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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따라 수고하는 교회 (골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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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따라 수고하는 교회 (골 1:24~29)
 
  
우리 교회는 창립 10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선교 2세기를 맞이하여 첫 해를 맞이한 것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하나님의 역사요, 그리스도의 역사이고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와 함께 하신 삼위일체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교회는 1908년 심판서씨 가정에서 김인권 전도사님을 모시고 시작했습니다. 독립선언문 33인의 대표중한 분이신 이필주 목사님이 2대 전도사와 4대 10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목회 했고, 총 20명의 교역자가 사역하며 섬긴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2세기의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여 예루살렘교회 형에서 안디옥교회 형으로 전환을 선언하면서 7가지의 비전을 선포했습니다.  

󰓍 전통적 신앙의 유산을 지키며 발전시키는 교회
󰓎 세계 선교를 지향하는 교회.
󰓏 새로운 예배를 제시하는 교회  
󰓐 다양한 섬김의 나눔을 만드는 교회
󰓑 아픔을 치유하는 전문화된 교회
󰓒 지역교회에서 지구촌 교회로 성장하는 교회 
󰓓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산 교회’(엡1:7; 고전6:20)임을 말씀했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그리스도의 몸’(엡1:22-23, 골1:18)으로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교회존재의 목적은 그 목적의 대상에 따라 세분화하여 규정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예배의 목적을 가진 예배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예배를 받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와 거룩한 성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부터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받으시고자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3-24)
  
이렇게 교회가 예배의 목적을 가진 교회로 말 할 때에 교회 건물을 예배당이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대상으로 할 때에 영혼구원의 전도와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선교의 목적을 가진 선교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승천하시기전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명령하셨습니다.
  
교회자체를 대상으로 할 때에 목양하는 목회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양을 먹이고 치라’(요21:15,16)고 하셨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교회자체를 위해 나눔과 가르침으로 양육하며 돌봄으로 그리스도의 목양을 이루어가는 곳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교회 건물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돌보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를 돌보시고 양육하는 곳입니다.   
  
또한 교회는 사단을 대상으로 할 때에 사단과 악을 향하여 싸우는 전투하는 공동체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6:10-12)
  
교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과 함께 예배공동체로 주님의 복음전파와 선교명령을 실현하며 성도들을 목양하면서 악과 싸워 승리하는 주님의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삶은 교회와 함께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교회는 주님의 풍요함과 신비함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이 교회에서 목양을 받을 뿐 아니라 교회를 섬기는 헌신의 삶을 가꾸어가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교회를 향한 사랑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선교2세기를 출발하면서 우리의 교회생활은 은혜롭고 즐겁고 감사가 넘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 선교의 큰 비전을 가진 성도로 믿음의 생활을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교회를 향한 자신의 섬김이 무엇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몸에 채운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구원사역인 복음전파를 교회에 큰 사명으로 맡기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맡기신 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위해 교회가 겪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겪는 고난을 자신의 몸으로 채운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을 겪으면서 이루어 놓으신 인류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일과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역사와 그 밖의 모든 사역을 교회에 맡기셨는데, 교회의 성도들은 그 일을 감당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믿음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를 섬기기 위한 고난은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모습으로 우리 모두가 함께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당한 고난인 것처럼, 그 고난을 영광으로 알고 참고 인내하며 기뻐하면서 감내하는 교회 섬김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부모님의 흙벽돌 교회건축)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극히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의 교회사역을 위해 고난을 기쁨과 인내로 감수함으로, 고난에 참여하심으로 영화롭게 되신 주님과 함께 영화롭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섬김의 헌신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럼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주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 교회의 일꾼
  
바울은 교회일꾼 됨을 말씀했습니다. 일꾼은 주인이 아닙니다. 바울은 주인이 아니라 일꾼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일꾼으로 부르신 것은 교회를 위해서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교회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여 함이니라.’(25절)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교회 일꾼으로 바로 되어야 바른 신앙의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교회주인이 되지 않도록 하십시오. 절대로 교회주인이 되지 마십시오. 교회 주인으로 행세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십니다. 일꾼은 교회를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
어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가 마산에서 목회할 때에 사람들은 제가 목회하는 교회를  ‘○○○의 교회’라 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그 이름의 주인공이신 장로님이 그 교회의 주인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군과 주인의 언어표현은 다른 것입니다. 주인은 명령하고 지시하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군은 듣고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군은   ‘...하라!’ ‘아닙니다.’ ‘이것입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해도 될 가요?’ ‘하겠습니다.’ ‘그렇군요’ 라는 표현을 많이 하게 됩니다.
  
교회 오래 다녔을 지라도, 교회 큰 공로가 있을지라도, 교회를 위하여 많은 수고를 하셨을지라도, 교회에 큰 비중의 역할을 했을지라도 결코 교회의 주인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주인의 자리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선교2세기를 출발하는 이 교회에 훌륭한 일꾼으로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을 듣는 일꾼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 한다.
  
바울의 교회를 위한 수고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결코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에게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수고했습니다.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힘을 다하여 수고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그 능력으로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에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게 되며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복음전파는 주님이 함께 해주시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분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고 하셨습니다.  
  
1866년 9월2일 대동강 모래사장은 핏빛으로 물들었습니다.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 호에 탄 사람들이 평안감사 박규수의 지휘아래 있던 군대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선원들이 모래사장으로 끌려나올 때에 그 와중에도 한국사람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도 모래사장으로 끌려나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저녁 하늘이 붉게 물들어가는 시간에 대동강 모래사장을 피로 붉게 물들이며 죽어간 27세의 청년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로 순교를 당한 토마스(Robert Jeremain Thomas) 였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가 나누어준 성경을 받아든 홍신길, 최치량, 또 성경책을 뜯어 벽지로 사용한 박영식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 개척자들이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벤 박춘권도 후에 평양교회 장로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는 토마스 선교사의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그곳에 주님도 함께 하셨습니다. 토마스 선교사의 목숨을 내놓는 수고는 그와 함께 능력으로 역사하신 주님의 역사에 따라 한국에 복음의 문을 여는 능력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은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28절)고 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섬길 때에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의 능력에 따라 주님의 일과 그 분의 교회 일을 행해야 합니다.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주님과 주의 일을 행할 때에 고난까지도 기뻐하고 인내할 것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행할 때에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겸손히 교회역사를 감당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함으로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신앙의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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