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지식의 근본 (잠 1:7~9)

  • 잡초 잡초
  • 453
  • 0

첨부 1


지식의 근본 (잠 1:7~9)


해마다 7, 8월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특별 신앙훈련 프로그램을 가집니다. 왜 기독교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이런 순서들을 그렇게 많이 가지는가? 우리 인류의 역사는 남이 모르는 지식을 누가 먼저 알아내느냐에 따라서 흥망성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 자신들도 그랬고 지금 자녀들에게도 앞서가는 지식을 얻는데 필요한 노력을 어떤 때는 애처로울 만큼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입시 설명회를 하면 부모들이 어찌나 많이 모이는지 자리가 없습니다. 자기 자녀의 옳은 선택과 지식의 성취 부분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지금은 모든 것이 교육 위주의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일류대학이 인생의 목표와 같이 되어있는 분위기를 볼 수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힘 있는 강대국이 어떤 나라이냐? 핵기술을 먼저 개발한 나라들로 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 민족이 총을 만드는 기술이 일본보다 앞섰더라면 아마 일본이 우리 민족의 식민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활과 칼을 최고의 무기라고 사용하던 우리에게 일본이 조총이라고 하는 무기 하나를 먼저 개발한 것이 나라를 빼앗기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제일 부자가 된 사람은 빌게이츠라고 하는데 그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컴퓨터의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가 남보다 먼저 인간 생활에 편리하고 행복한 지식을 아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공 실패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인종적으로 머리가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를 받는 유대인들은 그들의 삶에 어떤 지식을 추구했는가? 어떻게 해야 행복하게 살고 무엇이 진리인가를 끊임없이 진리 탐구의 길을 가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교훈하고 계신가? 잠언이라고 하는 성경은 그러한 인간의 길을 가장 잘 인도하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진리 하나를 발견한다면 그것 때문에 평생 행복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로 착각하면 평생을 헛되게 소비하는 불행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7, 8월은 교회마다 특별 프로그램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삶의 참 진리를 교육하는 시간입니다. 

잠언 성경의 특징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르칩니다. 교훈집입니다. 길에 대한 교훈을 많이 하는데 공평의 길, 선한 길, 의인의 길, 명철의 길, 바른 길과 그 반대로 악인의 길, 사망의 길, 굽은 길, 패망의 길 이 두 가지 길을 가르치면서 “선택은 네가 하라”하는 식으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히틀러의 인종 철학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게르만 민족이 지상에서 제일 머리가 우수하다고 생각했는데 유대 민족이 앞선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유대인을 멸종시켜버려야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한 사람의 잔인한 인종 철학은 인류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잔인한 학살의 역사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잠언 성경은 힘이 있다면 무엇을 위한 힘인가? 지식이 있다면 무엇을 위한 지식인가? 무엇을 위한 지혜인가? 머리가 우수하다면 어디에 써야 하는가? 내가 가장 귀하게 여겨야 될 지식이란 어떤 것인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은 인생의 우선 선택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지식 향상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 세상을 첨단 과학 시대라고 하는데 에덴동산에서부터 19세기까지 발전한 과학 문명보다 지나간 20세기 100년 동안 발전한 과학 문명이 훨씬 더 큰 발전이었습니다. 

오늘 과학의 세계는 4차원 세계의 발견을 과제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4차원이 되면 시간과 공간의 초월성이 이루어집니다. 생각해 보면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무서워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있는 자리에 누가 문을 열어준 일도 없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공간의 초월입니다. 또 갈릴리 바다에서 물 위로 걸어오셨습니다. 나중에는 공중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자연과학의 초월성이 예수님에게서 많이 나타나지요? 인간들이 그렇게 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과학으로 그것을 캐내보려고 노력하는 시대입니다. 나중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들은 공중으로 끌어올려 휴거한다고 데살로니가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기를 ‘그런 성경말씀들이 정말 그럴까? 저럴까?’ 이렇게 희미하게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는 온전히 알리라. 다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길을 묻는 인간들이 가장 급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몰려 왔습니다. 그들은 그 사회에서 자기들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시급한 문제를 예수님에게 질문하고 해답을 구했습니다. 

그러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뭔가? 그때나 이때나 가장 시급했던 문제는 뭐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역사에서 보면 옛날 왕들은 최대 관심사가 자신이 재임하는 기간 동안에 국토를 한 평이라도 넓혀야 위대한 임금으로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영토 확장의 책임을 지고 그렇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면 왜 영토를 넓히려고 했는가? 자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하기 위한 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사에 그렇게 많은 전쟁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가? 이제 세상은 남의 나라를 불법 침략해서 땅 빼앗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세계 모든 대통령들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1차적 책임이 경제를 발전시켜야 평가를 받습니다. 인류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바로 이 먹고 사는 문제가 1차 인류의 관심사였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급한 문제를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했을 때 어떤 대답을 하셨는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그런 것들이 다 필요한 줄 아시느니라.”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너희는 할 일이 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들이 시급하다고 하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 그러니까 “인생의 우선 선택을 해결하면 차선의 문제는 자연히 해결되는 문제이다.”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만약 주님이 2천 년 전 그때가 아니고 지금 21세기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합시다. 세상 사람들이 제일 관심 있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똑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GNP가 올라가겠습니까? 제발 경제 발전의 길을 가르쳐 인류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주님이 보여주옵소서.” 주님은 어떻게 대답하실 것인가? 똑같이 “그런 길이 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인류는 행복하고 GNP도 올라가고 잘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주님 대답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잠언 성경 1장에서는 첫 머리에 “인생의 우선 선택이 뭐냐?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이렇게 말하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오랫동안 성경을 읽었고 그렇게 많은 설교를 했는데도 아침마다 성경을 읽을 때는 깜짝깜짝 놀랍니다. ‘아!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었나?’ 

저는 지난 주간에 로스앤젤레스와 텍사스에 세미나를 하고 왔는데 마이클 잭슨 사망이 젊은이들에게는 자기 아버지 죽은 것보다 더 슬픈가 봅니다. 희망을 잃은 듯 한 그런 분위기입니다. 마이클잭슨이 왜 죽었는가? 이유는 하나입니다. 잠을 잘 수가 없어서 강력한 수면제를 사용한 것입니다. 마이클잭슨만이 아닙니다. 그의 장인 되는 엘비스 프레슬리, 마릴린 먼로 다 똑같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돈 많고 성공하고 존경받고 우상같이 된 사람들이 왜 밤에 잠을 못 자는가? 마음의 평화가 흔들려 있으면 잠이 안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생명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지독한 약을 쓰지 않으면 절대 잠을 잘 수가 없어서입니다. 

시편 121편 보세요.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얼마나 진리입니까? 저는 이 잠 때문에 민망할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 부목사님들과 심방 갔다 올 때면 옆에서 열심히 운전을 하는데 저는 그 옆에서 갔다 올 때는 거의 90퍼센트 정도는 잠을 자고 있습니다. 자동차에서 잠 잘 안 올 거 같은데도 쿨쿨 자는데 살며시 자는 것도 아니고 민망할 만큼 잡니다. “드르렁 쿨쿨” 이러면서 자는데 부목사님들이 웃으실 겁니다. 

이상한 것은 이매역 입구에 와서는 반드시 깹니다. 비행기 타면 한 잠도 못 잔다는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뜨기도 전에 잠들어 버립니다. 세상 아무리 돌아다녀도 괜찮습니다. 또 늙으면 잠이 준다고 사람들이 말하는데 저는 늙을수록 점점 더 잠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래서 이렇게 건강하게 세계 선교를 다닐 수 있게 하시는구나!’ 마이클 잭슨이나 마릴린 먼로 같은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은 주신다.” 이 성경구절 하나만 잘 이해하였어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성경대로 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했는데 정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말한 나라와 진리를 먼저 내쫓은 나라들이 세상에 어떻게 되었는가 보세요. 세상에 그런 나라들은 다 멸망했습니다. 다른 나라는 우리가 잘 모르지만 남한과 북한은 알잖아요? 같은 문화 안에서 같은 역사를 가지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땅에서 같은 민족이 사는데 왜 북한은 GNP가 960이고 남한은 2만이냐 말입니까? 

지금 6만개 한국 교회는 오늘도 일 안하고 이렇게 교회 나와서 찬양하고 예배드리고 있잖아요? 이렇게 하면 나라 망한다고 생각해서 주일 다 없애버리고 교회 모두 문 닫아 버리고 노동력의 극대화를 위해서 천리마 운동을 하고 주일날 열심히 일을 시킨 공산당 사회는 왜 못살게 되고 굶어 죽는다고 야단입니까? 6만개 교회 모인 교인들 합쳐보세요.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일하지 않고 주일날 찬양 부르고 예배드리고 헌금 갖다 내고…. 그런데 어떻게 남한은 이렇게 잘 살고 어떻게 북한은 저렇게 못삽니까? 왜 그런가? 바로 진리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패러독스 진리라는 겁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제일 큰 부흥사로 인정받은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설교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설교하는 도중에 손가락 내밀면서 “Bible Says”라는 말입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이것 때문에 빌리 그래함 설교는 인정을 받는 겁니다. “성경에 그렇게 있잖아? 그 이상 무슨 다른 소리가 많아?” 그러는 겁니다. 어려서 성경 말씀 잘 가르쳐서 말씀 그대로 잘 박힌 못과 같이 하는 것이 교회에서 하는 어린이 교육의 목적입니다. 이것 하나만 잘 가르쳐주면 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드리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진리의 발견이죠? “나는 평생 기도하리로다.” 

어떤 사람이 찬송하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는 종일토록 여호와를 찬양하리로다.” 어떤 사람이 성경 읽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꿀 송이보다 더 달도다.” 진리 발견입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어떤 특정 사람이나 특정 공동체에 하나님이 약속하시죠? 약속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아브라함이 언제 적 사람입니까? 그런데 지금 온 세상에서 다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으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아니면 설교가 안 됩니다. 그렇게 이름이 창대케 되었잖아요? 하나님이 모세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리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악 조건에서 그대로 다 되었잖아요?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너는 영원한 왕국 건설의 조상이 될 것이다.” 그러더니 그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잖아요? 만왕의 왕, 영원한 왕국! 그래서 성경 신약 첫 번째 말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온 세상은 그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뭐라고 약속했습니까? “내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며 인생의 우선 선택이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성경은 말합니다. 앞으로 보세요. 하나님을 모르는 문명의 발달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옵니다. 

저는 묵상 시간(Quiet Time)을 가집니다.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 하나님이 나의 어떤 점을 기뻐하실 것인가? 어떤 점을 싫어하실 것인가? 객관성 있게 평가하면 저는 바울의 고백이 너무 훌륭합니다. 그가 묵상 시간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봤을 때 세 가지 고백을 하지요? “내가 누구인가?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니라.” 자기 발견입니다. 그 다음에 “성도 중에 나는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이다. 꼴찌이다.” 나중에는 사도같이 되었잖아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 같은 나에게, 모자란 사람, 없어도 괜찮은 사람 그것이 나다.” 이것이 바울 선생의 영적 묵상, Quiet Time의 결론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자신을 들여다보면 그 고백 밖에 나올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인들을 보면 저 정도 교인은 그만큼 교회 다녔으면 하나님 말씀에 한번 순종해 볼 마음도 생길 텐데 어린 기독교인(Baby Christian)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복 주시는 날이라는 진리를 믿는다면 주일 성수는 어떻게든지 할 텐데, 십일조는 물질 축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발견하면 할 텐데…. 안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통이라는 것을 발견했으면 할 텐데 안합니다. 이민 생활 오래한 사람들은 자녀들과의 대화 문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어른이 되어서 외국에 가면 외국말이 잘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외국말을 잘 못하게 되고 아이들은 한국말을 잘 못하게 되니까 대화가 단절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통하지 않는 것이 이민자들의 가족 문제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니까 교인 가정에 전화를 걸면 부모가 일 나가고 없으면 아이들이 받습니다. 그러면 “여보세요!” 그러는 게 아니라 첫 마디가 “이거 누구야?” 왜 그러느냐 하면 아빠, 엄마가 누구한테서 전화 왔느냐고 꼭 물으니까 “이거 누구야?”라고 꼭 묻는 겁니다. “이거 목사야.” “어, 목사야?” “그래, 그런데 아빠 있어?” “없어.” “어디 갔어?” “몰라.” 말을 좀 길게 하면 귀찮아합니다. “아빠 들어오면 목사님한테서 전화 왔었다고 말해.” “싫어. 너가 해.” 안 통합니다. 하나님과 안 통하는 아기들! 

미국의 초기 역사를 보세요. 두 그룹이 나누어져 한 그룹은 황금을 찾아 떠났습니다. 남미, 중남미입니다. 거기에 금이 많이 난다는 소식을 듣고 부자가 되기 위하여 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금을 찾지 못하고 대다수가 빈민 생활을 합니다. “우리는 금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찾아가자.” 청교도들은 북미로 갔습니다. 그곳이 미국입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이 근본이다. 너희는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라. 힘써 여호와를 알라.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순종하라.” 진리를 발견했다면 그대로 살면 됩니다. 그런 나라들은 다 선진국이 되고 잘 살고 GNP가 3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자녀들을 위해서 지식 축적을 위해 공부 시키는 것만큼만 신앙 교육에 열을 올려 보세요. 절대 손해 안 납니다. 저도 아들딸이 하나씩 있는데 절대로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말을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 공부 1등하라든지 공부 잘해서 일류대학 들어가라든지 한 적이 없습니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만 해라. 게으른 자는 안 돼. 열심히 하는데 하다가 그만인 것은 그만이다. 괜찮아. 1등 안 해도 괜찮아.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꼴찌 했으면 괜찮아. 실력에 맞게 대학에 가고 정 대학에 못 들어가겠으면 할 수 없어.” 저는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히 한다. 아빠는 목사야. 내가 발견한 삶의 진리가 있는데 하나님 믿는 것, 기도 생활하고 교회 생활하는 것 이것은 아빠가 잔소리 할 테니까 그런 줄 알아라.” 저는 그렇게 아이들 키웠습니다. 지금 하나도 후회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말해 학교에 다닐 때 초등학교에서부터 신학대학 졸업할 때까지 좋은 상은 다른 친구들에게 미안할 만큼 다 탔습니다. 나중에는 대통령이 주는 상까지 싹 쓸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장 가지고 나가면 어디 가서 쓸 데가 없습니다. “나 이런 상 탄 사람입니다.” 아무데서도 받아준 데가 없습니다. 여기 분당 초등학교 제가 1회 졸업생입니다. 예전에는 뭐가 있었느냐 하면 시험을 보잖아요? 그런데 시험점수 제일 안 나온 학생들은 그때 꼭 나머지 공부라는 것을 시켰습니다. 끝나고 다들 가는데 한 시간 동안 남아서 시험 문제를 풀어야 집에 가게 합니다. 

그런데 보통 10~15명 정도는 남거든요? 나머지 공부를 한 시간 해야 되는데 선생님이 지도를 하지 않고 저한테 시킵니다. “네가 좀 이것 풀게끔 한 시간 가르쳐줘라.” 저는 이것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릅니다. 수업 끝나고 집에 가야 되는데 왜 담임선생님이 할 일을 저한테 하라는 겁니까? 같은 반 학생들을 놓고 문제 못 푸는 것을 끝까지 풀게 해야 했는데, 역사가 지나고 또 이렇게 지나서 제가 이렇게 고향 땅으로 돌아왔잖아요? 

지금 나한테 나머지 공부하던 그 친구들은 성남시의 부자들입니다. 빌딩도 있고 땅도 많은데 저는 한 평도 없습니다. ‘인생이 사는 게 그렇게 애쓴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요즘에 어쩌다 만나면 나한테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허허허! 목사는 월급이 얼마야?” 아주 돈으로 눌러 버리려 합니다. 

하나님 잘 믿는 것을 지식 축적보다도 앞서서 해야 합니다. 인생의 가는 길을 바로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그 인생을 위해서 가장 훌륭한 길이라는 것을 잠언이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부모가 실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아이들이 따라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부자 아버지 집사가 있었습니다. 주일날 아침에 교회 안가고 골프 치러 나가면서 중학생 아이들에게 만 원짜리 한 장 주면서 “너 이거 가지고 가서 헌금 내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와.” 중학생 아들이 “아버지, 아닙니다.” 도로 주었습니다. “이거 가지고 가서 골프 치고 점심 잘 드세요. 저는 교회 가서 아버지 골프 잘 치라고 기도할게요.” 

실화입니다. 목사가 그렇게 주일 잘 지키라고 설교를 수없이 했어도 귓전으로 안 듣던 사람이 아들한테 한방 맞고 절대 주일을 안 빠집니다. 누구라고 발표는 안하겠습니다. 

역사에 하나님께서 쓰셨던 나라와 민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받았고 한때는 영국이 세계 선교를 책임졌고 한때는 러시아가, 지난 200년 동안 미국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임 받던 그 많은 나라들이 쓰임 받던 그 당시가 가장 위대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카네기는 혼자서 교회 건축을 5천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세계에서 제일 부자 되었습니다. 패러독스 진리입니다. 앞으로 20년 후에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선교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됩니다. 지금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겁니다. 그것을 영적으로 볼 수 있어야만 됩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그 길을 앞서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만약 네가 이 복을 지킨다면 진리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네 목의 금 사슬이요 네 머리의 아름다운 면류관일 것이다.” 오늘 말씀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우선 선택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힘써 하나님을 아시고 자녀에게 가르쳐서 여호와의 복의 임재가 나타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저희들에게 삶의 참다운 진리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잘 기억하고 말씀대로 살고 자녀들에게 가르침으로 말미암아 복의 임재가 그들에게 영원할 수 있는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