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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 (약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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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 (약 3:13~18)

 
지금은 정보화 시대입니다.
또한 지식 만능 시대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보나 지식을 누구보다 빨리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일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해서 사람들이 모두 지식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첨단 과학 문명이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한 지금 우리의 형편은 과연 어떻습니까? 우리의 삶의 질이 전에 비해서 좋아졌습니까?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이나 정보를 삶의 지혜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유익한 지식을 많이 갖고 있으면 어느 정도 편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런 지식들이 삶의 질을 근본적으로 향상시켜 줄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잠언 기자가 분명히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잠언 4장 7절 말씀입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네가 얻은 모든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지니라"
그 어떤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지혜와 명철을 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가 지혜와 명철을 구해야 합니까?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야고보서 기자는 우리가 참된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평화를 얻기 위한 역사의 계속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전쟁마저 평화를 얻기 위해서 필요했다고 역설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평화는 귀신에게서 비롯되는 거짓 평화에 불과합니다. 참 평화는 위로부터 난 지혜, 즉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지혜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지혜를 어떻게 해야 구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지혜를 꾀와 혼동하고 있지만 사특한 꾀는 결코 지혜가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 누구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잠언 9장 10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사도 바울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성경은 과학 지식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 그 지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는 지혜의 특징은 과연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온유함으로 행하게 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참 지혜는 온유하게 행하게 합니다. 온유함이 없는 지혜는 참 지혜가 아닙니다. 대부분 지혜가 좀 있으면 교만하기 쉽습니다. 남을 판단하고 무시하기 쉽습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존경받고 칭찬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오랜 연단 과정을 거쳐서 얻게 되는 온유함으로 행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 사람들이 즐기는 경기 가운데 로데오 경기가 있습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위에 올라타고서 날뛰는 말 위에서 오래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입니다. 들에서 잡은 야생마는 힘이 넘치고 또 미친 듯이 날뛰기 때문에 로데오 경기 외에 다른 용도로는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전문 조련사가 길을 들이면 서서히 말을 듣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탈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얌전해져서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가 온유함인 것입니다.

민수기 12장 3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일찍이 주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둘째,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화평을 심는 삶을 살게 합니다.

어떤 집단이든지 그 안에는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그 구성원들이 아픔을 겪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교회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교회가 분란과 그에 따른 아픔을 겪게 되는 까닭이 마음 속에 있는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약 3:14)
그렇습니다! 그런 마음은 필연적으로 악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귀신이 주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 인한 비극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마도 가인일 것입니다. 질투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또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었지만 그만 질투의 화신이 되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내팽개치고 오직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셨습니다. 까닭에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독한 시기와 다툼에 맡길 때 성령은 우리를 떠나실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과 귀신은 결코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독한 시기와 다툼에 지배를 받을 것이 아니라 17절 말씀에 있는 것처럼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편견과 거짓이 없는 삶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둘 수 있습니다.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인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말입니다. 나도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도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화평으로 심는 사람이 아무 문제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나 문제가 있습니다. 누구나 연약하고 또 누구나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말하고 행동하면 화평으로 심는 결과가 되고 마침내 의의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 속에 생기는 독한 시기와 다툼의 마음을 스스로 다스리기 어려울 때 지체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그 누군가를 향하여 오히려 따스한 미소와 다정한 말 한 마디로 격려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화평으로 심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과 벗하지 않는 삶을 살게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주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 것을 주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구별된 존재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도 그를 세상으로부터 구별해 내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출애굽 사건은 애굽에서 살면서 세상 문화에 찌들어버린 이스라엘 자손들을 다시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해 내시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마침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사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 내시는 작업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세상과 섞이게 되는 까닭을 우리 육체의 정욕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동기는 알고 보면 육체의 정욕입니다. 육체의 정욕은 쾌락과 향락이라는 의미를 숨기고 있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육체의 정욕을 구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평화가 깨지는 것입니다. 쾌락이나 향락은 결코 복이 아닙니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결코 이 세상에 섞여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던 요셉이 누구를 믿고 의지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지 않았습니까? 그 요셉을 향해서 애굽의 바로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창세기 41장 39절 말씀입니다.
"요셉에게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그러면서 그를 애굽 온 땅의 총리로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도 모두 다 지혜 있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 그리스도 안에 참 지혜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2장 3절 말씀입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물론 세상 지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 즉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늘 기도하는 가운데 위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힘입어 늘 온유함으로 행하고 항상 화평으로 심고 의의 열매를 거두며 언제 어디서나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사는 가운데 평화 없는 이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그 주님의 뜻을 널리 전하는 참으로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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