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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이 더 귀한가? (잠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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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더 귀한가?  (잠 22:1~2)

 
성경은 가난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난을 표현하는 것도 마치 피해야 할 사회악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일찍이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20절 말씀입니다.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3절 말씀도 같은 뜻의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예수님은 가난이 결코 불행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그렇게 강조하셨습니까?
그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가난을 전혀 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난을 복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면 새삼스럽게 말씀하실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그 당시 유대인들뿐 아니고 오늘 우리도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하지만 대체로 가난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잠언 기자도 가난에 대해서 대체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잠언 10장 15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일반적인 유대인들의 생각도 잠언 기자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가난한 자는 아무 복도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이 크게 잘못된 것 같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의 조상들은 모두 다 부자였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아들 이삭도 복을 받아서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또 어떠했습니까? 빈손으로 달아났지만 외삼촌의 집에서 복을 받아서 큰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의인 욥도 역시 큰 부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련을 견딘 후에 욥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재물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조금 다릅니다.
가난에 대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보여 주고 있지 않습니까? 1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A보다 B를 택하라는 것은 A도 좋지만 B가 훨씬 더 귀하고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잠언 기자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명예보다 재물을 택하고 은총보다 은과 금을 더 선호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재물을 아주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재물 그 자체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잠언 기자는 뜻밖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재물도 아니고 많은 재물입니다.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언 기자가 말하고 있는 명예에 대해서 좀 더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만큼 명예도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명예를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재물도 버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잠언 기자가 말하고 있는 명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앞에서 사람들이 높여 주는 명예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잠언 기자가 그런 명예를 귀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적인 명예를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명예를 택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약 4:10)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많은 재물을 얻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그런 명예를 얻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잠언 기자는 이 세상에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 같습니다. 그러나 진짜 그렇습니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살고 있습니다. 결코 가난한 자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함께 살지 않습니다. 옆에 있어도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부자들과 함께 살고 싶지만 막힌 벽이 너무 높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잠언 기자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세상에는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부자와 가난한 자 모두를 지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그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재물보다 명예를, 금이나 은보다 은총을 더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옳다고 인정하시고 칭찬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약한 자들을 무시하거나 짓밟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들과 함께 받은 바 복을 아낌없이 나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잠언 기자가 이어지는 9절 말씀과 22절 말씀으로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지 않습니까? 먼저 9절 말씀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또 22절 말씀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모두 함께 사는 이 세상에서 진짜 부자는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나누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선한 눈을 가진 자라고 하며 바로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과연 무엇을 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그것들만 사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많은 재물보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명예를 택해야 합니다. 은이나 금보다 하나님의 은총을 더 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선한 눈을 가지고 받은 바 모든 것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과 더불어 나누기를 기뻐함으로 말미암아 복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지금 여기서부터 마음껏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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