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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섞인 무리를 분리케 하였느니라 (느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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섞인 무리를 분리케 하였느니라 (느 13:1~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누가 언제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귀에 익은 말입니다.
실제로 이 말은 우리나라 사회의 어디에서나 부동의 진리로 통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남북통일을 민족의 최대 당면 과제로 안고 있는 현실에서 '통일'과 비슷한 뜻의 이 '뭉치자'라는 말은 그 단어 자체에 이미 그 어떤 비판이나 이의를 제기할 여지조차 없는 절대적인 힘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에 급속히 유행하고 있는 말도 역시 '뭉치자', '합치자'라는 소리입니다.
즉 모든 기독교 교단들을 뭉쳐서 하나의 교단으로 통일하자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교회들이 이렇게 수많은 교단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이유나 조건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합쳐야 한다.' -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에서 점점 드높아지고 있는 이 소리는, 정말 일고의 여지도 없는 백번 지당한 말로만 들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압도적인 여론, 이런 대세적 조류에 대하여 우리 개혁주의 기독교는 과연 어떻게 대답하고 처신해야 하겠습니까?

느헤미야는 바벨론에서 포로생활하던 유다 백성들 중에 제3차로 귀환한 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던 인물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변 이방 민족들의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끝내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완수해 내고, 지난 주일에 보았던 것처럼 바로 앞의 12장에 나오는 대로 즐겁고도 감격스러운 낙성식을 올렸습니다.
  
갖은 고생 끝에 큰 일을 완수해 내고 봉헌 예배까지 드렸으니, 보통 생각에는 바로 그런 최고 정점의 분위기에서 느헤미야서의 대단원의 막이 내릴 법도 합니다.
하지만 느헤미야의 사명은 결코 거기서 끝나 버리지 않습니다.
대공사를 완료한 직후 느헤미야가 새로 시작한 일이 바로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바로잡고 고쳐 나가는 '개혁운동'이었습니다.
  
그 여러 가지 개혁운동들 중에 제일 첫 번째로 나타난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앞에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개혁이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된 것을 고쳐 나가다'라는 뜻입니다.
정말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고치는 일에 당연히 제일 앞장서야 할 교회가 바로 개혁주의 신앙 노선을 따르는 교회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개혁주의 교회는 오늘날의 이런 '교단 통합 운동'을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합니까?

개혁주의 교회 운동이란 '가시적 교회의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교회의 성별'을 지키는 진리운동입니다.

본문 1절부터 3절은 느헤미야가 시행했던 첫 번째 개혁운동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기록하기를 "1그 날에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2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3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몰수히 분리케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어느 날 이와 같은 일대 개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은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려주던" 중에 갑자기 발생되었습니다. 
즉 특별한 개혁운동을 한다고 무슨 실천위원회 따위를 만들고 해서 그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어가다가 어떤 정점에 이르러서 터진 사건이 아니라, 그냥 평상시의 정기적인 예배 도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다가 일순 발생하게 되었던 개혁운동이었던 것입니다.
  
그 말씀은 곧 '암몬과 모압 족속은 옛날에 하나님의 백성을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저주했던 까닭에 이제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라는 신명기의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회"란 말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이는 "총회"를 가리키는 말로서 특별히 '예배적 공동체'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 한 총회 안에 몸으로는 하나가 되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아주 이질적인 무리가 섞여 있었는데, 바로 '암몬과 모압 족속'이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은 고국이라고 찾아온 땅이기는 했지만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 땅에 원래 살고 있던 암몬과 모압 족속의 자녀들과 자기네 자녀들을 통혼시키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훨씬 더 쉽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처럼 불신결혼을 통해 유다 민족 가운데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회' 즉 '이스라엘 교회' 안에까지 섞여 들어와서 교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다 백성들은 "이 율법을 듣고", 즉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곧 "섞인 무리", 즉 혈통적으로 암몬과 모압 핏줄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가려내어 "몰수히 분리케" 하였습니다. 
즉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회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모압과 암몬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지 못하게 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하나님을 진실로 믿겠다고 하면 그런 자들의 개종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대표적으로 모압 여인인 룻이 시모 나오미를 따라 하나님을 믿겠다고 왔을 때에 베들레헴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칭찬하며 받아들인 사실을 보아서도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몰수히 분리했다'는 말은, 하나님은 믿지 않으면서 그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사회적으로 섞여 있다 보니 그들의 예배에도 그냥 의례적으로 참석하던 이방인들을 구별해 내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스라엘이란 것이 순수한 신앙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섞여 있던 불신앙적인 무리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는' 것이 필연적이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개혁주의 신앙을 지키는 교회에서도 부단히 지켜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 중에 하나입니다. 
교회라는 이 공동체가 그 생명과 같은 특성인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룩하지 못한 것과 분리'되는 것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거룩'이라는 히브리어 단어 자체가 '나누다, 잘라내다'라는 어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불결한 것, 불경한 것, 더러운 것, 죄악된 것들을 구별하여 나누고 분리해야 거룩한 것만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어떤 이유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도 '거룩'한 것은 '부정'한 것과 결코 타협하거나 섞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나라 기독교계는 '하나 되기 운동' '교단 통합' 등의 구호 아래 어찌하든지 '합쳐 놓고 보자'는 분위기 일색입니다.
남은 다 뭉치자고 하는데 혼자서 반대하면 당연히 욕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합동'이란 말을 '분리'라는 말보다 무조건 좋은 것으로 여기는 선입관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일에 '섞이는 것'보다 '나뉘어져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예도 찾아보면 비일비재합니다. 

물리학의 열역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엔트로피'라는 개념이 있는데, '일로 변환시킬 수 없는 물리량' 혹은 '에너지의 쓰레기'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두 다른 물질들이나 두 다른 온도의 계(界)가 각각 나뉘어져 있으면 가치가 있지만 섞여 버리면 질이 나쁜 것이 되고 맙니다. 
  
내연기관이 동력을 낼 수 있는 이유도 실린더 안에는 휘발유가 타는 뜨거운 공기, 실린더 밖에는 찬 공기라는 이 온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8기통 엔진을 만들어도 실린더에 구멍이 있어서 뜨거운 공기가 바깥 공기와 섞여 버리게 되면, 즉 실린더 안팎의 온도 차이가 떨어지게 되면 그 엔진의 성능은 그만큼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리 세계는 가만히 놔두면 모든 것이 '섞여 버리는 쪽'으로 진행되지 절대로 서로 '나누어지는 쪽'으로 저절로 가지는 않습니다.
바위는 풍화 작용을 거쳐 모래가 되고 흙에 섞여 버리지 흙 속에 섞인 모래가 절로 뭉쳐져서 바위가 되지 않는 것이며, 태양이 타들어갈 때마다 태양열이란 에너지는 주변 태양계에 점점 더 섞여 버리게 되지만 그 타버린 열에너지를 다시 끌어 모아서 태양을 만들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을 가리켜 물리학자들은 '엔트로피가 증대'하는 '비가역현상(거꾸로 되돌아 갈 수 없는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그 섞이는 과정이 계속되면 우주 전체의 물질이 완전히 다 고루 섞여서 어디나 똑같은 상태가 되어 버리고 우주 전체의 온도 역시 다 고루 섞여서 어디나 똑같은 온도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바로 그 상태, 즉 어떤 에너지도 생성될 수 없고 우주 전체에서 일이나 힘의 작용이 완전히 정지되는, 다시 말해서 시공계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바로 그 상태가 소위 '우주의 열적 종말'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물질은 나누어져 있어야 써먹을 수 있는 가치가 있고 온도 역시 그 계(界)가 분리되어 있어야 에너지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즉 무조건 '합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선입관과는 정반대로 물리 세계에서는 '섞이는 것'보다 '나누어져 있는 것'이 훨씬 질 좋고 가치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나누어져 있어야만 진리의 가치가 살아납니다.
그것은 물과 잉크가 반씩 섞여 있으면 그 액체는 마실 수도 없고 글을 쓸 때에 사용할 수도 없는 것이나, 쌀과 모래가 섞여 있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쌀과 모래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을 때에 그 순수한 쌀로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참된 교회와 가짜 교회가 화해니 협동이니 하는 미명 아래 한 교단을 이루게 되면, 실상은 그 합쳐진 전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 질 낮은 종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 지상의 모든 가시적 교회들, 모든 교단들, 아니 기독교 계통이라고 불리는 모든 종파들이 다 하나로 섞여 버리는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절대로 가장 '이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영적 엔트로피가 최대치에 도달한', 즉 '아무 영적 에너지를 발휘할 수 없는 쓰레기 종교만 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되는' 최악의 상태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20여 년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우리나라의 모 기독교 잡지사에서 주요 교단 총회장들을 상대로 '교단 통합 문제'에 관한 여론 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의 교단 통합 장래를 어떻게 보는가?', '지금 본인이 총회장으로 있는 교단이 교단 통합을 한다면 우선 어떤 교단과 통합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라는 등의 설문이 있었습니다.
  
그 설문 조사는 교단 통합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고 무조건 시행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예 부동의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설문 조사에 응한 각 교단의 총회장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야말로 이구동성으로, 교단 통합 문제는 이미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언제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라는 식의 대답이었습니다.
  
마치 교단이 나뉘어져 있다는 자체가 큰 죄나 되는 것처럼, 어찌하든지 이 여러 교단들이 하나 되도록 하는 일에 모두가 진력해야 한다는 분위기 일색이었습니다. 
  
다들 '우리 교단은 어떤 교단과는 합칠 수 있다.'는 대답만 하셨지 '우리 교단은 어떤 교단과는 결코 합칠 수 없다.'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든지 합칠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하신 그 훌륭하고 유명한 목사님들께서 '왜 애당초 나누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의식이나 '자기네 교단이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에 대한 긍지 같은 것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우리는 '무조건 합쳐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 '처음에 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것부터 먼저 기억해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의 교회사에 제일 큰, 가장 중대한 교단 분열이 언제 생겼습니까?
바로 종교개혁 때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로마 카톨릭이라는 '한 교단'뿐이었습니다.
  
물론 그 중세에도 참된 진리를 지키는 극소수의 무리들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로마 카톨릭이라는 이 일당 독재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가하면 당장 싹부터 잘라버렸으니 그 소수의 무리들이 교단으로 자랄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면적으로는 그 얼마나 '완벽한 교회 일치'였습니까?
전 세계에 기독교 교단은 단 하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단 통합'을 기독교의 최대 과제인 양 떠드는 사람들은 이 종교개혁 이전의 시대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입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가 있기 전까지 한국의 장로교 교단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십계명 제1계명과 제2계명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하다 보니 그 성경 말씀을 지키는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은 그렇지 아니한 교회와 목사와 교인들과 자연히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신사참배에 찬성했던 목사나 교회들은 결국 자유주의 신학과 결탁하는 교단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교단 통합을 이상적으로만 착각하는 사람들은, 마틴 루터나 요한 칼빈이 기독 교회사에서 교단 분열의 창시자였고, 순교자 주기철 목사님이나 출옥성도 한상동 목사님 같은 분이 한국 장로교회를 사분오열한 원흉이라고 욕하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단 통합 운동은 지금 복음주의 기독교와 자유주의 기독교 사이에서 줄기차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성취되고 나면 그 다음에 곧 이어지는 것이 바로 기독교와 천주교의 통합으로 가는 것이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전 종교의 일치 운동'으로 직결됩니다.
  
사실 천주교는 '신구교 통합 운동'뿐 아니라 '전 세계 종교 일치 운동'의 주동자입니다.
뉴스 같은 데서 교황이 나오면 그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종교의 일치'라는 말이 '약방의 감초'처럼 늘 그 입에서 나옵니다.
불순한 쪽이야 순결한 쪽하고 섞이면 자기네들에게 더 이롭지요.
그 덕에 자기네들 더러운 것이 조금이라도 감추어지니까 말입니다.
  
모든 교단들이 하나가 되면, 자유주의 신학을 믿는 목사들도 교인들 앞에서는 마치 똑같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일 것이며 똑같이 천당을 믿는 것처럼 보이는 이득이 있기 때문에 그처럼 교단 통합을 열렬히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된 개혁주의 교회들이 이것을 반대하면 '분리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여서 역으로 공격할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순결한 쪽은 그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대로 불순물과 섞일 수 없습니다.
깨끗한 물과 구정물이 섞이면 그냥 구정물이 되지 절대로 깨끗한 물 반, 구정물 반으로 구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북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하지만, 진정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통일이라고 해서 공산주의를 인정하고 민주주의를 포기하면서까지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아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이단이나 자유주의 신학과 뒤섞이는 교단 통합을 이해와 관용을 앞세워서 무조건 따라간다는 것은, 진정 복음의 진리를 사랑하며 그리스도의 몸 되신 교회를 거룩하게 지키고자 하는 신자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물론 이 지상에 완전한 알곡들만 모인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히 가라지만 뿌리고 있는 교회, 천당 구원이 없는 교회, 예수 십자가의 대속 공로를 믿지 않는 교회들이 분명히 많이 존재하고 있는데 왜 그런 교회들과 합쳐야 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 '촛대를 이미 옮겨 놓으신 교회'가 이 지상에 수두룩한데, 왜 그처럼 '불 없는 가짜 촛대만 치켜든 교회'와 '세상의 빛 된 교회'가 나란히 공동성명을 발표한다는 말입니까? 
안 그래도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서라도 양 무리 틈에 섞여 들어오려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이리를 무방비 상태의 양무리들 가운데로 정식 초청하고 '강단 교류' 따위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분이 계실 것입니다.
"목사님, 이단 교회들과 통합할 수 없다는 것은 옳은 말씀이지만, 분명히 예수 믿고 천당 믿는 교회들끼리는 정말 교단이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원칙적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히 참된 교회들이라 하더라도, 민족의 특성이나 지역의 사정에 따라 교단이 나누어질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나뉘어져 있는 것이 복음 전선에 있어서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또한 신앙은 틀림없이 같아도 그 신앙대로 살아가는 방법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 특색이 있고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신자는 자신의 신앙생활의 색깔이나 분위기에 맞는 교회를 선택하여 출석할 자유가 있는 것이고, 교회 역시 신학뿐 아니라 생활 윤리와 교회 운영 방법까지 다 같은 교회들끼리 모여 자연스럽게 교단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처럼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는 교회들이 구태여 억지로 한 교단에 속하여 진리 문제도 아닌 것을 가지고 같은 교단 안에서 티격태격 잔 싸움을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누가복음 9장 50절에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참 의외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예수님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어떤 무명의 사람은 "주의 이름" 즉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 믿는 사람인 것은 틀림없었는데, 한 가지 요한이 기분 나빴던 점은 그 사람이 "우리(제자들)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열두 제자의 그룹에 들어와서 함께 활동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는데, 그 그룹에서 떨어져서 독립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이 볼 때에는 아주 괘씸한 일이어서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금지 명령'을 내리고 예수님께 와서 제 딴에는 잘했다고 보고를 드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천만뜻밖에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 원래 하던 대로 신유 기적을 베풀면서 내 이름 증거하는 것을 그대로 하게 두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을 당장 불러와서 '우리와 함께 따르면서' 그 일을 하도록 해라. 기왕에 우리와 같은 뜻 같은 목적으로 사역하고 있으면 같은 그룹에 속해서 할 것이지 왜 저 혼자 '독립 교단'을 설립하고 있느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즉 '비록 육신적으로는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할지라도 같은 주의 이름 증거하는 사람들이면 영적으로 이미 같은 편이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참된 교회는 비록 이 지상에서는 각 지역 교회와 교단들로 떨어져 있어도 '우주적 교회',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보편적 교회' 안에서는 벌써 영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이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오직 천국의 새 예루살렘에 가서 완성될 일입니다.
그런데 왜 꼭 이 땅에서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왜 예수님께서도 아직 하지 않으신 일을 자기네들이 먼저 하겠다고 나서는 것입니까?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의 밤 예배에 참석하셨던 분들은 원로목사님의 설교를 통하여 자세히 들으셨을 것이고 또 그러지 못한 분들도 지난 화요일 아침에 조선일보의 광고에 실렸으며 또한 오늘 우리 교회의 주보에 실린 '제10차 WCC 한국(부산) 총회 개최 반대에 관한 성명서'를 보셨을 것입니다.
  
이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세계교회협의회)'는 이름만 기독교단체일 뿐이지 실제로는 '반(反)성경, 반(反)기독, 반(反)교회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정치적 단체'입니다.
이들은 '종교 다원주의, 인본주의 성경관, 세속적 구원론, 종교혼합주의, 선교 무용론, 용공사상'을 주장하는 바, 그야말로 '양같이 생겼지만 용처럼 말하는'(계 13:11) 명백한 적그리스도의 세력일 뿐인 것입니다.
  
이런 'WCC'가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교단통합 및 종교일치 운동'으로써 이 대한민국의 기독교계를 통째로 삼키려고 획책하고 있는데도,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계의 다수와 특히 대형 교회의 목사들은 이 일을 두고 무슨 "세계 기독교계의 올림픽"이니 "WCC총회는 한국교회의 경사인 동시에 국가적 경사"라고 환호작약하는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단에서는 지난 제59회 총회를 통하여 'WCC 한국(부산) 총회 개최 반대 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우리 석원태 원로목사님을 위원장으로 선출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지난 화요일에 조선일보 광고란을 통해서 그 성명서를 발표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은 많은 비난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인 줄은 잘 알지만, 이 조국의 기독교계에 진짜 개혁주의 신앙이 아직도 살아 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동시에 비록 소수이지만 그 진리운동에 뜻을 같이하는 교회들과 목사들과 성도들을 규합하는 계기가 될 것 역시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영적 싸움의 전선에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함께 사선을 통과해야 할 우리 경향의 성도들에게 간곡히 권면하는 동시에 엄히 명령합니다.
우리는 교회를 거룩하게 지키려 하다가 '분리주의자'라고 욕을 먹는 것을 두고 결코 당황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정말 개혁주의 교회가 무엇인지, 이 개혁주의 신앙이 어떤 역사를 통과하면서 나타났는지, 그 개혁주의 신앙인이 이 시대에 오늘의 조국을 향하여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비난이나 핍박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스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우리 종교개혁의 선배들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순교자들이 똑같이 당했던 일이며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굽히지 않고 걸어갔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암몬과 모압을 '몰수히 분리해' 냄으로써 그 거룩함을 지킬 수 있었고 그것이 바로 느헤미야의 종교개혁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금송아지를 섞어 놓는 '가시적 교회의 통합'을 배척하고 오직 '거룩한 교회의 성별을 보존'하는 진리 운동의 대열에 가담함으로써, 진짜 개혁주의 교회를 함께 끝까지 사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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