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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마 7: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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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당신의 모습은? (마 7:7~12)

 
말씀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여러분에게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10년 이후의 내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10년 후에 여러분들은 어디에 있을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누구와 있을 것 같고, 10년 후에 여러분의 가정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여러분의 자녀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 있을 것 같습니까?
10년 후에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들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우리가 생명같이 아끼며 존경하며 따르는 우리 나라의 장래는 어떻게 되고, 우리가 함께 모인 하나님의 성전인 언양 영신 교회는 10년 후에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기도가 미래를 결정합니다.  오늘의 내 기도가 10년 후의 내 모습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흐트러졌던 꿈을 다시 꾸십시오.  다시 그 속에 사랑이 철철 넘치게 하십시오.  다시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붙드십시오.

누군가 나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감사한 일입니다.  나는 새벽기도를 못하지만 어느 새벽엔가 주의 종의 입에서, 어느 집사님의 입에서, 어느 교우의 입에서 내 아이들과 내 자신을 위해서 내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한다고 하는 것이 내게는 얼마나 큰 위안과 지원이 되겠습니까?  기도 이상 더 큰 지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리는 기도이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강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의 장례식을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주철 목사의 장례가 났다.  아무개 집사, 아무개 성도의 장례가 났다.  그 장례식 앞에서 누가 제일 슬퍼하겠습니까?  누가 제일 안타까워하겠습니까?  누가 제일 허둥지둥 달려오겠습니까?  여러분의 장례에 어느 목사님이 집례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남겨 놓을 수 있는 유산의 목록은 어떤 것입니까?  또 그 유산이 과연 어떻게 정리가 되고 어떻게 쓰여지기를 원하십니까?

제주도에는 돌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제주도에 가면 무덤이 있는데 이들 무덤이 육지의 무덤과는 형태가 다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진입하다 보면, 곳곳에 무덤들이 있습니다.  무덤 주위에는 돌들이 무덤 주위를 둘러서 경계선 내지는 담장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무덤에는 주위에 돌들이 3줄, 4줄,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이 쌓여져 있는가 하면, 어떤 무덤에는 돌들이 1줄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적게 쌓여져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살았을 때 평소에 이웃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덕을 많이 베풀면서 살았느냐에 따라서 돌들이 많고 적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인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 왔던 사람들이 그 사람을 아주 좋게 평가를 하면 그들이 그 고인을 생각하면서 돌을 무덤 주위에 하나씩 놓고 간다는 것입니다.  무덤 주위에 돌들이 많고 적음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나타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이 대목에서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만약에 지금 내가 죽어서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그렇다면 장례식에 몰려온 사람들이 여러분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를 할 것 같습니까?  뭐라고 말 할 것 같습니까?
 
제주도식으로 말하자면, 여러분의 무덤에는 어느 정도의 돌들이 놓여져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한 토막을 섬겼던 이 교회, 나와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나와 함께 하나님 앞에 수긍하는 그런 고백과 기도를 했던 그 분들이 교회에서 나를 향해 뭐라고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까?  교회는 내 장례식을 어떻게 지내줄 것 같습니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한 번씩 어떤 충격요법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옷을 입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내 몸 안에 있는 것을 더 좋은 것이라고 하는 그런 감격 속에서 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것은 보람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몸 밖에 있는 물건들은 잠깐 있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몸 밖에 있는 물건들은 내 몸 안에 있는 것들과 비교될 때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서로 인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내 몸 안에는 더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내 겉사람은 날로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날마다 아름다워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축복하십시오.  서로를 축복하십시오.
"하나님이 너무너무 사랑하시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짧은 목회의 경험 속에서 정말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 마십시오.  우리는 너무 사소한 말, 사소한 일에 목숨을 겁니다.  그래서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웠는지 후회가 됩니다.  자신의 그런 모습이 한 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했으면 어떻고, 이야기를 안 했으면 또 어떻습니까?  다 지나간 이야기입니다.
 
감사하며 사십시오.  고마워하며 사십시오.  찬양하며 사십시오.  기도하며 사십시오.  웃으며 사십시오.  하나님 앞에 드리는 우리의 예배가 너무 심각하면 안됩니다.  여기 이곳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버지의 자녀된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거룩이라는 이름 하에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그렇게 외식하는 자들의 삶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놀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예배란 아버지와 즐겁게 노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집에 오신 여러분, 웃으십시오.

어느 젊은 장학사가 어떻게 하면 지역 내의 학교를 한 번 새롭게 하고 아이들에게 꿈과 믿음을 줄 수 있을까 해서 그냥 정신없이 좇아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분이 장학사로 부임하자마자 지난 주간에 영화초등학교로 달려갔습니다.  간다는 말도 안 하고 가니까 학교에서는 장학사가 온 지도 모릅니다.
 
어느 4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보니까 손지호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더랍니다.  그 옆에는 선생님도 있고, 교실 안에 화초도 있고, 또 거기에는 지구본이 하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장학사가 손지호를 붙들고 물었다고 합니다.
"얘야, 이 지구본이 보이니?"
"예"

"이 지구본이 왜 이렇게 옆으로 기울어져 있는 지 아니?"
그랬더니 손지호가 얼굴이 굳어지더니 정색을 하면서 "아저씨, 그거 제가 고장낸 거 아니에요.  제가 안 했어요"라면서 울먹거리더랍니다.
그래서 당황한 장학사는 옆에 있는 선생님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지호 담임 선생님이 지구본을 보더니, "아저씨, 그것은 제가 확실히 아는데, 이 학교에 부임하기 전에 이미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학교에 장학사가 온 것이 알려져서 교장 선생님이 허겁지겁 달려왔습니다.  달려오더니 하는 이야기가 "아니, 장학사님.  말씀을 하고 오셔야지.  그리고 오면 제 방부터 오셔야지.  거기에 다 준비해 놓았는데 여길 오면 어떻게 합니까?  죄송합니다."

어이가 없어진 장학사님은 교장 선생님께 물었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 지구본 이야기가 웬일입니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랬더니 교장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장학사님도 잘 아시면서 뭘 그럽니까?  그게 국산품이라서 그렇습니다."

웃어보자고 한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Made in korea라는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교회에 대한 콤플렉스, 자기 삶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하는 세상을 보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목회를 하면 할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또 인간이 젊은 나이에 실수들을 다 딛고 일어서서 성숙해지면 성숙해질수록 깨닫게 되는 하나의 사실은 문제는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를 보는 내 방식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것 하나만 제대로 붙들어도 예수를 바로 믿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창조적이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문제는 내가 붙잡아야할 하나님의 약속이요, 사명이 됩니다.  반면에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내가 회피해야 할 무거운 짐이 되고, 고통이 되고, 아픔이 되고 맙니다.  기억하십시오.  똑 같은 문제이지만 그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에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부흥 2000을 작곡한 고형원 전도사님이 있습니다.  하루는 이 전도사님이 아들과 함께 놀이터에 놀러 갔습니다.  그 놀이터에서 전도사님이 아들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릅니다.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십자가에 달려서 예수 고난 보셨네…"

이 전도사님은 아들에게 동요를 불러준다는 것이 그만 찬송가를 부르고 말았다는 겁니다.  이 아버지의 모습을 아들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고 합니다.  고형원 전도사님은 입만 열었다고 하면 찬송가를 부른다고 합니다.  습관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의 습관이 미래를 결정하듯 지금의 간절한 기도가 우리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하십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믿으십니까?  그래도 기도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립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집은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힘드십니까?  곤고하십니까?  여러 상황이 나로 하여금 스트레스가 팍팍 쌓이게 하고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구하십시오.  찾으십시오.  문을 두드리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행복하셔야 됩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깨달은 것은 행복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입니다.  같은 환경에 살면서도 불평과 원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같은 환경에 살면서도 마음의 상태가 바뀌니까 갑자기 행복해져서 '여보, 고마워!' '얘들아, 고마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거에 얽매여 현재의 삶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과거의 아픈 상처를 한없이 되씹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행한 사람이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기억일 뿐입니다.  과거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에서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삶의 어리석은 낭비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의 제일 첫 번째 특징은 과거로부터 해방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래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바라보면서 중단 없이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공격하는 것을 자세히 보면 사탄은 과거의 기억과 상처를 끝없이 이용하고 또 이용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의 과거를 끝없이 물고 늘어지고 이용하는 모습을 보신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속에 영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기억일 뿐입니다.

과거가 뭐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기억에만 남아 있는 것을 왜 붙들고 있느냐 말입니다.  인간은 과거의 회상력에서 일어나는 힘보다는, 미래의 환상에서 일어나는 힘이 훨씬 더 강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미래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  하나님도 과거를 고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향한 꿈을 꾸는 자를 쓰십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만을 줄기차게 믿고 따라갔던 사도 바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만을 줄기차게 따라갔기에 거센 풍랑 가운데서 살아났습니다.  독사에게 물려도 줄기차게 하나님만을 의지했기 때문에 살아났습니다.  그는 하나님만을 섬긴다고 하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믿게 하는 복음을 증거 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가 착고에 차여 죄수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죄수의 신세로 로마라고 하는 재판의 광장을 향하여 배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다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캄캄한 밤에 폭풍우가 그냥 끝없이 14일 동안이나 진행됩니다.  그 배 안에는 276명이라고 하는 백부장을 비롯한 많은 군사들과 주민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조그마한 배에 14일 동안 거센 풍랑이 휘몰아치는 데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다른 것은 하나입니다.  믿는 사람은 속수무책인 가운데서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불평합니다.  내가 참 믿음인가 아닌가는 여기에 달려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시기합니다.  투쟁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에나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인 이곳 언양 영신교회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세상에서 문제가 없는 유일한 곳은 공동묘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모든 곳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엎드려 기도합니다.  내 눈에 보이는 그 문제는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붙잡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은 원망합니다.  불평합니다.  짜증을 냅니다.  결국에는 그 문제가 짐이 되고 부담이 되어서 떠나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문제가 보이십니까?  그러면 엎드려 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절망에 싸여 두려워하고 있는 그 풍랑 가운데서도 바울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응답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상황에서 기도하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배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했습니다.  이 배는 풍랑에 다 무너진다고 할지라도 276명인 우리의 생명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구원해 주신다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날 밤에 무슨 일이 일어 났는 줄을 아십니까?  놀라운 것은 죄수로 끌려가던 사람이 그 풍랑과 함께 지도자가 되고, 죄수로 끝없는 탄압과 견디기 힘든 고생을 시키던 로마 군인들은 오히려 죄수를 의지해야 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주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진실한 믿음의 역사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 속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돌변적인 사건들을 얼마든지 증거할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보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간증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만 일어나면, 하나님의 개입만 일어나면 인간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웃지 못할 그런 놀라운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보십시오.  끌려가던 자가 지도자가 되고, 잡혀가던 자가 지도자가 됩니다.  죄수를 감시하던 자가 그 죄수를 의지하는 웃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금 말카라고 하는 섬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도착하고 나니까 얼마나 춥습니까?  옷은 다 젖었습니다.  14일을 거의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마침 섬에 있던 토인들이 몰려왔습니다.  불을 피우고 먹을 것을 갖다 주면서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옷을 말리면서 추위를 견뎌냅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흩어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모읍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나뭇가지에 있던 뱀이 갑자기 툭 튀어나오더니 사도 바울의 손을 덥석 물었습니다.  토인들은 소리를 치면서 하는 이야기가 '이 사람이 살인자다.  이 사람이 무서운 죄인이다.  이 사람이 하나님을 이야기하지만 뱀이 물었으니 틀림없이 하나님이 징계를 했다.  바다에서는 어쩌다 살아났는지 모르지만 뱀에 물렸으니 이제 곧 죽으리라.'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기 손을 물었던 뱀을 툭툭 털어 가지고 집어서 불 속에 집어넣어 뱀이 터져 죽었습니다.

오히려 그의 모습은 태연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 광경을 본 토인들이 무릎을 꿇고 말합니다.  "신이 이 섬에 왔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만히 보면 우리가 당한 불행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혈기와 감정과 자기 재주로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한 불행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 계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우리의 가는 길마다 살아 역사하는 것을 알고 믿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믿는 자를 통하여 살아 계심을 증거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떠한 형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사건이든지 어떤 불행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 입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어떤 풍랑 가운데 내 몰렸다고 할지라도 믿음 없는 자처럼 행동하지 마십시오.  믿음 없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무릇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에 취한 사람은 어떠한 사건이든지 어떤 불행의 한 가운데에서도 그 입에서 하나님의 예언을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보면 사람을 만날 때에도 제일 먼저 한 일이 예언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성격은 몹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천방지축이었습니다.  그의 외모에 무슨 희망이 있었고, 그 속에 무슨 기대할 만한 게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께서 그를 처음 본 순간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여기에서 게바는 바위 또는 반석을 아람어로는 게바라고 하고, 그리스어로는 베드로라고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3년 후의 베드로를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3년 후에 너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반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너는 세상에 복음을 싣고 갈 수 있는 반석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격이나 외모에서 어떠한 기대와 희망을 찾아 볼 수 없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주님을 만나면서 3년 후에 '너는 게바가 되리라'는 말씀을 붙들고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은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라는 기대를 가지십시오.  내 아이들에게도 '너는 장차 하나님과 이 나라를 위해서 큰 일을 할 것이다'는 기대를 심어 주십시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예언입니다.  3년 후에 나는 이 성전에서 반석이 되리라는 예언을 하십시오.  3년 후에 나는 이 성전에서 하늘의 천사도 흠모할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자기 예언을 하십시오.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발 너절너절하게 종교놀이를 하지 마십시오.  편협된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수용성이 없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신앙과 신념은 다릅니다.  자기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조직 속에 자기 방식, 자기 생각을 강조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반석 같은 인물이 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부정적인 자기 파괴의 습성들을 뱀을 떼어내듯이 이 시간 하나님의 전에서 다 털어 버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그래서 10년 후에 내 삶의 이야기를 내 놓았을 때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보다 더 많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내 삶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고 하는 것은 내 힘만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최선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나 한 조직에게 절대로 모든 것을 주지 않습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도움을 요청하며 사는 것, 그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우리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어설픈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나약한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부끄러운 관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신뢰할 수 없는 관계를 거부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데 지나가는 학생이 좇아오더니 '돈 만원만 주세요' 라고 요청을 합니다.  주실 겁니까?  안 줍니다.  그런데 집 앞에 거의 가까이 왔는데 어느 아이가 좇아오더니 '돈 만원!' 하니까 묻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줍니다.  누굽니까?  내 아들입니다.  왜?  관계가 든든하기 때문입니다.  관계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주세요, 주세요' 하면 줄 것 같습니까?  주십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어디를 가던지, 지금 내가 어느 상황에 처해 있든지, 설령 아무리 불행의 한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끈질기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럴수록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꿈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미래가 재산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환상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 땅에는 두 가지 창조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적 창조이고 또 하나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창조입니다.  정신적 창조는 언제나 물질적 창조에 우선 합니다.

가령, 우리가 집을 짓는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다.  집을 짓는데 무조건 자재부터 사옵니까?  땅부터 들고파고 봅니까?  시멘트 블록부터 만들어 옵니까?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마음의 그림을 그립니다.  안방은 어디에다 놓을까.  아이들 방은 어디에다 놓을까.  부엌은 어디에다 놓을까.  창은 어디로 내며, 대문은 어디에다 낼까.  정신의 지도가 물질의 집을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러 오느냐?  습관적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감과 은혜를 받으며 정신적인 지도를 만드는 겁니다.  정신적 창조의 힘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지도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지도를 그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떠나지 마십시오.

10년 후, 10년 후에 여러분 자신의 모습이 어떤 모습으로 되어 있을 것 같습니까?  아니 10년 전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10년 전에 저는 집사람과 어린 아이들이랑 아는 사람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이곳에 교회를 개척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몇 날, 몇 일을 밤 새워도 지칠 줄 모르는 때였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머리도 이만큼은 안 빠졌습니다.  지금은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을 뒤덮고 있지만 그때는 흰 머리카락이 없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 어쩌면 앞으로 10년 후에 우리 중에는 다시 볼 수 없는 인생 길을 떠나서 하나님의 품에 안긴 분도 계실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10년 후,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는 대학에 진학한 아이도 있을 것이고, 또 진학을 놓고 고민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일 10년 전부터 하루 1시간씩만 계속해서 어떤 일을 했더라고 하면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을 것 같습니까?  지금 내 생애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것 같습니까?  뭔가는 모르지만 지금보다는 확실히 달라졌을 겁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혹여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목사님, 제가 10년 전에 이 말씀을 들었더라면 좀 더 확실하게 살아왔을 텐데 말입니다.  10년 전에 제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하루 한 시간씩만 어떤 일을 했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여러분에게는 앞으로 10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10년을 주셨습니다.  10년 안에 자신의 모습을 설계해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10년 후 사람들이 나를 아름답게 다시 평가해 줄 것을 그려보십시오.  정신적 창조는 물질적 창조에 언제나 선행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환상을 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꿈을 꿉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예언을 합니다.  입이 열려 예언을 합니다.

10년 후 자신의 모습들을 예언하십시오.  여러분 자녀들의 모습을 예언하십시오.  회사의 모습을 예언하십시오.  내 사업의 모습을 예언하십시오.  내가 섬기는 영신 제단의 모습도 예언하십시오.  환상을 보십시오.  꿈을 꾸십시오.  만일 지속적으로 10년 동안 한 가지 일을 실행한다고 하면 자신의 삶에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그 한 가지 일에 이제부터 목표를 정하십시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신앙이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적인 신앙생활들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구체적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신앙을 하고 끝나고 맙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을 때는 신앙도 좋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쌓이고 기분이 나쁠 때는 신앙도 내리막길입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금실이 좋을 때는 교회를 위해서 죽겠다고 하다가 사이가 나빠지면 싸늘하게 돌아서 버립니다.  그렇게 꿈이 없는 신앙의 모습으로 살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인생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7가지 역할이 무엇입니까?

그 7가지 역할과 관계된 중요한 인물과 그 이름과 그 관계를 머리 속에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어느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나약한가?  지금 어디와의 관계가 제일 든든하지 못한가?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유산을 남기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습니까?
아들 딸에게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까?  천국에 가서 우리 주님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싶습니까?
내가 섬기는 내 교회의 형제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해 주기를 원하십니까?

다시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지 않고 그 꿈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인도하지 않고 그 꿈을 인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키지 않고 그 꿈을 지킵니다.  꿈이 없으면 무너집니다.  꿈이 없으면 방자해집니다.  꿈이 없으면 결국 폐기처분 되고 맙니다.

하나님, 이 영혼에 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환상을 보십시오.  예언을 하십시오.  10년 후의 당신의 모습을 그리면서 꿈을 꾸십시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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