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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듭남의 비결 (벧전 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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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의 비결 (벧전 1:22~23)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2-23). 

I. 본문해설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핍박을 앞두고 흩어진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에 등장하는 구절입니다. 이 편지 속에서 사도는 다가오는 핍박과 고난을 믿음과 소망으로 이길 것을 강력히 권면하면서 독특한 방식으로 그들의 믿음이 굳건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바로 성도들로 하여금 구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나그네와 행인 같던 죄인들을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써 건져주신 구속의 은혜를 높이도록 도전하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은 이 사랑하는 성도들의 신앙의 상태와 복된 신앙생활을 가능케 한 근거로서 중생에 대해 가르치고 있습니다. 


II. 인간의 고통과 행복 

우리는 누구나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하지, 불안하고 요동치며 고통 받는 인생을 살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신자이든지 불신자이든지 마찬가지입니다. 

A. 인간 불행의 뿌리 

그런데 인간 불행의 뿌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하여 서로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 불행의 근원은 가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산업사회의 치열한 생존경쟁 역시 단시 생존의 경쟁이라기보다는 좀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생존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승리한 사람들은 행복하고 패배한 사람들은 불행할 텐데 이것이 결국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질병이 모든 인간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백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학이 발달하고 인간의 수명이 늘었지만 산업화의 부산물로 말미암아 새로운 질병들이 발생하고 약과 질병의 쫓고 쫓기는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또 다른 사람들은 무지가 인간 불행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보다 더 질 높은 교육을 시키면 세상은 행복해지고, 평화롭게 될 것이며 불행과 악이 추방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는 오늘날에 지식이 늘어난 만큼 지혜가 발달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른 것도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의 뿌리가 인간관계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상적으로 맺어주는 법질서를 확립하고 강제력을 동원하면 좀 더 사회가 편안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중 어떤 것으로도 인간의 불행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이 불행의 뿌리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열이 나고, 재채기를 하고, 목이 쉬면 감기에 들린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열을 내리고, 기침을 못하게 한다고 해서 근원적으로 감기가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약을 먹어서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고 충분히 휴식을 취할 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앞에서 나열한 모든 것들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불행의 근본적인 뿌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고 증거합니다. 그리고 죄에서 그 궁극적인 원인을 찾습니다

죄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경향성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에 대해서 반감을 품으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거스르고 살아가는 인간의 내적인 경향성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 건강한 사람,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 많은 소유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런 자들과 달리 진짜 행복한 사람들을 베드로의 편지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B. 인간의 행복 

그들은 다름 아닌 베드로의 편지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물론 가난하고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물질의 결핍, 무지함, 건강의 상실도 그들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이 성도들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들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은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마음 깊이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영혼은 깨끗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사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작용이 그들의 영혼을 순결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진실하여 거짓이 없었고, 마음에는 이타적인 사랑이 가득 차서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며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거의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어떠합니까? 또 우리의 자녀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에 있었던 진리의 비춤이 여러분에게는 있습니까? 인간은 하나님의 정직한 말씀의 빛으로 비추어 주실 때만 무엇으로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지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고 아무리 열렬히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비추고 있는 빛이 성경진리의 빛이 아니고 세속적인 인간의 사상의 빛이라면 여러분은 언젠가는 내가 틀렸노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틀린 결론들을 자녀에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얼마나 땅을 치며 후회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자가 되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정치가가 되고, 훌륭한 대학의 교수가 되겠습니까? 어떤 아이는 대통령이 되고, 큰 사업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어떤 아이는 그곳을 청소하거나 구멍가게를 할지 모릅니다. 생각하기 싫지만 능력이 안 돼서 더 힘들게 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모두 삶의 양태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사도 베드로에게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진리를 알고 순종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정결한 영혼이 되었고 형제를 뜨겁게 사랑하며 참된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결국 그들은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요? 

반면 어두워진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육신적인 삶, 이 세상의 성공과 번영을 위해서는 마음을 많이 쓰지만 자녀들의 영적인 성공을 위해서 얼마나 마음을 기울이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에게 부여된 일차적인 사명은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거룩한 종교의 도리를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그 진리를 따라 살아감으로써 정결한 영혼이 되어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자녀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일을 했으면 부모로서 거의 모든 일을 한 것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많은 일을 하였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III. 거듭남의 방편 

사도는 그렇게 핍박을 앞두고 있는 성도들이 진리에 순종함으로써 정결한 영혼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그 영적인 뿌리를 보여줍니다. 그는 말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여기서 사도 베드로는 거듭남의 방편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A. 썩지 않을 씨 

첫째는 썩지 않을 씨입니다. 얼핏 성경을 보기에는 거듭난 것이 썩지 않을 씨로 된 것인데 그 씨는 곳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비롯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희랍어 성경을 보면 이 부분은 전혀 다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 곧 말씀으로 되었다고 나오지 않고, 그와 다르게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와 또한 곧 말씀으로 되었다고 나옵니다. 즉 두 가지가 별개입니다. 여기서 썩지 않을 씨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1장 17절에서 하나님을 묘사할 때 썩지 아니하실 분으로 묘사합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결국 예전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생명 없이 본성을 따라 짐승처럼 느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중생은 그렇게 짐승처럼 살아가는 사람의 영혼 속에 성령을 넣어 주시고 성령을 씨처럼 심어 놓으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중생의 역사는 하나님이 홀로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씨는 씨 자체에 성장의 가능성을 담고 있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 마음속에 심겨졌지만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발아하여 작은 씨앗이 거목이 되는 것처럼 성장하는 것입니다. 

덧붙여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중생은 회심보다 논리적으로 먼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중생하도록 기도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중생은 하나님 홀로 하시는 것이지만 회심은 중생한 영혼의 첫 번째 움직임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썩지 아니 씨를 토대로 살아 있는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생과 회심의 역사는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가던 악한 인간들, 고통과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을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는 놀라운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중생의 핵심은 영혼의 변화이고 영혼의 변화는 본성의 변화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맺고 살아가던 사람을 하나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어둠 속에 있던 그의 영혼을 밝은 빛으로 인도하며 굳기 짝이 없던 완고한 의지를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의지로 바꿉니다. 마음에는 육욕과 자기 사랑으로 가득 찬 인간을 바꾸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 차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생과 회심의 역사입니다. 

B. 살아있는 말씀 

두 번째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부모가 자녀들에게 해주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의 중생과 회심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로 집약됩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거듭나지 못한 영혼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세속주의와 인본주의가 가미된 오염된 말씀이 아니라 순수하고 정결한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어렵지 않고, 올바르게, 그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그들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진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영혼 전도와 기도 말고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잘 가르칠 수 있는 방법과 도구를 개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자녀들이 진리의 말씀에 가까지 다가올 수 있도록 좋은 방법과 도구를 하나님을 의지하며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깨닫고 마음과 정신을 모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지성을 주신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을 믿고 깨닫기 위해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썩지 아니할 씨인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여 그들에게 심겨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정직하게 선포되고 훌륭하게 조직화되어 좋은 교재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영혼에 심겨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가 우리 자녀들의 심령 안에 일어나도록 온 마음을 다하여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영혼처럼 자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기도를 회심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거짓된 신앙의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불신앙의 쇠사슬을 끊는 하나님의 복음의 역사가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모든 것을 준비할지라도 이것을 사용하시는 성령의 능력 없이는 어떠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고, 우리의 방법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법을 사용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의존하고 그분께 매달리는 것입니다. 

조용히 무릎을 꿇고 자녀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부모로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가정의 경제를 위해 쉼 없이 애쓰고 수고하였지만 그 노력의 대부분이 자녀의 육체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반성해 보십시오. 그들의 영혼의 상태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눈물로 기도하고, 과연 그들의 마음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하고 성령이 심어 놓은 씨가 강력한 역사를 일으켜 자녀를 변화시키기를 기도했는지 돌아보십시오. 육신의 고아를 우리가 보아도 눈물이 나거니와 영혼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버려진 채로 자라온 아이들의 불쌍함을 눈여겨볼 때 어떠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전심으로 기도하십시오. 이것은 그렇게 하면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의무이고 충실하지 않으면 쓰디쓴 고통 속에서 신앙과 상관없이 아이들의 영혼의 불쌍한 처지를 살아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아 있을 수도 없고 우리의 자녀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모든 자원을 가지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마음속에 썩지 아니할 씨가 심겨지고, 살아 있는 말씀이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주님께 우리 자식들을 부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온 여러분의 인생을 돌아보십시오. 

물질적인 여유와 행복함이 여러분의 영혼을 아름답게 한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주님을 몰랐더라면 미워하고 원망하였을 사람들이 그 고난과 역경을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주님 앞에 영혼이 정결하여 지고 거짓이 없어 그리스도 예수만을 신뢰하며 따르던 일이 신앙생활을 성화되도록 만들어주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우리 자녀들의 인생을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이 엄마 아빠는 영원히 너를 지켜줄 수 없단다. 그러나 오히려 더 좋으신 주와 및 은혜의 말씀께 너를 부탁한다. 네가 거듭나고 회심한다면 나보다 훌륭한 아버지이신 주님이 네 안에 계셔서 모든 진리의 말씀으로 너의 인생을 인도하실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지고 자녀를 위해 열렬히 기도하십시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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