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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진노 (롬 1: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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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진노 (롬 1:18~23)


우리가 이런 말을 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다.’ 1년 중 제일 풍성한 때이기 때문입니다. 오곡백과가 쏟아져 나오고, 1년 농사가 끝나서 첫 수확을 하게 되고, 참 좋은 계절입니다. 또 생활하기에도 제일 좋은 계절이 요즘입니다. 

저도 지난 주간 잠시 짬을 내서 마석기도원에 갔는데 밤이 그렇게 많은지 지나가기만 해도 밤이 ‘툭툭툭’ 떨어집니다. 밤만 주어서 먹어도 살겠습니다. 밤이 그렇게 많은 건 처음 봤습니다. 그래서 지난 화요일 우리 새가족부도 가서 밤을 많이 주워왔다고 하던데, 저도 많이 주었지만 별로 까먹는 재주가 없어서 다 주고 왔습니다. 참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이제 일가친척 만나고, 또 고향을 찾고, 또 고향에 친한 벗들을 만날 때 넉넉하고 풍성하고 아름다운 축복된 명절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웃과도 훈훈한 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명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지난주일 로마서에 아주 중요한 주제가 되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말씀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 다음은 헬라인에게로다.” 역시 복음은 매우 중요한 우리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대화로 우리가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어떤 이가 질문합니다. “왜 당신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바울이 말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에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질문자는 또 묻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어떻게 복음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될 수 있을까요?” 

바울은 다시 설명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인들도 복음을 믿으면 이제 의롭게 되는 축복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에는 인간이 의롭게 되는 놀라운 방법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시 질문자는 묻습니다. “하지만 왜 죄인들을 의롭게 하는 것이 꼭 필요할까요? 왜 죄인들이 의로워져야 할까요? 왜 죄인들의 죄가 용서받아야 할까요?”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하늘로부터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 바로 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가 예약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들은 죄악 중에 출생하고 죄 가운데 살다가 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 선악과를 따 먹는 범죄를 통해서 죄의 노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린 날마다 죄의 굴레 속에서, 죄의 악 순환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더더욱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나 이방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 죄의 속성을 생각하다가 며칠 전에 본 인터넷 뉴스가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8월 15일 8.15특사로 이명박 대통령이 도로교통법 위반자 26만 7천명을 특별 사면해 주었습니다. 대부분 그분들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걸려서 면허가 취소되었거나, 면허정지를 당한 분들입니다. 차를 가지고 생업을 하는데 운전을 못 하니 생활에 위협을 받기에 그들 26만 7천명을 특사로 죄를 다 면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달 9월 15일 한 달 동안 그 26만 7천 명 중에서 643명이 다시 음주단속에 걸렸답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더 놀라운 것은 8월 15일 특별사면이 있었던 그날, 바로 그날 너무 기분이 좋아서 17명이 분명히 술을 또 먹고 운전을 하다가 또 음주단속에 걸렸답니다. 걸린 사람이 17명이니 안 걸린 사람을 치면 1700명이 될지도 모릅니다.

  운전을 못해서 생업에 위협을 받다가 면허정지가 풀린 것이 너무 좋아서 케이크 하나 사다가 가족들과 나눠먹고 자축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놈의 술을 또 먹고 왜 핸들을 또 잡아서 또 걸립니까? 그렇게 되면 가중처벌이 돼서 더 오랫동안 면허정지를 당해야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죄의 속성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죄 지으면 안 돼, 죄와 떨어져야 해, 죄를 멀리해야 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자꾸 죄 속에 끌려 들어갑니다. 마치 돼지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처럼. 어릴 때 보면 돼지를 끌고 가는 것을 보면 돼지가 잘 안 끌려갑니다. 그러면 돼지 앞에다 콩을 던지면 돼지가 그 콩을 먹으면서 앞으로 갑니다. 결국 도살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콩 조심하십시오. 당신의 콩은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정욕일수도 있고, 어떤 분은 인간의 쾌락일수도 있고, 어떤 분은 술일 수도 있고, 어떤 분은 또 다른 것일 수도 있고, 재물일 수도 있습니다. 콩만 쫓아가다 보면 인간은 죄악에 깊이 빠져서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를 향해서 복음의 필요성을 열심히 역설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서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인간에게 왜 복음이 필요한지, 인간의 적나라한 실체를 벌거벗겨 놓고 있습니다. 제가 만약 목욕탕에 가서 남자 집사님을 만난다면 저 분은 ‘목사님 배가 상당히 많이 나왔네.’ 하면서 놀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만약 벌거벗겨 놓는다면 그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얼마나 그것이 꼴불견일까요? 인간의 죄의 모습을 벌거벗겨 놓는다면 참 비참한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인간을 위해서 바로 하나님의 복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인간의 참상과 실체를 사도바울은 오늘 공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한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병원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병원은 왜 존재합니까? 환자가 있고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병이 없다면 병원은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요? 의과대학이 있으니까? 의사가 밥 먹고 살아야 하니까? 아닙니다. 병이 없다면 병원도 존재할 필요가 없습니다. 병원은 곧 없어질 것입니다. 

또 하나 질문합니다. 경찰서나 교도소가 왜 필요할까요? 죄를 짓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간들이 죄를 짓지 않는다면 굳이 경찰서가 필요 없습니다. 양심대로 다 살면 무슨 경찰서가 필요하고 담 놓은 교도소가 왜 필요하겠습니까? 

또 하나 묻겠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왜 필요할까요? 무엇 때문입니까? 죄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 때문에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죄악에 빠져가는 저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저들을 건져내기 위해서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죄에 대해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함으로 진리를 막는, 감히 하나님을 막는, 하나님의 법을 막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진노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사랑의 하나님, 그러면 굉장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아 그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야.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너무 크고 아름답지. 우리를 용서하시고 허물까지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여러분께서는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또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면 누가 진리 안에 행하고 머물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없다면, 하나님의 진노나 심판이 없다면 누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하겠습니까? 이 땅에서 사회법만 요리조리 피해 다니다가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이 땅의 심판도 있지만 저 하나님의 나라의 천국의 심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란 무엇일까요?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 때문에 나타나는 죄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인간이 범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를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22절에 보니까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에게 그 몸을 성결히 하게 하라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제사 드리는 제사장들은 몸을 정결케 하고, 조그마한 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를 가까이 하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준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진노란 자기 자녀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일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자녀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면 자녀가 잘못할 때 어떻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자녀가 잘못할 때 설득할 것입니까? 호소하실 것입니까? 꾸지람도 하고 책망도 하지만 마지막에는 매를 들어 징계를 해서라도 그 자녀를 바르게 키우고 싶은 것이 부모의 사랑의 마음일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징계란 하나님의 사랑의 또 다른 일면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형수가 마지막 죽기 전에 소원이 뭐냐 하니까 우리 어머니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특별면회가 허락되었습니다. 이 사형수가 어머니를 만나는 순간, 어머니께 귀를 좀 가까이 대라고 하더니 창살 틈으로 어머니의 귀를 물어뜯어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남의 집에 가서 돈과 물건을 훔쳤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꾸지람하지 않고 잘 가져왔다고, 좋은 것 가져왔다고 칭찬해 주었답니다. 어머니가 그것에 대해 책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좋은 일인 줄 알고 자꾸 훔치다가 결국 사형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말하면 그 어머니는 그 자녀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잠언 3장 12절에 보니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그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느 민족을 제일 많이 징계하시는 줄 압니까? 바로 이스라엘 민족을 제일 많이 징계하셨습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다른 나라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내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할 때마다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때로는 목회자로부터, 강단에서 책망을 듣더라도 이해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늘 좋은 소리, 칭찬만 들을 수는 없습니다. 잘못에 대해서는 징계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사랑하는 자를 징계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인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악을 쌓아가는 데도 하나님의 심판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안 믿고 나쁜 짓은 도맡아서 하고 다니는데 돈만 잘 벌고 피둥피둥 살만 찌고 오래 산다면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어떤 댐에 물이 모이다가 그 물이 넘쳐나면 댐이 무너져버리고 홍수가 나듯이 그는 진노를 쌓아가는 것입니다. 진노의 댐이 무너져 버리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에게 그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내게 임한다면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그만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옆집 아이가 잘못한다고 “너 그러면 안 돼”하고 충고할 수 있지만 남의 집 자녀를 때리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남의 집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어떤 사람들은 버려둡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더러움에 버려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포기, 유기입니다. 여러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을 위해서 심판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에 보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경건하지 않다는 것은 종교적인 죄, 하나님을 향하여 지은 죄입니다. 우리가 십계명으로 보면 1계명부터 4계명까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모든 것들이 종교적인 죄입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어로 보면 ‘godless' 하나님이 없는 그런 사람들이 짓는 죄가 종교적인 죄입니다. 또 불의는 인간관계 속에서 짓는 죄들입니다.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예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심판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고 복음을 전해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경고합니까? 너희가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 본문 19절~20절을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들이 핑계치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을 핑계하지 못할까요? 하나님이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너희가 왜 범죄했느냐?”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어요.”라고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만물 속에, 자연 속에 하나님의 흔적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이미 다 드러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없다고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동해바다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어찌 하나님이 없다고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만든 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달을 보면서 어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가을에 산마다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단풍을 보면서 어떻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신체 구조를 보십시오. 인간의 신체는 정말 하나님이 너무너무 정밀하게 과학적으로 만들어 놓으셨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몸속에 흐르는 정맥과 동맥, 모세혈관을 다 연결하면 그 길이가 지구를 2바퀴 반에서 4바퀴를 돌 수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긴지 놀라지도 않으시네요. 서울서 부산을 가도 얼마나 먼데, 지구를 2바퀴 반에서 4바퀴를 도는 길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시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기 마이크도 누군가가 만든 사람이 있기 때문에 여기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우주 속에 오늘 그 분의 흔적을 남기셨고 그분의 살아가심을 우리에게 증거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다 믿습니다.

어릴 때 부흥 강사 목사님께서 해 주셨던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스님이 겨울에 꽁꽁 언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조심조심 가다가 미끄러졌습니다. 그러자 얼음이 뿌지직 하면서 깨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그 스님이 이렇게 외칩니다. “아이고 하나님! 살려주세요.” 급하니까 하나님을 찾더라는 것입니다. 안 급할 때는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이랬겠지만 급하니까 하나님을 찾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 녹슬어 버렸지만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다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속에, 이 우주 속에, 자연 속에 자신을 드러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적으로 자연계시라고 말합니다. 이 자연을 보면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부인할 수가 있냐는 것입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죄입니다. 무신론, 이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싶을 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자기는 지옥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판대 앞에 서야 하니까 그것이 너무 두려워서 하나님이 없다고 큰 소리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퀴즈 문제를 내 보겠습니다. 자식이 부모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죄가 무엇일까요? 1번,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지 않는다. 2번, 부모님께 대든다. 3번,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우긴다. 몇 번일까요? 3번입니다. 대들 수도 있고, 용돈을 안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나쁘지만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는 것만큼 나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부인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가 아닙니다.  

또 하나 질문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이 무엇일까요? 1번,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지 않는다. 2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다. 3번,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한다. 몇 번입니까? 3번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장 큰 죄 중에 죄입니다. 무신론은 너무 너무 두려운 것입니다.

옛날에 ‘잉거솔’이라는 사람이 그랬답니다. 사람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여러분! 하나님이 정말 계실까요?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가 지금부터 하나님을 욕할 테니 5분 안에 나를 죽이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겠소.” 그리고 5분 동안 하나님을 욕했습니다. 5분 후에 그는 죽었을까요? 안 죽었을까요? 안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욕한다고 하나님이 5분 만에 벼락을 내려 죽일까요? 그 때 한 사람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내가 잘못할 때마다 즉시 나를 징계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하나님을 저주하지만 하나님이 당신을 징계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자녀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버려둔 사람, 유기입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싶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부인한다고 해서 없어질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고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린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나는 그렇게 알았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니까, 우리 속에, 또 자연 속에 하나님의 존재가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더더욱 알고 지은 죄가 더 무서운 것 아시죠? 우리가 어떤 문서를 잘못 기록해서 법정에 설 때가 있습니다. 판사 앞에 갔을 때 “저는 초등학교도 못 나와서 무식쟁이이고 저는 여기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그러면 판사가 알아서 참작을 해 줍니다. ‘이 분은 몰라서 그렇구나.’ 그러나 대학까지 나와서 알 만한 사람이 “나는 몰라서 그렇다.” 그러면 참작이 안 됩니다. 이미 하나님이 알만한 것이 우리 속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범죄할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피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세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에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같이 읽어봅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아는 것 같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서 아무런 영광도 돌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범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이번 명절에 모이면 여러분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한번은 어떤 설문지에서 남성들에게 명절에 모이면 주로 어떤 일을 하십니까? 라고 물었더니 가장 많은 답이 고스톱 친다고 답을 했습니다. 인간들은 모이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보다는 자기 육신을 즐겁게 하는 일에 우선권을 둡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장 받기 원하실까요? 그분은 예배 받으시기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예배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로 영광을 돌릴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번 명절에 가족들과 만나시면 가족들과 함께 예배드리십시오. 성묘에 가면 성묘예배 순서지를 가지고 가서 예배드리십시오. 가정에서 가족들과 함께 추석 아침에 하나님께 예배드리십시오. 그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감사하지도 아니하고”라고 합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것이 범죄한 사람들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추석 명절을 맞이해서 우리가 부모님을 만나고 일가친척을 만난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가친척들이 있기 때문에 즐거운 명절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일가친척이 없고 형제가 없다면 얼마나 외로울까요? 명절에 혼자 지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날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어서 혼자 떡하고 갈비 쌓아놓고 TV보면서 명절 지낸다면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외롭고 비참한 것입니다. 일가친척들이 서로 만나서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서로 격려하고 축복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나눌 때 그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여러분! 서로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하고, 부모님께, 일가친척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또한 세 번째로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라고 나옵니다. 생각이 허망하여 진다는 것은 생각이 혼란과 혼동에 빠지는 것입니다. 바른 가치관을 잃어버려서 무엇이 옳은 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 하나 잘 되기 위해서 남을 짓누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하나 팔자 고치려고 남의 아이를 유괴해서 살해하고 매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마음이 허망해진 것입니다. 생각이 혼란과 혼동에 빠진 것입니다. 거기에는 진리의 빛이 업습니다. 또 성경에 보니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나옵니다. 깜깜합니다. 그곳에는 곰팡이가 득실거릴 것입니다. 더럽고 추한 생각이 내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이 정말 고상하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이 존귀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보니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마지막 23절에 보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예전 개혁 성경에 보면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새와 짐승을 금수라고 말합니다. 기어 다니는 동물이 버러지입니다. 구더기, 뱀 같은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금수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포보은’이라고 까마귀도 자기 부모의 은혜를 아는데, 인간이 하나님은 물론이고 부모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별히 23절에 보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모양으로 바꾸었습니다. 또 금수의 모양으로, 버러지의 모양으로. 이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그 영광 받으셔야 할 자리에 우상을 올려놓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를 우상으로 섬깁니다.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내 주먹을 믿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기에다가 짐승의 모습을 해 놓고 거기에 절을 합니다. 고목나무에 절을 하고, 짐승에게 절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뱀의 형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절을 합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늘 이야기하지만 돼지 머리 쌓아놓고 콧구멍에다가 만 원짜리 끼워놓고 복 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학원을 나오고 박사학위를 몇 개 가져도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다 그렇게 미련하고 우둔해 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죄는 쉽게 씻어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거짓말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죄 안 지었다고, 나는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보니까 경찰에서 사용하는 거짓말 탐지기가 있는데 이 탐지기가 굉장히 정확하답니다. 92%에서 98%는 정확히 맞출 수가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자기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거짓말을 하면 혈압이 올라가고 흥분되어 진다고 합니다. 몸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을 거짓말 탐지기가 딱 탐지한답니다. 그럼 꼼짝 못하고 이실직고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범인들을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도 거짓말 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줄 몰랐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죄를 안 지었다고.” 이렇게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길 수가 없습니다. 범죄하는데도 심판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2장 5절에 보니까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라고 말씀합니다.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 고집스러운 마음, 결국 진노를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진노의 날, 심판의 날에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것이고, 우리는 그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핑계 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지만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로마서 5장 9절에 보니까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오는 길 외에는 없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은 능력인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가는 인생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온다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면 그는 그 진노에서 면제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복음이 바로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이웃들, 우리 가족들에게 여러분이 이 복음을 증거하시지 않겠습니까? 십자가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담겨져 있다면 그 사랑을 전하십시오. 베푸십시오. 나누십시오. 허물을 덮어주시고 격려하십시오. 여러분의 말 한마디와 그 따듯한 마음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듯한 그 주님의 사랑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리의 가족들에게 이 복음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의 명절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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