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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느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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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느 4:1~6)
  

우리 교회는 매년 봄, 가을로 21일간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올해 가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소서.”라는 주제로 10월 11일부터 31일까지 새벽 5시에 본당에서 갖게 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모든 스케줄을 뒤로하고 이 영적인 축제에 참여하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것을 밝히 헤아려보는 계기가 되길 축원합니다.
우리가 일할 때는 우리가 일할 뿐이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일하십니다.

우리가 늦게 깨달아서 그렇지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둘러싼 상황을 움직이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삶에 문제가 많다고 인식된다면 이때야말로 기도할 때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신호입니다.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무기력하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앉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탄도 내버려둡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서 뭔가 하고자 하면 그때부터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때부터 사탄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갖은 궤계를 부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침체에 빠져 무기력하게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사탄도 별로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뭔가 해야겠다고 일어서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사탄의 방해 공작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그 공격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옵니다.

느헤미야의 지도 아래 예루살렘 성벽공사가 진행되자 사탄의 방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예루살렘에서 대략 15마일 정도 떨어진 호론 사람 산발랏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사마리아의 총독으로서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장래 예루살렘을 포함한 유다까지도 자기의 수하에 넣으려는 야심이 많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와서 예루살렘의 성벽을 쌓는다고 하니 못마땅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두 번째 인물은 암몬 사람 도비야인데, 유대인의 피가 섞인 암몬족의 족장이면서 당시 산발랏의 참모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유대인 중에도 많은 인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느13장에 보면, 그는 그 당시 대제사장인 엘리아십과도 막역한 관계를 유지했을 정도였습니다.

세 번째 인물은 아라비아 사람 게셈입니다. 
그는 애굽 동북부에서 팔레스타인 남부까지 광활한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 영주로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여 강성해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집요한 방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들의 방해로 백성들은 동요하고, 성벽공사의 장래를 아무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나라면 그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를 생각하면서 말씀에 귀를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자녀들이 흔들립니다.
사업의 내일이 불투명합니다.
건강에 적신호가 왔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었습니다.
이런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요?
기도의 사람 느헤미야를 통하여 지혜를 얻고자 합니다.

1. 그 때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4-5절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게 하였음이니이다.”

느헤미야의 지도력은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느헤미야 1장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에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2장에서, 아닥사스다 왕이 슬픈 얼굴을 한 이유를 말하라고 명령했을 때에도 그는 순간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기도를 ‘화살기도’라고 합니다.
몇 초 안되는 짧은 순간이지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입니다.

빌4:6-7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세우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살면서 기도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뢰십시오.

성경에는 문자 그대로 모든 일에 기도한 사람들의 이름이 즐비합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이 멸망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삭의 아내를 선택하는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서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보복을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베드로는 도르가라는 여자의 생명을 다시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우들은 그가 풀려나도록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기도는 모든 문제의 열쇠라는 것입니다.

본문 느4장에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을 때에도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조롱과 비난을 받을 때 성도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변명하거나, 논쟁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그 조롱과 비웃음이 사람을 낙심케 하고, 움츠러들게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가끔씩 주위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마십시오.
변명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 이렇게 생각하고 기도하십시오. 
‘내가 이런 소리를 듣는 것을 보니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신호를 보내시는구나.’
‘잠간 농땡이를 부렸더니 하나님께서 정신 차리라고 신호를 보내시는구나.’
아셨지요?
그때 느헤미야는 기도했습니다.

2.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하도록 권면했습니다.
14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면 갈수록 상황을 보지 말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해야합니다.
무용수나, 피겨 스케이트 선수들이 회전할 때를 보세요.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잖아요?

우리 같았으면 몇 바퀴 채 돌기도 전에 나가떨어질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넘어지지 않아요.
왜 그런 줄 아십니까?
그것은 그들이 돌면서도 한 점에 시선을 고정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시선을 한 사물에 고정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넘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의미있는 얘기입니다.

마14:22-36절에는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물위로 뛰어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시선을 집중했을 때는 물에 빠져 들어가지 않아요.
그러나 파도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는 물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베드로의 몸무게가 순간 더 무거워졌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상황에 시선을 빼앗기면 침몰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
500원짜리 동전이 더 클까요 아니면 태양이 더 클까요?
물어보나마나지요?
그러나 동전이 태양보다 더 크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동전을 눈에 가까이 갖다 댈 때입니다.
눈에 동전을 가까이 갖다 대면 동전에 가리어 아예 태양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도 문제에 너무 집중하다가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문제는 잠깐 보고 하나님을 직시하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문제의 어려움을 너무 깊이 분석하는 엘리트들은 겁이 나서 아무 일도 못합니다. 
성공사례, 실패사례, 위험부담을 따지다가 밤을 새웁니다.
그러다가 말아요! 
때로는 아직 다 모르지만,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믿고 과감하게 뛰어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상황이 힘들어서, 문제가 많아서, 세상이 강해서, 헤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선이 흔들려서 헤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아 보이니까 세상이 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커 보이게 되면 세상은 작아 보이게 되는 법입니다.
하나님이 커 보이기 시작하면 거룩한 베짱이 생겨서 세상이 우스워 보이는 것입니다. 
문제의 돌파구는 하나님을 보는 시각,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열려집니다.
느헤미야는 크고 강한 하나님께 생각을 집중하도록 권면했습니다.

3.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성벽건축에 더욱 매진하도록 독려했습니다.
16절 “그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느헤미야는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창과 방패와 활을 가지고 방비하도록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와 일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일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그저 추측일 뿐이고, 기도 없이 일만 하는 것은 자만일 뿐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처럼 기도하라. 동시에 모든 것이 네 자신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일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는 것처럼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바른 삶의 태도입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비듬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르비듬은 현재 ‘페이란 오아시스’ 지역인데 지금도 울창한 대추야자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시나이반도 최대의 오아시스로서 그곳을 시나이의 진주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곳에 이르렀을 때에 아말렉 족속이 공격해왔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가나안땅 남부지역에 살고 있는 부족으로서 시나이 반도에 출몰하여 그곳에 산재해 있는 금광, 터어키석광, 구리광을 습격하여 재산을 탈취해 가곤했습니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장정들을 선발하여 아말렉과 맞서 싸우라고 명령하고, 자기 자신은 산위에 올라가서 손을 하늘을 향하여 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아멜렉과의 전투는 부족간의 싸움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영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출17:9절을 보세요!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서리라”

그들은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골짜기에서 전투하는 부대와 모세를 중심으로 산꼭대기에서 기도하는 부대로 나눴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전투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미신과 기독교의 다른 점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의 하나가 인간의 책임성입니다
미신은 인간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책임을 묻습니다.
비근한 예로 대학 입시를 앞둔 수험생이 ‘열심히 공부했던 안했든 붙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미신적 태도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붙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기독교적 태도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에는 없습니다.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다른 데에 가서 알아봐야 합니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세요.” “잘 암기할 수 있도록 암기력을 주세요.” “수험장에서 떨지 않도록 담대함을 주세요.” “ 잘 생각나도록 차분함을 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예요.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이고요.
기독교는 인간의 책임을 묻습니다.
모세도 골짜기에서 싸울 전투부대를 내보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오 하나님, 벼락이라도 쳐서 저 아말렉을 전멸시켜 주십시오.”라고 기도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출17:11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손을 든다’는 것은 기도한다는 얘기입니다.

딤전 2:8절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인간의 노력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지만 필요충분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전쟁의 승패는 기도에 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승패, 목회의 승패, 선교의 승패, 사업의 승패, 학문의 승패가 기도에 달렸습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민족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 사람들을 보십시오.
삶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낸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무릎을 꿇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잠의 유혹에 빠지는 것은 열정이 없다는 것이고, 삶에 열정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강열한 소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것은 많은데 새벽기도회에는 못 나오겠어요.” 라고 말하는 것은 강열한 소원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그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밤늦도록 열심히 뜁니다.

성공한 CEO들은 4시에 일어납니다.
새벽에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우리 교회는 10월 11일부터 31일까지 새벽 5시에 본당에서 21일간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이번 다니엘 새벽기도회를 통하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성공의 습관을 들이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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