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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회개와 하나님 나라 (막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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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하나님 나라 (막 1:14~15)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첫 말씀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짧은 말씀 속에 구원의 도리가 정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때가 찼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실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가깝다’는 것은,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 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는 구원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라’고 했습니다. 회개란 이제껏 지은 자기의 죄악에 대하여 슬퍼하고 과감하게 청산하고 새 사람으로 변화 받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믿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주님의 말씀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자기의 죄에 대한 회개가 없이도 복음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회개 없는 구원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회개가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기 죄를 회개한 사람만이 그 다음, 믿음의 단계로 들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맨 먼저 회개의 관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이렇게 볼 때,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도 필요합니다. 성도들도 죄를 짓지만 회개를 통해서 죄를 씻고 정결한 생활을 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저는 회개의 의미와 그 결과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해 드림으로 성도님들과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죄인이 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죄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사람 속에 있는 타락한 본성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에 이르기를 “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선뜻 자기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신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이 죄인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알려면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면 자신의 영적, 도덕적인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율법은 무엇이 죄인지를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죄 중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자연히 우상숭배의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알지 못하므로 불의를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알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며 불의함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성령이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요 16:8).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시며 죄의 결과로 받게 될 심판에 대하여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해 주십니다. 

예레미야서 23장 29절에 보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소멸하는 불같이 불의한 우리 심령을 정화시키며, 바위처럼 완고한 우리 마음을 두드려 부수어 겸손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먼저 믿은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불신 이웃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은 믿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에 말씀을 들은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기억도 희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둔해서 들어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주 말씀을 들어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자기의 죄를 깨닫고 통분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어 회개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자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죄를 지적받은 사람은 그 다음 단계로 자기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는 죄인입니다. 이러이러한 죄를 지었습니다.” 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는 둘 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였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고, 가룟 유다는 돈의 출납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둘 다 예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여 대제사장에게서 은 삼십 냥을 받고서 스승을 적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저택 뜰에서 심문 받으시는 예수님의 목전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세 번째에는 ‘내가 만일 예수의 제자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겠다’고 맹세까지 했습니다. 주님을 팔아먹은 가룟 유다의 죄가 큰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베드로의 죄도 유다 못지않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보여준 태도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째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을 때 마침 새벽닭이 울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한 죄를 통분히 여기고 통곡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사랑하면서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자신의 비겁함을 뉘우쳤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적들에게 넘겨주고 나서 무참하게 고난 받고 정죄 받으시는 것을 보고서는 가책을 느꼈습니다.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가지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저들이 말하기를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행동은 오늘날 불의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고결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적어도 유다는 자기의 죄를 뉘우쳤고 목숨을 끊어 죄 값을 치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다의 행동은 회개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했다면, 겸손히 범죄에 대한 처분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스스로 목매어 죽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다는 주님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행위를 뉘우쳤을 뿐,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 버림으로써 주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켰습니다. 저는 만일 가룟 유다가 진심으로 회개하였더라면 주님께서 그를 용서해 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애초부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따랐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큰 죄를 범했을 때 눈물로 자복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처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한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내리신 처분은 너무나 은혜로왔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어느 아침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숯불을 가운데 두고 제자들과 둘러 앉아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아침을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시몬이 대답하기를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후에, 두 번째로 이르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러자 “내 양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후에, 세 번째로 이르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근심하며 말하기를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신 것은 주님께서 베드로를 용납하시고 사명을 맡기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베드로가 회개했을 때, 주님께서는 이 같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베드로처럼 우리도 때때로 주님을 배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변명으로 일관하지 말고 솔직히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시인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하신 대로, 회개하는 우리에게 사죄의 은총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로, 회개에는 마음과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였으면 그 다음 단계로 마음과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생각과 행동이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면 진정으로 회개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회개에 대하여 이런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이르기를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였더니 “예, 아버지, 가지요.”라고 하고는 실제로는 가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둘째 아들은 “싫어요.” 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처음에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했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한 것, 이것이 곧 회개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생각을 바꾸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왕이 되고 나자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명하신 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행했습니다. 죄를 지적 받으면 솔직히 인정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했습니다. 한번은 사울 왕이 백성을 거느리고 블레셋과 싸우게 되었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길갈에 내려와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것이니 칠 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칠 일째 되는 날, 사무엘이 더디 오자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아무리 왕이지만 하나님께 번제를 드릴 자격은 없습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왕의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니, 사울이 대답하기를 “백성은 나에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은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치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변명을 늘어놓기에 바빴습니다. 

또 한번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쳐서 사람이든 우양이든 물건이든 다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전쟁에서 이겼을 때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포로로 잡고 살진 우양을 죽이지 않고 별도로 남겼습니다. 사무엘이 오자 사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명령을 다 행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내 귀에 들어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그러자 사울이 말하기를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사울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백성에게 탓을 돌렸습니다. 사울 왕은 범죄하고도 그 사실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하면 마지못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였지만 다시금 같은 범죄를 반복했습니다. 사울 왕의 회개에는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회개는 돌아서는 것 곧 방향전환입니다. 지금까지 가던 길에서 180도 돌아서는 것이 회개입니다. 가출한 아이가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던 사람이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처럼 회개는 생활의 근본적인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회개할 때 주어지는 은혜로운 결과에 대하여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죄 사함을 받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받게 되는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죄 사함입니다. 죄책의 무거운 짐을 벗겨주십니다. 이사야서 1장 18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하였고, 이사야서 55장에 이르기를 “6)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추악한 죄를 지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자복하기만하면 정결하게 씻음을 받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보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대속하기 위하여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보십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짐승의 피로써 속죄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성도들을 위하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9:13-14에는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불쌍히 여기십니다. 시편 103편에 보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이같이 언급합니다. “8)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이 시편과 같이, 하나님의 용서는 한이 없으시고 동시에 완전무결하십니다. 우리의 죄가 아무리 클지라도 회개할 때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자연인으로서 의롭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의인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에 이르기를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가치관의 변화가 따릅니다. 

여리고에 살던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부자가 된 것이 잘못이 아니라, 어떠한 방법으로 부자가 되었느냐가 중요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식민지 백성들의 세금 징수를 도급제로 운영했습니다. 개인이 로마당국과 계약을 체결하고 세금을 징수해서 정해진 금액을 상납하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세리들은 자기들이 많이 가져가기 위해서 세금을 부당하게 많이 거두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삭개오 역시 여기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하루는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볼 수 없자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방향으로 앞질러가서 길가의 뽕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때에 예수님께서 그곳에 이르러 우러러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날, 삭개오는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이르시기를 “9)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삭개오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부당하게 징수한 것은 네 배나 갚겠다고 한 것은, 그의 가치관이 새롭게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물질만능주의의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는 가치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이처럼 가치관의 변화를 수반합니다.

셋째로, 말과 행동이 새롭게 변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본디 일곱 귀신 들렸던 가련한 여자였습니다. 정신이 병들면 생활이 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성 막달라 마리아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을 성도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그 이름 앞에 성스러울 성(聖) 자가 붙어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라는 이름에 합당하게 말과 행동이 정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고 했습니다. 

회개한 사람은 더러운 말을 버리고 선한 말을 해서 덕을 세우고 듣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엡 4:29). 에베소서 5장 3절 이하에 보면 “3)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4)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생활이 규모가 있고 경건하게 바뀝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회개의 영을 주셔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기를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 5:21)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온전한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가능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사람이 흘리는 눈물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기뻐서 흘리는 눈물도 있고, 억울해서 흘리는 눈물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람들은 눈물로써 다양하게 감정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눈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눈물은 회개의 눈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눈물을 멸시치 않으시고 반드시 사죄의 은총을 내려 주십니다. 그와 동시에 왜곡되고 비뚤어진 우리의 삶을 고쳐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된 새 사람으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무쪼록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죄와 허물을 회개함으로 사죄의 은총을 누릴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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