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희는 이 일을 하라 (마 28:16~20)

  • 잡초 잡초
  • 225
  • 0

첨부 1


너희는 이 일을 하라 (마 28:16~20)


추석연휴와 함께하는 주일입니다. 저는 가족들과 함께 인천세계도시축전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인천 송도 신도시는 바다를 매립한 곳으로 여의도의 약 7배가 되는 넓은 면적입니다. 첨단 국제도시로 설계되었습니다. 100층이 넘는 초고층 빌딩이 하늘을 치솟는 곳입니다. 세계최우수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을 향해 바다위로 건설된 인천대교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21,270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다리입니다. 이것은 기적과 축복의 현장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는 세계 선진 20개국의 멤버이며, 내년 선진 20개국 정상회의 개최국이 되었습니다. 이 또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올해의 농작물은 대풍입니다. 들판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세계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풍성한 과일들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반면 지구촌 곳곳에는 천재지변으로 슬픔과 좌절에 처해 있습니다.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은 태풍으로, 인도네시아와 사모아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참혹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대재앙을 우연으로 여기시겠습니까? 남의 일로만 여기시겠습니까? 성경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1절과 마태복음 24장 7절~8절, 33절에 예언하시기를“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세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은 무엇이겠습니까? 베드로후서 3장 8절~10에 말씀하시기를“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오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날이 있기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부활하신 후 40일간 세상에 더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면서 당부하신 최후의 명령이 본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이 시급히 행해야할 가장 소중한 사명입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은 중요한 것으로 어떠한 경우든 이를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만일 지키지 못하면 큰 불효로 생각할 것입니다. 유언은 세상을 떠나는 부모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전 최후로 남기신 준엄한 명령입니다. 마치 유언과도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1. 너희는 가라 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너희는 가서...”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영혼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길 잃은 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인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잃은 양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기에서“가서”라는 것은 한번만 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나아가야할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돌아올 때까지 인내하며 가고 또 가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인간의 본분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며, 온갖 죄악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범죄한 사람들의 말로는 영원한 멸망인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대로 두면 모두가 멸망하기 때문입니다.

길 잃은 양을 찾으시는 주님의 심정을 누가복음 15장 4절~7절에 기록하기를“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 한 사람이 돌아와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회개할 것이 없는 자 즉 구원받은 사람 아흔아홉보다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빼어 닮은 사랑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정에서 곱게 자라던 한 여 청년이 그만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가출을 했습니다. 중심을 잃고 방황하다가 끝내 창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늙고 보니 그나마 자기를 찾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세를 한탄하다가 자살을 결심하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강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자 문득 어렸을 때 자기를 그토록 애지중지 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그립고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죽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그길로 집을 향했습니다. 

살던 집에 도착해보니 무슨 일이 있는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궁금해 하며 살며시 대문을 열었습니다. 잠겨있지 않은 대문이 삐걱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그때 집안에서 어머니가 달려 나오시며“케시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어머니와 딸은 서로 부둥켜안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참 지난 후 딸이 궁금하여 어머니께 여쭈었습니다.
“엄마는 내가 돌아온 줄을 어떻게 알고 이름을 불렀어요? 그리고 오늘 무슨 일이 있는데 이렇게 사방에 불을 켜 놓았어요?”“이것아, 네가 집을 나간 후 하루도 불을 밝히지 않은 날이 없었고, 대문을 잠근 날이 없었단다. 혹시 네가 집에 돌아왔다가 대문이 잠겨있는 까닭에 마음이 변해 다시 돌아갈까 봐 대문을 잠그지 않았단다.”

이것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보다 더 진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사야 49장 15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러한 사랑으로 불신영혼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영혼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한 성도는 이렇게 시를 썼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심은 다른 이들을 찾으라 하심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심은 다른 이들에게 말씀하라 하심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건지심은 다른 이들을 건지라 하심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은 다른 이들을 구원하라 하심일세.”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나라에서 얻게 될 감격에 대해 어느 성도는 이러한 시를 썼습니다. 
“내가 저 아름다운 도성에 들어갔을 때, 
세상의 슬픔과 걱정이 모두 사라질 적에
그 누군가 나를 향하여 
‘나를 이곳에 초대한 이는 바로 당신이라오.’라고
말하는 소릴 듣고 싶소.

세상의 사랑하는 이들이 가까이 다가와
강 건너편에서 나를 환영할 적에
그 누군가 나에게 나직한 말로
‘나를 이곳에 초대한 이는 바로 당신이라오.’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 싶소.

환희에 찬 천국의 비파 소리 울려 퍼질 때 
그 소리 명랑하고 은은하게 울려 퍼질 때 
그 누군가 노래하며‘나를 이곳에 초대한 이는 바로 당신이라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싶소.
이 행복한 본향 집에 하마터면 못 올 번하였소.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초대하지 않았더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양심이자 사명입니다. 잃은 양을 찾으시되 먼저 믿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남기신 당부의 말씀이“너희는 세상을 향해 가라.”하신 것입니다.“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누가복음 14:23)고 하셨습니다. 

2.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할 전도의 대상과 전도의 범위를 알 수 있습니다. 대상은 모든 족속입니다. 범위는 모든 족속이므로 땅 끝까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말씀하시기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복음증거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만민이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종의 차별이나, 빈부귀천의 차별이나, 남여노소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모두 다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잃은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목사님과 교인이 함께 전도하러 나가서 주고받는 대화입니다.“집사님! 이 집에 들어가십시다.”집사님이 앞서 들어가라고 하는 말입니다.“목사님, 안 돼요. 이 집은 불교 믿는 집입니다. 대대로 불교를 믿는 집입니다.”
“이 집에 들어갑시다.”“목사님이 잘 몰라서 그렇지, 이 집은 일 년에 세 번씩 굿하는 집입니다. 반 무당입니다. 안됩니다.”
“그래요. 그러면 저 뒷집에 들어가 봅시다.” 
“아, 이 사람은 우리 교회 아무개 권사와 싸움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에 나오겠습니까?”
“그래요. 그러면 저쪽 골목에 있는 저 집으로 들어가 보시죠.”“아이고, 저 사람은 우려 교회 아무개 집사하고 계하다가 계가 깨져서 얼마나 싸움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떠난 사람입니다. 놓친 고기는 더 잡기 힘이 듭니다.”

이렇다고 빼 버리고 저렇다고 빼 버리면, 어디에도 전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전도의 대상은 모든 족속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전도 대상자들입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전도를 위해 성도들을 내보낸 후에, 어떻게 전도하나 확인하고자 나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 집사님이 사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을 본 목사님이“아니, 집사님! 왜 여기에 버티고 서 있습니까? 빨리 다니면서 전도해야지 사거리에는 왜 서있어요?”“목사님, 전도는 아무나 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봐서 예수 믿을 것처럼 생긴 사람에게 전도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거리에서 예수 믿을 것 같이 생긴 사람을 고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말하기를“집사님, 도대체 예수 믿을 것처럼 생긴 사람은 어떻게 생긴 사람입니까? 어디에 딱지라도 붙이고 다닙니까? 내가 볼 때, 집사님도 아무리 훑어봐도 예수 믿게 생긴 것 같지 않는데요. 집사님 같은 사람도 믿어 집사가 되었는데, 무얼 고르고 서 있어요?”라고 하면서 같이 웃었다고 합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 기념비에 웨슬리가 남긴 세 가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세계는 나이 교구다. 
둘째, 하나님은 자신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가신다. 
셋째,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이는 웨슬리가 죽으면서 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처럼 귀하고 좋은 말씀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3. 가서 전하는 사람에 대한 축복의 약속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0절에“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말씀입니까?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최대 난제인 죽음의 문제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서 하루 이틀이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의 몸으로 오신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면 어떠한 결과가 있어지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는 데에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축복의 약속은 반드시 그 약속에 해당하는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없는 축복의 약속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1~6) 시편 23편에 나타난 양과 목자의 비유의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첫째, 만족함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는 말씀이 이를 가리킵니다. 필요를 채우시므로 얻는 만족함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곳에는 채우심의 은혜로 만족함이 있습니다. 

둘째로, 보호함이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떠한 위험과 위협이 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의 안전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4장 8절~9절에 기록하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망할 것 같은데 망하지 않고, 넘어질 것 같은데 넘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오뚝이 같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승리가 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악한 원수가 나를 넘어뜨리기 위해 끊임없이 시험하지만 끝내 이기고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은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증거에 힘쓰고 애쓰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함께 하시되 순간적이 아니라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함께하신다는 것은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보다 더 귀한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데 누가 감히 해하겠습니까?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잃은 영혼을 찾는 전도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며,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을 길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의 양보다 더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웃에 대한 가장 귀한 사랑이 무엇입니까?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입니다. 전도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영혼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과 세상 끝 날까지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죽어가는 이웃의 영혼을 위해, 그리고 내게 주어질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면서 힘써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