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의 능력 (롬 1:16~17)

  • 잡초 잡초
  • 283
  • 0

첨부 1


복음의 능력 (롬 1:16~17)

 
며칠 전에 인터넷뉴스를 우연히 봤더니 이런 제목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죽은 엔진 살리는 세계최고명장’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읽어보았더니 대한항공의 최고의 정비사로 뽑힌 ‘김용기’라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대한항공에 3800명의 정비사가 있는데 그 중에 최고의 명장이 바로 이 김용기 씨랍니다. 

이 분은 30년 넘게 항공분야의 정비사로 일해 왔는데 이분의 특징은 비행기 엔진을 새것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비행기가 한 300톤이 넘는다고 합니다. 300톤이 넘는 철 덩어리가 하늘을 난다는 것은 기적 아닙니까? 양쪽에 두 개의 엔진이 있어서 이 엔진이 강력한 힘을 내서 비행기가 하늘을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엔진의 수명이 2만 5천 시간이랍니다. 2만 5천 시간 하늘을 날면 그 엔진은 수명을 다한 것입니다. 노쇠해서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다시 그것을 새것으로 재조립하는 작업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한국에서 LA에 가려면 한 12시간 걸리는데 2만 5천 시간 비행을 하려면 비행기가 한국에서 미국을 몇 백번을 왔다 갔다 해야 가능한 시간입니다. 그만큼 하늘을 날고 나면 이 비행기 엔진은 수명을 다합니다. 그러면 공장으로 들어오는데 그 비행기의 엔진 부품이 한 10만개가 된다고 합니다. 그 10만개의 부품을 다 분해를 한 후 닦고, 조이고, 교체하고 이런 작업을 마치면 그것은 새로운 엔진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장착하면 다시 2만 5천 시간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10000분의 1로 실수를 줄인다고 합니다. 실수라는 것이 용납이 안 됩니다. 컴퓨터보다 더 정확하게 그 10만개의 부품을 다시 재조립해서 엔진이 다시 비행기를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기사를 보면서 ‘이 분이 죽은 엔진을 다시 살리는 최고의 명장이라면 사도바울은 어떤 명장일까? 사도바울은 복음의 명장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교회가 개척된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은 첫 열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열정이 식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복음이 아니라 율법주의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도생활, 전도생활 등 모든 생활이 나태해져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죽어가는 로마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복음의 편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또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가서 여러분에게 복음 증거하기를 원하노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그 복음의 축복, 그는 누구에게 돈 만원 꾼 적이 없지만 복음의 빚진 자가 되어서 로마 교인들에게 그 복음의 빚을 갚기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16절~17절은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 두 구절에 로마서 전체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에서 조금씩 졸던 분들도 오늘은 졸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정말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우리가 바로 알고 돌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1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16절 서두에 어떻게 시작합니까?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한 때 복음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는 복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바꿔 읽으면 “내가 복음을 자랑하노니”라고 읽어도 됩니다. 바울은 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러워할까요?

16절에 보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이유가 17절에 나오는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에 그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16절~17절은 하나의 구절입니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독립된 구절처럼 보이지만 영어 성경 몇 개를 비교해 보아도 그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이며,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본문을 중심으로 몇 가지 질문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첫째, 복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복음을 자랑한다.’ ‘내가 복음 전하기를 원한다.’ ‘복음이 우리를 살리는데 도대체 복음이 무엇이냐?’입니다.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 영어로는 굿 뉴스(Good news) 좋은 소식입니다. 이것은 특히 전쟁과 관련된 언어입니다. 예전에는 전쟁이 나면 전쟁 소식을 따로 몰랐습니다. 지금이야 중동에 전쟁이 나도 아랍이 이기는지 이스라엘이 이기는지 바로 알 수 있지만 예전 전쟁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쟁에 남편이 나가고 아들이 나가도 한 6개월은 지나야 조금 소식을 알 수 있습니다. 한 1년은 지나야 전쟁에서 이기는지 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전령이 달려옵니다. 그러면 나팔을 불고 성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 전령이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그러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짐승을 잡아서 잔치를 벌이고 승전하고 돌아오는 군사들을 맞이합니다. 군사들은 그냥 오지 않고 전쟁의 노획물들을 다 들고 옵니다. 

잡은 돼지나 소도 가져오고, 양도 끌고 오고, 전쟁의 노획물인 보석도 가져옵니다. 이러면 축제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런데 만약 반대로 전쟁에서 지게 되면 전령이 와서 패전 소식을 전합니다. 그러면 완전 초상집이 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끝났다.” 전쟁에서 지면 노예로 끌려가야 합니다. 노예로 끌려가서 일평생을 고통당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승전의 기쁜 소식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사탄과 싸워서 승리한 소식이 바로 복음의 소식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탄과 싸워서 승리하셨습니다. 지는 것 같았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사탄을 물리치시고 이기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 예수님과 그 십자가에 관한 소식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그런데 바울도 한 때는 이 복음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복음은 바로 십자가에 관한 소식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시고 승리하셔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주신 이 복음의 소식을 바울이 잘 몰랐습니다.

여러분! 그 전에는 십자가 하면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사형 틀이었기 때문입니다. 정치범이나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 흉악범을 주로 죽이는 사형도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수치스럽고 아주 부끄러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심으로 십자가는 영광의 십자가가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바울도 전에는 그 복음이 부끄러운 줄로만 알았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십자가에 죽고 어쩌고 한 일을 다 미련한 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는 그것이 거리끼는 일이고, 이방인들에게는 그것이 미련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내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그 음성을 듣고 나서 바울의 삶이 바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복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복음만을 증거하겠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니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부끄러운 이름이 아닙니다. 너무나 자랑스럽고 놀라운 일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바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2절에 보니까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이제 바울은 오직 다른 것 다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와 십자가 사건만을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만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전하기를 원했던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죄를 지시고 2천 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 흘리심으로 당신의 죄가 용서받고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승리와 생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이 복음을 믿으면 여러분은 이 놀라운 생명의 축복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복음의 소식은 부끄러운 소식이 아닙니다. 너무나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복음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도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어떻게 이야기도 못했는데 이제는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난 후에는 그의 인생이 바뀌어졌습니다. 여러분들도 복음을 자랑하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에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 어떤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딸이 미국에서 살다가 오면서 엄마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나 사다줬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이 너무 좋아서 좀 자랑하고 싶은데 누가 묻질 않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자꾸 머리를 쓰다듬고, 머리가 아프다고 머리에 손을 얹곤 했습니다. 그러자 주위에서 물었습니다. “왜 그래요? 아! 그 반지 못 보던 거네요.” “아! 이 반지 우리 딸이 미국에서 사다 줬어요.”라고 자랑합니다. 

어떤 남자 집사님은 아들이 스위스에 여행 갔다 오다가 오메가 시계를 사다줬는데 자랑하고 싶어서 자꾸 옷이 내려오니까 자꾸 손을 쳐드는 것입니다. 시계를 자랑하고 싶어서. 누가 묻기만 하면 자랑합니다. “이 시계가 스위스에서 온 건데 비싼 거라고.” 여러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바울의 마음속에 가득 찼습니다. 누가 묻기만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너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자랑스럽고 너무 축복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축구경기만 봐도 자랑하고 싶습니다. 한국과 호주 대표 팀하고 축구하는 것을 보고 나니 누가 축자만 이야기해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야! 한국 축구 너무 잘하더라. 호주한테 이기고. 피파 랭킹이 호주가 훨씬 위인데 우리가 이겼다.”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자랑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는데 두 번째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는 바로 구원이란 무엇일까? 입니다. “아, 그거야 10원에서 1원 부족한 게 구원이죠.” 여러분! 정말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제가 어떤 집사님에게 구원이 뭔지 아세요? 라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하십니다. 예수를 오래 믿었는데 갑자기 구원이 뭐냐 물었더니 할 말이 없습니다. 

그 분이 한 참 후에 대답하십니다. “예수 믿고 살다가 죽어서 천당 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어떻습니까? 맞습니까? 틀립니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대답입니다. 반은 맞는 이야기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이 땅에서 예수 믿고 살다가 죽으면 천당 가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내가 죽으면 천국 갈 자신이 없다면 곤란합니다. 이런 분들은 로마서가 끝나기 전에 꼭 구원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 길이 열립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여러분! 구원은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 맞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십자가에 지시고 죽으심으로 내 죄가 용서받고 내가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이 보장되고, 성령님이 나와 동행하고, 그래서 내가 권세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구약에서는 구원을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속박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또 억압에서 놓이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모세의 인도로 자유함 받고 해방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또 병든 자가 치유 받는 것도 구원입니다. 영혼이 치유 받는 것도 구원이지만 우리가 육신의 질병에서 건강해지는 것도 구원입니다. 

또 환란에서 건짐 받는 것, 구덩이에 던져서 죽을 사람이 누가 끌어내어 줘서 살게 되는 것,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해 내는 것, 그것도 바로 구원입니다. 또한 잃어버렸던 사람을 다시 찾아내는 것도 구원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구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다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이 만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 우리가 죄 가운데 떨어져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구원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듣고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올 때 우리는 구원 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것도 구원의 사건입니다. 목자가 99마리를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온 것, 바로 구원의 사건입니다. 구원이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니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여러분! 우리는 구원 받기 전에, 예수님 만나기 전에, 복음을 듣기 전에는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죽을 수밖에 없는 저희들을 살려주셔서.”라고 기도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이미 죽었던 저희들을” 이라고 해야 합니다. 허물과 죄로 이미 죽었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예수를 믿음으로 한 번 부활을 경험하고 거듭난 사람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보니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가 예수를 알기 전에는 종의 멍에를 메었습니다. 우리가 죄의 종이 되고, 사탄의 종이 되고, 육신의 종이 되고, 물질의 종이 되고, 정욕의 종이 되어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예수를 믿음으로써 그 모든 얽맴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고리를 끊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습관을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도박 같은 것은 습관입니다. 도박 안 하면 못 삽니다. 꼭 도박을 해야 합니다. 집도 팔아서 도박합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은 자기 부인까지 팔아다가 도박을 합니다. 세상에 그게 맨 정신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그를 조종합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술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술을 안 먹으면 잠을 못 잡니다. 술을 안 먹으면 출근을 못 합니다. 술을 안 먹으면 일을 못 합니다. 늘 술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술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노예된 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복음을 바로 알고, 복음을 바로 깨달으면 여러분을 얽어매고 있는 모든 죄의 얽매임에서 자유함을 받을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 복음의 능력을 깨달으면 병도 물리치고, 죄도 물리치고, 잘못된 습관도 벗어나고,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악의 저주, 이 재앙의 저주에서도 자유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또한 복음의 능력을 다른 말로 설명한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의’라는 말로 이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한 번 같이 읽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의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말과 같이 써도 괜찮습니다. 복음에는 구원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로 인해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여기서 발생한 것이 의인이라는 것입니다. 의롭다 인정받는 것입니다. 의라는 말은 곧다. 순결하다. 깨끗하다, 거룩하다, 정결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의의 겉옷을 우리에게 입혀줌으로써 우리 죄는 다 감추어지고 우리는 정결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의로 우리의 불의를 다 덮어주는 것입니다. 마치 세상에 지저분한 쓰레기가 많지만 눈이 내리면 모든 세상이 하얗게 깨끗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를 의롭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신칭의’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칭함 받은 것입니다. 또 ‘이신득의’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가 의로움을 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다 인정받고, 의로워지면 우리가 하나님의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17절에서 하박국 2장 4절의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인용해서 이 놀라운 의인의 교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어떤 행위나 선행이나 업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면 650개의 율법을 다 지킬 사람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물어보겠습니까?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한 번도 누구를 미워해보지 않았다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는 분 손 들어 보십시오. 한 분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미워해 본적이 있고, 거짓말 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죄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의로우심으로 우리의 불의와 거짓말, 죄를 다 덮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 없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입니다.

예전에 ‘광복절 특사’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차치하고 이 특사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죄인이 있는데 대통령이 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사면해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감옥에서 나와서 자유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불의하고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죄 없다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나 자신의 본성은 의롭지 못합니다. 나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늘 죄를 짓고 삽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늘 죄의 유혹이 있습니다. 저도 너무 예쁜 여자를 보면 ‘아, 저 여자와 사는 남자는 누굴까?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곧 지워버립니다. 제가 그 여자분 따라가면 큰 일 납니다. 이혼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어도 죄의 유혹을 따라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하면 그 모든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저의 아내가 워낙 예쁘기 때문에 제가 곁눈질을 잘 안 합니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야 점수를 좀 땁니다.

여러분! 구원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이런 얽매임에서 자유함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심판은 이제 나에게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육신의 삶이 끝날 때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내 업적이나 내 노력으로 내가 착하게 살아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니까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구원은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복음은 능력입니다. 죄악 중에 있는 사람을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게 하는 축복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에 복음은 능력이고 구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니까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을 다 영접한 분들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구원은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돈 주고 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에서 오는 것입니다.

조오련 선수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분을 가리켜서 물개라고 하는데 한국과 일본 열도 사이를 현해탄이라고 하는데 몇 번이나 왔다갔다간 굉장한 수영선수입니다. 그러나 조오련 선수가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태평양은 못 건널 것입니다. 한국에서 미국 가려면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그 분이 아무리 헤엄을 잘 쳐도 태평양을 건너기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면 건널 수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구원이란 것은 그런 것입니다. 우리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는 구원을 얻은 존재가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축복에 들어간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인 동시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꼭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얻느냐? 다른 것을 믿으면 안 되느냐?라고 묻는 이상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서울에서 부산 가는데 길이 하나냐? 경부고속도로를 타든, 서해안으로 돌아가든, 비행기를 타고 가든, 배를 타고 가든 가면 되는 것 아니냐? 그러니 우리가 구원 받는 길도 여러 가지 길이 아니겠느냐? 꼭 예수만 믿어야 구원받느냐?” 라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보니까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존귀하신 이름만이 구원의 이름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이란 이와 같은 것이다. 구원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고,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복음의 능력을 우리가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삶 속에 이 복음의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께서 이미 여러분 속에 와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능력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들으면, 구원을 받으면 많은 축복이 따라옵니다. 먼저는 불안해하는 사람이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 복음이 주는 선물이 평안입니다. 지금까지는 고독하던 사람도 ‘내가 외롭지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성령님이 나를 보살피시는구나.’ 이렇게 그는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또 누군가를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이제 그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니 마음에 신비스러운 평화와 자유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질병에서 고통 받던 사람이 자유함을 얻게 되고, 건짐 받게 됩니다. 또한 이제 악한 죄의 고리를 끊어버릴 수가 있고 신실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나를 얽어매는 것들을 다 끊어냅니다.

제가 예전에 양평에서 무당 하시던 분의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귀신이 그를 괴롭히는지 잠을 한번 편하게 못자고, 늘 가정에 우환이 끼치고 병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귀신에게 충성해도 귀신은 그에게 축복을 주지 않습니다. 평안을 주지 않고 늘 불안하고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 벗어버리고 예수를 믿고 나니 그렇게 자유하고 좋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거칠 것이 없습니다. 그런 잘못된 풍습에 끌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복음의 능력 가운데 살아가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킵니다.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서 걸어라.” 그럴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쫒아내고 마귀를 추방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미 그 능력이 주어져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구원 받은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셔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게을리 한때, 내가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고, 예배를 자꾸 빠지고, 전도하지 않고 하면 이 복음의 능력이 상실되어 버립니다. 마치 성령의 능력이 소멸되어 가는 것처럼 이 복음의 능력도 상실되어 갑니다. 그래서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이 됩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고 너무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너무 안타까울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늘 근심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인기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안티크리스찬이라고 합니까?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자꾸 비판합니다. 물론 그분들이 잘못 생각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 안에 살지 못하니까, 우리가 정직하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하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비판 받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정직하지 않고 거짓말만 잘하고 사기만 잘 치더라. 신용이 없더라.” 이러니 기독교가 욕먹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제는 복음의 능력 안에 살아야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회복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충만을 구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예수 이름을 선포하십시오. 그 때 우리는 복음의 능력 안에 거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되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겉은 그럴싸하지만 속은 비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무기력한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울은 정말 뜨거운 마음으로 로마의 교인들을 향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의 감격,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불덩이 같은 바울의 마음이 로마 교인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로마 교인들의 마음도 뜨거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서 다시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로마가 놀랍게 복음화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순교할 당시에 로마시내만 해도 유대인으로 있다가 예수를 영접한 사람이 2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대인을 빼놓고 다른 로마인들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거대한 무리가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 핍박 앞에서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갔습니다. 사자 밥이 되고, 화형을 당하고, 지하 감옥에 갇혀도 점점 더 예수 믿는 사람이 늘어갔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로마가 결국 기독교 앞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그래서 312년 콘스탄틴 대제가 결국 그들이 핍박하던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합니다. 모든 귀족들은 다 기독교를 믿어야 합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곳이 복음화 되려면 우리교회 성도님들 마음 마음이 복음의 불덩이로 뜨거워져야 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복음의 불덩이가 떨어져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야 합니다. 그럴 때 신길동이 복음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 한화원이라고 탈북자들을 모아서 한국의 정착훈련을 시키는 곳을 올해 7월 29일 수료한 사람의 이야기 나왔습니다. 그분은 2007년도 한국에 입국해서 한화원에서 지금까지 교육받고 자유인이 되어서 이제 자유롭게 생활하게 되었는데 그 분이 이런 간증을 합니다. 자기가 북한에 있을 때 약전이라고, 라디오 같은 것을 고치는 기술이 있어서 망가진 축음기도 고치고 라디오도 고치고 했답니다. 

라디오를 고쳐서 주파수를 맞추다 보니 못 듣는 소리가 나오는데 보니 남조선 방송이었답니다. KBS 사회교육방송이었는데 자기가 그것을 들으면서 남한방송에 심취하게 되었답니다. 미국의 소리방송, 자유아세아방송, 희망의소리방송, 제주도 극동방송 등을 들으면서 남한소식에 정통하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김정일이 하는 거짓말들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남한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자기가 운전수였는데 자기 직속상관도 가끔 남한 방송을 듣고 남한 이야기를 하고 남한 노래를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아 이런 분들도 듣는데 나라고 못 듣겠나?’ 싶어서 남한 방송을 열심히 들었답니다. 방송을 듣다보니 남한에 너무너무 오고 싶어서 생명을 걸고 탈북해서 그는 남한으로 건너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 믿지 않는 불신자들, 우리 가족들, 이런 분들에게 자꾸 복음을 증거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해야 할 십자가의 복음을 자꾸 전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들이 복음을 동경하게 되고, 정말 십자가의 그 사랑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언젠가는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자녀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피 묻은 복음, 예수의 이 복음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져야할 모든 죄악을 예수님께서 다 값을 치르셨습니다.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가 상함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다 죄에서 자유 해졌고, 병에서도 이미 다 고침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의 능력을 마음에 안고 힘 있게 복음을 증거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