세속적인 것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영적으로 보면 심각한 빈곤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영적 빈곤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7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 말씀은 라오디게아 인들의 모습을 진단한 것입니다. 진단해보니까 그들의 상태가 두 가지로 나빴습니다. 첫째는 마음이 곤고하고 가련했습니다. 

① 마음이 곤고하고 가련했습니다. 
곤고했다는 것은 쉼이 없고 피곤하고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정신적 영적 쉼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이 쉼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요했건 만 마음은 쉴 곳이 없어서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래서 가련했습니다. 가련하다는 말을 신세가 딱하고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아도 그렇게 됩니다. 돈이 있는 자들은 돈을 사랑하거나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돈이 많아도 마음이 괴롭고 알아주는 이 없어서 신세가 딱하고 불쌍하게 되는 일이 있습니다. 

② 눈 멀고 벌거벗었습니다.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진단한 결과 두 번째 진단은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입니다. 17절 하반 절을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라오디게아는 의학과 의술이 발달하였습니다. 특히 안약제조 기술이 발달하였고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습니다. 안약으로 알려진 부르기아 가루를 수출하는 그런 도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눈먼 것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양털 직조 기술이 발달하여 섬유산업이 발달해서 여러 가지 의상을 만들고 패션의 최 첨단을 걷는 그러한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는 벌거벗은 도시였습니다. 
영적으로 눈멀어서 자신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눈멀면 세상 것만 보입니다. 세상의 허영의 옷으로 호와롭게 겉치장했어도 영적으로 벌거벗어서 자신의 수치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라오디게아 사람들에게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고 했습니다. 
힌 옷이란 믿음으로 입는 세마포 의의 옷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믿음으로 입는 세마포 힌옷 즉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린양의 보혈로 씻어 희게 되어진 힌옷을 입어야 합니다. 

3. 주님을 밖에 세워두고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주님을 밖에 세워두고도 모르는 어리석음 때문에 책망만 들었습니다. 계 3:20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문밖에 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주님이 문밖에 서계신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안에 계셔야 합니다. 가장 높은 자리 가장 영광의 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분명 라오디게아 교회도 주님이 안에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교회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주님이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아마도 라오디게야 교회는 주님이 밖으로 밀려나신 줄도 모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왜 안에서 영광과 찬송을 받을 자리에 계셔야 할 주님이 밖으로 밀려난 것일까요?

① 인본주의가 주님을 교회에서 몰아냅니다.
교회는 신본주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턴가 인본주의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사상이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이나 사상 주님의 뜻이 우선적으로 존중되고 실천되기 보다는 사람의 생각 특히 다수의 생각이 정의가 되고 진리가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신본주의입니다. 사람들의 의견, 사람들의 생각 다 옳고 좋아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때는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이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고 무엇을 했을 까요.?
상상은 자유이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생각에는 아마도 회의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사람 저사람 서로 자기 주장을 하다보니 주님은 발언권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몇 사람 말 잘하는 사람들 목소리 큰 사람 소위 말하는 정치꾼들이 판치는 그런 곳에서 주님이 계실 수가 없어서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렇잖아도 주님이 계셔서 불편했던 사람들... 거짓말과 술수에 능했던 사람들이 주님 때문에 마음껏 발언도 못하고 있었는데 잘됐다 싶어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주님이 밖에서 두드리는 노크소리도 못듣고 지금도 의견 다툼만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안 됩니다. 서로 자기의 의견이 옳다고 주장하기 전에 주님의 뜻은 무엇인지 기도해야 합니다. 회의 보다 기도가 많은 교회가 되고 당회가 되고 각종 모임이 되어야 합니다. 

② 황금만능주의가 주님을 교회에서 몰아냅니다. 
교회는 돈의 가치보다 주님이 주신 진리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억만금의 황금의 가치보다한 영혼의 가치를 더 귀히 보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가난한 자들이 멸시 받지 말아야 하고 빈곤한 사람들이 챙피 당하면 안됩니다.

③ 쾌락 만능주의가 주님을 교회에서 몰아냅니다. 
쾌락 만능주의란 즐김을 우선하는 사상을 말합니다. 설교도 재미있어야 듣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코메디 수준의 웃기는 설교가 인기가 있고 딱딱한 설교 즉 성경애기만 하면 조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엔조이 사상 즉 괘락 만능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자기 즐거움을 취하겠습니까?
교회의 프로그램들이 사람의 즐거움에 맞춰지고 예배 마져 사람들의 취향에 맞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고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 설교를 할 때도 사람비위 맞추는 소리를 해야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4. 주님의 권고

칭찬할 것이 없고 책망만 받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교회였지만 우리 주님은 포기치 않고 권고의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계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멸망시키시려면 경고가 필요 없는 것입니다. 말없이 멸망의 채찍을 드시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하게 경고하시고 꾸짖고 책망하시는 것은 주님의 사랑입니다. 
계 3: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원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여러분! 얼마나 은혜스런 말씀입니까?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포기 하지 않으셨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문밖에 세워두었는데 그런데 주님은 그 밖에 서서 “나는 너를 권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나의 마음 문 밖을 내 몰았는데 주님은 내 마음의 밖에서도 사랑하는 내 아들아 ... 내 딸아 “내가 너를 권한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여야 합니다. 금은 믿음을 상징합니다. 용광로에 넣어서 불순물을 제거한 순수한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부요케 할 수는 없습니다.

탄자니아 "엘림 선교회" 소속의 선교사 Bud Sickler(시클러)가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는 도중에 성난 암사자 한 마리가 갑자기 밀림에서 뛰어나와 길가던 한명의 여자와 어린이 그리고 가축들을 차례로 물어죽이고 나서는 교인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습니다. 
이때 그 원주민 목사는 교인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두려워 마시오. 사자 굴에서 다니엘을 구해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암사자를 향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 사자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저주를 받을 지어다." 그러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불이 떨 어져 그 암사자를 죽여 버렸던 것입니다. 
단순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었을 때 우리는 때로는 설명 못할 기적을 체험케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수한 믿음은 영적 수치를 덮어주며 영적인 소경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말씀을 곧이 곧대로 믿는 것이 순수한 믿음입니다. 순수한 믿음의 열정을 가집시다. 주님오실 때 까지 순수한 믿음을 지킵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