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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깨달음의 복 (마 1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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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복 (마 13:13~17)


13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14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16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오늘은 우리가 깨닫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에 대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고 사신 우상을 섬기고 타락함으로 결국에는 멸망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망한다고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고, 이렇게 망하고 만 것입니다. 

이사야 1장 2절에 보면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하나님 앞에 매를 맞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백성, 망하는 길로 가고 있으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이 백성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책망을 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하리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아 깨달으라, 깨달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이스라엘은 나라가 없고 다만 로마의 통치를 받는 조그마한 식민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멸망하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아주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아서 의롭다 함을 받고 자기의 행위로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대로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도 얼마나 범죄 하는지, 예수님께서 그들을 무섭게 책망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죄가 크든 작든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옆에 있던 강도처럼 죄가 큰 인간이라 할지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마치 죄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시민이 되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구세주요, 메시아이신데 성경 박사인 서기관들이나 율법대로 산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하나님이 보내주신 메시아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말씀이나 행하신 그 많은 표적을 보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 텐데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37절 이하에 보면 그들이 예수님의 그 많은 표적을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서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 6장 9~10절에는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12장 40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하신 이사야 6장 9~10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람, 하나님이 멸망시키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39절에 보면 노아 홍수 때에 노아의 여덟 식구 외에 모든 세상 사람들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멸하기까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멸망당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깨닫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깨닫게 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람은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18절에 예수님께서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벌써’, 즉 과거에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믿지 아니함으로 심판을 받는데, 그 사람이 믿지 않게 되는 것 자체가 심판을 받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게 되는 것 자체가 저주요, 심판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19절에 보면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23절에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게 되는 사람과 깨닫지 못하게 되는 사람은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셨습니까?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으셨습니까? 이것이 믿어집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깨닫게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3장 10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너희에게는’은 ‘택함 받는’ 너희이고, ‘그들에게는’은 ‘택함 받지 못한’ 그들을 말합니다. 택함 받은 사람에게는 깨달음을 주시지만, 택함 받지 못한 그들에게는 깨닫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깨달음을 얻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이렇게 깨닫는 은혜는 그저 한 번만 깨달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날마다 시간마다 계속해서 깨달아야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깨닫지 못하면 회개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왜 회개를 못합니까?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 때문에 망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회개를 안 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지 못하면 회개가 없고, 회개가 없으므로 변화가 없습니다. 왜 평생 예수를 믿지만 그렇게 변화가 없습니까?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살면 모든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서 살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 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매를 맞아가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두 번째 이유는 깨닫지 못하면 감사하면서 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감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그 은혜, 십자가의 그 사랑’을 깨달은 사람은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립니다. 또한 ‘예수 믿게 된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예수 믿게 된 것만 생각해도 너무나 기쁘고 감사해서 하나님 앞에 영광 올리며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항상 감사하면서 삽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셔서 그동안 먹고 산 것, 이렇게 건강하게 오늘까지 살아있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아는 사람은 항상 감사하면서 삽니다. 

카네기 성공론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헤럴드 애보트라는 사람은 사업에 실패해서 전 재산을 날리고 많은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심한 절망감에 빠진 그가 어느 날 길을 걸어가는데 마침 반대쪽에서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바퀴를 단 나무판자에 앉아서 양손에 막대기를 잡고 땅을 긁으면서 오고 있었습니다. 길을 건너서 인도로 올라오려던 이 장애인은 애보트와 눈이 마주치자 “안녕하십니까? 참 좋은 날입니다”하고 웃으면서 아주 명랑하게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애보트는 그 사람을 보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부자인지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은 두 다리가 없어 걸어 다닐 수 없지만, 자기는 두 발이 있고 걸어 다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어려운 형편에서도 아주 쾌활하고 자신감이 있어서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인사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부끄러워진 애보트는 인생을 새롭게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욕실 거울에 ‘나는 신발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라고 써 붙여 놓고 아침마다 소리쳐 읽으면서 새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게 됩니까? 부모의 은혜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 노릇을 못하게 됩니까? 깨닫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욥기 32장 9절을 보면 『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노인이라고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노인이 되었지만, 철이 안 난 어린 아이 같은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잘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도 모를 뿐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면서 살지 못하게 됩니다.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이유는 깨닫지 못하면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달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가 있는데 밭의 소출이 풍성해서 곡식을 쌓아 둘 곳이 없자 곳간을 크게 짓고 쌓아 두었습니다. 그는 평생 먹어도 남으니 이제는 땀 흘려 고생할 필요도 없고, 즐기면서 살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많은 재물을 열심히 쌓아 놓기만 했고, 자기를 위해서 먹고 마시며 살 생각만 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21절에 ‘자기를 위해서 쌓아 두기만 했지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치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는 아주 인색하여 십일조, 감사헌금 할 줄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을 어리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자는 중요한 세 가지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재물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골프 왕 중에 할 서튼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25살 때 세계 최고의 골프 왕으로 골프계를 석권했습니다. 그는 엄청난 돈을 벌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좋은 차를 사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고 포르쉐라는 차를 샀고, 좋은 집에서 살면 행복하겠다고 생각하고 좋은 집을 샀습니다. 그 후에는 비행기도 한 대 샀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후로는 실력이 나오지 않아서 십 년 동안 딜레마에 빠져 허덕이게 되었고, 이혼을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여러분,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꼭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이 부자가 깨닫지 못한 것은 오늘이 죽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하셨습니다. 여러분,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건강해도 젊어도 하나님이 불러 가시면 자다가도 가야합니다.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항상 깨닫고 살아야 지혜로운 사람인 줄 믿습니다. 

세 번째는 많은 재물을 쌓아놓고 죽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재물을 모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값있는 일, 귀한 일에 그것을 사용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강철 왕 앤드류 카네기는 사업가로서 돈을 많이 번 사람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강철회사 회장이 된 후에는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든지 부요하게 세상을 즐기며 살 수 있는데 갑자기 사업을 정리해버렸습니다. 인생의 전반기는 돈을 버는데 보냈지만, 후반기는 하나님의 일에, 사회사업과 남을 돕는 일에 바치겠다며 그 일만 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카네기는 2,509개의 공공 도서관, 카네기 공과대학, 카네기교육진흥재단, 각종 평화재단 건립 등에 자기 재산의 90%를 기부했습니다. 카네기는 평소에 늘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부자인 채로 죽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왜 부끄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재물을 쌓아놓고 쓰지도 못하고 창고지기 노릇만 하다가 죽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이 어리! 석은 부자처럼 자신이 오늘 죽을 줄도 모르고, 재산을 쌓아놓고 가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을 가리켜 시편 49편 20절에서는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말씀합니다. 깨닫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큰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열심히 기도하고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119편 34절에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169절에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하고 깨닫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깨닫게 되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는 가운데 깨달음을 얻는 것은 제일 좋은 것이고 축복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난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길입니다. 

예레미야 10장 18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 땅에 사는 자를 이번에는 내던질 것이라 그들을 괴롭게 하여 깨닫게 하리라 하셨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 하셨지만, 듣지 아니하고 깨닫지 못하고 잘 못 살면 채찍을 드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깨닫지 못하고 바르게 살지 못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증거입니다. 징계가 없다고 하면 그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날에는 엄청난 고난을 값으로 지불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은 그 어려운 IMF 때에도 자진해서 집을 다 바쳐 성전을 짓겠다고 하셔서 제가 말렸습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들 수준이 그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다른 교회 장로님은 교회가 성전을 지으려는데 재산이 몇백 억이 있어도, 평소에 십일조도 안 하고 감사도 할 줄 모르던 분이니 성전 크게 지으면 헌금 많이 해야 하니까 자꾸만 작게 짓자고 하셨습니다. 그 장로님이 고집을 부려서 결국 교회를 작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예배당 짓고 회사가 부도가 나서 그 많던 재산이 전부 날아갔습니다. 그 후에 그 장로님은 ‘그때 내가 성전을 좀 크게 지을걸.’ 하고 후회했습니다. 재산이 없어진 후에야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그 몇 백억의 재산이 자기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돈을 가지고 십일조도 안하고 성전 짓는데 그렇게 인색합니까. 망하고 나서야 깨달으니 얼마나 늦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죽을병에 걸리고 나서야 깨닫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고난을 통해서라도 깨닫게 되는 것은 축복이기 때문에 시?! ? 119편 71절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하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오늘 설교를 듣는 가운데 많은 것을 깨달으신 줄 믿습니다. 깨닫는 것, 말씀 듣다가 깨달은 것은 축복입니다. 매 맞고 깨닫는 것보다 말씀 듣다가 깨달은 것이 축복입니다. 깨닫기만 하면 살 길은 열립니다. 깨닫기만 하면 일어납니다. 변화가 됩니다.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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