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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초대 (빌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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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초대 (빌 2:6~11)


성도 여러분, 추석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의 예배에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예배에 보이지 않은 얼굴들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일을 함께 맞을 수 있도록 우리 주님께서 동행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세계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하나가 되는 날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각자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부라는 사실과, 성찬을 통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형제요, 자매로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개신교에서는 말씀에 대한 강조에 비해 성례전의 의미가 약화된 것이 사실이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찬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성만찬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역사를 기억 하게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 23-25절에서 성만찬에 대해 말하며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성만찬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을 다시 새롭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기념이나 기억이 아니라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영적인 교제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6절에 보면“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하였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그리스도와의 연합에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요한복음 6장 56절에서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라고 하심으로, 성찬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됨을 말씀하였습니다. 성찬은 주님을 내 안에, 내 안에 주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결국 성만찬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7). 이렇게 성찬을 통하여 무감각하여 죽은 것과 다름없었던 우리가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심으로 다시 살아나는 은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성찬을 위해 마련된 떡과 포도주만이 아니라,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그리스도인에게도 임합니다. 각각의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도 임합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 안에서 그리스도와 우리를 하나 되게 하며, 주님의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가 서로 하나 되게 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은총입니다. 오늘 성찬을 받는 우리 모두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신비한 은총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몸 말

오늘 우리가 생각하려는 본문은 초대 기독교에서 불렀던 “그리스도 찬가”입니다. 이 찬가는 초대 교회에서 가장 일찍 만들어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 문이자 찬송으로서, 우리 믿음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한 초대 교회의 이해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찬가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비함입니다.“그는 근본 하나님의‘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하나님의 본체’라 했고, 7절에서는‘종의 형체’라 번역했지만 ‘본체’와‘형체’라는 말은 같은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였다는 것은 완전한 하나님이었다는 말입니다. 이미지나 겉모습만 하나님과 비슷했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같은 분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랬던 분이‘종의 형체’를 가졌다고 했는데, 그것은 완전한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 종인 척 행세했던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종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즉 완전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을 찾아와 완전한 종이 되었다는 것이 그리스도 찬가의 핵심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종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자기 비움’이 있었습니다.‘자기를 비워’에서‘비운다(케노운)’는 말은‘자의적으로 포기하다.’는 뜻을 가진 말로, 라틴어로는‘병이나 그릇을 끝까지 기울여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정쩡하게 비워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워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과 피를 모두 쏟아야 했던 십자가의 죽음이야말로 자기 비움의 절정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떡을 가져 감사기도를 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기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 22:19)”고 하였습니다. 또 잔을 가지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기를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7-28)”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만찬의 식탁에서 왜 떡과 포도주를 선택하셨을까? 제자들에게 떼어 주셨던 떡과 나누어 주신 포도주를 묵상하는 것도 성찬의 의미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떡을 당신의 몸이라 하셨고, 포도주를 당신이 흘리실 피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떡을 당신의 몸이라 하시고, 포도주를 당신의 피라 하셨던 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떡(빵)은 밀이나 보리로 만들어집니다. 아무리 잘 익었다 하더라도 추수한 밀과 보리로 바로 떡(빵)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떡(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밀과 보리를 가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밀과 보리를 고운 가루로 만들기 위해 맷돌에 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엄청난 무게를 가진 연자 맷돌 사이에 들어가 완전히 으깨어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밀과 보리는 빵(떡)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반드시 으깨어지고 부서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포도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를 수확한 뒤 목욕탕처럼 생긴 포도즙 틀에 수확한 포도를 넣고 사람들이 들어가 발로 밟는 과정을 거칩니다. 싱그럽게 주렁주렁 열렸던 탐스러운 포도 송이는 틀 속에서 사람들의 발에 짓밟혀 철저하게 짓이겨 집니다. 여전히 포도 송이로 남아 있는 것은 포도주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형체가 모두 사라질 만큼 짓이겨질 때 비로소 포도는 포도주가 됩니다.

예수님이 떡을 당신의 몸이라고, 포도주를 당신의 피라 말씀하셨던 데에는 떡과 포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당신이 져야 할 십자가의 의미와 일치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땀을 피처럼 쏟으시며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그냥 자나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은 으깨어짐과 짓밟힘, 그것이 십자가의 제물이 되기 위해 당신이 지불해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것을 고통스럽게 인식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그 주님의 몸과 피인 전병과 포도즙을 받는 우리들도 온전히 자기를 비우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9절 이하에 보시면, 결론적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이셨다고 그리스도 찬가는 노래합니다.“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10-11)

종의 모습을 취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셨다는 고백은,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에게 위로와 도전을 줍니다. 우리가 성찬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초대에 응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셨던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 되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당신의 몸을 드려 자기를 비움으로 종 되심을 확인하셨습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몸을 내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몸을 내 안에 모신다고 하는 것은 우리 또한 그분처럼 낮아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찬을 통하여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예수님이 보여 주신 가장 겸비한 삶을 살게 될 때, 예수님을 높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갖게 하심으로가 아니라, 남이 오르지 못한 자리에 오르게 하심으로가 아니라.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시는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허물 많은 삶을 살아가지만 다시 한 번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시켜 주시는 은총을 성찬을 통해 베풀어 주심을 믿습니다.

성찬의 의미는 단순히 떡(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종의 형체를 지니기까지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처럼 나를 비우는 삶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그러하게 될 때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성찬은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초대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새로워지는 은혜가 오늘 성찬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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