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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 (신 6: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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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를 위한 교회 (신 6:7~11)


‘세대(generation)'란 말은 ’같은 시기에 살면서 공통의식을 가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이란 뜻입
니다.  생리학적으로 보통 학자들은 30년을 한 세대로 나누어 미성년, 장년, 노년으로 구분합니다.  사회
학적으로는 기성세대와 신세대, 혹은 어른세대와 젊은 세대 등으로 나눕니다.  그러던 것이 이젠 급변하
는 현대사회와 함께 다양한 구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해방이후 먼저 생긴 것은 ’419세대‘입니다.  이들은 1960년 4·19혁명을 주도한 세대로, 당시 20대 초반에 속한 대학생을 말합니다.  
이들은 전쟁이후 한국정치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63세대‘가 있습니다.  1964년 6월 3일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반대하며 6·3사태를 주도한 대학생을 일컫
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 세대는 아주 폭넓은 의미로 사용이 되었습니다.  가까이는 419세대와 멀게는 
70년대 민주화운동세대까지도 포괄합니다.  그리고 ’386세대‘가 있습니다.  419세대와 63세대가 대학에 
다니던 19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세대를 가리킵니다.  '386'이란 용어는 90년대에 등
장한 386컴퓨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고 ’X세대‘가 있습니다.  70년대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출
생한 연령층을 말합니다.  

이 말은 캐나다의 작가 ’더글러스 쿠플랜드‘라는 사람의 소설에서 처음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기성세대와 상당히 이질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마땅하게 정의할 용어가 
없다’는 뜻에서 X로 붙여졌습니다.  그리고 ‘N세대’가 생겼습니다.  X세대 이후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네
트워크(network)에서 붙여진 신세대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컴퓨터로 해결하는 세대로서 현재 10대들이 해당된다고 봅니다.  그리고 ‘M세대’가 있습니다.  M세대는 모바일(mobile)과 밀레니엄
(millennium)세대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21세기에 태어나, 휴대전화를 다양하게 사용하며 앞으로 첨단 
과학시대를 주도할 아이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가 구분됩니다만 그렇다면 성경은 어떻게 세대를 구분할까요?  성경은 의외로 단순
합니다.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현세대와 다음세대로 구분합니다.  지금도 현세대와 다음세대
는 함께 공존하면서 명맥을 이어갑니다.  이것이 성경과 교회역사에서 흐르고 있는 세대입니다.

우리교회가 추구하는 것은 가족과 같은 교회이면서,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현세대만이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과 후손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준비하고,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교회입니
다.  그렇다면 다음세대를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정체성을 확립하라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한 마지막 성경입니다.  마지막이란 말에서 느끼는 것처럼 모세는 파란만장하고, 
숨 가빴던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생애 끝자락에서 유언처럼 하고 싶은 말을 전합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모세의 3편의 설교로 이어집니다.  본문은 두 번째 설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모세
는 우선적으로 당시 백성들과 후손들이 어떤 존재인가를 각인시켜 줍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존재입니
까?  

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먼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민’이라고 말씀합니다.  ‘거룩한 백성’이란 뜻입니다.  거룩은 ‘구별되고 특
별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구별된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여기 ‘성민’은 ‘스굴라’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나라의 국민이나, 함께하는 공동체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 개인에게 특
별히 속한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또한 개인이 소유한 특별한 보물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그들은 하
나님께 속한 특별한 사람들이요, 보물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택한 백성’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만민 중에서 그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들을 택하신 것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뛰어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적인 그의 은혜였습니다.  오직 은혜로 그들을 부르시고,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성민이요, 택한 백성인데 거기서 그치지가 않습니다.  이런 백성들로 인해 
하나님은 기뻐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
하셨고, 애급의 압제에서 구원하셨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홀로 광야에 
버려두지 않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이것을 먼저 주지시킵니다.  지금까지 살
아온 것이 그랬고, 지금도, 영원히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능력의 손으로 지키시
고 천국까지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서 보물과 같은 소중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세대를 위하여 우리는 먼저 나의 정체성, 우리 자녀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
야 합니다.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지금 우리의 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어떤 존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스굴라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모가 
자녀를 대하듯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넓고 크게 사랑하시고, 능력의 손으로 지키시고, 보호하시
고, 광야와 같은 삶에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
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2:9-10)  베드로는 당시 고난으로 몹시 흔들리는 사
람들에게 믿는 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분명히 심어주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복음성가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우리에게 기울이십니다.  그래서 어두움에 밟은 빛을 비춰주시고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정체성을 확고하게 다져야 합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모든 것이 흔들립니다.  힘들고 어
려운 인생에서 나를 알아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이 붙잡고 있습니
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이 언제나 살피시고, 돌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 공급하시기에 넉넉합니다.  하나님이 간섭하기에 걱정과 염려 없이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능력으로 이끄시기에 홍해와 여리고와 같은 문제와 난관을 해결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사랑하시기에 힘을 얻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에 다시 일어납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아십시오.  그리고 자녀들이 어떤 존재인지 가르치십시오.  하
나님이 어떤 분이고, 나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정체성부터 확고하
게 세우기 바랍니다.

둘째는 대가 이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8절과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
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
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알고, 믿는 자가 지킵니다.  그러므로 여기 계명과 천대를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신앙을 이어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천대까지라도 하나님신앙이 끊어지지 말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과 보응이 아니라 축복과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대를 이어가는 신앙입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없어질 듯 없어지지 않으면
서 그들의 신앙은 후대까지 이어집니다.  물론 그들이 잘못을 하여 숫한 위기를 맞았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을 통해 이어지고 또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참 귀한 신앙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신앙
입니다.  우리도 믿음과 신앙의 대를 이어가야 합니다.  여기 말씀처럼 대가 이어지면 은혜와 축복이지
만, 끊어지면 보응과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2장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
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수2:8-10)  출애굽이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세에게서 여호수아까지는 잘 이어졌는데, 그 이후에 대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과거에 행하신 일도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우상을 숭배합니다.  이처럼 대가 끊어져 가는 그들에게 결국 징계가 임합니다.  계속 이어지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
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
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이처럼 그들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 다시 깨닫고 돌아옵니다.  그래서 사사들이 세워져 나라를 위해 싸우고 바르게 이끕니
다.  구약역사는 그렇게 모세, 여호수아, 사사, 왕들로 이어지면서 대가 끊어지지 않은 신앙을 보여줍니
다.

지금 유럽에는 기독교의 전성기에 지어진 크고 웅장한 교회당이 도시마다 우뚝 솟아 있습니다.  옛날
에 그곳에는 매주일 성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커다란 예배
당에 노인 몇 명만 남았습니다.  이젠 젊은이들이 교회를 찾지 않습니다.  교회당이 관광객의 여행코스
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보니 큰 교회당을 유지하기가 힘들어 대여를 하는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유지를 위해 누구든지 상관없이 빌려주기에 거룩한 예배당이 술집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이젠 그냥 가
지라고 합니다만 유지비가 많이 들어 선뜻 구입하겠다고 나서지도 못합니다.  요즘에는 이런 교회들만 
전문으로 매매하는 부동산업자가 성행하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지금 유럽교회들의 냉혹한 현실
입니다.  우리가 그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합니다.  오랜 후에 크고 아름다운 예배당에 사람이 없어서 썰
렁해지거나, 유지하기가 힘들어 건물을 임대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신앙의 대가 이어져야 합니다.  할아버지의 신앙이 아버지, 아들에게로, 할머니의 신앙이 어머
니, 딸에게로 이어져야 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해 우리교회는 이런 사명이 있습니다.  신앙의 대가 끊어
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천대까지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을 우리와 후대가 받
도록, 우리 모두 진실하게 기도하고 더욱 힘쓰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현세대가 잘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결론은 11절에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
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이 말씀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단어는 바로 ‘오늘’입니다.  모세의 메시지는 얼
핏 자녀와 후손에게 선포한 말씀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보다도 지금 말씀을 
받는 사람에게 향한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말씀을 받는 사람들에게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신명기 전체에서 가장 많이 반복하는 단어 중에 하나가 바로 ‘오늘’입니다.  매장, 매구절
마다, 중요한 설교에서 오늘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강조하며 선포한 말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
하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르고 
참되게 살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할 것은 하고, 하지 말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금 
모세는 현세대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음세대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세대입니다.  현세대에 따라 다음세대가 결정됩니다.  세대는 흐르는 것이기에 현세대부터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세대로 물흐르듯이 이어집니다.  현세대가 잘하면 다음세대가 잘 되지만 만약 현세대가 잘못하면 다음세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과거가 아니고, 심지어 미래도 아닙니다.  오늘이고, 지금입니다. 

열왕기상 11장 9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
었고 또 네가 내 언약과 내가 네게 명령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하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버지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이 말씀은 31절 이하에서 반복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
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
이니라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
전에는 온 나라를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다윗 때문에 솔로몬은 축복과 영화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때문에 후대는 나라가 갈라지고 심
판과 멸망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잘못했지만 하나님은 솔로몬 때에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다윗이 잘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모든 영화는 아버지의 덕을 본 것입니다.  하지
만 이스라엘은 왜 나라가 둘로 갈라지고, 지속적으로 타락하여 궁극적으로 멸망했습니까?  그것은 전적
으로 솔로몬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축복은 우리보다 우리 앞 세대가 잘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기독교
역사의 명맥을 유지하며 우리 같은 이방인도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앞서간 성도들의 땀과 눈물과 피
의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이처럼 절정의 부흥을 누리는 것도 우리 앞 세대의 
신실한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한강의 기적을 경험하여 이만큼 잘 살게 된 것도, 앞 세대의 수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축복은 앞 세대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 현세대도 잘해야 합니다.  현세대가 잘하면 다음세대가 복을 받습니다.  다음세대
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 세대이고, 지금이고, 바로 오늘 우리들입니다.  지금 말씀을 받고 있
는 백성들, 성도들, 우리들에 따라 다음세대는 달라집니다.  이제 우리는 눈물로 엎드려 기도하고, 땀으
로 더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대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솔로몬의 길입니까, 아니면 다
윗의 길입니까?

여러분, 우리교회는 가족과 같은 교회이고,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를 추구합니다.  우리 모두 다음세대를 
위해 우리의 정체성을 먼저 확립하고, 대가 이어지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세대를 위하여 우리 현 
세대가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따라 신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 
믿음을 굳게 다짐하며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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