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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평안 (요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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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안 (요 14:27)


너무도 잘 알려진 황희 정승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황희가 젊은 시절의 이야기이므로 아마 조선시대가 아니라 고려시대인 것 같습니다. 관직에 있을 때 잠시 쉬기 위하여 성을 빠져 나가 논길을 걷다가 한 농부가 소 두 마리를 데리고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잠시 후에 농부가 쉬기 위하여 나무 밑으로 올 때 황희가 두 마리 소 중에 어떤 소가 일을 더 잘 하는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황희를 붙들고 한 쪽으로 가서 귀에 대고 조그맣게 “검은 소는 몸은 좋은데 꾀를 잘 부리고, 누런 소는 몸은 시원찮은데 일을 잘 하지요.” 라고 속삭였습니다. 황희가 그 소리를 듣고 하찮은 동물에게 이렇게 조심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느냐고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농부는 “하찮은 동물이라도 자기에게 나쁜 말을 하면 싫어하는 법이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입니다. 하찮은 미물일지라도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입니다. 특별히 요즘 사회같이 배려와 고려가 없고, 남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이기심이 팽배하는 이런 시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 평화가 좋습니다. 싸우는 것, 다투는 것, 소란스러운 것, 큰소리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러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평화를 원합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평화를 원합니다. 짐승들뿐만이 아닙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들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자연까지도 평화를 원합니다. 땅도 공기도 평화를 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느껴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최근 발생한 신종 인플루엔자를 두고 조금 뉴에이지적인 표현이지만 바이러스가 인간을 보복했다고 말합니다. 지난번 중국에서 사스가 발병했을 때에도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원수를 갚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조금 지나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상당 부분 타당성이 있습니다. 자연도 보복을 합니다. 쓰나미를 보십시오. 왜 그렇게 쓰나미가 일어났으며, 지구 이상 고온, 이상 자연현상이 왜 일어났을까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연이 인간에게 보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깨뜨리기 때문에 그들도 참지 못하고 인간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최강대국 미국이 허리케인 때문에 보따리를 싸서 피난 가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참으로 우리가 생각할 것이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평화를 원합니다. 심지어 자기는 다른 사람의 평화를 깨뜨리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도 싫어합니다. 자기기만큼은 평화롭기를 원하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에 요람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늘 무겁게 하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무겁게 했다는 것은 곧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했고 어렵게 했다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요람을 왕에서 떨어뜨리려고 작정하신 후, 반역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반역하는 사람들 말을 몰고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늘 악하던 이 왕은 마음이 불안스러웠습니다. 자기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해놓고 정작 자기 마음이 불안하니까 사람들을 시켜서 빨리 나가서 미치게 말을 몰고 오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말을 전하라고 시켰습니다. 왕의 말을 들은 부하는 뛰어나가 왕이 평안이냐고 묻는다고 하자, 반역하는 사람들은 그에게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여 그를 뒤로 붙였습니다. 그는 꼼짝없이 뒤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람 왕은 보냈던 사람이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자 불안하여 또 다시 다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역시 왕의 명령대로 평안이냐 라는 말을 전했습니다. 반역한 사람들은 그 사람도 또 다시 뒤에 붙었습니다. 이 사람도 돌아오지 않자 왕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요람왕은 자기가 말을 타고 직접 나갔습니다. 가서 불안한 얼굴로 반역하는 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반역하는 사람들의 대장인 예후는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고 대답하고 화살을 쏘아 죽였습니다. 요람왕은 자기는 하나님의 평화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지만 자기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을 전혀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무렵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시다 안 되어 완전히 무너지게 하려고 작정하셔서 하나님의 종 예레미야를 시켜서 이스라엘은 이제 망한다는 선포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나라의 고관들이 일어나서 왕에게 쫓아가서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람이 나라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나라의 재난, 백성의 재난을 구하니 죽이자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가만히 연구해보면 이처럼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여 나라가 망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종을 죽이자고 한 사람들이 사실은 그 나라를 망하게 한 당사자들이었습니다. 왕에게 옳은 말을 하지 못하고, 바른 행정을 펼치지 못하고, 그로 인해 기어이 나라를 망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망하게 하실 수밖에 없도록 해놓고 정장 자기들은 망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 평안하다는 소리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말이라도 평안한 소리를 듣고 싶어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다 평안을 원합니다. 주변을 보면 다 그렇습니다. 조금 못살아도,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있어도 평화만 있으면 다 좋아합니다. 그만큼 평화를 원합니다. 평화를 원하는 것은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마음이 평안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기 원합니다. 

마태복음 10장 12절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가게 되면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가복음 10장 5절에서는 우리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의 집에 가면 짧은 시간에 기도하지만 늘 ‘하나님, 이 집이 평안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이 집에 평안을 주십시오. 이 가족들에게 평안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어떤 회사에 가도 ‘하나님, 이 회사에 평화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을 보게 되면 ‘ 하나님, 이 사람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어디가든지 그렇게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십니다. 

심지어 신명기 20절 10절에서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전쟁하기 전에 먼저 그 성읍에 화평을 선언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어쩔 수 없이 전쟁을 걸어오면 도리 없이 싸우겠지만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 싸우지 않을 수도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싸우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토록 평화를 원하십니다. 

시편 122편에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십니까? 어떻게 기도하십니까? 잘 살게 해달라고 하십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 나라에 평안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십시오. 중국, 일본, 저 위에 있는 북녘 땅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도 그렇게 기도하십시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기도도 해야 하지만 빼먹지 말아야할 것이 ‘하나님, 저 북한에 평화를 주십시오. 저 중국에 평화를 주십시오. 저 일본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심지어 예레미야 29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갈 것을 아셨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국고들을 전부 다 약탈해갔습니다. 심지어 가정 가정마다 들어와서 전부 다 약탈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도 바벨론의 평화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말로 벌을 주셔야 마땅한 사람, 저주를 해야 마땅한 그런 사람들에게 평화를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만큼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죽으셨다 부활하시고 맨 처음 사람들을 만나시고 어떤 인사를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잘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 최고로 잘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맨 처음 사람들을 만나시고 ‘평안하냐’ 라고 인사하셨습니다. 히브리말로 ‘샬롬’ 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평화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기독교의 궁극적인 것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죽으셨는데 예수님께서 왜 수치를 당하시고 모욕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의 천사와 천군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고 노래했습니다.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생각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5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린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수치와 모욕과 고통을 당하신 까닭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징계를 받으시고 그렇게 수치를 받으시고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는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상당히 두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가 기독교 신자라고 하면서도, 나름대로 이런 봉사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상당히 잘 믿는 것 같으면서도 만약 그 사람이 화평하게 하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가정의 화평, 공동체의 화평을 깨뜨리고, 평화를 저해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겉으로는 아무리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아도, 아무리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다고 할지라도, 그 직분이 어떠하든 간에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상당히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만큼 우리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조금 더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너무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평화를 그렇게 사랑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시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십니다. 

여러분, 아십시오. 물론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절히 소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저 소원한다고 그냥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내가 화를 면하고 좋은 길로 가는 것을 소원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은 아니십니다. 그런 사람이 될 때 우리가 따로 기도하지 않아도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복을 내려주시고 화를 면하게 해주시는 그런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따로 간구하고 소원하고 이것만큼은 들어달라고 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아시고 들어주십니다. 

반대로 참 두려워하면서 볼 것이 있습니다. 이는 곧 평화를 해치는 자, 평화를 훼손하는 사람들을 그만큼 싫어하시고 미워하신다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보십시오. 혹시 자기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절대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비판에 대해서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우리 주님답지 않게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조건을 붙이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조건을 잘 붙이지 않으시는데 마치 우리로 하여금 그것 때문에 비판받지 않기 위하여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들리지만 여기에 얼마나 주님께서 강렬하게 평화를 원하시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만약에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여러분들도 다른 사람의 비판을 비판받을 것이라는 것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는 만약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되면 내가 반드시 너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받도록 만들고야 말겠다는 상당히 무서운 경고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너희가 비판한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우리 주님의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싸움질 하는 사람은 그 사람도 싫은 것을 받도록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판단하면 너도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고,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도록 만들겠다고 말씀입니다. 

특히 어른은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혹시 싸움하는 사람이 있으며 도리어 말려야합니다. 싸움을 말리다 손해를 보아도 어른은 그것을 해야 합니다. 어른이라는 자리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못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라는 책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어른의 가장 중요한 직무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싸움, 다툼 비슷한 것도 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든 피하십시오. 

심지어 ‘암과도 싸우지 말라’ 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이 의사박사이므로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 가운데는 내가 암과 싸움을 하게 되면 암도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해서 나에게 싸움질을 걸어오기 때문에 평생 싸우다 만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싸움은 싸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싸움질을 하면 지금은 아닐지라도 그 사람도 나중에라도 반드시 싸움을 걸어옵니다. 높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권력이 있기 때문에, 돈이 많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해도 필경 미후에는 그 사람도 다시 싸움을 걸어옵니다. 똑똑하고 말을 잘 하는 것 때문에 싸움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천 년 만 년 내가 높은 자리에 있습니까? 천 년 만 년 내가 능력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싸움을 걸어옵니다. 

여러분도 생달걀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닭이 알을 품을 때 혹시라도 자기 새끼들이 훼손당할까 하여 독을 품어낸다고 합니다. 요즘을 그런 일이 없지만 예전에 가끔씩 동물들을 잡을 때 아주 못되게 잡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병에 잘 걸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못되게 동물을 잡게 되면 그 동물이 죽으면서 아주 무서운 독을 뿜어낸다고 하는데, 힘이 없어서 죽지만 그냥 죽지 아니하고 독을 뿜어내고 그 독으로 하여금 자기를 죽인 사람, 자기를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수를 갚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잘 들어야할 것입니다. 

다시 여러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가장으로 있든지, 어느 사회의 지도층에 있든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싸움을 하지 마십시오. 평화를 잘 이루어 가십시오. 어떻게 하든지 간에 평화를 보존시켜 가십시오. 인류 역사상 수많은 평화회담이 있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 땅에 평화회담이 구만 번 정도 있었고, 예수님께서 오시고 난 후 지금까지 약 만 번 정도의 평화회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한 십만 번 정도의 평화회담이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많은 노력과 돈을 들여가면서 평화회담을 했음에도 평화가 있습니까? 평화회담을 하나마나한 정도가 아닙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리 많은 평화회담을 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이 까닭을 잘 알아야합니다.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해도 사람들이 평화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탁월한 힘이 배후에 있지 않는 한 평화는 없다는 말을 했는데 너무나 실제적인 말입니다. 아주 명언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넘어갈 수 있는 탁월한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평화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길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이길 수 있는 힘, 그 힘을 가지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에게만 평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를 갖게 되는 일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그것을 끝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너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이 나라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 여러분들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정말로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몸을 담고 있지 않는 회사일지라도 관계되면 그 회사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조금 속상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런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보십시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나에게 못된 소리를 하고, 나에게 악한 일을 한 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하나님, 저에게 평화를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는 평화를 만들 수 없으므로 하나님이 주신 평화를 간직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평화를 깨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되시는 여러분들의 책임이 큽니다. 회사의 책임자 되시는 여러분들의 책임이 큽니다. 공동체의 책임자 되지는 여러분들의 책임이 참 큽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힘이 있을수록 더 조심해야합니다. 내가 힘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속상하는 일, 마음 상하는 일이 없겠는가,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없겠는가를 다시 한 번 조심조심하면서 있는 평화를 깨뜨리지 않아야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할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 이 나라에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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