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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소원대로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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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소원대로 (마 15:21~28)


사람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소원의 크기와 그를 향한 힘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병자가 조금씩 좋아지기 원하면 소극적 소원입니다. 병 낫기가 아니라 건강하기 소원해 도전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빚이나 해결하고 꼴찌나 겨우 벗어나라고 자녀 삼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처럼 되라고 아버지가 되신 것 아닙니까? 

가장 적극적인 믿음은 최상을 소원할 때 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처럼 되기 소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요10:35)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대로 믿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신적권세를 발휘합니다. 

불행한 사람이 조금씩 벗어나는 건 세상 방법입니다. 신자는 바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병의 차도 정도가 아니라 바로 건강하고 가난한 사람 바로 부해집니다. 100등 하는 학생이 95등 90등 이렇게 오르는 게 아닙니다. 바로 1등이 됩니다. 물론 경험은 여전히 100등에 머물 수 있어요. 그러나 결국은 1등이 됩니다. 

귀신들린 딸이 조금씩 낫나요? 그렇게 보여도 실제는 단번에 해결됩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소원대로 되리라.” 믿음이 사람을 바꿉니다. 겉모습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바뀐 신분은 걸 맞는 힘을 줍니다. <불의 전차>의 유명한 대사입니다. 무섭게 질주하는 주인공을 향해 모두 말합니다. “도대체 저 힘이 어디서 나오지?” 

1. 문제 위로 주를 바라보라 

웨슬리가 농촌마을을 걸으며 어려움에 빠진 성도와 상담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황소 한 마리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먼 산을 보고 있습니다. “저 소가 왜 저러는지 아세요?” “글쎄요.” “고개를 안 들면 담장만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와 상황만 보면 그 너머 계시는 예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 소처럼 하세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임하면 거기 압도됩니다. 두려워하면서 늘 생각합니다. 병이 빚이 원수가 내 주님이 됩니다. 안 그러면 문제가 아니지요. 한 이방 여인에게 감당 못할 불행이 임합니다. 딸이 흉악한 귀신이 들렸습니다. 딸이 어떠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단히 흉측했습니다. 해결할 길이 없을 때는 더욱 고통이 증가됩니다. 

스스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는 줄어듭니다. 고통도 감소됩니다. 연구결과로 나왔습니다. 두 마리 쥐를 묶어두고 가끔 전기충격을 줍니다. 한 마리는 옆의 버튼을 눌러 멈출 수 있고 다른 쪽은 자신이 전혀 조절할 수 없게 합니다. 처음 전기충격이 시작되면 두 마리의 쥐 모두가 괴로움에 발버둥을 칩니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한 쪽은 버튼을 누르면 전기충격이 멈추는 것을 깨닫습니다. 반면에 다른 쪽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 마리 모두 강한 충격을 받습니다. 그런데 버튼을 눌러 상황을 조절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쥐는 어떨까요? 훨씬 스트레스가 적습니다. 다른 쪽은 위궤양이 오지만 이쪽은 괜찮은 겁니다. 

신자 마음에는 이 버튼 곧 천국열쇠가 주어졌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직통전화도 있습니다. 전능의 하나님이 책임진다는 약속도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예수를 바라본다면 고통이 와도 훨씬 덜합니다. 아니, 고통보다 더 큰 감격과 능력이 부어집니다. 아프지만 안 아픕니다. 슬프지만 안 슬픕니다. 어둠보다 빛이 강합니다. 

내가 당하는 전기충격 무엇인가요? 병인가요? 암이고 동맥경화인가요? 아니면 엄청난 빚인가요? 사람의 고통인가요? 내 안의 상처인가요? 그것이 큰 문제라는 인식이 공포를 불러옵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고 능력이 없다는 믿음이 나를 넘어지게 합니다. 절망과 무력감이 생명력을 뺏습니다. 해결의 버튼을 누르세요. 

이 이방여인은 문제해결 버튼을 누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9.11사태 때 사고 당한 건물 100층에서 내려온 한 무리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모두 “하나님, 예수”를 부르며 50분간 나올 때까지 건물이 견디었습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불과 연기가 길을 내 주었답니다. 

2. 꾸준히 신의 모습 보라 

아브람은 하나님을 만나는 즉시 복이 되었습니다. 신적 존재입니다. 그러나 의지할 데 없는 광야의 사나이입니다. 문제해결이 즉시 되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 시간이 걸립니다. 그동안 자신 안에 있는 신의 모습을 스스로 보아야 합니다. 천지창조 하시는 하나님처럼 흔들리지 않고 해결을 향해 하나님께 나가는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를 부릅니다. 나와 예배하고 소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했나요? 아무 관심도 없어요. 계속 외칩니다. 여전히 대답도 않고 갑니다. 주위 사람들이 오히려 시끄럽고 귀찮아 예수께 대답하라고 간청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에게만 보내졌다”고 합니다. 냉정해 보입니다. 

여자는 계속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 앞에 나와 절하며 도와 달라 합니다. 대답이 놀랍습니다. “자녀의 빵을 개들에게 던짐은 잘못된 것이다.” 아니, 하나님의 아들이 이럴 수가. 우리도 같은 경험을 자주 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답이 없습니다. 교회 사람이나 목사들에게 도움은커녕 기분 나쁜 소리만 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그만 둡니다. 아니, 그 전에 단념합니다. 기도 아무리 해도 무응답이요 자꾸 할수록 하나님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상처나 받고 떠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른 길이 어디 있나요? 다른 길은 없어요. 절망하며 귀신처럼 망해갈 뿐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 되는 성장 기간입니다. 

여인이 뭐라고 대답했나요? “여보시오. 안 고쳐주면 그만이지 이렇게 사람을 모욕합니까?” 아닙니다. “주여 옳습니다. 개들에게도 부스러기는 주지요?” 위대한 대답입니다. 하늘에서 보던 천사들이 환호하며 박수합니다. 가슴이 뜨겁습니다. 우리도 이래야 합니다. 모욕당하고 실언 들었을 때 이렇게 반전시켜 보세요. 

대답하십니다. “존귀한 여인이여!” 실제로 원어로 그렇게 표현됩니다. “믿음이 참으로 크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여인의 말이 무엇을 고백하나요? “하나님의 것은 아무리 작아도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해결 못할 병도 문제도 어려움도 전혀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어디 있나요? 이미 문제는 떠난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요. 우리는 어떤 문제건 해결할 열쇠를 받았습니다. 예수 이름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다 바꾼다고 믿읍시다. 그렇게 정말로 큰 믿음을 가집시다. 하나님의 것은 말할 수 없이 능력이 넘칩니다. 그의 이름, 그의 말씀, 그의 교회, 그의 축복, 안수, 믿음의 고백. 

3. 믿음 고백으로 힘을 발하라 

예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게 믿음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신으로 주의 이름을 부름으로 구원 받아 새로워진 사람임을 항상 고백하세요. 이 여인처럼 말하세요. “남들이 부스러기로 보는 그 이름으로, 말씀으로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가이드 포스트>2001년 1월호에 한국도자기 김동수 장로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업으로 빛 더미 도자기 사업을 물려받아 매출의 40%를 이자로 뭅니다. 사채가 불어나 1960대말 빚이 300억 원이 되었습니다. 종업원 월급도 3개월이나 밀렸습니다. 이제 공장을 처분해도 전체 빚의 20% 밖에 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절망의 시간에 황소처럼 눈 들어 하나님을 보고 말씀을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말씀을 하루 수백 수천 번 암송하며 달려 나갑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또한 모든 문제도 영적입니다. 말씀 받은 신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영적존재로 변합니다. 

“개 같은 죄인이요 천한 존재지만 부스러기 말씀이라도 주시면 나는 영적 존재 영광의 왕이 됩니다.” 놀라운 고백입니다. “이 말을 하였으니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 우리도 이렇게 합시다. “죄 많고 망해야 마땅한 나지만 주가 속에 들어오셨고 주의 말씀이 있으므로 나는 신으로 강하고 존귀합니다.” 

이동수 장로는 말씀 암송으로 그 분야에 신이 되었습니다. 1973년 빚을 다 갚고 본차이나 분야에서 세계 3위가 되었습니다. 국내최초로 세계적으로 “국제품질인증”을 받았고 부채 0%의 견실한 회사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결과가 조금씩 일어났지만 실제로는 신앙고백과 함께 신적존재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건강이 오래 걸려 조금씩 좋아질 것입니다. 사업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내 문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 변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받은 존재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전이요 신인가? 아니면 보통 사람인가? 둘 중 하나입니다. 어느 정체를 믿고 의지할지 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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