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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 중에 듣는 주의 음성(벧전 4: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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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중에 듣는 주의 음성

숲에 오니 공기도 맑고 참 좋습니다.  그렇지요!  외국에서는 맑은 산소, 공기를 캔에 넣어서 판답니다.  예전에 물을 사 먹을 줄 상상도 못했는데,  이제는 물 사먹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공기를 사 마시는 것이 뉴스거리 인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 삼다수] 마시듯이  [설악산 산소] 사서 마실 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좋은 공기 많이 마시고  돈 좀 벌고 갑시다!

오늘 말씀 주제가 ‘주의 음성’ 듣는 것입니다.  
고난 중에 듣는 주님의 음성 1.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라”입니다. 
주님 손잡고 일어서세요, 라는 복음성가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노래합니다.  고난은 나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런 숲에도 주의 음성이 있습니다.  나무를 보면 ‘나이테’가 있습니다.  나이테를 보면 2가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방향’이고 또 하나는 그 나무의 ‘수령’입니다.  이 모두는 성장 속도 때문에 생겨졌습니다.  따뜻한 햇볕을 받은 쪽은 그렇지 않은 쪽보다 잘 자라서 간격이 넓습니다.  넓은 쪽이 남쪽 내지는 햇볕이 잘 드는 쪽이 되겠지요.  간격이 넓은 것은 따뜻한 봄부터 여름에 무럭무럭 자란 것이고요, 좁은 것은 가을부터 추운겨울에 잘못 자란 것입니다.  

웬 나이테 강의입니까? 나이테에도 주의 음성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따뜻한 때가 있고, 추운 때가 있고... 같은 계절에도  따뜻한 쪽이 있고 덜 따뜻한 쪽이 있다.”   전 3:3-4은 말씀합니다.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오늘 본문12절도 말씀합니다.  (벧전 4:12, 개정)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우리 인생에는 고난이 다 있습니다.  나이테가 말씀하는 주님의 음성은 ‘고난은 다 있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하십니다.   같이 합시다.  “때로 힘든 것이 정상이구나!”  “괜히 어려워했네, 괜찮다.”

고난 중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2. “너는 내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에 고난이 있는 것은 정상입니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더 적극적으로 말씀합니다.  (벧전 4:13, 개정)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 떠난 세상이 주님을 받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거부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요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압니다.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 될 것을...
예수님 믿는 사람이 굿 하는데 우연히 가 있게 되었는데,  무당이 그러더랍니다.  “여기에 예수 믿는 사람이 있어서 굿이 안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무당의 소리를 듣고서 너무 기뻐했답니다.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맞구나” 생각 되었기 때문에...

한 수도원에 앤드류라는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바보스러운 앤드류를 특별히 아끼는 것에 수도사들의 불만이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장은 모든 수도사를 광장에 모았습니다.  
“자, 내가 숙제를 한 가지 내겠소. 숲에 가서 새 한 마리씩을 죽이시오. 다만 아무도 그 새를 죽이는 모습을 볼 수 없어야 합니다. 은밀히 행하고 해가 지기 전까지 이곳에 다시 모이시오.” 

너무나 황당한 숙제를 받은 수도사들은 이상하게 여기면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해가 저물자 수도사들은 죽은 새를 한 마리씩 손에 들고 모였습니다. 그러나 앤드류만은 짙은 어둠이 깔릴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역시 바보는….’ 사람들은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멀리서 앤드류가 두 손에 뭔가를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달려왔습니다.  수도원장이 “그래, 숙제를 했느냐?”라고 묻자, 앤드류는 울면서 “원장님, 저를 용서해 주세요. 숙제를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수도원장이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지?”라고 묻자,  앤드류는 “숲에서 새 한 마리를 잡아 아무도 보지 않는 계곡으로 내려가 그 새를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 머리 위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너무 놀라서 작은 폭포 아래 물속에서 그 새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하나님이 보고 계셨습니다. 저는 끝내 하나님이 보시지 못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앤드류의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수도원장은 다른 수도사들을 조용히 바라봤고 아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수도원장이 앤드류를 특별히 사랑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순진하지만, 진짜로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고난당하며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있습니다.  하찮은 미물 새라도 하나님의 허락하심이 없으면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지금도 불꽃같은 눈으로 여러분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고난 중에 말씀하시는 것 3. “마지막이 어떠한 줄 알아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7-18절을 보면  (벧전 4:17-18, 개정)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하는 우리의 고난은 장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이들이 당하는 지금의 고난은 앞으로 당할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뜨거운 한증막에서 한 사람이 연방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더랍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믿음이 없다면 마지막 때에 이것보다 더 뜨거운 유황불에 들어가게 될 터인데 하나님 만나는 길되신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느냐고.  또  마지막 때에는 너무 더워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데 너무 뜨거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데  지금은 더워 견디지 못할 때는 밖으로 나갈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냐고.
    
사랑하는 여러분,  고후 6:2에 말씀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지금 구원에 기회가 됩니다.  나중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구원의 방주 문은 아무리 살려 달라고 두드리고 아우성 쳤어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방주를 짓는 120년 동안 기회가 되었지, 이미 닫혀진 문은 열 수가 없었습니다.  지나간 버스는 한국 아줌마의 힘으로 쫓아가 세워 탈 수 있지만,  마지막 때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지나간 버스도 세우는 아줌마의 힘 대단합니다.  요즘에는 하나님께서 한국 아줌마, 아가씨들의 불가마 열풍과 목숨까지 내 놓고 하는 다이어트 열풍 대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도 대책을 세워 지옥에 고통을 주는 새로운 것을 하나 더 들여 놓았답니다.   한국의 여기 저기 불가마가 너무 많고 연단이 잘 되어서,  이제는 어지간히 뜨겁게 해도 “시원하다!” 하면서 땀만 잘 흘리고 개운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땀을 흘리고 반드시 체중계에 올라가게 한 답니다.  그리고 올라가서 체중을 보는 순간,  모두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통하며 기절한답니다.  아무리 땀을 흘리고 다이어트를 해도 “고도 비만”으로 나오는 자신의 몸무게 때문에...

우리는 고난이 있을 때 마지막 때에 대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19절,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는 미쁘신 주님의 손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8절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고난은  예표에 불과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고통은 설명할 수조차 없습니다.  영혼의 구원 받음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사랑하는 이들이 다 미쁘신 창조주 하나님 품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멋진 바이올린이 되어서 연주되는 선율과 찬양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음에 평안을 주고 행복을 가져다 준 바이올린이 이제는 수명을 다해서 박물관에 기념으로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이올린에 조각되어 있는 글이 있었습니다. 
"살아 있는 나무였을 때 나는 말없이 자랐다. 그러나 나는 죽은 뒤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나무는 살아 있을 때보다 죽은 뒤에 바이올린이 되어 찬양과 노래로 더 큰 일을 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가면 가장 멋진 찬양으로 가장 아름다운 선율이 되어 하나님께 감동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3가지 음성을 듣고 사시기 바랍니다.  “괜찮다,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라.”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을 보니 너는 분명 내 것임에 틀림이 없구나”  “항상 마지막을 기억하며 용기를 내어라”  
세상 이기신 우리 주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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